BOOK NEWS


북 뉴스

03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4-03-07
조회수
164
 

세상을 묻는 너에게


유범상 저 / 유기훈 그림 / 19,000원 / 마북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돈을 버는 돈, 자본은 어떻게 한 시대의 중심에 섰고, 사람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무엇을 했을까.
두더지 아빠 ‘밥’과 딸 ‘로즈’가 자본주의 역사를 시민정치의 눈으로 이야기한다. 우화로 시민들의 토론 광장을 만들어 가는 사회과학자 유범상 교수가 출판사 마북에서 내는 ‘생각하는 시민을 위한 정치우화’ 시리즈(총 6권) 중 세 번째 책.

오늘을 물으면서 어제를 해석하는
당신의 내일을 위한 자본주의 토론서


‘왜 이렇게 세상살이가 힘들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인가?’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세상을 묻는 너에게』는 이런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독자와 더불어 자본주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여정을 이끄는 우화 속 주인공은 땅 밑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가장 낮은 존재인 두더지들이다. 해박하고 자애로운 두더지 아빠 ‘밥’과 호기심 많은 딸 ‘로즈’가 절망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조상들의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역사는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역사를 시민들이 부당한 질서에 맞서며 자신들의 권리를 관철하려 한 정치적 과정이라고 본다. 두더지들은 학습하고 연대하면서 사자, 호랑이, 여우 등 강자들의 통치에 맞선다. 이들의 정치적 여정은 인클로저 운동부터 프랑스 대혁명, 러다이트, 차티즘, 베버리지 보고서, 제3의 길, 신자유주의의 등장, 코로나19 사태까지 자본주의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읽고 자본주의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이끈다. 500년에 달하는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역사를 우화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두더지, 박쥐, 비버 등 등장 동물의 특징과 우화 속 역할의 공통점은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두더지 부녀의 대화 속에 총 17개의 장이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게 전달한다. 우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때로는 묵직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표현한 유기훈 작가의 40여 컷의 삽화 역시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해설은 역사를 바라보는 이 책의 관점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유범상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가 출판사 마북에서 내는 ‘생각하는 시민을 위한 정치우화’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이다. 총 6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앞서 정의( 『정의를 찾는 소녀』), 인권(『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라』)을 다뤘으며 노동, 민주주의, 시민 축제 편을 출간할 계획이다.

『세상을 묻는 너에게』는 2019년 출간된 『이매진 빌리지에서 생긴 일』(지식의날개)을 새롭게 쓴 책이다.










안 하는 거야 못 하는 거야

최호열 저 / 16,000원 / 희망마루

‘독서’ ‘운동’ ‘끈기’로 일군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여정
‘이번 생은 망했다’는 청춘과 중년을 위한 인생 성공 교과서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걸어라
#114 정신, 학습, Find a better way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졸 학력에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국내 최고의 종합환경기업을 일궈낸 사람.
50대 후반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70세가 넘은 나이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등 평생학습을 실천하는 사람.
사업하는 틈틈이 1만 권의 책을 읽으며 쌓은 지식과 삶의 지혜를 16권의 책을 저술해 주위에 나누어주는 사람.
환갑에 골프장 144홀을 하루에 걸어서 돌고, 고희를 맞아 총 5035km 대한민국 5대 둘레길(제주 올레길, 남파랑길, 해파랑길, 서해랑길, 평화누리길)을 최초로 완주하는 등 늘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
재단을 설립해 소외 지역 청소년들이 독서를 통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도록 돕는 사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생망(이번 생은 망한)’ 세대라고 자조한다. 지금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중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실직과 사업 실패 등으로 좌절한 가장들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 누려온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보장받는 게 최소한의 성공이라고 했을 때, 이를 이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지금 청년과 중장년들의 현실이다.
빈부 계층이 고착된 것 같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성공’는 금수저 출신이나 특출난 수재들에게만 허용된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가능한 것으로 느껴진다.
이런 현실에서 국내 최고 종합환경기업을 일군 김상문 ㈜아이케이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눈길을 끈다. 정규 학력이 중졸에 불과한, 가난한 농사꾼 막내아들이 오직 독서와 운동,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끈기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의 길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성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없어도 성공으로 가는 계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오를 수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의 성공 비결은 성공의 천운을 타고나서도, 시대를 잘 만나서도, 선천적으로 뛰어난 능력과 혜안을 지녀서도 아니었다.
미래의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던 스무 살 군대에서 각성하고 독학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간 노력, 마흔 살에 사업을 시작하며 손에 쥔 돈 없이 오직 신용만으로 석산을 임대하기 위해 땅 주인을 114번이나 찾아가 계약에 성공한 끈기, 지하 채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등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고 도전해 이를 극복해내는 집념, 평생 독서를 통해 선인들의 가르침을 체화하고 사업에 적용하며 회사를 발전시켜온 과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비범한 여정이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거창한 게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어렵고 힘든 일일 수는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그의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과 노력하는 자세는 진한 여운과 함께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은퇴 설계 전문가’ 강창희 전 미래에셋 부회장이 “지금 낙심해 있는 젊은 청춘들, 인생의 어려움을 당하여 고민하고 계신 분들, 100세 시대에 새로운 인생 후반을 꿈꾸고 계신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고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오타쿠의 욕망을 읽다


마이너 리뷰 갤러리 저 / 19,800원 / 메디치미디어

 
11가지 키워드로 알아본 오늘날의 오타쿠 문화
한국의 젊은 세대는 왜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가?
결국 와버린 '진짜들'의 시대를 제대로 파헤치는 단 한 권의 책

《오타쿠의 욕망을 읽다》는 16만 유튜버이자, 독특한 시선으로 서브컬처와 사회문화를 비평하는 '마이너 리뷰 갤러리'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대중문화가 머지않아 끝날 거라고 본다. 그 자리는 수많은 '마이너한' 문화들이 차지할 것이고, 그중 오타쿠 문화는 대중문화를 대체할 핵심 문화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이 책에선 「드래곤볼」, 「원피스」 등 일반 대중들에게 익숙한 작품부터 「신세기 에반게리온」, 「최애의 아이」 등 총 68개의 작품을 11가지 키워드로 분석하며, 오늘날의 오타쿠가 누구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나아가 저자는 단순히 일본의 오타쿠 문화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해당 문화를 소비하는 한국과 일본의 80, 90년생들이 '콘텐츠'에 무엇을 바라는지 얘기한다. 그들이 콘텐츠에 원하는 것이 더 이상 '본질'이 아닌 '만족'이다. "콘텐츠가 즉각적으로 나에게 어떤 만족을 줄 수 있는가?"가 80, 90년생이 콘텐츠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때문에 문화소비자로서 '오타쿠'라는 집단을 아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들을 탐구하는 것이 곧 미래 세대를 아는 것이고, 이는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왜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가?
결국 와버린 ‘진짜들’의 시대를 제대로 파헤치는 단 한 권의 책

유튜브 서브컬처 리뷰의 독보적 존재
마이너 리뷰 갤러리가 말하는 오늘날의 오타쿠 문화

《오타쿠의 욕망을 읽다》는 16만 유튜버이자, 독특한 시선으로 서브컬처와 사회문화를 비평하는 ‘마이너 리뷰 갤러리’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너 리뷰 갤러리’ 일명 ‘마리갤’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대중문화가 머지않아 끝날 거라고 본다. 그 자리는 수많은 ‘마이너한’ 문화들이 차지할 것이고, 그중 오타쿠 문화는 대중문화를 대체할 핵심 문화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이 책에선 「드래곤볼」, 「원피스」, 「세일러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부터 「신세기 에반게리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최애의 아이」 등 오늘날 오타쿠를 만든 상징적인 작품들까지 총 68개의 작품을 11장에 걸쳐 분석하며, 오타쿠가 누구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밝혀나간다. 나아가 저자는 단순히 일본의 오타쿠 문화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해당 문화를 소비하는 한국과 일본의 80, 90년생들이 ‘콘텐츠’에 무엇을 바라는지 얘기한다. 그들이 콘텐츠에 원하는 것은 더 이상 ‘본질’이 아닌 ‘만족’이다. “콘텐츠가 즉각적으로 나에게 어떤 만족을 줄 수 있는가?”가 지금의 80, 90년생이 콘텐츠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아울러 모두를 만족시키는 콘텐츠 또한 이제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국민가수’나 ‘국민예능’ 등이 나오지 않는 시대에 모든 콘텐츠는 각각의 다른 수요자들의 사적이고 세분화된 만족을 충족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모두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콘텐츠보다는, 그들에게만 공감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앞으로 대부분 문화산업의 전략이 될 것이고, 그걸 가장 잘하는 게 서브컬처이다.

때문에 문화소비자로서 ‘오타쿠’라는 집단을 아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들을 탐구하는 것이 곧 미래 세대를 아는 것이고, 이는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초년생인 30대 초반은 어린 시절 「원피스」를 보고 자란 세대이고, 과장급인 40대 초반은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다. 그들이 그 콘텐츠를 보며 느끼는 것은 해당 콘텐츠의 본질에 관한 깊은 이해가 아니다. 본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즉각적인 만족감’을 그들은 콘텐츠를 보며 느끼는 것이다.

“서브컬처가 대중문화를 끝내버릴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대중문화가 아닌 서브컬처가 문화의 주도권을 가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오타쿠인 것을 더는 숨길 필요가 없는 시대, 오타쿠인 것이 오히려 유리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욕망에 가장 솔직한 집단,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오타쿠이며, 그들이 오늘날의 ‘진짜들’이다.












녹색평론

녹색평론 편집부 저 / 17,000원 / 녹색평론사

 
테크노크라시, 인공지능, 민주주의

185호 《녹색평론》 특별 좌담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진정한 한국의 정치 개혁은 어떤 내용의 것이 되어야 할지, 즉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고자 했다. 물론 우선적으로 우리는 국회가 국민을 비례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의롭지 못하고 꽉 막힌 정국의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민중의 자율적인 삶, 참다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고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는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눈을 돌려서 우리의 생활공간을 정치의 장(場)으로 만듦으로써, 자연환경과 공동체를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의 정치적‧사회적 폐색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기후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응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自治)를 위한 기본조건이면서 동시에 궁극적 목표라고도 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과 자치적 삶을 실현하는 일에 있어서 현대의 첨단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고자 했다. 즉, 인공지능기술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에 침투하여 심원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인간이 자율적 삶을 영위하는 일을 영원히 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자 했다.

인류는 인공지능 시대를 건너갈 수 있을까
거의 매일같이 인공지능의 경이로운 발전상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어떤 가능성과 위험요소를 갖고 있고, 그리하여 국제적으로는 이 기술에 대해 어떤 규제와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본권(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바로 이런 의문을 말끔하게 정리해준다. 손화철(한동대 교수)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철학적 문제들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특히 기술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간과되곤 하는 문제, 즉 에너지를 엄청나게 요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장정일(작가)은 인공지능기술은 기본적으로 정치영역의 문제라는 관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을 구별, 차별화하려는 시도 내지 전략이 빠지는 함정에 대해 지적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정형철(과학 칼럼니스트, 대안학교 교사)은 인공지능을 포함한 현대사회의 거대기술들이 인간을 무기력한 소비자, 기계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특히 교육분야에서 디지털기술들이 숙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카비르 헬민스키(이슬람 수피교 사제)는 첨단 기술을 통해 인간(조건)을 초월하겠다고 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다시 천착하고자 했다. 그 자체로 이미 생명세계에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공학, 정보기술(IT), 인지신경과학기술이 이제 나노기술을 통해서 마침내 원자와 분자 단위에서 적용되는 일이 가능해진 오늘날, 우리 각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 일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거대기술사회에 대한 근본적 저항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자치(自治), 생태문명을 향한 첫걸음
185호 특별좌담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현시점에서, 진정한 한국정치의 개혁은 어떤 내용의 것이 되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참석자들(손주화, 윤현식, 황종규, 하승수)은 우리가 여의도만 바라보고 있고, 서울을 모델로 삼고 따라잡고자 하는 한, 전 국토가 개발로 쑥대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공감을 이루면서 작은 지역단위의 자치, 주민들의 삶터와 정치의 장(場)이 일치되어야 하는 이유를 각자의 현장 경험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덕규(시인)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경기도 화성시가 더이상 주민들의 삶터가 아니라 ‘도농복합도시’로 변해온 과정을 비감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승무(순환경제연구소 소장)는 중앙집권적 정치구조는 외부자원에 의존하는 산업화와 각 지역의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와 사회를 균질화하는 원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생태적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단위는 지역의 자치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에드 사익스(피닉스언론협동조합 공동 설립자)는 멕시코 미초아칸주(州) 푸레페차 공동체의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조명한다. 토착공동체들이 왜 자치권을 손에 넣기 위해서 오랜 세월 싸워왔는지, 자치정부를 만든 뒤 생활에서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야보르 타린스키(사회운동가, 저널리스트)는 디지털 매개체를 통한 민주주의의 허와 실을 짚으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공장소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첨단 정보기술이 민주주의의 강화에 정말로 도움이 되려면 우리가 어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파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
송원규(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선임연구위원)는 기업들과 국가에 의해서 농식품체계의 모든 단계에서 첨단 인공지능기술과 생명공학을 접목하여 식량안보를 해결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선전되고 있는 이른바 ‘스마트농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유병덕(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친환경농업’ 정책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땅과 사람을 살리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의 환경농업이 소비자 중심의 ‘식품안전’에만 몰두하는 정책적 개입으로 인해서 유기농, 무농약, 재생농업 등 친환경적인 농업을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사회와 자본주의
장병윤(전 한살림부산 이사장)은 도시에서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자급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현재 우리 생활협동조합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돌아보고자 했다.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의 ‘자본주의 다시 보기’ 연재 두 번째 글에서는 ‘가치형태’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우리가 지구환경과 사람, 공동체를 황폐화하는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명철한 개념적 사고를 확립하는 일은 필수적일 것이다.
김인국(생극성당 주임신부)은 하느님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하는 인간이 금수의 행태만 일삼으면서 괴물들이 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순례자들의 “망상의 나를 쓰러뜨리고 참다운 나를 되찾으려는 목숨 건 사투”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진재용(변호사)은 바닷가의 모래밭에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는 상업용 건축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법제도에만 맡겨 해결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법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을 것이 아니라 온당한 상식과 문화의 힘으로 우리 공동체의 삶의 터전을 보전하는 방식을 단단하게 구축해놓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시와 서평
이번 호에는 권현형, 조성순, 조온윤 시인의 신작 시를 각각 2편씩 소개한다.
남종영(환경논픽션 작가)은 지구법학회의 《지구법학》을 소개한다. 지구법학은 “지구 생명체들에게 법인격을 부여하고자 하는 법사상 혹은 법률 체계”를 의미하는데, 이 책은 그 사상적 근거를 소개하고, 자연과 동물을 객체로서 보호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연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자 하는 동물권운동의 흐름을 소개한다.
이석태(전 헌법재판관)는 제헌국회 의사록을 정리해 엮은 《1948년 헌법을 만들다》를 통해 제헌헌법이 제정된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서 소개한다. 한국사회가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만큼 발전한 것은 제헌헌법 정신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본규범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노고운(전남대)은 에코페미니스트 15명의 글을 모은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를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심각한 환경위기의 주범이면서도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산업계와 정치계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죽어가는 지구에 남아 지구를 살려내겠다고 다짐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탈성장과 자급, 그리고 자연과의 얽힘이다.
조미성(모심과살림연구소 사무국장)은 라리사 짐버로프의 《음식의 미래》를 읽고 오늘날의 먹거리 기술의 문제에 대해 점검한다. 식량문제와 환경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대안으로 선전되고 있는 동물성 배양육은 실제로는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크지 않을뿐더러, 식품으로서의 안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좋은 정치체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김동현(문학평론가)은 황규관 시인의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를 소개한다. 전작 《리얼리스트 김수영》에 이어 두 번째로 김수영 시인에 대한 책을 펴낸 황규관 시인의 글은 김수영의 시를 어렵게 여겨온 이들에게 최고의 참고서인 동시에, 오늘의 아비규환과 진창을 냉소의 날개로 비켜서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하겠다는 시인 스스로의 다짐이다.
고영직(문학평론가)은 김해자 시인의 시집 《니들의 시간》을 분석하였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상한 위기의식을 잘 드러내는 표제작 〈니들의 시간〉,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사태를 다룬 시 〈삼십년 후, 소년 소녀에게〉등을 통해 김해자 시인은 인류세 시대 시의 역할을 고민하며, 지구라는 집에 살기 위해 다른 사유방식을 지닌 새로운 인간이 탄생해야 함을 촉구한다.









순진한 삶

장수진 저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얼마나 아름다워 아무것도 아닌
이 모든 거짓말과 옛날이야기 들”

끊임없이 재생되는 아름다운 지옥의 시간
막다른 경계에서 미래로 확장되는 사랑의 굴곡

우리, 소설처럼 죽을 수 있겠니/복잡 미묘하게, 어쩌면 단순하게/기괴하게, 산뜻하게/ 모두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가지/그것은 축복일까
-「카페 ‘편집’」부분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국 시의 또 다른 마녀’ 장수진의 세번째 시집 『순진한 삶』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시인은 “강력한 자기파괴적 힘을 발”(문학평론가 이광호·강계숙)한다는 평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이후 격정적인 언어를 통해 내면의 순수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해왔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지난 자취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아름다움, 사랑, 죽음, 자유, 인간의 민얼굴 등과 같이 그가 열망한 것들에 관한 진솔한 감정을 여러 화자의 목소리로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2부로 엮인 총 60편의 시에서 내면의 감정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쉽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졌고, 다칠 것을 알면서도 다시 들여다보는 순진하고도 용감무쌍한 마음은 한층 더 격정적으로 다가온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윤경희 평론가는 “어느 특정한 시간대에 진자의 진폭을 고정시키고 그것의 감각을 재차 확인”하며 “저물녘의 세계에 고유한 풍경을 층층이 인화해나”간다고 말한다. 시집의 첫 시 「불과 장미」속 “파티에는 언제나 도전적인 측면이 있”다는 시구로 그 서막이 열렸음을 알린다.


“얼굴은 모든 이의 완전한 몰입을 요청한다”
─무수한 경험과 목소리를 가진 얼굴들의 이면을 폭로하기

“위대한 예술은 어쩌면 그것들을 그려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인간과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는 일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예술은 예술을 갱신할 뿐”
-「농부 혹은 바울드기너 씨의 수상 소감」 부분

장수진은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극단 골목길, 크리에이티브 바키에서 활동한 연극배우이다. 무대에서 강렬한 캐릭터와 다양한 역할에 자신을 밀어 넣어 연기해온 그의 경험은 종이라는 무대 위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시편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배역을 맡은 존재들의 기저를 관찰하는 시선이 있다.
「그는 프롤로그이며 에필로그이고」에서 ‘그’는 군중이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며 구두이기도 하고 수선공이기도 하고 늙은 소년이기도 하다. 또한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느린 소매치기”이다. 이 낯선 듯 익숙한 이는 “엉망이고/더럽고/사랑스럽고/자유로우며/잔혹”한 측면이 있는데, 여러 얼굴과 특징이 혼재하는 ‘그’를 두고 시인은 “인간의 모든 걸 갖추었다”고 말한다. 「소설 인간」에는 주자창, 자정을 넘긴 운동장, 싸구려 초상화가 즐비한 가을 나무 아래와 같이 대체로 무해하게 비스듬히 서 있는 ‘당신’이 등장한다. 그는 작가의 의도대로 “심드렁하고/유식하고/반발심”을 품고 움직이는 소설 속 인물이지만 엄연히 자아가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연기 하는 중에도 “인간을 모방하고/인간을 이룩하며/무수한 자를 살해하고/복잡한 자를 요약하며/만화 인간의 커다란 눈을/증오한다”. 이 시집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 중 하나는 의사와 환자 혹은 내담자와의 대화이다. 내담자는 “신이 내게 천국을 보여준 것”이라며 자신이 본 세계에 대해 말하는데 생각해보니 “주님은 아마도 마일리지일 가능성이 있지만/나는 그녀의 기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악몽의 연속에서 이따금 열리는 천국을 “정말 갔다 온 사람이 있”(「상담사와의 추억」)다는 내담자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는가 하면 “우린 참 못생겼지/그런데/신도 참/잣같이 생겼더군 [……] 어서 일어나/집으로 가”(「아픈 사람」)라며 위로한다.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화자는 ‘개’이다. 「겁먹은 개」에서는 비스듬히 놓인 단추 그림과 해독할 수 없는 짧은 언어가 공포에 사로잡힌 개의 심정을 대변하고 「개헤엄」에서는 “물에 던져진 개”가 “물을 껴안고 물을 할퀴고 온갖 욕설과 사랑을 퍼부으며 힘을 뺀다”.「신경」에서 ‘개’는 “인간의 구역질에 두드려 맞”는 존재로 “내가 살아 있는 한 나의 주인은/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이며/인간답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악마야/나랑 놀자/우리는 무직이니까”로 시작해 직업이나 배경을 아예 포기하고 “중대하고 심오한 비극”(「악마는 시를 읽는다」)을 꿈꾸기도 한다.
이 밖에도 『순진한 삶』에는 “철없는 레지스탕스 당원”(「화해」), 주인 행세를 하지만 주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모자(「안타까운 헛소리」), 아마추어 여성 영화감독(「침대 선생님」), 굶어 죽은 소년(「글로리아」), 농부이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예술가(「농부 혹은 바울드기너」)와 같은 가지각색의 배역이 등장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화자들이 표현하는 다양한 모습들에 얽힌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즐겼다 희망 없음을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 썼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형벌을 실험하기

주인공의 볼품없는 몸이 훤히 드러난 그 장면에서 너는 계급과 인종에 대해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엔 파도가 아름답다고 느꼈고, 그 파도만 보게 되었다. 파 도 파 도 미 도 단순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며 너는 주먹을 쥔 채 파도를 이끌고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순진한 삶」 부분

사랑과 죽음은 장수진의 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자 빼놓을 수 없는 관념이다. 특히 시인은 열렬한 사랑이 진행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끝을 마주했을 때 “도처에서 생태계가 저물어가는 징후”(해설)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도망쳐」에서 화자는 “사랑을 멈출 수 없”고 “지옥이 쏟아”지는 것을 피할 궁리 없이 받아들이다가 다음에 배치된 시 「보호와 교육」에서 “리본에 목을 졸”리고 “속이 쪼그라지도록 뜨거운 우유를 마시며” “음악이 아닌 울음”을 토해낸다.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꿈꾸듯 순수한 얼굴로 “성실한 삶”과 “미래를 연습”한다. “물건으로 둘러싸인 거실을 운운하는 것이 사랑이라면/저 언덕을 흘러내려도/더 무서워도 나는 좋”(「사랑은 거실의 것」)다는 고백은 마치 순진해서 용감하고 성실한 사랑의 독백처럼 들린다.
여린 마음으로 꿈꾸던 영원이 사실상 허상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죽음을 생각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죽음이 뭐지?/우리 만나, 죽어서?/사랑과 영혼?/고스트?/오 마이 러브 유어 터치!”(「단순한 공놀이」)라고 장난스럽게 떠올리는가 하면 “우리, 소설처럼 죽을 수 있겠니”(「카페 ‘편집’」)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랑의 끝에 떠오른 죽음은 ‘나’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당신’을 향한 것일 수도, ‘사랑’의 끝임을 목도한 것이거나 이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악의도 적의도 없이/죽을 때까지/죽일 뿐”(「매」)이다.
『순진한 삶』의 화자들이 죽음을 떠올린다고 해서 “비탄과 고통과 오욕에 절어”(「솔리스트」)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저게 그 뭐야, 고통……이라는 건가?”(「화해」)와 같은 무사태평한 태도와 혼재되어 있다. 「호시절」에서는 “우리 생에 가장 좋았던 시절은 전쟁 중이었”다고 말하고 「작별」에서는 “날아가는 새에게 뒤는 없다” “안녕, 모르는 이여”라며 고통의 시간을 추억처럼 회상한다. 좌절도 슬픔은커녕 오히려 “모두가 죽음에 고정된 채 감미로운 질병으로 존재”(「안락의자 아래 놓인 발목」)할 뿐이다. 그리고 죄수는 말라죽어가는 수감자들 틈에서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시에 “자유를 느”(「구오의 일기」)낀다.
「낮의 소년에게서 이어지는 밤」 속 화자의 꿈은 “낮에는 소년이었다가/어스름한 밤이 오면 재규어가” 되는 것이다. 다정하고 순진한 소년과 그것을 물어 죽일 수 있는 재규어를 오가는 이 시편에는 “사바? 꼬망 사바? 위, 위, 농”이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괜찮아? 잘 지내? 응, 응, 아니’로 번역되는 화자의 말 속에서 시인이 “펜을 쥘 수 없게 사방으로 뒤엉킨 손가락들”(「솔리스트」)로 써 내려갔을 무수한 밤을 상상할 수 있다. 뜨거운 낮과 서늘한 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랑이 끝을 앞에 두고 비로소 완성되는 삶. 앞으로도 시인은 그 오롯이 “순진한 삶”을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 합격기
(
제1권: 청년 가장, 제2권: 활을 잡다, 제3권: 급제를 쏘다)

김도희 저 / 14,000원 / 제이에스앤디
 
 
실제 기록에서 탄생한 이야기

맹렬서생 노상추의 눈물나는 과거합격기는 영정조 시대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무관으로 활동했던 노상추가 쓴 일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과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일기에 나오는 실존 인물, 실제 사건입니다. 우리는 초중고 시절을 거치며 역사를 배웠고 사극 컨텐츠가 범람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모습은 실록에 나오는 정치적 이야기나 전래 동화, 전설 같은 허구여서 평범한 조선인들의 실제 생활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본 도서는 투철한 유림이 남긴 기록을 현대적 이야기로 창조하여 독자들에게 일반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지식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선비, 그들은 누구인가?
과거시험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청년 노상추의 뒤를 따라가며 임금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조선인들을 만나보고 선산에서 한양 도성에 이르기까지 조선 팔도의 이모저모를 구경하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의 선비들이 양반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살았는지, 과거에 합격한다는 것이 개인으로나, 가문으로나, 향촌 사회로나 얼마나 감격적이고 경사스런 일이었는지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독자들은 약 250여년 전 조선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보고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제1권 : 청년 가장
갑작스런 형의 죽음으로 둘째 아들이었던 노상추는 난데없이 가장의 자리를 물려받습니다.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유람을 떠납니다. 노상추는 노비들을 부려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하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면서 과거 시험도 준비해야 합니다. 17살의 어린 청년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제2권 : 활을 잡다
어머니와 아내를 한 해에 모두 잃는 참절의 슬픔을 겪은 노상추. 일기 한 줄 못쓰고 책 한 줄 읽지 못하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새장가를 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버지를 장가보내드리고 집안일을 돌봐가며 과거 시험을 준비하지만 그는 끝내 붓을 던지고 활을 잡습니다. 그는 왜 무관이 되기로 결심한 걸까요?

제3권: 급제를 쏘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노상추는 드디어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드디어 임금님이 계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납니다. 급제의 부푼 희망으로 동접들과 즐겁게 떠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합니다. 과거를 보러 다니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과거길에 오르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 가고 끝없이 이어지는 낙방에 몸도 마음도 무너져내립니다.











돌봄, 동기화, 자유

무라세 다카오 저 / 김영현 역 / 18,000원 / 다다서재
 
『돌봄, 동기화, 자유』는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소장인 저자가 수많은 노인들을 돌보며 겪은 일을 바탕으로 돌봄의 본질, 그리고 돌봄과 자유의 공존에 관해 쓴 책이다.
격리, 통제, 과도한 투약을 하지 않는 ‘요리아이’에서 노인들은 일정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쓰던 물건으로 방을 꾸며놓으며 언제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시스템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이곳에서 노인들은 수용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인지저하증(치매)을 겪고 있지만 저자는 이를 병이 아닌,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혼란에 기꺼이 동기화하고자 한다.
이 책은 특별한 요양원에서 지내는 여러 노인들의 일상을 통해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탈피함과 동시에 이론에 담기지 않는 돌봄의 본질,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상호작용, 돌봄과 자유의 공존, 시설의 탈시설화 가능성 등 ‘돌봄’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고찰한다.

돌봄의 한가운데에서 자유를 발견하다

조한진희, 홍은전 강력 추천!

격리도 통제도 없는 특별한 요양원의 자유로운 노인들
‘나답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돌봄

『돌봄, 동기화, 자유』는 일본 후쿠오카의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소장인 저자가 수많은 노인들을 돌보며 겪은 일을 바탕으로 돌봄의 본질, 그리고 돌봄과 자유의 공존에 관해 쓴 책이다.
격리, 통제, 과도한 투약을 하지 않는 ‘요리아이’에서 노인들은 일정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쓰던 물건으로 방을 꾸며놓으며 언제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시스템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이곳에서 노인들은 수용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인지저하증(치매)을 겪고 있지만 저자는 이를 병이 아닌,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혼란에 기꺼이 동기화하고자 한다.
이 책은 특별한 요양원에서 지내는 여러 노인들의 일상을 통해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탈피함과 동시에 이론에 담기지 않는 돌봄의 본질,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상호작용, 돌봄과 자유의 공존, 시설의 탈시설화 가능성 등 ‘돌봄’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고찰한다.

문을 잠그지 않는 특별한 요양원의 노인들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서 살아갈 순 없을까

“우리는 고령자를 부담스러운 짐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격리하지 않습니다. 구속하지 않습니다. 약에 찌들게 하지 않습니다. 노화의 시간과 리듬에 어우러지며 고립되기 쉬운 어르신 및 그 가족들과 함께합니다.”
‘요리아이’가 홈페이지에 내건 설립 이념이다. 1991년 시설들에 거부당해 갈 곳을 잃은 한 노인을 위해 사찰의 작은 방을 빌리는 것으로 시작된 ‘요리아이’는 노인들을 일정표대로 움직이도록 통제하지 않고 가두지도 않는다. ‘요리아이’의 노인들은 자신이 원할 때 먹고 잘 수 있고 식판이 아닌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함께 모여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돌봄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요리아이’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노인들은 언제든 원할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직원들이 따라 나가 노인들과 동행하지만, 혹시 직원이 모르는 사이에 나간다 해도 괜찮다. 인근 주민들이 홀로 걷는 노인을 발견하면 시설로 전화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 돌봄’ 체계를 만든 것도 ‘요리아이’의 직원들이다.
저자는 시설에 사는 사람/시설 밖의 사람, 이상이 있는 사람/정상인 사람으로 세상을 양분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사람은 가둬도 된다고 말하는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정신이 흐릿해진 노인을 왜 가둬야 할까? 조금 오락가락할지라도 그 혼란에 어우러지며 함께 살 수는 없을까?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서 사는 노인을 이 사회가 지켜봐줄 순 없을까?

동기화에서 발견한 돌봄의 본질
돌봄과 자유는 공존할 수 있을까

돌보는 이들은 돌봄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당사자와 ‘동기화’를 시도한다. 동기화가 성공하면 일은 수월해지고, 돌봄을 하는 이도 받는 이도 편해진다. 그러나 저자는 동기화만을 목표하면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게 될 수 있으며, 오히려 동기화에 실패했을 때 자유롭게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동기화하기 위해 두 사람이 노력하는 그 시도 자체에 돌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인지저하증을 겪으며 혼란에 빠진 사람을 돌볼 때 무조건 통제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혼란에 함께 어우러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당사자의 언동에 대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정상인지 판단도 교정도 하지 않고 그저 그 혼란에 함께할 수 있을 때, 돌봄을 하는 ‘나’와 돌봄을 받는 ‘나’, 두 사람의 ‘나’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인지저하증 당사자의 자유만이 아니라 돌보는 이의 자유 역시 강조한다. ‘요리아이’에서는 돌봄을 하던 직원이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몰릴 때 언제든 도망치라고 당부한다. 돌봄을 하다 보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감정, 윤리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상냥한 줄만 알았던 자신에게서 낯선 ‘나’가 튀어나오며 ‘나’가 붕괴되는 순간이다. 자칫하면 학대와 방치로 이어질 수 있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 저자는 ‘요리아이’의 시설장으로서 직원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도주’를 인정해준다. 최선을 다해 돌보지만 위태로운 순간에는 도망칠 수 있는 자유. ‘자유’가 돌보는 이와 돌봄 받는 이, 두 사람을 구원한다.
‘요리아이’에는 아침 회의 시간이 있다. 지난밤 당직 직원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하는 자리다. 직원은 지난밤 “‘나’가 어떻게 붕괴하고 재생했는지”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고 다른 직원들은 함께 들으며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축복한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 모든 걸 날려버린다.

노화와 인지저하증에 대한 새로운 정의
언젠가 다가올 노인을 위한 나라를 꿈꾸며

노화는 곧 기능 상실이자 쇠퇴이며 부자유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노화가 번데기 속에서 형체를 바꾸듯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역동적인 변화이자, 규범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흔히 인지저하증을 사회적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인지저하증으로 인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잊어버리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증상이 오히려 당사자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해체하며 새로운 자유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인지저하증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인 것이다.
인지저하증에 걸리면 본래의 내가 사라진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오랜 세월 수많은 노인을 돌봐온 저자는 인지저하증이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인품은 앗아가진 못한다고 말한다. 노인들은 각자 다른 형태로 찾아온 혼란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의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그 사람다운’ 노인들을 인지저하증이라는 하나의 방에 가둘 순 없다. 인지저하증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직간접적인 미래가 될 것이다. 저자는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화두와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이가 들고 병들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게 당연한 일일까? 인지저하증에 걸리더라도 고립되지 않고 억압받지 않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을까?
소수의 시설과 전문가에게 돌봄의 책임을 떠맡기는 사회에서는 자유와 인권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지역 단위로 돌봄의 영역을 확장하고 개인들은 언제든 타인의 돌봄에 기꺼이 “말려들”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돌봄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요리아이’(한데 모임)라는 이름처럼, 우리 역시 한데 모여 고민하고 돌봄을 모두의 일로, 모두의 책임으로 나눠가질 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마쓰다 미히로 저 / 민경욱 역 / 16,800원 / 드림셀러


“98가지 현인들의 질문에 답할 때마다
당신의 삶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워런 버핏, 조셉 머피, 알프레드 아들러,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파울로 코엘료,
마르셀 프루스트, 얼 나이팅게일, 소크라테스, 나폴레온 힐……. 현인들의 인생 질문은 무엇일까?

그들의 명언 속에서 찾은 인생 질문이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오늘 하루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계적인 질문의 대가가 현인들의 명언 속에서 찾은 삶의 방식, 성공, 일, 사랑, 열정, 행복, 꿈, 신념, 결단, 행동에 관한 98가지 질문들이 펼쳐진다!
98가지 질문 중 당신의 운명을 바꿀 질문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질문은 인생을 바꾼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전 세계인들에게 강연과 교육을 통해 좋은 인생을 사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가이자 질문의 대가인 저자가 현인들의 명언 속에서 핵심적인 인생 질문을 찾아냈다!

현인들의 명언 속 질문에 답해 보라!
질문에 대답하며 사고방식과 행동의 힌트를 찾아간다면, 당신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_ 스티브 잡스
“당신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_ 조셉 머피
“비웃음을 살 만한 아이디어를 냈는가?” _ 빌 게이츠

“현인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위업을 달성했다!”
더 나은 삶을 원하는가? 98가지 명언과 명언 속 인생 질문에 답해 보라!

저자는 질문가로서 활동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질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그러다가 운명을 바꿀 만한 질문과 여러 차례 만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해 왔다. 그는 그것을 ‘마법의 질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마법에 걸린 듯 의욕과 능력이 생기고 행동하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질문의 형태가 아니라도 현인들의 명언들을 수없이 듣고 되내이고 마음에 새기기도 한다. 누구나 인생의 모토로 삼는 명언 하나쯤을 있을 것이다. 저자는 현인들의 명언을 읽을 때마다 그 안에 숨은 질문들을 생각했다. 현인들의 명언이 내포하는 의미를 질문을 통해 깊이 있게 사색함으로써 각자의 삶을 변화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바랐다.
이 책에는 현인들의 98가지 명언과 명언 속 인생 질문이 들어있다.
장 폴 사르트르, 스티브 잡스, 소크라테스 등의 명언에서 찾은 ‘삶의 방식’에 관한 질문들, 피터 드러커, 조셉 머피, 월트 디즈니 등의 명언에서 찾은 ‘성공’에 관한 질문들, 얼 나이팅게일,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명언에서 찾은 ‘일’에 관한 질문들, 마더 테레사, 마하트마 간디, 달라이 라마 14세 등의 명에서 찾은 ‘사랑’에 관한 질문들,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르크 샤갈 등의 명언에서 찾은 ‘열정에 관한 질문들, 플라톤, 안네 프랑크,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의 명언에서 찾은 ’행복에 관한 질문들, 알프레드 아들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파울로 코엘료 등의 명언에서 찾은 ‘꿈’에 관한 질문들, 필 나이트, 워런 버핏, 빈센트 반 고흐 등의 명언에서 찾은 ‘신념’에 관한 질문들, 괴테, 코코 샤넬, 프랜시스 베이컨 등의 명언에서 찾은 ‘결단’에 관한 질문들, 나폴레온 힐, 공자, 조지 무어 등의 명언에서 찾은 ‘행동’에 관한 질문들이 펼쳐진다.
98가지 질문 중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질문 하나쯤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질문과 그것에 파생된 심화 질문들에 깊이 있게 답하면서 사고방식과 행동의 힌트를 찾아가다 보면, 당신의 삶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문학과 사회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저 / 15,000원 / 문학과지성사


봄호를 펴내며

모두의 언어로 만들어지는 세계에서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안영은 글·최미란 그림, 책읽는곰, 2018)이라는 그림책에는 파괴적인 괴물들과 싸우는 어린 슈퍼 히어로가 나온다. 히어로의 핵심 기술은 하늘을 나는 망토와 몸을 투명하게 하는 ‘슈퍼 파워 변신술’이다. 괴물들이 공격해 오자 히어로는 변신술을 사용하여 공격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괴물들은 히어로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 쫓아온다. 히어로의 몸은 투명해졌지만 팬티에 묻은 똥 자국만은 투명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똥 자국은 냄새마저 풍겨서, 히어로는 괴물들과 싸우지도 못하고 시민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다. 슈퍼 히어로가 똥 닦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은 빅뉴스가 되어 온 도시에 퍼지고, 놀림거리가 된 히어로는 도망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다닌다.
이 그림책의 결말은 밝고 행복하다. 위기에 봉착한 히어로는 ‘똥 잘 닦는 권법’을 체득한 도사를 찾아 휴지를 몇 칸 써야 하는지,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닦는 방향은 어때야 하는지를 배우고, 마침내 똥이 묻지 않은 ‘울트라 팬티’를 입고 다시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 더 이상 손가락질받지 않게 된 그는 지구를 지킬 뿐 아니라 똥 닦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을 도우며 아이들의 안녕을 지킨다. 이 그림책은 유아 부문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이고, 가족·아동용 뮤지컬로 만들어져 수도권 지역에서 공연되고 있다.
배변 교육에서 깨끗하게 뒤처리하는 훈련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을 닦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어른들이 대신 해주는 만큼 능숙하게 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지난한 과정을 재미있고 유쾌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린 슈퍼 히어로의 성장 서사는 효과적인 교육 방법의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똥 닦는 법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똥 닦는 법을 교육하는 과정은 그 서사와 이미지 양면에서 수치심도 교육하기 때문이다. 온 도시의 전광판과 종이 매체에 얼굴 사진과 함께 ‘충격’적이고 예외적인 대상으로 전시되는 사태 속에서, 어린 히어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없거나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조롱거리가 되고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투명해지지 못하는 ‘누런 얼룩’과 벅벅 긁게 되는 간지러움, 괴물들이 따라붙는 악취와 같이 수치는 이미 몸의 상태이자 존재 자체이며, 성장이란 그런 상태로부터 멀어져 사람들 사이에 효과적으로 녹아드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배움은 그렇게 자신을 더럽거나 부족한 것으로 인식하는 시선에 대한 배움을 전제한다. 어린 히어로가 잃어버렸다 되찾는 ‘슈퍼 파워 변신술’은 그런 의미에서 영웅적 기술이기보다 ‘똥 묻지 않아야’ 하는 영웅의 조건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그림책의 문법은 사람의 삶을 켜켜이 이루고 있는 배움의 흔적을 돌아보게 만든다. 정보와 지식,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은 내가 나를 승인하거나 부인하는 방식, 타인과 세계를 해석하고 판정하는 틀을 구성해가는 과정과 겹쳐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2023)은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을 중심으로 아이와 교사, 학부모가 서로를 판단하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시선을 무수히 교차시키는 가운데, 언어가 옮겨 다니는 방식을 중요하게 들여다본다. 누군가를 놀림거리로, 혹은 문제적인 인물로 틀 짓는 언어들은 소문처럼 가볍게 떠다니며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신체에서 신체로 연결되어, 어른과 아이, 아이와 아이, 어른과 어른 사이 관계 전체를 작동시킨다. 그 언어의 힘은 아이와 어른 모두가 소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지극히 닮은 방식으로 습득하게 한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해 오면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져버리는 아이와 종이에 적힌 말만 반복하는 교장 선생님은, 서로를 위태롭게 하는 동시에 하나의 폐쇄된 법칙 안을 맴돈다.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괴물’로 세우는 ‘인간’의 문법에 대하여 서로 다르지 않은 배움을 공유한다.
동일한 시간을 학부모, 선생님, 아이의 입장에서 차례로 보여주는 영화의 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 중 누가 괴물인지를 판별하거나 결국 모두가 괴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무언가를 ‘괴물’로 판정해내는 시선이 어떻게 사회 내에서 문법으로 작동하게 되고, 그 문법이 얼마나 무심하고 가뿐하게 체화되고 확산되는지를 읽어낼 때, ‘괴물’은 ‘누구’가 아니라 배움이 이루어지는 켜켜의 시공간 전체이다. 선율이 되지 않는 금관악기 소리나 아이들이 내는 기적(汽笛) 소리, 태풍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이름 부르는 소리 같은 것은 그러한 체계 내에서 어떤 현재를,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며 언어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일은 ‘수업’이 아닌 자리에서 더 쉬이 유통되는 언어들의 복판에서 내내 중요해 보인다. 각자의 작은 자리에서 ‘나 있어’라는 표지판을 돌려놓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그렇다.

지금 이곳의 매체 언어들은 다양한 감각은 물론 서로 다른 차원을 가로지르고 교차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마주하게 한다. 새로운 조합과 창발을 향해 한껏 열려 있는 듯 보이는 이 언어의 복판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특정 이미지를, 아이디어를, 위치감각을 심어주는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인 전염의 방법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때 전염은 동질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해버린다는 의미에서 실제 적인 위협과 개별 면역 기능의 강화, 집단면역의 가능성과 격리 및 통제의 통치성, 그리고 발전과 생존의 서사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위기감과 안전감의 짝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세계는 지속되고 시간은 연결되며, 그 안에서 무언가는 변화하고 무언가는 변화하지 않는다.
이때 변하는 일도 변하지 않는 일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돌과 대화와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할 때, 변화를 이해하거나 기도하는 일은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배운 것과 어떻게 길항하며 어떤 결정을 향해 나아가는지를 헤아려보는 일과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배움의 방향은 때로 시간에 저항하거나 새로운 시간성을 발명해내며, 그것은 폭발적이고 관성적인 전염력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선과 언어를 전제로 한다.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세대’와 ‘배움’이라는 두 키워드를 연결하여 그러한 질문의 언어를 한자리에 모으고자 했다. 지금 이곳에서 구성되는 경험의 맥락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배우게 하는지를 시간적 특수성의 측면에서 살피고 , 동시에 배움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딱딱한 시간과 관계되는가를 나란히 고민했다. 두 고민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기보다, 세계의 유연성과 가변성을 믿고 그 믿음을 구체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서로 다른 시선이었다. 영화, 미술, 문학, 번역 등 여러 장을 가로질러 활동하는 필자들은 언어의 강력한 흡인력과 ‘배움’의 상관성에 의견을 같이하면서, 그러한 흡인력이 갖는 현재적 의미와 전망을 다양한 초점에서 판단하여 보여주었다.
이희우의 글은 최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가로지르는 언어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매력’이라는 공통의 자본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전에 제시한 바 있는 ‘매력의 경제학’을 ‘배움’의 측면에서 세공하면서, 이 글은 매력 경제에서 배움이란 주체적 판단과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현되는 기호나 장르 문법에 매혹되어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매혹이란 거리를 전제하지 않으므로, 오늘의 배움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체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비판’이 아니라, 매혹을 통한 배움을 이해하는 ‘이론’을 만들고 배움의 메커니즘 자체를 새롭게 언어화하면서 매력 경제로 환원되지 않는 배움의 방법을 전망해가는 일이다. 새로운 미학을 통해 지금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이 글에서, ‘배움’이라는 단어는 첨예한 시의성을 갖는다.
강동호의 글은 ‘문학의 경제학’을 제안하면서 배움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방법이자 장소로서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주목한다. ‘문학성’이라는 개념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온 궤적의 연장선에서, 여전히 문학을 독립적인 분야나 스타일, 방법으로 논의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문학’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의 글은 이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해명해보고자 경제학의 방법을 도입한다. 작가와 독자, 특히 독자의 측면에서 문학의 사용가치를 논할 때, ‘문학적 경험’은 주체의 상실과 자기 변형의 계기 혹은 현장으로서 그 자체로 특수한 ‘배움’의 방법이 된다. 그러한 ‘배움’의 가치는 지금 이곳에서 문학이 놓여 있는 위치의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문학이라는 이름의 보편을 겨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문학은 일종의 예외적 경제체제로서 세계를 끝내 폐쇄되지 않게 하며, 세계 전체의 배움의 계기로 존재한다.
황종연의 글은 김애란과 백수린의 소설을 나란히 읽으면서, ‘일상생활’을 사유하고 재현하는 시대적이거나 세대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활 저변을 관통하여 합리성이라는 규칙을 세우고 그것이 일상을 통제하도록 하는 방식이나, 상품 소비를 통해 일상에 대한 감각과 더불어 이상적 일상에 대한 상을 보존하는 방식에서 그의 글은 ‘현대성’이라는 특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핀다.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러한 ‘현대적’ 일상의 리듬이 정지하게 되는 순간이 김애란과 백수린의 소설 모두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지의 순간은 일상을 고착화하는 논법에서 벗어나 자기 갱신을 욕망하게 되는 일종의 결절점이다. 배움은 그런 변화의 순간 가능해지며, 문학의 ‘빛’은 그러한 “실존적 변이”와 긴밀히 닿아 있다.
강덕구와 한대호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져온 교육적 효과가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동시대 영화에서 배울 수 없”게 된 것이 무엇인가를 살핀다. 강덕구는 영화사가 구성되고 그 역사성 안에서 ‘영화’가 교육되어온 방식이 한 세대가 공유하는 취향의 문제와 긴밀히 관계되어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영화의 가치와 역사성을 읽어내는 비평적이고 미학적인 프레임의 갱신을 주장하는 작금의 ‘세대’로서, 더 다양한 초점에서 영화를 통한 ‘배움’의 가능성이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한대호는 영화가 경험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극장 체험이 줄고 시청각미디어가 다양화되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으로서의 영화는 그 역사성과 연결성을 상실했다고 정리한다. 변화해가는 매체 환경 속에서 영화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을 내다보면서, 그의 글은 영화와 경험적 배움을 긴밀히 묶어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의 글에서 ‘배움’은 이미 분절된 시간의 문제인 동시에, 매체 자체를 변화시켜갈 근거와 계기이기도 하다. ‘배울 수 없다’는 감각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혹은 배우게 할 것인가 하는 ‘새로움’의 전망과 적극적으로 연결된다.
이소의 글은 세대론이 작동하는 방식을 세심히 따져가면서 세대 개념이 배움의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독립변수로서 적합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최근 소설들에서 젠더, 계급 등 개념들이 세대 개념과 관계 맺어온 양태를 지형도로 그리는 가운데, 그의 글은 세대 간 경험적 단절보다 계승되거나 연속되는 환경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생태 문제에 관해서는 분명 감각과 경험이 달라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세대 개념이 단지 변화를 기술적으로 읽어내기 위한 장치로서가 아니라 동시대와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논하는 언어로서 자리매김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이때 ‘세대’와 ‘배움’은 새로운 전망을 내다보는 조합이기보다 지금 책임져야 할 시간을 되돌아보는 조합으로 여겨진다.
장한길의 글은 홀로코스트와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아카이빙되어온 방식을 짚으면서, 아카이브 매체가 소리에서 영상으로, 인덱스화된 인터페이스 체계로 변화하는 과정이 증언을 체험하는 방식 역시 변화시켜왔음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증언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매체의 문법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매체의 문법이 증언의 접근 방식 및 의미화 방식에 적극 관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증언 아카이브의 목적은 대개 세대를 가로질러 증언의 ‘현재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최근의 아카이브는 청취자가 증언 접속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인터랙티브 증언’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성’이라는 목표가 이후 세대의 ‘참여’라는 형식만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경험을 ‘기억’하는 일과 긴밀히 닿아 있다는 점에서, 장한길의 글은 증언의 ‘상호 구성성’을 구현해갈 방법을 재차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실과 경험을 배우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변화의 과정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선명하게 지적하여 보여준다.
장영은의 글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독자로서 작가 박완서가 배운 것과 박완서의 소설을 경유하여 1980년대의 독자가 배운 것 사이를 들여다보면서, 배우는 것과 스미는 것 사이의 시차를 세심히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결혼 후 가정생활에서 여성이 놓이는 위치에 대하여 고민과 경험을 풀어낸 박완서의 소설이 그러한 문제의식에 무심한 독자와 적극적인 독자 모두에게 동일한 피드백을 받을 때, 작품에 대한 몰입과 작품을 경유하여 배우는 일은 쉬이 겹쳐지지 않는다. 그 거리 속에서 ‘배움’의 폭은 외려 아주 좁아지기도 하고, ‘교정’되거나 ‘해명’되어야 할 작가의 책임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문학을 매개로 도드라지는 그러한 간격을 들여다보는 장영은의 글은,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보다 세목화된 시선을 가져야 하며, 시간과 배움 사이의 관계 역시 다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전청림의 글은 ‘비판’으로부터 ‘배움’을 구분해내는 얼개를 경계하면서, ‘배움’이라는 단어가 현상이나 메커니즘으로서만이 아니라 깊숙한 경험과 태도의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야 함을 세심히 살핀다. 이 단어가 회복 불가능한 상처와 상실, 폭력의 흔적을 덜어내고 변화와 치유의 빛을 띠게 될 때, 배움은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오래된 메커니즘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움을 “오염을 감당하는 우직한 정성스러움”의 측면에서 사유할 것을 제안하는 이 글은, 선으로서의 시간을 그리기 이전에 점으로서의 시간을 더 들여다보는 항시적 ‘긴장’을 보다 중요하게 강조한다.
아홉 필자의 여덟 편의 글은 ‘세대’와 ‘배움’을 잇는 프레임 속에서 그 관계성 자체를 고민하게 할 뿐 아니라, 두 키워드 각각의 문맥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정교하게 질문을 던진다. 언어를 재배치하는 작업과 기존의 배치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매체,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하여 만들어진 질문들은 아주 성기게, 그러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더 많은 질문과 응답 들이 모여 서로의 배움을 향해 보다 치열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해주신 필자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가 문학의 장에서 배움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언어로 만들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서로를 향해 깊이 마음을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이 지면을 가득히 채울 수 있도록 많은 분이 함께해주셨다. 이번 호에는 김혜순, 김선우, 박상수, 강성은, 유계영, 김누누, 신원경, 양송이 시인의 시와 윤고은, 문지혁, 강대호 작가의 소설이 엮였다. 이 봄부터 편혜영 작가의 소설 연재가 시작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더불어 전한다. 강계숙, 오연경, 최다영, 홍성희, 김다솔, 박서양, 이수형, 이은지, 황녹록 평론가는 지난겨울 발행된 단행본을 엮어 세심히 읽어주었다. 작품들이 서로 마주치는 장면들을 즐겁게 나누어주시기를 바란다.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제1권으로 간행을 시작한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올해 통권 60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2017년 500호를 낸 이래 7년의 시간을 함께 일군 한 권 한 권의 시집을 헤아려보면서, 600권의 책 기둥 전체를 더불어 돌아보게 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시를 향한 고민과 애정으로 차곡차곡 꾸려져왔다. 지난 46년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함께한 시인들의 이름과 다채로운 시의 빛깔들, 그리고 시집을 만든 무수한 분의 얼굴이다. 모두를 함께 기억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문학과지성 시인선 통권 600호 기념 기획란을 꾸렸다. 황인숙, 김기택, 이원, 김소연, 심보선, 이장욱, 김언, 최하연, 이제니, 백은선 시인이 문학과지성 시인선에 관한 추억과 마음을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시인들의 글은 하나의 디자인을 공유하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서로의 시간 속에서 이미 오래 곁을 나누어왔음을 보여준다. 그 곁을 지키는 마음으로, 글을 보내주신 열 분의 시인께, 600권을 함께한 모든 시인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기쁜 소식 하나를 더 나누고 싶다. 이번 봄호를 시작으로 소유정, 이소, 이희우 평론가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문학과사회』는 더 많은 고민과 즐거움을 나누면서 언제나 움직이고, 다가서서, 오래 질문할 것이다. 새로 합류한 세 분과 더불어 꾸려질 『문학과사회』에 다정하고 따끔하며 든든한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동인 홍성희











판결 너머 자유

김영란 저 / 18,000원 / 창비
 
‘당신은 누구의 편인가’만 묻는 분열의 시대
합당하지만 상반된 신념들은 공존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의 ‘판결’ 시리즈 신작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법관이자 ‘소수자들의 대법관’으로 불리는 한편,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 크게 기여한 청탁금지법의 김영란이 ‘판결’ 시리즈 세번째 책으로 신작 『판결 너머 자유』를 펴냈다.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는 저서를 꾸준히 발간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발전에 힘입어 과거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시대에 도래했다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사안 여론의 향방이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아 다양한 목소리의 설 자리는 오히려 좁아지는 모순적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합의라는 가치와 그 가능성이 절실한 지금, 김영란은 실마리를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찾는다. 우리 사회의 ‘가장 올바른 결론’을 내기 위해 법관들이 고민하고 토론한 경로가 판결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서로 상반되지만 각각 합당한 신념들이 공존하는 사회, 불일치의 일치를 이루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지 모색한다.
 

법이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이성적인 기관, 법원

전원합의체는 법원을 이루는 판사 전원 혹은 대부분이 참여해 사건을 심리하는 구성체를 일컫는다. 매우 복잡하거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재판일 경우, 또 재판부에서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을 경우에 이루어진다. 전작들에 이어 저자는 법관으로서의 고민과 정의에 대한 날카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1부는 제사주재자,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상반되지만 합당한 신념들 간의 합의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살핀다. 2부에서는 그러한 중첩적 합의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기본적 자유를 양심의 자유, 소수자들의 기본권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성전환자 성별정정, 미성년자 상속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의 판결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각 사안에 대한 다수의견, 반대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신념과 가치가 법관의 의견을 통해 법원에서 치열하게 논해지는 과정은 ‘중첩적 합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김영란은 무엇보다 ‘공적 이성’의 산물이자 가장 이성적인 기관인 법원이 중첩적 합의를 끌어내 사회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분된 여론과 편 가르기의 시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만큼은 오로지 공적 이성으로만 구성된 유일한 정부 부서로서 선택보다는 절충과 조율, 합의의 책임이 있다는 그의 지적이 사법부에는 성찰의 단초가, 민주시민의 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이정표 삼아
합의의 방식과 법의 역할을 모색하다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로 「정치적 자유주의」 「정의론」 등의 고전을 남긴 존 롤스는 『판결 너머 자유』에서 김영란이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인물이다. ‘중첩적 합의’와 ‘공적 이성’ 등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 역시 롤스로부터 가져왔다. 그러나 저자는 두꺼운 책 속에 갇힌 낡은 이론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한 사안에 적용시킨다. 특히 이 책에서 다뤄지는 쟁점들이 2022년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2023년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 판단할 수 없다는 판결 등 최근까지 치열하게 논의되었던 만큼, 롤스의 이론이 현재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생각 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영란을 경유하여 우리에게 도착한 롤스의 이론은 그 점에서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신념체계를 주장하면서도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합당한 다원주의’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모두에게 『판결 너머 자유』는 정치적 자유에 대해 더없이 성실한 전범이자 교과서가 되어줄 것이다.








소설 보다 봄

김채원, 이선진, 이연지 저 / 5,500원 / 문학과지성사
 
 
새로운 세대가 그려내는 봄의 소설적 풍경
독자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특별 기획, 『소설 보다: 봄 2024』가 출간되었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시작되었다.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는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물론 선정위원이 직접 참여한 작가와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7년째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계절마다 간행되는 ‘소설 보다’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가장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소설 보다: 봄 2024』에는 2024년 봄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김채원의 「럭키 클로버」, 이선진의 「밤의 반만이라도」, 이연지의 「하와이 사과」 총 세 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해당 작품은 제14회 문지문학상 후보가 된다. 선정위원(강동호, 소유정, 이소, 이희우, 조연정, 홍성희)의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선정한 작품들의 심사평은 문학과지성사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도서는 1년 동안 한정 판매될 예정이다.

봄, 이 계절의 소설

시작·출발·새로움·청춘과 같이 약동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봄, 『소설 보다: 봄 2024』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젊은 화자의 이야기를 담은 세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불가항력에 짓눌리거나 어둠으로 점철되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삶, 아직 견딘 날보다 견뎌야 할 날이 많은 청춘들의 여정에서 조금 다른 봄을 만나보자.

김채원, 「럭키 클로버」
“어둠에 익숙해지자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눈에 보이는 것이 생겼지만 불안한 것은 거의 없었다.”

김채원은 2022년 겨울 「빛 가운데 걷기」에 이어 두번째로 〈소설 보다〉에 선정되었다. 지난 소설에서 딸이 죽은 이후 손자와 홀연히 남겨진 ‘노인’이 어떻게든 살아내는 시간을 들여다보던 작가는 「럭키 클로버」에서도 홀로 남겨진 청년의 발걸음을 좇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머니가 일구던 자두 농장에서 홀로 남겨진 ‘자영’이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은 누군가가 남겨놓고 간 하루를 건조하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모두에게 “곧고 선명한 물줄기”를 선물한다.
「럭키 클로버」를 추동하는 것은 자영에게 자두 농장을 남기고 사라진 엄마이지만 소설은 그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흰 꽃이 피고 진 자리에서 동시에, 한 다발로 태어”난 “나뭇가지로 된 총대를” 멘 여덟 “파수 병정”이 등장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자영의 빈 곳을 채우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자영의 뜻대로 잘 움직여주지도, 원하는 답변을 명쾌하게 내주지도 않지만 자영이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고민할 때 병정들은 “없는 거지”라고 말하며 오래도록 함께 걸어간다.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서 구해내는 그들과 자영이 지치지 않고 지체하지도 않으며 계속 나아갈 것임을 소설의 결말은 암시한다.

“클로버 병정들은 소설에 ‘파수’ 병정들이라고 적어두었을 만큼 무언가를 지키는 데 재주가 있(어야 하)는 인물들이에요. 자영이 생생하게 겪고 있는 농장의 한가운데를 함께 지나는 친구들이자, 나눠 가진 불행이자, 자영을 살게 하는 존재들이고요. 자영을 살게 하려면 단순히 많거나 적은 수가 아닌 정확히 여덟 명의 병정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자영이 ‘살아 있음’에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그것을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 김채원×조연정」에서

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담에 나는 내 딸한테 내 밤을 물려줄 거란다.”
이선진은 2020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당선 당시 “애틋한 서술과 통찰로 사건과 감정의 완급을 조절”(노대원ㆍ편혜영 심사평)한다는 평을 받았다. 당선작 「무관한 겨울」에서 타인의 고통을 떠올리며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어둠을 껴안던 화자를 인상적으로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 선정작 「밤의 반만이라도」에서 역시 다른 아픔에 비슷한 방식으로 공감한다.
소설 속에는 “빛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전맹인” 엄마 ‘미수’와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인 그의 딸 ‘다운’, 그리고 그런 다운을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좋아하는 화자 ‘미숙’이 있다. 미수는 미숙에게 다운과 가까이 지내지 않기를 권한다. 다른 사람은 “탯줄처럼 밤과 연결되어 있다가 밤에게 버림받”지만 자신과 딸은 밤이 뿌리내리기를 선택한 존재들인데, 미숙은 너무 환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될수록 시력이 온전한 미숙에게도 비밀들로 꽁꽁 숨겨진 내면의 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소설은 빛을 볼 수 없는 삶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이에게 누구나 칠흑같은 밤을 품고 있음을 일깨우며 위로를 건넨다.

“미숙에게도 ‘자기만의 밤’이 존재해요. 그건 이 세상의 이성애 규범과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의 덩어리’로 포개어지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고, 살면서 받은 무수히 많은 상처가 지우개 똥처럼 똘똘 뭉쳐져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죠. 그 불완전한 삶의 면면에서 기인하는 ‘밤’을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운 무엇이 아니라, 저마다의 고유한 어둠으로서 얼마든지 삶을 긍정으로 비출 수 있는 일종의 ‘보물’처럼 그려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이선진×이소」에서

이연지,「하와이 사과」
“아직 버릴 수 있는데, 늦지 않았는데, 한입 베어 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마음.”
「하와이 사과」는 영상 연출을 전공하던 이연지가 민음사-서울대 ‘라이터스쿨’을 수강하며 완성한 그의 데뷔작이다. SF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이 소설은 AI의 등장으로 인간의 창작 능력이 위협받는 시대적 갈등을 현실적으로 마주하고 근미래 예술가들의 삶을 그려낸 문제적인 작품이다.
‘연재’와 함께 영화를 만들며 동고동락하던 ‘지수’의 장례식장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중심축은 AI 영화 제작 프로그램이다. 원하는 시나리오의 방향을 제시하면 그럴듯하게, 아니 시나리오 작가에게 돌아갈 수익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양질의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는 이 프로그램 하나가 영화학도들의 꿈과 현실을 위협한다. 이로 인해 대학 선배 ‘영완’이 차린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지수는 자신의 능력과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우정까지 잃으며 쫓겨나듯 그들의 곁을 떠난다. 연재도 지수와 다를 바 없는 모욕을 느끼며 영완을 곁을 떠나지만, AI 산업은 업그레이드되어 연재의 삶에 더 깊숙이 들어온다. 작가는 성경 속 하와가 금기의 열매를 탐하듯 “하와이 사과”를 제시하며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뒤섞는다. 그 끝에서 ‘산업적 시대’로 변모하는 세계 속 서늘하게 남아버린 인간의 이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AI가 그 이상의 수준을 뽐내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결코 그 작품의 퀄리티와 설득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세상에는 AI를 활용한 작품들이 범람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수요도 커질지 몰라요. 어쩌면 AI로 만든 작품들이 대세가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하는 창작 행위 자체가 숭고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희귀하며, 가치가 있어지는 거죠.”
「인터뷰 이연지×소유정」에서








웃긴 게 뭔지 아세요

한재범 저 / 11,000원 / 창비
  
“나는 흔한 풍경이다”
무수히 부서지고 다시 솟아오르는 가장 젊고 혁명적인 자아의 탄생
끝없이 분열하는 ‘나’ 사이를 유영하는 고독한 영혼의 하루
2019년 창비신인시인상 최연소 수상자로 당선되어 “우연히 촉발된 감정이나 세계의 뒤틀린 모습에 몰입하여 그것을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차분히, 때론 폭발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강렬하다는 평을 받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한재범 시인의 첫 시집 『웃긴 게 뭔지 아세요』가 창비시선 499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5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나’의 존재의 의미와 자아의 실체를 탐색하는 깊은 사유를 펼쳐 보인다. 시인이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깊숙한 자신만의 내면을 단단히 다져왔음을 증명하는 이 시집은 보기 드문 개성적 화법으로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부유하며 고뇌하는 “우리의 자아의 현주소”(이수명, 추천사)를 확인하게 한다. 이 젊은 시인이 세계와 그 속에 놓인 자아를 담는 날카로운 언어를 따라가다보면 끝없이 부서지고 합체되는 ‘나’의 조각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의구심”(추천사)이 될 50편의 시를 실었다.

미래를 눈앞으로 당겨 오는 시,
익숙한 일상을 뒤집는 언어의 놀이터

한재범의 시는 직관적인 이해를 의도적으로 비틀며 일종의 읽기 과제를 부여한다. 있음과 없음, 존재와 존재의 부재가 충돌하는 구도 속에서 얽히고설킨 문장들은 어느새 출구가 여러개인 언어의 미로를 만들고,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의식적으로 재배치하거나 동시에 겹쳐놓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사건들은 결국엔 선후를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시인은 “자연사박물관 밖에는 자연이 있고/자연사박물관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박물과 나」), “지옥은 어디에나 있지만/어디에는 없고”(「나는 내일부터」)처럼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문장을 즐겨 쓴다. 행과 연을 미묘하게 배치하여 낯선 효과를 거두고, 의도적으로 문장성분을 생략하거나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 나는 종일 배가 부르다”(「커피는 검다」), “젖지 않았는데 이미 젖어 있다”(「불성실」), “문이 없어서 자꾸만 문이 열리는 방 안”(「연습생」)처럼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문장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인과관계를 조작하는 방식 또한 주요한 시적 전략으로 삼는다. “보이지 않으니까 믿을 수 있”(「연습생」)고 “미래가 지루해져서 돌아오지 않는다”(「휴양지」)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현실감각을 뛰어넘는 문장 구성은 어두운 세계 한복판에서 잠시 눈을 감고 꾸는 꿈처럼 몽환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극장을 빠져나와 우린 밝은 무대 위를 걷는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시작되는 삶이라는 일인극


작법을 넘어 한재범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내가 있어도 없어도 무방할”(「아직 여기」) 세계에서 “흔한 풍경”(「너무 많은 나무」)이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와 이것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마치 일인극을 보는 듯 시인과 화자와 자아가 중첩되거나 일치되는 장면들은 시집 전반에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를 보았다”(「코끼리 코에 걸린 코끼리」), “나는 꽤 자연스럽다”(「레디믹스트콘크리트」), “밖에서 나는 나의 역할을 맡는다”(「직물과 작물」)와 같은 발화가 보여주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를 무심히 관찰하는 또다른 ‘나’의 시선이 더해진다. 자연히 이 시집에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화된 존재”(추천사)로서의 자아가 나타나게 된다. “영혼이 자꾸만 내 몸을 벗어나려고”(「유원지」) 하기에 ‘나’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이해받지 못한 타인에게 “나를 해명해야 할 거 같아”(「없는 게 없는」) 시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 묻는다. “일생의 절반”이 “낮도 없고 밤도 없는 지하”(「나는 내일부터」)인 삶, 때로는 경험하지 않은 미래가 지루해져버리는 삶이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간의 틀을 벗어나볼까도 생각하지만 그렇게 “나를 그만두려는 마음”(「휴양지」)이 들끓어도 결국 “내가 나라는 사실”(「유원지」)이 자명하고, “나는 사람이 아닌 적 없다”(「사거리」). 그리하여 시인은 선언한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다 인간이 될 계획이다”(「많은 나의 거북이」). 한발 더 나아가 “나는 2222년이 기대된다”(「레디믹스트콘크리트」)고 말하며 오지 않을 것 같은 먼 미래를 삶의 한복판으로 끌고 온다.
한재범의 시는 발상과 발성 면에서 근래의 신인 시인들과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다. 고유한 화법은 단순히 새로운 제안을 뛰어넘는 설득력을 가졌고 독특하다기보다는 도발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를 풀어내는 시적 에너지가 생동감 있고 다채롭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세목과 일상의 풍경을 이전과 다르게 감각하도록 한다. 참신함을 뛰어넘는 기발한 발상과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문법으로 견고하게 다진 그의 시 세계는 ‘미래의 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이 당찬 시인이 “지상과 다른 곳”(「승강기」)을 향해 뻗어가 자신의 세계를 더 넓고 더 깊게 확장해나가리라 믿으며 그가 다음에 연출해낼 “삶이라는 일인극”(최다영, 해설)을 기대해본다.









부디 그녀가 죽을 수 있기를
기유나 토토 저 / 박주아 역 / 15,000원 / 토마토출판사

제6회 인터넷소설 대상을 수상하며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작가 기유나 토토의 장편소설, 『부디 그녀가 죽을 수 있기를』은 생존이 최우선의 가치가 된 오늘날, 한순간만이라도 평범한 삶을 누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희귀병 환자 사라사와 그녀가 원하는 죽음을 줄 수 있기에 방황하는 마법사 나쓰키가 들려주는 로맨스 성장 소설이다.

바이러스, 암세포 등을 퇴치해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는 NK세포. 사라사는 이 세포에 문제가 있어 감정을 느낄 때마다 건강이 악화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평생 감정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온 그녀는 단 한 번만이라도 감정의 파도에 마음껏 휩쓸리는 순간을 꿈꾼다.

누구나 행복하게 해주고 어디서든 환영받는 나쓰키. 마법이 비현실적인 힘이 되어버린 요즘, 그는 모종의 일을 계기로 마법 수련도 그만두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지내다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 달라는 사라사와 만나 다시금 의욕에 불타오르는데,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인다.
 
목숨과 행복의 저울 위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성장 로맨스


나쓰키는 마법사면서 마법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대마법사인 할머니에게 마법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배웠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쉽고, 빠르고, 풍족한 세상이 된 오늘날 마법이 필요할까, 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법사에게는 비효율적인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버린 마법. 어릴 적 나쓰키는 마법사 가문에서 자라 이런 사정을 몰랐다. 큰 상처를 입은 토끼를 마법으로 치유하려다 실패하고 친구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기 전까지는. 이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쓰키는 마법 수련도 그만두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 그리고 남들이 좋아하는 성격과 외양을 본래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연기하기 시작한다.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마법을 멀리하고 있는 나쓰키는 어느 날 무감정해 보이는 대학 동기, 사라사를 만나게 된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사라사와 진짜 모습을 숨기며 남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만 꾸며내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대비되자 나쓰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 사라사가 읽고 있는 두꺼운 유머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웃고 싶어 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웃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쓰키는 그녀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충동적으로 선언하고 만다.

“아니, 그러니까, 음… 그 책을 읽고도 웃지 못했잖아? 그럼, 뭐 다른 재미있는 게 있다면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웃게 해주고 싶어.” ─ 본문 중에서

사라사를 웃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나쓰키에게 사라사는 그럴 날을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런데 사라사는… 웃으면 죽어.”

내 사랑이 그녀를 죽이고 있다면
곁을 떠나는 게 진짜 사랑일까?


나쓰키는 마술인 척, 우연인 척, 준비한 마법을 사라사에게 선보이지만 그녀는 언제나 무표정이다. 결국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버린 ‘웃기기 챌린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나쓰키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라사에게, 사라사는 웃지 못하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키는 나쓰키에게 품은 특별한 감정이 커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유성군을 보던 사라사가 “별똥별은 다른 별들과 달리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라도 있는 힘껏 반짝이는 별똥별이 좋아.” 라고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진다.
그리고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나쓰키는 사라사가 유일하게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된다. 감정을 느끼면 건강이 악화되다 결국 죽음으로 치닫는, 정체불명의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비밀을. 그동안 그녀가 무감정해 보였던 것도 어릴 때부터 감정에 무뎌지도록 관리받은 탓임을,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그리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라사가, 평생을 행복하게 웃어본 적 없는 사라사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기를 바란다는 것도. 하지만 사라사를 행복하게 해주려던 자신의 행동이 사라사를 조금씩 죽이는 짓이었음을 깨달은 나쓰키는 사라사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라
정답을 찾아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살인 이야기


『부디 그녀가 죽을 수 있기를』은 우리의 사랑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으로 두 주인공 나쓰키와 사라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각자 입장이 다르기에 자꾸만 엇나가고 마는 두 사람.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 두 사람의 이야기에 폭 빠져보는 걸 추천한다. 감정적으로 격리되더라도 조금이라도 오래 사는 게 옳은 것인지, 단 한순간이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죽는 게 옳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할지, 아니면 거짓을 말하거나 회피를 하더라도 보다 아름다워 보이고 쉬운 길로 나아가야 할지 떠오르는 여러 질문을 두 사람과 함께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고품격 한국어: 사자성어·상용속담
전광진 저 / 25,000원 / 속뜻사전교육출판사

한국어문회가 8급에서 2급까지 선별하여 정한 424개 사자성어에 대하여 왜? 어떤 뜻이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기 쉽도록 속뜻을 일일이 풀이해 주고 있다. 한자어 속뜻 풀이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자 기초 지식이 없어도 알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고, 영어도 병기되어 있다. 그래서 영어와 한자 공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사자성어를 통하여 한자를 익히고, 그렇게 쌓인 한자 지식이 다른 사자성어를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善)순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한국 리듬의 대표, 유튜브 전 세계 3억 뷰!)

전 세계 K-문화 열풍! 한국어 학습 폭풍!
한국어의 품격을 높여 주는 사자성어! 상용속담!
두 마리 범이 내려온다.
“A tiger is coming, another tiger is coming.”
K-culture craze around the world!
Korean language storm!
Idioms and proverbs enhance the quality of the Korean language!
Two tigers are coming now!
**********************************

한국어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K-팝, K-드라마 같은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웅비하여 현지 법인의 직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기인한다.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한국어과가 앞다투어 우후죽순 처럼 늘어나고 있다. 지원율과 인기도 중국어과나 일본어과를 크게 능가한다는 희소식이 해외 한국학회에 속속 전해지고 있다.

한국어가 초급 단계에서는 대단히 배우기 쉽다. 24개 자모로 이루어진 한글 덕분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어의 70% 이상이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한자어 중에서도 특히 사자성어를 익혀야 하며, 속담을 많이 알아야 한다. 한국어의 품격을 높여 주고 받쳐주는 두 기둥이 바로 사자성어와 상용속담이다.

한국어 학습 수요가 양적으로 많이 늘어남에 따라 질적 수요도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 즉, 한국어에 두 날개를 달아주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국내외의 이러한 수요에 적시타를 친 책이 나와서 관심을 끌고 있다. 고품격 한국어의 두 날개 격인 사자성어와 상용속담을 한국어와 영어로 설명해 주는 책(〈주〉속뜻사전교육출판사)이 출간되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한국어 열풍에 ‘북[鼓] 치고 피리 부는[吹]’ 고취(鼓吹)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 이로써 한국인과 세계인의 한국어 질적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나아가 K-문화의 세계화도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책은 한국어문회가 8급에서 2급까지 선별하여 정한 424개 사자성어에 대하여 왜? 어떤 뜻이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기 쉽도록 속뜻을 일일이 풀이해 주고 있다. 한자어 속뜻 풀이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자 기초 지식이 없어도 알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고, 영어도 병기되어 있다. 그래서 영어와 한자 공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사자성어를 통하여 한자를 익히고, 그렇게 쌓인 한자 지식이 다른 사자성어를 학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善)순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부록1 〈사자성어 요약표〉도 대단히 유용하고 유익하다. 이것만 매일 조금씩 줄줄 읽어봐도 사자성어가 쉽게 체득되는 효과가 있다. 옛날이야기에 바탕을 둔 고사성어 50개가 만화 형태로 설명된 부록 3도 흥미를 돋우고 있다. 이상 세 가지 부록이 성어 학습을 참으로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69세, 全廣鎭, 성균관대 중문학과 명예교수)는 문자가 없는 소수 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한글 수출’ ‘한글 세계화’에 관한 논문을 가장 많이 쓴 학자로도 유명하다. “한글은 읽기를 잘하게 하고, 한자는 생각을 잘하게 한다.”는 지론을 펼치며, 한글이 숟가락이라면 한자는 젓가락이라는 ‘한글 한자 시저론’(匙箸論)를 처음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글 전용 시대 학생들이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암기에만 의존하는 실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공부의 암인 빈어증(貧語症)에 걸려 문해력이 뚝뚝 떨어지는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각종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자를 안 배운 학생도 한자를 힌트로 활용할 수 있도록 속뜻사전 시리즈(〈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 〈속뜻풀이 초등 국어사전〉, 〈선생님 한자책〉)를 편찬하였다. 이런 끊임 업는 노력으로 ‘암기에서 이해로 대한민국 교육 혁명’을 주도하였다. 중국(대만)에서 출판된 그의 전공 저서 2종(〈漢藏語同源詞綜探〉: 중국어-티베트어 동일 어원 어휘에 대한 종합 탐구, 〈兩周金文通假字硏究〉: 주나라 청동기 명문에 쓰인 동음 가차 문자 연구)는 중국어 어원론과 중국 고문자학 분야의 전문 저작으로 손꼽힌다. 중문학과가 개설된 각국 대학 도서관에는 반드시 소장되어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실용 학술서이기는 하지만, 미증유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두 저자의 튼튼한 전문 학술 기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술적 내공과 천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로독서 가이드북

꿈을 키우는 초등학교
삶을 가꾸는 중학교
리더로 세우는 고등학교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저 / 22,000원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사회변화가 복잡하고 빨라지면서 직업 세계의 변동 또한 하루가 다르게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진로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진로독서 가이드북』 은 지난 2013년에 연구 개발 출판한 〈진로독서 가이드북〉의 연구 결과를 이어 11년 만에 개편하여 출판하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진로와 직업〉 과목과 자유학기제 등 진로교육을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 마련한 책입니다. 초등학교 159권, 중학교 142권, 고등학교 162권 등 모두 463권의 도서를 진로 주제 및 영역별로 나누어 진로독서 대상 도서를 선정하였다. 선정한 도서로 교과 정보, 진로 정보를 분석하여 실었고, 진로 탐색, 진로 토론, 진로독서 활동 내용을 설계하여 약식 지도안 형태로 제시하였습니다.

『진로독서 가이드북』 개정본은 2022 개정교육과정의 핵심 내용인 행복한 진로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현장 교사들의 연구 결과를 모아 기획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독서기반 진로교육을 위해 한국표준직업분류의 진로 정보와 교과연계 독서교육에 적합한 도서를 선정하여 도서별 진로독서 활동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하였습니다. 11개 진로영역별로 구분하여 모두 159권의 도서를 엄선하였고, 이 중 대표도서를 영역별 2권씩 선정하여, 1단계 ’책 이야기‘, 2단계 ‘질문하고 토론하고’, 3단계 ‘진로 이야기’로 구성하여 진로독서 활동을 풍부하게 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학생들은 직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으로 진로에 대한 다양하고 꼭 필요한 정보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

이지연 저 / 16,800원 / 보아스
 
우리는 저마다 삶의 서사를 갖고 있고,
우리 마음은 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마음을 바꿔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치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진 상담심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다양한 마음의 모습들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리고 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에 대하여

-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 현수, 여자가 되어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청년 세훈,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어른아이 미희,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 희준,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의 6개 에피소드를 통해 마음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통해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심리 소설.

마음을 바꿔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

조현병에 의한 살인, 은둔형 외톨이, 왕따,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그리고 감정은 우리 삶뿐만 아니라 사회,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남보다 앞서고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경쟁심과 욕망, 물질에 대한 집착이 우리 개인은 물론 사회적 정서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이것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외면하게 한다. 그러나 내면에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언젠가는 폭발하는 화산처럼 폭발할 기회를 노리다 반드시 고개를 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만연하고, 또 많은 사람이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이유는 살면서 우리 마음이라는 존재를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 질문을 독자들에게 건넨다.
돈, 명예, 성공, 가족, 일 등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무너지면 그 무엇도 결국은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무너지면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결국 삶도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내 의지를 벗어나 무너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 소설은 마음이 아픈 6명의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우리의 감정을 대변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마음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지만, 마음을 치료해주는 상담소를 찾아가 무너진 마음을 치료하고 마음을 회복해 삶이 바뀌게 된다.
아픈 마음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힐링을 넘어 반드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힐링은 외부로부터 받는 위안이기에 수동적이지만, 치유는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기,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받아들이기,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퇴행을 극복하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통합하기 등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소설은 치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진 상담심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거울이 되어 자신의 마음의 모습을 들여다보도록 이끌어준다. 그리고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겨운 과정을 그리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우리 모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번아웃, 우울증, 화병, 불안, 중독, 열등감 등,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갇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로 인해 삶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6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마음이 무너져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 현수’의 주인공 현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둘이 사는 고2 학생이다. 아빠는 현수를 방치해 현수는 학교와 집에서 문제아이자 외톨이다. 현수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 세상과 격리된 채 게임을 친구로 삼아 컴퓨터만 끼고 산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때로 폭력을 행사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현수는 세상과 전혀 소통할 수 없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간다. 현수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뻔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학교에서 마지막 기회를 주어 상담소로 오게 된다.
‘여자가 되어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청년 세훈’의 주인공 세훈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해서 엄마의 정이 몹시 그리운 애정결핍의 청년이다. 감성적이고 정서적으로 여자인 세훈은 여자가 되고 싶지만, 완벽주의에 보수적인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다. 더욱이 아버지는 성전환을 하려는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적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세훈은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해 상담소를 찾게 된다.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어른아이 미희’의 주인공 미희는 알코올 중독이 있고,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있는 40대 주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 의해 잘난 여동생과 모든 것을 비교당하며 살아온 미희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고, 매사에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 자신의 문제를 다 해결해줄 것처럼 보이는 그 무엇인가에 의존하며 산다. 그것이 처음에는 마시면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술이었고, 그다음으로 찾은 것이 사이비 종교다. 이로 인해 미희의 남편은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혀 이혼을 고민하며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심정으로 미희를 데리고 상담실을 찾아온다.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의 주인공 희진은 미모의 여성으로 아버지 사업이 망해 가난에 시달리다 돈이 많은 집안에 시집을 간 신데렐라 여성이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전혀 모르는 자신을 무시하는 시댁, 남편의 폭력 등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탈출구의 방편으로 상담소를 찾아와 상담을 시작한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 희준’의 주인공 희준은 외도로 이혼을 하고, 이혼녀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했지만 여자친구가 의사와 재혼을 하는 바람에 독신이 된다. 그러나 명문대 출신의 약사인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상담실을 찾게 된다.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의 주인공 유경은 위의 5명의 내담자들을 상담해주는 심리상담센터의 소장이자 상담사다. 지금은 10명의 상담사를 둔 상담센터의 소장이자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이지만, 그녀에게는 상담사가 된 기구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밝힌 적이 없는데, 그녀의 에피소드에서 그것이 밝혀진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내담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무너진 마음과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될까? 또 내담자들의 가족은 내담자로 인해 받은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치유하고 그들과 관계를 회복하게 될까?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 각자의 사연과 서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서사를 갖고 있고,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다. 우리의 마음은 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섯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며 또 한편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리고 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어루만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더 히어로

임다미 저 / 17,700원 / 스타라잇
 
내향적이고 수줍음 많았던 임다미는
어떻게 유럽을 흔드는 세계의 디바가 되었나?
호주 국민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 1위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호주 대표 가수로 출전 / 2위
월드디바 임다미의 국내 첫 에세이

‘동양인 이민자가 우승을 하겠어? 얼굴만 카메라에 비추면 지역에서 가수로 활동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출연했는데, 호주 국민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하고, 유로비전에서 2위를 차지해 슈퍼스타가 된 세계적인 디바 임다미!

인종, 성별, 성격, 종교, 문화, 편견의 틀을 깨고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디바, 임다미의 리얼 스토리 최초 공개!


‘나의 이야기가 당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어린 시절 호주로 이민 간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에 동양인이라는 틀을 깨고, 호주의 슈퍼스타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녀가 인종, 성별, 편견의 틀을 깨고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게 되었는지,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스토리와 생각들을 섬세하게 풀어놓았다.

호주와 유럽, 2억 시청자를 사로잡은 임다미
누구에 마음 속 영웅이 있다는 메시지 전하고 싶어...


임다미는 생방송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한 주 한 주 지날 때 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때마다 인종과 성격뿐 아니라 외모 콤플렉스, 문화와 편견이라는 내면의 신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시드니의 한 호텔에서 숙식하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의 시간을 이겨낸 임다미는 호주 국민의 3분의 1이 시청했던 엑스팩터 최종 결승 방송에서 당당히 1위를 하고 슈퍼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슈퍼스타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막막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또 다른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성공한 이유를 찾게 되는데...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외로움, 박탈감...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끈기, 그리고 내면의 깊은 갈등의 시간은 ‘나약한 겁쟁이’에서 마음속 ‘영웅’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가 가진 음악 철학, 성공 철학, 인생철학은 한계에 부딪혀 망설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 영웅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당신의 마음속 영웅을 발견하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슈퍼주니어 려욱
“당신도 이 책과 함께 기적과 같은 하루가 되길... ”


슈퍼주니어 려욱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내 안의 영웅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기적과 같은 일이다. 나도 내 안의 영웅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며 책을 읽은 소감을 전했으며, 책을 기획한 스타라잇 출판사 김태은 대표는 “임다미는 호주의 공식 국가를 부를 정도로 호주의 전 국민이 사랑하는 가수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 및 아시아에 진출할 시기가 늦어졌지만,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가수 임다미의 이야기가 고국에도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라며 출간 의도를 밝혔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

이경덕 저 / 16,000원 / 문학과지성사
 
14년, 10만 8천 리, 81가지 역경의 모험
신화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서유기』의 진면모
풍자와 해학, 낭만과 재치로 가득한 모험 이야기의 원형!
『서유기』를 통해 동아시아 사상과 문화의 정수를 들여다보다


신화 연구자 이경덕의 『서유기』 해설서 『서유기, 모험의 시작: 자유와 인간의 도리를 찾아서』가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정본 완역 『서유기』(대산세계문학총서, 전10권, 2003), 청소년을 위한 축역본 『서유기』(문지푸른문학, 전3권, 2010)에 이어 출간하는 이 책은, 청소년과 일반 독자 모두를 아우르며 『서유기』로의 모험을 시작하는 누구나 행로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지도 역할을 맡는다. 『서유기』를 안팎으로 살펴보는 이 책은 안으로는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간결하면서도 생생하게 소개하며, 밖으로는 7세기 당나라 승려 현장의 모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가공을 거쳐 지금과 같이 소설 『서유기』의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의 변천사를 짚어보는 동시에 이 이야기 속에 담긴 동아시아 사상과 문화까지 들여다본다.
14년, 10만 8천 리 서행 길을 거치며 81가지 역경을 헤쳐 나가는 『서유기』는 현장이 인도 지역을 여행한 역사적 사실에 환상적인 허구를 가미해, 삼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이 불경을 찾아 서쪽으로 향하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그린다. “마치 된 것 같아 손오공” “늘어나라 하늘로 여의봉”과 같은 가사를 노래하는 인기 아이돌의 곡이 나올 만큼 『서유기』는 한국에서 일종의 문화 상식에 속한다. 〈날아라 슈퍼보드〉를 비롯해 수많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모티프가 되면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우리에게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친숙한 이름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나오는 『서유기』 원전을 충실히 읽고 이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는 시도는 이야기의 위상에 비해 턱없이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산꼭대기에서 사방을 살피듯 『서유기』를 널리 조감한다. 무엇보다 방대한 분량의 줄거리를 각 요마와의 에피소드 단위로 나눠 요약함으로써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들려주고, 『서유기』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한편 신화학자의 시선에서 『서유기』를 살피며 그 안을 채우는 상상 세계를 둘러보는 것 또한 이 책의 특징이다. 용왕이 다스리는 물속 용궁, 죽은 사람들의 세계인 저승, 신선들이 사는 하늘을 무대 삼아 인간과 원숭이, 돼지, 용 들이 활약상을 펼치는, 현실에 있을 리 없는 이 기이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바탕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거대한 동아시아 사상과 문화가 자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교와 도교, 유교라는 동아시아 세 종교는 물론, 중국으로 전해진 인도의 대서사시나 동아시아 농경문화까지 살피다 보면 우리는 『서유기』가 당대 동아시아의 현실을 토대로 쌓아 올린 환상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좇아, 자유에 이르는 모험

손오공이 요마와의 고된 싸움을 끝내고 깨달음을 얻는 막바지에는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놓은 긴고아도 사라진다. 이는 자유롭게 행동하면서도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201쪽)

이 책에서 저자는 『서유기』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짝지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자유와 구속은 이 책이 주목하는 『서유기』의 핵심 주제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자유와 구속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모험을 이어나간다. 손오공 일행을 가로막는 요마들 역시, 다수가 ‘죽지도 않고 하늘에서 영원히 시종으로 사느니 자유를 찾아 지상에서 살겠다’라며 도망쳐 내려온 이들이었다.
화과산 꼭대기의 신기한 바윗돌에서 태어난 돌 원숭이 손오공은 72가지 술법에 통달한 뒤 세계 곳곳을 들쑤시면서 소란을 피운다. 가령 용궁에 가서는 ‘마음대로 길이를 늘였다 줄일 수 있는 몽둥이’ 여의봉을 손에 넣는가 하면, 저승을 뒤집어놓고는 모두의 타고난 수명이 적힌 생사부에서 자신은 물론 의형제들의 이름을 지워 불사의 몸이 된다. 이렇듯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게 활개 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던 손오공이지만,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결국 석가여래에게 굴복하고 모험에 합류하게 된다. 더구나 금테 긴고아를 머리에 쓰게 되면서 제멋대로 행동할 때마다 삼장법사에게 제압당한다(때로는 삼장법사의 오해 탓에 손오공이 긴고아로 고통받는 억울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 이경덕은 여의봉이 자유를, 긴고아가 구속을 상징하며, 특히 긴고아는 인간의 문화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인간의 도리’를 배워나간다. 그렇다면 모험 끝에 ‘깨달은 자’가 된 손오공이 긴고아를 벗는 장면은, 외부의 제약 없이도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석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처럼 신화학자의 시선에서 『서유기』를 깊이 있게 검토함으로써 다채로운 독법을 제시하는 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삼국지』보다 먼저 읽어야 할 동양의 고전

『서유기』는 『삼국지』 『수호전』 『금병매』와 더불어 중국의 ‘4대 기서’로 꼽히는 고전이다. 각기 흥미로운 성격을 지닌 이 4대 기서 중에서, 저자는 『삼국지』보다 먼저 읽어야 할 고전으로 『서유기』를 꼽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난세에 각지에서 일어난 영웅이 사람들을 모아 나라를 세우고 온갖 병법으로 속고 속이며 각축전을 벌이는 것이 『삼국지』의 주제라면,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 소설이 바로 『서유기』이기 때문이다. 『서유기』를 통해 삶의 지침을 세우고 나서, 세상으로 나아가 타인들을 마주하기를 권하는 저자의 제언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모든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합장하고 염불을 외는 『서유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여기서 ‘모든 대중’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서유기』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우리이며, 이는 곧 『서유기』라는 모험의 끝에서 우리가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차례임을 암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편의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즐거운 모험을 떠나기에, 이 책은 좋은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월영시장

설재인 저 / 16,000원 / 문학과지성사
  
“그냥 사람, 인간, 그거잖아. 왜 사랑해?”

도깨비방망이처럼 펜을 휘두르며
통통 튀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작가,
설재인 첫 연작소설집!
모퉁이마다 튀어나오는 사랑스러운 무법자들
그 종잡을 수 없는 마주침이 다감한 마중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넓은 보폭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독자와 만나고 있는 작가 설재인의 첫 연작소설집 『월영시장』이 출간되었다. 2019년 출간한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을 비롯하여 소설집 두 권, 장편소설 열한 권, 산문집 한 권을 펴내는 등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이는 작가의 펜은 풍성한 이야기를 뚝딱 내놓는 도깨비방망이를 닮았다. 창작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재미’를 꼽으며 매일매일 글을 쓰는 꾸준함을 지닌 작가이기에 가능한 속도일 것이다. 이토록 놀라운 힘과 재주를 가진 작가 설재인의 이번 연작소설집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오래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테마에서 시작되었다.

평생 무언가에 꽂혀 눈깔을 가운데로 몰며 살아왔다. 그 대상은 자주 바뀌었다. 오래 지속된 것도 빠르게 사그라진 것도 있으나 공통점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상에 쉽게 매료되고 충동적으로 빠져들어서는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돈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길도 없는 곳을 향해 핸들을 휙휙 꺾어대서,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내가 무언가에 빠져든 것을 감지하면 제일 먼저 말한다. 쟤 또 큰일 났네, 이번엔 또 뭘 포기하려나. (놀라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사랑을 한다. 하여 유정한 사람이다.
-산문 「시장이랑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에서

고등학교 수학 교사의 삶에서 아마추어 복싱 선수이자 소설가의 삶으로 건너온 작가의 특이한 이력은 무척 파격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설재인에게 이러한 궤적은 ‘좋아하는 마음’으로 매끄럽게 이어져 있는, 놀라울 것 없이 일관된 흐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열렬히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설재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며, 이렇게 탄생한 인물들은 서울 가장 서쪽에 자리한, 작은 공항과 인접하여 비행기가 정수리 바로 위를 날아다니는 ‘월영시장’에서 나날이 서로 부딪으며 살아간다. 이들은 “당연할 것이라 굳게 믿었던” “원리를 멋대로 던져 산산조각 내는, 무법자”(「딸램들」)처럼 튀어나와 시장 골목은 물론 상대의 마음속까지 헤집는다. 예측도 대비도 할 수 없는 이러한 마주침이 어쩐지 진진한 세계로의 흔연한 마중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이 무법자들이 친밀하고 애정 어린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예고 없이 나타나 한데 섞여 드는 모난 마음들
지지고 볶이며 둥그레지는 시장통 풍경


시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가게와 좌판 들에서는 온갖 것이 오간다. 이때 오가는 것은 돈과 상품만이 아니다. 밥을 먹고 장을 보고 구경을 하고 산책을 하는 길의 갈피마다 사람이 끼어들어 있기에 마음 또한 함께 오고 가기 마련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값을 치르고 재화를 구매하는 일은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교환이지만 마음의 경우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어떤 이의 마음은 타인의 마음 주위를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별안간 그 속으로 불쑥 들어가고는 한다.
「모질의 역사」에서 ‘정한’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애니메이션 〈무크와 무이〉 시리즈다. 갈라땋은 머리와 주근깨 그리고 초록색 튜닉이 특징인 쓸쓸한 침엽수림의 요정 ‘무이’를 사랑하게 된 정한은 마침내 제 안으로 그를 불러들여 코스어 ‘쥰’이 된다. 쥰은 “태어나자마자 불의의 재난으로 헤어진 쌍둥이”인 무크를, 그리고 무크를 품고 있는 ‘심파이’를 만나기 위해 오랜 은둔을 깨고 집 밖을 나선다.
「바라보는 마음」에서는 ‘명규’의 가게 르앙구제를 주축으로 여러 층위의 맞닥뜨림이 교차한다. 강아지였던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태어난 아기 고양이 ‘꼬봉’은 전 주인 명규와 다시 함께하기 위해 르앙구제 환풍구에 올라가 삐악삐악 울고, 명규의 헤어진 연인 ‘솔’은 휴일을 맞아 닫아걸어둔 가게 셔터를 꽝꽝 두드린다. 그리고 솔 앞에는 연이 끊겼던 동생 ‘원형’이, 구제 원피스에 코딱지처럼 묻어 있던 혼 ‘시즈코’ 앞에는 30년 전 첫사랑의 혼이 붙어 있는 카디건이 우연히 등장한다. 상처를 주고받았던 이들은 제대로 헤어짐으로써, 서로를 잊지 못한 이들은 재회함으로써 다시금 가까워진다.
「돌 닮은 당신」에서 월영합기도 관장 ‘강산’이 새로 들인 외국인 사범에게는 강산의 것과 같은 최씨 성과 ‘영’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타지에 온 만큼 “최영 장군님의 의지를 받들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며 묵묵히 오래오래 일하라는 뜻에서다.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성씨를 공유하고, 번역기로 불완전하게나마 기러기 아빠로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영과 강산의 모습은 점차 가족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사람의 마음은 거래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도 시작될 수 있고, 무언가를 주었더라도 아무것도 받지 못할 수 있으며,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지언정 쉽게 무를 수 없다. 누군가의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는 일은 결국 일종의 침범과도 같다. 그러나 침범되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행복에 가닿기 어려우므로,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자신들도 모르게 마음의 틈을 살짝 열어놓는다. 그 틈으로 엿보이는 것은 치열하게 불화하고 화해하며 조금씩 모서리가 깎여 나가 둥그스름해진 마음들이 자아낸, “얼렁뚱땅 해피엔드”(「바라보는 마음」)다.

누군가의 손을 맞잡아본 아이는
손 내밀 줄 아는 어른이 된다


작은 아이들은 아무래도 인근 다른 곳보다 월영시장 안에서 안전했다. 물건을 좌판에 놓고 목욕탕 의자에 앉은 상인들, 허리가 고부라진 노인들, 시장이 가장 큰 놀이터인 강아지들. 그 모두보다 아이들의 눈이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시장 밖에서 사람들은 아래를 잘 보지 못했고 그래서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는 애들을 밀치고 걷어차며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에필로그」에서

충분하고 온전한 돌봄 아래 자라나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모두에게는 저마다 어린 시절 채워지지 못한 결핍과 해소하지 못한 응어리가 있는 법이고, 월영시장의 아이들 역시 그렇다. 그리고 낮고 완만한 이 시장 안에서 아이들은, 또 비슷한 눈높이의 존재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손을 잡는다.
「달리기뿐」에서 ‘하민’에게 손을 내민 이는 독특한 옷차림으로 리어카를 끄는 ‘스타할매’다. 점점 무너져가는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또래의 따돌림을 견뎌야 했던 하민에게 스타할매는 군것질거리를 사 주고 합기도장에 다니게 하고 바세린 통을 건넨다. 스스로 찻길에 누워 차바퀴가 제 몸을 깔고 가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할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할매와 딱 붙어 걸을 수 있는 누군가”로 클 수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졌을 때, 하민의 혼은 마침내 손 내밀 줄 아는 어른으로 빠르게 성장하지만 이내 육신은 그치고 만다.
월영시장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있다. 「딸램들」의 ‘동지’는 “태어나서부터 포차에서 취객들을 마주하며 성장”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보살피겠다는 일념으로 유아교육과에 진학하며 “애들이 나중에 커서 막, 내 인생 구해줘서 고맙다고 줄줄이 찾아오는 그런 어른”이 되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막냇삼촌이 놓고 간 사촌 동생 ‘동윤’은 생각과 달리 잘 챙겨주려 “애를 쓰면 쓸수록” 동지의 심기를 거스르며 냉담하게 군다. 이에 동지는 “자신 또한 준 애정에 대한 보답을 원하는 사람, 마음 다치는 일은 싫은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손은 뇌가 말하는 바와 다르게 행동”하며 끈질기게 동윤을 쫓아다닌다.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이들이 꺼내 보이는 사랑의 모양은 마냥 예쁘지만은 않다. 사랑은 상대의 뾰족하고 두툴두툴한 구석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므로, 오히려 조금 헌 듯한 모양에 가깝다. 그러나 너절해질지언정 결코 닳지는 않는 검질김 또한 사랑의 특성이기에, 이들은 내민 손을 결코 거두지 않는다. 손과 손이 마주 잡힐 때까지, 서로서로 지탱해줄 수 있을 때까지, “꺼지란 말”이 “안아달란 말의 유의어”(「에필로그」)가 될 때까지.










하이라이프

김사과 저 / 15,000원 / 창비
 
망해가는 세상, 과연 무엇이 ‘최고의 삶’인가
독보적인 문제의식과 날카로운 시각
리얼리스트 김사과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초상
2000년대 출현한 가장 새로운 가능성으로 불리며 어떠한 계보도 따르지 않는 신선하고도 놀라운 작품을 발표해온 소설가 김사과가 『더 나쁜 쪽으로』 이후 7년 만에 세번째 소설집 『하이라이프』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 특유의 독보적인 문제의식과 당대를 읽어내는 기민함이 돋보이는 단편소설 아홉편을 묶었다.
더 나쁜 쪽으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망한 것이 아니라는 역설적인 희망을 이야기했던 소설가 김사과가 이번에는 독자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묻는다. 주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과연 어떤 인생의 양태가 ‘최고의 삶’인가를 묻는 동시에 환멸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망해가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허위를 읽어내되 한가닥 희망을 잃지 않는 끈기, 그 불균형과 안간힘 사이에 놓인 김사과의 작품은 지금 이 시대의 위태로운 징후를 예리하게 묘파한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금정연 추천사)

현대사회의 세태, 현대인의 판타지를
냉철한 시각으로 꼬집는 아홉편의 이야기


마치 연작처럼 읽히는 이 아홉편의 작품은 완전히 망해가는 나머지 인간조차 아니게 된 존재들이 등장하거나(「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귀신들」), 중산층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현대인의 판타지를 꼬집거나(「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두 정원 이야기」), 환상적인 설정을 활용하여 현대사회의 현실과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내용(「소유의 종말」 「벌레 구멍」 「몰보이」)이 주를 이룬다.
표제작 「하이라이프」에는 코카인을 쉴 새 없이 흡입하고 도시를 배회하는 상류층이 등장하는데, ‘high life’는 상류층의 삶을 뜻하는 동시에 마약을 하고 환각에 취한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마약에 취한 채로 시시각각 많은 것을 부지런히 소비하며 이리저리 도시를 걷는 이 마약중독자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이 도시의 진정한 일꾼”이라고 말한다.
‘도시’는 김사과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상정할 수 있을 만큼 작품 곳곳에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쥐새끼들을 위한 최상의 천국”인 이 “도시에 완전히 중독되었다”라는 신랄한 문장으로 책의 포문을 열 정도이다. 작가는 인간이 ‘비행기’와 ‘택시’ 안에서 이동하는 사이 창밖에서는 세계가 망가져 신음하고, 그 소리가 차단된 이동 수단을 통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당신은 영혼을 조금씩 잃어”가고 “그것이 바로 교환”이라고 지금의 현실을 진단한다. 하여 도시는 오직 “비행기와 택시의 좌석 뒤쪽에 달린 조그마한 스크린”(「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 속에 존재할 뿐이다.
비교적 상징적으로 읽히는 처음 세편을 지나면 작가의 리얼리스트적 면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극점을 통해 계급을 보여주는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그리고 고급 아파트라는 배경을 통해 중산층의 욕망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두 정원 이야기」이다.
「두 정원 이야기」에 등장하는 같은 아파트 주민 ‘절약의 화신’ 김은영과 ‘소비의 화신’ 윤은영은 상반되면서도 본질은 똑같은 중산층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쌍둥이 같은 인물이다. “올 샤넬”로 치장한 윤은영은 “파타고니아의 합성섬유 점퍼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실크 블라우스를 감각 있게 매치”하며 ‘에코주의’를 자신의 핵심가치로 선전하는 “가장 세련된 2020년대의 인간”이다. 김은영은 그런 그녀가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지만 어느 동네의 무슨 아파트가 사회의 신분 지표가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고급 아파트에 입성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 그녀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르냐고, 작가는 독자에게 묻고 있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에는 김은영과 윤은영의 대학 시절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게 읽힐 만한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현실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이수영과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한비이다.

이수영의 주위에는 그녀의 부모를 포함하여 자신처럼 적당한 불만족 속에서, 적당한 망상과 적당한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한편 한비의 주위에는 그녀의 부모를 포함하여 어딘가 황당한 꿈을 품고 둥둥 떠서 살아가는 비현실적인 인간들로 가득했다.(97면)

수영은 그런 한비의 모습에 끌려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하며 시인이 되지만 종내에는 예술가라는 명분이 만들어낸 높은 이상 때문에 부모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실업자가 되고 만다. 이러한 인물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계급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촘촘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은 김사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서늘한 진실을 담고 있다.
한편 인스타그램 시대 젊은 세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 1 0 0 4 7 9 ♡」,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종말하고 만 미래사회를 그리는 「소유의 종말」,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웜홀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되는 「벌레 구멍」, 쇼핑몰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몰보이」는 매력적인 설정과 강렬한 에너지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엉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한가닥 구원을 찾기 위한 안간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는지, 그 현실을 곧 터질 듯한 분노의 에너지로 날카롭게 직조하는 소설가 김사과. 하지만 그는 당대를 직시하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되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희망을 놓은 적이 없었다. 비록 “아직 확정되기 직전의 바로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몰보이」) 영원히 바라는 방식으로 꿈꾸는 희망일지라도, 진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힘과 끈기를 잃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가닥 구원을 찾기 위한 김사과식 안간힘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편의점 30년째

니시나 요나노 저 / 김미현 역 / 16,800원 / 엘리
  
진정한 ‘편의점 인간’의 생활 밀착 극한 에세이
24시간이 모자란 편의점 사장의 다사다난 업무 일지
누계 56만 부를 돌파한
일본의 극한 직업 일기 시리즈
마침내 한국 독자들과 만나다


국도변에서 30년 넘도록 편의점을 경영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편의점 점주의 기록. 어느 순간부터 서점가에 ‘힐링 스폿’으로 자리잡은 편의점의 생생한 현실이 담겨 있다. 우리 일상에서 빠트릴 수 없는 친숙한 편의점이 누군가에게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노동의 현장임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만 생각한 편의점의 24시간 365일 영업을 사수하기 위해 누군가는 휴일 없이 일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이 삶의 단편들은 지금 우리 시대 자영업자의 초상을 섬세히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극한 직업 에세이 시리즈로 대표되는 ‘땀과 눈물의 다큐멘터리 일기 시리즈’는 누계 56만 부를 돌파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그중 독자들로부터 가장 큰 지지를 받은 대표작인 『편의점 30년째』는 편의점 업계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편의점을 경영한다면 해야 하는 일들을 총체적으로 망라하고 있다. 그 분주한 일과를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매일 똑같아 보이던 편의점이 전혀 다른 곳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편의점에는 당신의 혹시 모를 편의를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키는 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 그 삶을 30년간 이어온 진정한 ‘편의점 인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휴일 없음, 알바 없음, 돈 없음의 쓰리 콤보
3無 사장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


이 책의 저자이자 1990년대 중반부터 남편과 함께 편의점을 운영 중인 니시나 요시노 씨의 퇴근 시간은 새벽 4시, 남편이 교대하러 와준 뒤에야 가능하다. 밤 10시부터 출근해 혼자 편의점을 지키며 입고품을 정리하고, 가게를 청소하고, 중간중간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다가 떠오른 아침 해와 함께 퇴근한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로 1087일째 연속 출근 중인 그녀는 약 3년 가까이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알바생을 구하고 싶어도 시급이 센 야간 외에는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주변의 다른 편의점들과 손님만이 아닌 일할 사람을 두고도 경쟁해야 한다. 어렵사리 알바를 구했다고 해도 매출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나날이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돈이 없으니 알바생을 구할 수 없고 그로 인해 휴일도 없다. 그렇게 휴일 없이 일해 매출을 올리더라도 본사 로열티를 빼고, 간신히 구한 알바들의 급료를 지급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그 외 가게 운영에 들어가는 필수 비용을 제하고 나면 여전히 수입은 제자리걸음이다.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뒤로 밀려나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 곧 편의점 경영의 진짜 현실이다.
『편의점 30년째』는 자영업자가 되고 싶었던 남편의 꿈을 위해 얼떨결에 편의점 업계로 투신한 저자가 매일같이 가게에 나가 계속해온 일과 일터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명언처럼 각자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경험들이 응축되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버틴 자가 강한 것임을 증명하는 이 희노애락의 기록은 오늘 하루도 성실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금요일마다 찾아오는 결벽증 환자부터
물건을 잃어버린 야쿠자와
은둔형 외톨이 중졸 알바생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편의점 24시간


편의점 업계에는 ‘천객만래(千客萬來)’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천 명의 손님이 만 번씩 온다는 뜻이다. 특히 차량 통행량이 많은 국도변에 자리한 저자의 편의점은 가장 손님이 많은 시기엔 2000명 가까운 손님이 찾아왔을 정도였고 그만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문제만 생기는 편의점’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30년의 세월 동안 쌓인 ‘웃픈’ 에피소드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매주 금요일마다 찾아오는 결벽증 손님은 꼭 저자한테만 계산을 맡겨야 해서 몸이 아픈 날에도 그 손님을 위해 출근해야 하고, 야쿠자의 분실물을 경찰에 가져다주었다가 곤란한 상황에 휘말린다. 단골의 아들인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알바생으로 고용해 계산대의 숫자 누르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에서 당면한 위기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저자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품게 만든다.
평범한 편의점 점주인 저자는 사람을 대하는 데 특별한 스킬이 있거나,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업무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다. 영웅들의 필수적 덕목인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익숙지 못한 일에 좌절하고, 예의 없는 손님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을 다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일과 일터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맡은 책임을 다한다.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야말로 중요해진 지금 시대인 만큼 이런 평범함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이 수수하지만 굉장한 30년의 기록이 출근을 위해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당신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신경림 저 / 7,000원 / 창비
 
세상의 목소리를 담아온 찬란한 50년
함께 희망을 꿈꿔온 아름다운 노래들
시인들이 추천한 ‘내가 사랑하는 시’
한권으로 만나는 우리 시의 빛나는 역사


지난 50년간 한국시의 중추를 이뤄온 창비시선이 500번을 맞아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과 함께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을 출간했다. 특별시선집은 창비시선이 500번이라는 놀라운 궤적을 그려냈다는 사실을 축하하는 동시에 이것이 창비시선을 꾸준히 사랑해준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되새기기 위한 기획의 일환으로 꾸려졌다. 이번 시선집은 시인들이 직접 즐겨 읽는 시편들을 모았다는 점에서 뜻깊은 동시에 흥미를 더한다. 추천인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의 저자인 창비시선 400번대의 시인들이며, 창비시선 전체 작품을 추천대상작으로 했다. 그 결과 한국시의 빛나는 역사가 한권에 모인 것은 물론 형형색색 다채롭고도 읽는 재미가 가득한 시선집이 탄생할 수 있었다. 특별시선집이라는 기획 취지에 걸맞게 7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은 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시가 어렵기만 했던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창비시선이 500번째 시집을 낸 것은 한국시의 저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땅에서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갈망해온 존재들의 힘을 증명한다.”(송종원, 「여는 글」)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에는 창비시선 50년의 역사가 녹아 있다. 창비시선의 시작을 알린 『농무』(신경림)의 수록작 「그 여름」에서 따온 제목부터 그러한데, 이는 유미주의에 매몰되거나 개인에 침잠하기보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꿈꿔온 창비시선의 정신을 표방했다. 창비시선은 현실과 맞닿은 주제와 생생한 시어로 한국시단과 독자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보통 사람’의 현실을 그려낸 시집들로 열렬한 인기를 이끌어냈다. 시대와 공명하며 함께 맞서 싸우는 동시에 나날이 미학적 갱신을 이루어냄으로써 ‘민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추구해온 것이 창비시선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특히 암담하고 비관이 가득한 시기마다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독자와 함께 호흡해온 것은 창비시선의 자랑이자 긍지다.
이러한 독자들의 호응 덕분에 창비시선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1970년대 1년 다섯권 남짓 출간되던 창비시선은 2010년대 평균 열네권 출간을 넘어섰다. 시집의 시장 주목도가 떨어진 2010년대 이후에도 『울고 들어온 너에게』 『온』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사랑을 위한 되풀이』 『슬픔이 택배로 왔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등 독자의 호응을 얻는 시집을 꾸준히 펴냄으로써 창비시선의 사회적·문학적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양적인 성장이 전부가 아니다. 창비시선이 지향하는 가치 또한 나날이 다채로워지며 그 몸피를 불려나가는 중이다. 노동·지역·통일 문제를 넘어 이제는 더욱 폭넓게 차별에 반대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 연대하는 감각을 벼려내고 있다. 서정 또한 한층 웅숭깊어졌으며, 다양한 개성과 색다른 감동을 선보이고 있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은 이처럼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비시선의 시를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가려 뽑은 시선집이다. ‘사람의 시’를 모은다면 이보다 뛰어난 시선집이 있을 수 있을까. 시가 소외되고, 아름다움이 소외되고, 가치가 소외되고, 사람이 소외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권은 바로 이 시집이라 하겠다.

한편 창비는 창비시선 500 발간을 기념해 두종의 시선집 출간(『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 중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디콜라보’에서는 4월 19일(금)부터 28일(일)까지 10일간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여기에는 강우근, 유수연, 유현아, 이종민, 정다연, 조온윤, 최백규, 최지은, 최지인, 한재범 등 젊은 시단을 대표하는 열명의 시인이 일일 점원으로 참여해 일하며 독자들과 소통한다. 아울러 4월 27일(토) 오후 2시에는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의 편자 안희연·황인찬의 북토크가 개최되어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봄 선물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팝업스토어는 창비시선을 활용한 다양한 굿즈 판매 및 전시와 더불어 올해로 출시 7년을 맞은 시 전문 애플리케이션 ‘시요일’ 체험 부스가 열리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가득할 전망이다. 아울러 창비는 전국의 도서관 및 ‘창비부산’과 연계해 시를 사랑하는 지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출간 기념 전국 순회 북토크를 기획 중이다. 김해자 시인과 함께하는 충남 서천도서관 만남(4월 15일)을 시작으로 15곳가량의 도서관과 일정을 조율 중에 있으며, 행사는 창비의 SNS를 통해 공지된다.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안희연, 황인찬 저 / 11,000원 / 창비
  
창비시선의 궤적이 그리는 내일의 풍경
그 위에 포개어보는 우리들 사랑의 습관
우리가 느끼고 싶은 이 시대의 감수성,
이 한권만으로 충분하다


1975년 첫 발간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최첨단에서 평단의 주목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받아온 창비시선이 500번을 맞아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을 출간했다. 엮은이로는 돋보이는 감수성으로 요즘 독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동시에 시에 관해서라면 눈 밝기로 정평이 난 안희연, 황인찬 두 시인이 나섰다. 401번부터 499번까지 각 시집에서 한편씩을 선정했으며, 두권을 출간한 시인의 경우 한편만을 골라 총 90편의 시가 한권으로 묶였다. 이번 시선집은 “지난 8년여 동안 전개된 창비시선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요약하기보다는 시인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 보이는 데 역점을”(「엮은이의 말」) 두었다. 창비시선은 국내 여느 시선 시리즈보다 신구 세대가 조화롭고 시의 경향도 다채롭다. 시선집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1948년생 김용택 시인(『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과 2000년생 한재범 시인(『웃긴 게 뭔지 아세요』, 창비시선 499)만 해도 연령뿐 아니라 시어를 다루는 양상과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무척 상이한데, 400번대 창비시선은 순수/참여 같은 고루한 이분법에 갇히지 않으려는 고투가 넓혀온 시적 영토 덕분에 총천연색 스펙트럼으로 찬란하다. 이로 인해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개성 넘치는 빼어난 작품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선집의 진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어나갈 때 드러난다. 출간 순서를 최대한 따른 구성과 세심하고도 치열한 선별 과정 덕분에 이 한권만으로도 독자들은 급변하는 현재 한국시의 지형도를 가늠해볼 수 있으며, 이 시대의 감수성이 우리 시와 어떤 방식으로 조응하고 호흡하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창비시선이라는 가치와 가능성
시를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함께


창비시선 401번이 발간된 2010년대 중반은 한국문학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와 반성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다. 이에 발맞춰 창비시선은 시가 품은 최대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젊은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혈하고, 서정의 진화를 꾀하는 시집들을 안배해가며 외연의 확장에 힘썼다. 이를 증명하듯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에 포함된 안미옥, 정현우, 최지은, 이종민, 최백규, 조온윤, 유혜빈, 전욱진, 유수연, 강우근, 한재범 등 스물한명은 이번 수록작품이 첫 시집인 신예들이다. 이는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한 세대의 풍경과 발맞추기 위한 창비시선의 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물론 기존의 가치를 계승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번 시선집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용택, 이시영, 김정환, 노향림, 도종환, 백무산, 안도현, 정호승, 최정례 등 기라성 같은 이름은 우리 시의 명맥이 창비시선을 통해 도도하게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함께 내일을 꿈꾸고 시로써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창비시선의 핵심가치는 더 깊고 넓어졌음도 알 수 있다. 앞서 세세하게 호명되지 않은 모든 시인들이 노동하는 사람의 편에서, 망가져가는 세계의 편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온 이들의 편에서 저마다 시라는 무기를 들었고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에는 그러한 목소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념시선집은 창비시선이 한결같이 노력해온 발자취를 보여주는 하나의 결실이라고도 하겠다.
이러한 결실은 창비시선을 아끼고 성원해준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없다면 시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빈 소리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리하여 시가 들려주는 그 낯선 목소리에 우리의 마음을 포개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새로워질 수 있고, 시는 우리와 함께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엮은이의 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창비시선은 습관처럼 독자들의 곁에서 함께 먼 곳을 보기를 희망한다. 창비시선 500번을 기념하는 시선집의 제목을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으로 정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부영사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 / 최윤 역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나는 그녀를 슬픔으로 이해할 겁니다.”
부영사는 말한다.
‘고통’이라는 이 세계를 가로지르는 3악장의 불협화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상실과 파괴, 외침과 눈물의 서사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전위적이고 여성적 글쓰기로 작품과 삶 모두에서 우리를 매료시킨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가 소설가 최윤의 번역으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인물과 사건, 감정과 심리의 흐름을 극도로 섬세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뒤라스의 문학적 행보는 그의 극적인 인생 편력만큼이나 모험적·급진적이다. 문학 이외에도 예술의 경계를 활발히 넘나들며 활동해온 뒤라스는 연극, 영화 그 어떤 장르이건 전통이나 상식,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이 책 『부영사』는 뒤라스가 직접 감독하고 칸 영화제 예술·비평 부문에서 수상(1975)한 영화 「인디아 송」의 원작소설로서, 1930년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가난과 질병, 굶주림과 죽음으로 가득한 (식민치하 당시) 인도의 수도 캘커타. 세상의 모든 고통이 한데 모여 있는 듯한 이곳은 사실적인 시공간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이 설정한 하나의 소설적 지역이다. 작품의 주요 인물인 걸인 소녀가 고향을 떠나 거치는 수많은 마을의 이름은 실재하지만 현실의 지리적 사실성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바로 “고통의 대명사”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 잠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걸인과 문둥병자, 그들의 냄새와 신음으로 『부영사』의 무대인 캘커타 대서관저의 아침이 시작된다.

세 세계, 세 인물, 3악장의 불협화음

작품에는 철책 밖의 걸인 소녀, 철책 안의 부영사와 프랑스 대사 부인 안-마리 스트레테르, 이들 세 인물의 이야기가 무질서하게, 때로는 서로 뒤섞여 전개된다. 광활한 평원의 굶주린 길 위를 걷는 소녀는 어린 나이에 애를 배고 집에서 쫓겨났다. 그녀의 가장 큰 기능은 ‘길을 잃기 위해’ 걷는 것이다. 굶주림에 허덕이며 아이를 백인에게 팔고, 기억도 길도 잃은 채 음식 쓰레기가 풍성한 대사관 철책에 도착한다. 그녀는 마침내 걸인과 문둥병자의 무리에서 구분되지 않는, 익명의 ‘그녀’가 된다.
이들 무리와 단절되어 보호 철책 안에 갇힌 백인 사회에는 무수한 소문을 나르며 정보와 서술을 일부 담당하는 익명의 ‘그들’로 구성된 또 다른 무리가 있다. 그들은 문둥병을 두려워하며 원주민과의 어떤 접촉도 시도하지 않는다. 때로는 호기심으로, 철책 앞까지 가는 백인들도 있으나 혼비백산해 도망쳐 되돌아온다. 그들의 관심은 추상적이고 접촉이 없다.
상호 침투가 불가능한 두 세계에 접촉과 소통을 시도하는 인물들이 있다. 라호르의 샬리마르 정원에 무리 지어 있는 문둥병자들에게 총질을 해 캘커타로 불려와 다음 임지를 기다리는 프랑스 부영사 장-마르크 드 아슈. 그는 익명의 백인 무리가 철책 밖의 세계만큼이나 도외시하며 피하는 인물이다. 끝으로 중년 여인 안-마리 스트레테르. 대사관저의 남은 음식물을 철책 밖 걸인들을 위해 내놓으라고 지시하는 대사 부인이자 두 딸의 엄마이며, 무수한 연인과 친구를 둔 신비한 여인이다.
이 세 인물은 제각기, 그러나 철책을 넘어 타자에게 향한다. 걸인 소녀는 백인 사회의 심장에까지 들려오는 외침으로, 부영사는 총질로, 안-마리 스트레테르는 남은 음식물을 철책 밖으로 내어놓는 행위로 혹은 백인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이 셋을 연결 짓는 표면적 유사성은 거의 없다. 서사적 얼개가 이 셋을 묶는다. 이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고, 상이한 세 인물 사이에 근본적 유사성을 추출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세 인물은 각기 하나의 악장을 이룬다. 걸인 소녀가 자기 상실로 가는 보행이 만들어내는 단조로운 행진곡, 파괴적 행동을 예고할 듯 내지르는 광시곡에 가까운 부영사의 고함, 그리고 안-마리 스트레테르Stretter의 이름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둔주곡strette. 이 음악들은 독서 내내 번갈아 돌림노래처럼 독자들의 귀에 울린다.


고통이라는 우주, 상실과 파괴와 눈물의 이야기

『부영사』는 뒤라스 전공자이자 프랑스 문학 연구자, 소설가 최윤의 번역으로 1985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소설가 최윤이 우리말로 옮긴 단 하나의 문학작품이기도 한 『부영사』는 요즈음에 맞게 번역을 전면 수정, 새로운 옷을 입고 독자들 앞에 선보이게 되었다. 특히 역자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의 내면과 외면, 과거와 미래의 작품, 개인성과 역사성 등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다른 쪽에서 들여다보아야 이쪽이 보이는, 그러나 통과해야만 양쪽이 다 보이는 창틀”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뒤라스 글쓰기의 후기적 특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부터 서사는 파편화되기 시작한다. 작품 속 그 누구에게 배당되어도 상관없는 동일한 문장들이 끊기거나 조각나 반복되는가 하면, 질문은 던져지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말없음표, 침묵, 짧은 문장, 띄엄띄엄 이어지는 느린 리듬의 행들. 시각적으로도 점차 비어가는 혹은 정화되어가는 뒤라스의 언어를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작품의 언어와 구조가 빚어내는 의도적인 모호성과 혼란은 세 주인공의 교집합이 얼핏 없는 것처럼 보이게도 만들지만, 오랫동안 뒤라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해온 주제들을 여러 각도에서 흥미롭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부영사』 이전 작품들에 나타나는 뒤라스의 인물들이 존재의 고통을 일깨우는 사건들을 통해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뜨며 존재적 변화를 겪었다면, 이 작품의 세 주인공은 모두 나름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니며 삶의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그 고통이라는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인도차이나라는 작품의 배경이자, 그 배경으로 상징되는 존재적·세계적 고통과 마주한다. 그렇게 작가는 이 작품이 정치적 소설이자 존재적 가치관의 소설로서 읽히기를 요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