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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4-06-05
조회수
226
 

봄벌을 깨우며


송명규 저 / 18,000원 / 작은것이아름답다



《봄벌을 깨우며》는 시골마을에서 만난 자연과 집 주변에서 만난 열두 달 자연, 마을 안팎을 거닐면서 배우고 생각했던 것들을 마음 가는대로 써낸 생태수필이다.
글쓴이가 괴산 조령산 자락 마을로 삶터를 옮긴 뒤 십여 년 동안 집 주변 자연에서 만난 작은 생명들을 통해 새롭게 경험하고 알게 된 자연을 기록했다. 환경책의 고전,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 군의 열두 달》을 한국에 소개한 송명규 교수는 귀촌한 뒤 자연은 가끔 방문하는 장소가 아니라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 그 자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무엇보다 사는 공간이 자연과 단절 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자연으로 둘러싸인 집 주변에서 날마다 느끼며 경험했다. ‘자연이 곧 집’이며, 있는 그대로 자연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봄벌을 깨우며》는 1부 ‘조령산 자락 삶터로’에서는 십여 년 전 도시의 각박함과 단조롭고 규격화된 일상이 오랫동안 맞지 않는 옷같이 느껴져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귀촌을 결심한 이야기, 나다운 일상을 되찾고 자연에서 호흡하며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기 위해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으로 삶터를 옮긴 이유를 담았다. 2부 ‘다섯 연못이 있는 집에서’는 집에서 마을, 집과 냇가, 집 근처 연못, 연못과 이어지는 뒷산이 연결돼 하나의 생태계라는 것을 확인한 내용을 비롯해 집 주변 다섯 개 작은 호수에 다채로운 야생동물이 찾아오고 깃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연못에 채집해 풀어준 민물고기, 새우, 다슬기, 조개 같은 다양한 수생물들이 온 동네로 퍼져 마을 수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는 경험을 했고, 특히 큰비라도 오면 바라던 대로 대탈출이 일어나곤 했다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냈다. 집과 집 주변,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하나하나 만났고, 자연이 스스로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저마다 고유한 색깔로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작은 풀 하나에서부터 집 근처를 찾은 작은 생명들에게 날마다 말을 걸며, 삶에 가득 들어찬 자연을 날마다 품었다. 마지막 3부 ‘생명 이야기는 이어지고’는 온종일 쏘다니며 자연을 만났던 어린 시절, 자연에서 배우고 경험했던 기억들이 지금 살아가는 일상에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 여행길에서 만난 자연과 야생동물, 식물에서 마주한 자연이 사는 자리에서 만나는 자연에까지 연결돼 있고, 어디 있으나 자연과 생명 가득한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시골 생활은 갖가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하나하나 다 이유 있고 더할 것 없는 치유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때로 심지도 않은 나무들이 내가 원하는 곳에 스스로 자리를 잡고 자라는가 하면 멧돼지 떼가 수확을 코앞에 둔 옥수수밭에서 심야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웃집 벌이 분봉해서 내 벌통으로 들어올 때도 있지만 내 벌이 가출해 이웃집으로 이사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그래도 전체를 보면 즐거움이 고충보다 훨씬 크며, 무엇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골 생활은 그 자체가 위로이자 생의 활력이다.
최근 들어 글쓴이는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갈수록 더욱 덥고 습해지는 경험을 한다. 꿀벌이나 농작물을 포함해서 동식물 대부분은 급속한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조만간 우리나라 생태계는 밑바닥부터 뒤바뀌게 될 텐데, 사람은 괜찮을까? 자연은 자기답게 스스로 순환하며 자정하면서 존재하겠지만, 사람은 삶과 생활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자연이 들려주는 경고,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귀담아 듣고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전환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묻는다.
특별히 《봄벌을 깨우며》에 들어갈 삽화를 글쓴이가 직접 그리기로 결정한 뒤, 글로 담았던 풍경과 동식물을 수채화로 표현했다. 글 언어를 천천히 조금씩 그림 언어로 옮기고 빛깔을 입혀 스스로 빛나는 자연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그려냈다.











나의 첫 위스키 교과서


사사키 다이치 저 / 가와니시 마오 일러스트 / 정금이 역 / 19,800원 / 푸른길



잘은 몰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스키 입문
기호품인 위스키,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즐겁다!


“하이볼로 하시겠습니까?”

2008년 일본 위스키 매출이 최저점을 찍었을 때, 당시 불황을 타개하고자 산토리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을 벌였다. 그것은 바로 위스키에 소다(탄산)를 넣어 희석해 버리는 것도 모자라 레몬을 짜 넣고는 무려 손잡이가 있는 잔에다 마시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때는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태반이었지만 지금은 동네 작은 선술집 메뉴판에서조차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어디를 가도 위스키 하이볼을 마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나의 첫 위스키 교과서』는 이런 시대에 위스키 초보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캔 하이볼까지 등장해서 이게 뭔가 싶은 사람들에게 주문해 볼 만한 위스키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위스키 주문하는 법을 설명하는 설명서이다. 그 설명을 누가 해 주는가 하면 산토리주식회사의 위스키 앰버서더이자, 일본에서 가장 어렵다는 ‘마스터 오브 위스키’ 시험을 최초로 통과한, 배구선수 출신의 사사키 다이치다. 드라마틱한 전직 이력을 가진 저자는 산토리선버즈 소속 배구선수였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직장은 바뀌지 않은 그는 산토리 위스키의 시니어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위스키 이야기꾼 만들기’라는 산토리의 전략 아래 1년간 산토리 자사의 위스키 증류소를 둘러보고 제조 공정을 살펴보며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의 역사와 전통을 배운 다음 필기와 프레젠테이션 시험을 거쳐 당당히 전문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의 위스키는 산토리의 위스키를 위주로 이야기한다. 일본 위스키에 관심이 높아진 지금 야마자키, 하쿠슈, 지타, 히비키, 로열, 올드, 가쿠빈, 토리스 그리고 아오까지. 한때 높은 인기로 품귀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던 위스키들의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산토리의 일본 위스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세계 5대 위스키인 스카치, 아이리시, 아메리칸, 캐나디안 위스키도 함께 소개한다. 위스키를 고를 때 ‘우선 멋있어 보이는 것’을 고르라며 위스키의 인상에 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몰트와 블렌디드를 구분해 준다. 귀여운 그림과 함께 위스키 제조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가 없다. 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아주 쉽고 간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위스키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하다.

위스키 1학년을 위한 교과서

위스키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책은 많다. 그런데 그 설명들이 가끔은 너무나 전문적이고 자세해서 오히려 어려울 때가 많다. 실제로 위스키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 많은 내용을 초보 수준으로 과감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 바로 『나의 첫 위스키 교과서』이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이야기를 생략한 것은 아니다. 원료, 증류, 숙성도 이야기하고 스코틀랜드냐, 아일랜드냐 하는 기원에 관한 이야기, 다양한 음용법, 곁들이면 좋은 음식 등을 왜 그런가 하는 이유를 들어 그림과 함께 설명해 준다.
삽입된 만화의 주인공은 백화점 지하매장 술 코너에 근무하는 사야카이다. 맡은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빠 세이지와 함께 바에 찾아간다. 뭘 좀 아는 줄 알았던 오빠도 사야카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니 쭈뼛거리고 만다. 이들 앞에 나타난 사사키 다이치. 뭘 주문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그들을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해 준다.
만화 속 사야카와 세이지를 안내하는 다이치를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원뿔 모양의 증류기도 보게 되고, 다양한 종류의 오크통 앞에도 서게 된다. 숙성된 위스키를 바라보면 먹음직스러운 황금색이 떠오르고 어디선가 상큼한 과일 향도 풍긴다. 유리잔에서 얼음이 짤랑거리는 소리에 군침이 돌다가도 깊은 스모크향에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피트 습원의 바람 좀 쐬다가 증류소 투어도 한다. 그에 얽힌 약간의 역사와 지리 이야기는 순전히 덤이다. 세계 5대 위스키를 맛본다는 것은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라는 사사키의 말이 이해가 된다. 이들 따라 여행 한 번 다녀오면 어디 가서 위스키에 대해 한마디 정도 할 수 있게 된다.
만화의 마지막에서 능숙하게 위스키를 고르는 사야카와 세이지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 책의 목표가 이 자체이다. 내가 마실 위스키를 내가 고르는 것. 이 책을 읽고 목표를 달성한 위스키 초보자가 다음 위스키 책을 펼쳤을 때 약간은 어렵더라도 그냥 덮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스키에 왜 1학년 교과서가 필요한지를 역으로 알려 주는 귀하고 재미난 책이다.












콜리플라워


이소연 저 / 11,000원 / 창비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말이라고 믿고 싶어”

슬픔과 아픔, 그리고 미움에 잠겨 있다가도
끝내는 사랑의 말을 발견하며 깨어나는 다정한 목소리

윤슬처럼 반짝이는 언어로 시인만의 내밀하고 감각적인 세계를 가꾸어온 이소연 시인의 세번째 시집 『콜리플라워』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기도 한 시인은 “모서리가 많은 삶의 어두운 구석”(주민현, 추천사)을 찬찬히 살피며, 어둠을 깊이 응시한 이만이 발견할 수 있는 다채롭고 입체적인 사랑을 노래한다. 전작들에서부터 이어져온 여성과 생태, 그리고 언어를 향한 시인의 깊은 애정이 다시금 변주되며 찬란한 선율을 이룬다. 삶의 보이지 않는 이면과 끊임없는 존재의 마찰로부터 굳건한 사랑을 길어 올리는 시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생물이 자라 사랑하고
쓰고 남을 아름다운 힘을 찾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선에 담아낸 애정 어린 순간들


이소연의 시는 “보아야 할 것은 꼭”(「코번트리 부인」) 보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에도 구애받거나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시선이다. 이를테면 시인은 미술관에 가서도 “미술관 바깥의 매미와 잠자리”(「관람」)를 비롯한 외부의 풍경에 신경을 쏟으며 “그림보다 미술관에 같이 간 친구가/보고 싶어요”(「코번트리 부인」)라고 말한다. 이렇듯 자유로운 응시는 삶의 “이면에 보이지 않게 머물러 있는 것들에 시선을 던지면서 들끓는 침묵의 목소리에”(김태선, 해설) 귀를 기울이는 원동력으로써 구체적인 일상이 시적인 순간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한다. “사실 그림은 색으로 덮은 것이 아니라/색에서 빠져나온 여백”(「관람」)이라는 관념의 반전도, “구멍 난 양말과/친구의 뒤꿈치 각질을 신기해하는 얼굴”(「보풀」)을 마음에 새기는 다정함도 모두 여기서 파생된다.
자유로운 시선이 선사하는 것은 일상을 시적 순간으로 전환하는 활기뿐만이 아니다. “사랑과 미움이, 밝음과 어둠이, 이율배반적인 것들이 어떻게 한 몸인지 알게”(추천사)하는 이소연의 특장점 역시도 여기서 비롯된다. 시인은 풍경과 사물에 맺히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에만 시선을 두지 않는다. 사랑의 충만함과 행복 이면에 가려진 고독과 불행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밤을 새우지 않아도 어둠이 잘”(「보석감정사」) 보이는 사람, “밤의 몸이 출렁출렁 쏟아질 것”(「옮겨 앉을 준비」) 같은 순간 속에 잠겨 빛을 헤아리는 사람, 그리고 “불행을 추적하고 탐구(「내 안에 누가 있다」)”하며 깊이 응시하는 사람이다.

“죽도록 미워하려고
중랑천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죽도록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난리다”


그래서 이소연이 말하는 사랑은 유독 빛난다. “당신이 나를 비난”하는 와중에 “다정은 어떻게 생겼나”(「죽도록, 중랑천」)를 고민하는 양면성이, “슬픔에 잠겨서도 계속 사랑을 했다”(「충실한 슬픔」)는 충실함이 우리들 삶에 흐르는 복잡다단한 애정의 본모습과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여전히 그대로인 세상”(「양서류적인 코번트리 부인」)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에도 다시 한번 주목한다. 그는 가부장적 질서가 만든 규범은 “남자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해내면서 살고 있”는 “세상의 여자들”(「코번트리 부인」)에겐 무의미하며, “여자가 금기하는 세상은 없었”(「충실한 슬픔」)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더 나아가 삶의 질서를 다시 배열함으로써 사회적 규범에 따라 “나뉜 대로 나뉘어 살아가는 인간”(「코번트리 부인이 앙코르와트에서 가져오지 못한 것들 2」)의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해나간다.

삶은 존재들이 모서리로 마찰을 일으키는 일이다. “당신과 통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돌연 “통로 끝엔 자물쇠로 잠긴 철문이 있”(「사슴뿔 자르기」)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로의 가장 빛나는 뿔을 잘라”(「사슴뿔 자르기」)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저마다 다르고, “무지개는 빛과 물방울을 빌려 뜬 몸”(「애덤」)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존재는 ‘다른 하나’의 존재와 만남으로써 아름답게 떠오르는 순간을 맞기 때문이다.
시인은 “나는 알게 되었다 마침내/내 안에 누가 있다”(「내 안에 누가 있다」)는 말로 끝끝내 사랑을 말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고백한다. 시인은 “맨발로 서서 백년을 보낼 수 있다”(「앨리스의 상자」)는 끈질긴 기다림 끝에 “모조리 잃었다 싶을 때 다시 얻듯이”(「집」) 찾아오는 사랑을 잘 알고 있다. 어둠속에서 불행과 슬픔을 오래도록 탐구해 온 시인이 발견하고 발명한 것이 매번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소연에게 시는 곧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삶”(시인의 말)이다.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저 / 14,000원 / 창비



“나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내 마음을 지키며
나는 오늘도 사랑을 배운다”

유년을 지나온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지금 가장 사랑받는 젊은 시인 최지은의 첫번째 에세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젊은 시인 최지은. 첫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로 단숨에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 활약하며 독자에게 두루 사랑받아온 최지은이 첫번째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창비 에세이& 시리즈로 출간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생의 슬픔과 행복을 다정히 보듬는 특유의 필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번 에세이에서 작가는 자신의 유년기를 내밀한 고백의 목소리로 풀어놓으며 감동을 선사한다.
다 자라 언어를 가지게 된 어른이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던 어린이를 만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쓰이게 될까? 『우리의 여름에게』에는 작가가 조손 가정의 어린이로 성장하는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주었던 할머니, 웃고 울게 했던 친구들, 언제나 긴 단어들을 덧붙여서만 말할 수 있는 존재인 아버지가 등장한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주고받았던 빛나는 마음을 지키면서 여전히 자신을 돌보는 귀한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한 이 이야기에는 마음껏 슬퍼하고 난 후 찾아오는 개운함, 아픔을 온전히 껴안기로 다짐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환희의 순간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여리고 섬세하지만 깊이 있는 문체로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통과하는 이 빛나는 에세이는 우리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으며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갈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하고,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상처의 시간을 깊이 위로할 것이다.


안녕, 나의 어린이
여기가 나의 기쁨이야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3부로 나아가며 한 사람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삶을 통과하여 새로운 시작 앞에 서는 여정에 함께하게 만든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에서 작가는 자신 안의 어린이가 혼란하고 뜨거운 날들을 보내며 무엇을 느꼈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를 복기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있다. 조손 가정의 어린이로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주었던 사랑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양분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언제나 ‘주는’ 쪽으로, 가난한 형편에도 가난하지 않은 마음을 물려주려 애쓰던 모습으로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손녀에게 먹일 오이지를 절이기 위해 눅눅한 여름 새벽 물을 끓이다가 화상을 입은 할머니, 열두살까지 품에 안아 머리를 감겨주던 할머니, 그렇게 “나의 몸, 나의 말, 때때로 나의 밤이 되어 내내 나와 함께할 사랑의 재료들”이 되어준 기억들. 마침내 “그러니까 나는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라 말하며 풀어놓는 이야기는 마음의 온도를 올리고, 우리를 지탱해온 사랑을 돌아보게 한다.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에는 상실과 그 이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사랑과 기쁨이 있다면 상실과 아픔 또한 피할 수 없다. 작가는 할머니, 아버지와의 이별을 경험한다. 삶의 순간마다 안고 가야 할 무거움을 남긴 이 경험은 극복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온몸으로 아파하며 상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간의 곁에 아름다운 기억들을 덧대어보기로 다짐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너지고 부서진 조각들과 반짝이는 기억을 함께 모아둔, “내가 아니면 열릴 일이 없는 상자”를 열며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다시 살아내기로 다짐하는 작가의 용기는 은은한 빛이 되어 독자에게 스며든다.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는 한 꼭지의 제목처럼 ‘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에 대한 대답이다. “내가 아는 나의 어린이”로부터 고개를 들면 지금의 나를 지키는 존재들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두마리의 개, 시 쓰는 날들을 응원하는 다정한 동료들은 다시 한번 용기 내어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그렇게 작가는 결핍을 껴안고 충만함 쪽으로 나아간다. 불안과 상처가 얽혀 있는 그물을 통해서도 건져 올릴 수 있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타자를 향해 뻗어갈 때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 더 나아”간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붙인 문장보다도 단단하게 삶을 보호한다.

매일매일 조금 더 환한 쪽으로

작가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꺼내어놓는 순간의 힘을 믿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쁨과 슬픔이 얼룩진 시간 속으로 먼저 들어가 어려운 고백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그 고백을 마주하는 우리에게는 “당신의 여름 과일은 무엇인가요?” 물으며 느리고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몸은 얼고 숨은 가빠지고 온몸이 깨질 것 같은 두려움”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두려움이 지나간 자리에 기쁨의 기억을 덧대어보는 이 아름다운 시도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삶의 한복판을 향해 한발자국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해줄 것이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진심은 조금 더 다정한 마음으로 오래전 감춰두었던 말들을 털어놓아도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여름 한복판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는 설렘으로, 이제 이 기분 좋은 흔들림을 마주할 시간이다.







 

소설 보다: 여름 2024


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저 / 5,500원 / 문학과지성사



새로운 세대가 그려내는 여름의 소설적 풍경
독자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특별 기획, 『소설 보다: 여름 2024』가 출간되었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시작되었다.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는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물론 선정위원이 직접 참여한 작가와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7년째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계절마다 간행되는 ‘소설 보다’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가장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소설 보다: 여름 2024』에는 2024년 여름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 함윤이의 「천사들(가제)」 총 세 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해당 작품은 제14회 문지문학상 후보가 된다. 선정위원(강동호, 소유정, 이소, 이희우, 조연정, 홍성희)의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선정한 작품들의 심사평은 문학과지성사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도서는 1년 동안 한정 판매될 예정이다.


여름, 이 계절의 소설

쏟아지는 햇살과 열기로 주변 풍경이 몸집을 키우며 활기를 이 띠는 계절에, 『소설 보다: 여름 2024』가 짙어가는 녹음처럼 자신의 신념을 선명하게 완성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 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 타인의 시선이나 신념을 허물어뜨리는 사건들에 굴하지 않고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고, 내가 절대로 될 수 없는 남자처럼 보였다”


서장원은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2020년에 이어 두번째로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되었다. 전작 「이 인용 게임」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기억을 통해 허무와 상처 쪽으로 기우는 “마음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면 이번에 선정된 「리틀 프라이드」에서는 사회적 정체성과 인물의 내면 사이에 생긴 균열을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매력이 자본화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진정성이 처한 동시대적 위기의 단면”이 드러난다.
트렌스젠더인 토미는 빈티지 패션 중고 마켓을 겸하는 IT 스타트업 회사에 입사한다. 그곳에서 업무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던 그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오스틴을 만나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괴로워하는 오스틴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사지연장술”을 받아 “새출발을 하고 싶”다는 오스틴의 말을 듣는다. 지금까지 오스틴과 “미약한 동지 의식”을 느꼈던 토미는 이때 오스틴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남성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성전환 수술을 감행한 후에도 “진짜 남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의심”(강동호 문학평론가)하던 순간들을 자꾸만 떠올린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언급되는 ‘10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참가자들의 얼굴이며 몸매가 어떻든 신경 쓰지 않는 스트립쇼’ 이야기요. [……] 며칠 뒤에 몇 가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참가자들은 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을까?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공연을 통해 수치심을 덜어낼 수 있을까? 자기 몸을 긍정한다는 것이 그런 다정한 경험을 통해 성취될 수 있는 일일까? 누구도 자신에게 매혹되지 않는데, 오로지 다정함만으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을까? 그 대안적인 스트립쇼는 프릭쇼와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른가?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서장원×조연정」에서

예소연, 「그 개와 혁명」
“나는 꼭 모든 일에 훼방 놓고야 마는 사람이잖아”


2023년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사랑과 결함」에서 “아름답지만은 않은, 폭력적이고 가혹한 사랑”(소유정 문학평론가)의 궤적을 선연히 담아낸 예소연이 「그 개와 혁명」으로 다시 한번 문지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 소설은 아버지를 애도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흔히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전개되는데, 제목에 드러난 ‘혁명’이라는 단어처럼 애도 자체에 머물기보다 애도라는 ‘지령’을 수행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수민’의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은 후 “고모가 작명소에서 [……] 오래 살 이름이라”며 받아온 ‘태수 씨’로 불린다. 그럼에도 수민은 결국 장례식장의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이하는데, 생전 태수 씨가 못다 이룬 약속들을 수행하느라 슬퍼할 새가 없다. “자신이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던 태수 씨를 위해 수민은 그가 적어둔 수첩과 남겨놓은 기억들을 한 장 한 장 펼친다. 이때 장례식장이라는 현재의 장소와 태수 씨의 생전 모습이 담긴 과거의 시간이 수민의 기억 속에서 촘촘히 교차하는 장면들은 “‘입체적’이라는 흔한 말에 담긴 모종의 진실을 극히 입체적으로 보여준다”(이희우 문학평론가).

때때로 운명은 이별을 가혹하게 강요하고 세상은 절차라는 명목으로 자꾸 사랑을 궁지로 몰아버립니다. 결국 그 운명과 세상에 굴복한 저는 결국 반쯤 엇나간 상태에 빠져 어느 때는 웃고 떠들면서, 어느 때는 슬퍼하고 자학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소설은 제 삶보다 훨씬 정제되어 있어 그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궁지에 몰릴수록 사랑의 파장은 더욱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그게 참 신기해요. 이 소설의 힘이 있다면 그런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인터뷰 예소연×홍성희」에서


함윤이,「천사들(가제)」
“천사도 죽는 건 싫으니까, 연인이 헤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

2022년 여름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될 당시 “보기 드문 스타일리스트의 등장”(강동호 문학평론가)이라는 평을 받으며 독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함윤이가 1년 만에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을 실험하는 「천사들(가제)」로 〈소설 보다〉에 함께하게 되었다. 제목에 포함된 ‘가제’라는 말이 암시하듯, 이 소설은 제목이 확정되지 않은 ‘항아’의 시나리오 작품으로 시작해 사람과 사람 사이 온전히 사랑하지도 이별하지도 못한 세계를 비유적으로 그려낸다.
‘나’와 항아는 단짝 친구이자 영화 오디션의 심사위원이고, 배우들에게 주어진 배역은 각각 여자와 남자 그리고 천사이다. 이별을 목전에 둔 남녀가 헤어지지 않게 애쓰는 천사는 무대 위 남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가 항아를 만나러 서울에서 부산행 열차에 탑승하고 내리기 전까지의 상황과 자꾸만 교차하는 오디션 장면은 마치 ‘나’와 항아 사이에 천사가 존재하는 듯 “잔잔한 슬픔 속” “어떤 반짝임을 꺼내 보인다”(소유정 문학평론가).

문득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아주 많은 순간 속에 천사들이 있었노라고 느껴요. ‘지나고 나니 모든 일이 다 순리대로 됐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다만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당시엔 몰랐지만 그들을 알아가고 가깝게 만들어준 힘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 힘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천사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거예요.
「인터뷰 함윤이×이소」에서

 






행동경제학


사가라 나미카 저 / 김대환 역 / 22,000원 / 잇북(it Book)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애플, 메타 플랫폼스, 테슬라…….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된 행동경제학이란 무엇인가?
‘넛지 이론’ ‘시스템 1 vs 시스템 2’ ‘절제 편향’ ‘불확실성 이론’ ‘신체적 인지’ ‘계열 위치 효과’ ‘앵커링 효과’ ‘진리의 착오 효과’ ‘개념 메타포’…….
행동경제학 박사이자 미국에서 행동경제학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가 그동안 이론만 나열되고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본질을 파악할 수 없었던 행동경제학의 ‘주요 58가지 이론’을 처음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했다.
지금, 전 세계 기업체는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주요 이론을 한 권으로 총정리한 이 책을 통해 비즈니스맨의 필수 교양이 된 행동경제학을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


Google, Amazon, Apple, Netflix……
행동경제학을 도입하고 그들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환상적인 만남으로 탄생한 행동경제학은 정통 경제학에서 나타난 이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이 지닌 인지의 버릇과 상황,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여 최상의 의사결정을 끌어낸다. 비즈니스 상대에게 맞게, 비즈니스 상황에 맞게, 비즈니스 환경에 맞게 내린 의사결정은 당연히 최고의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졌고, 이는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현재, 전 세계의 초일류 기업이 모두 행동경제학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많은 기업이 ‘행동경제학 팀’까지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글,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등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맥킨지, 델로이트 등의 컨설팅 회사, JP 모건 등 금융계 기업. 존슨앤드존슨 등의 제조업부터 월마트와 같은 소매업, 그리고 미국 연방 정부나 WHO, 세계은행과 같은 공적 기관까지 그 영향은 광범위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상품 페이지에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행동경제학 이론을 이용해 우리의 구매욕이 무의식적으로 솟아나게 했고, 넷플릭스는 ‘디폴트 효과(Default Effect)’라는 이론을 구사하여 우리가 자연스럽게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또 구글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이론을 토대로 채용 면접을 실시함으로써 정말로 훌륭한 인재를 선별하고 있다(본문 p13~p14 중).


심리학과 경제학의 완벽한 융합
행동경제학은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행동 전반을 해명한다


새로 사업을 일으킬 때, 하던 사업을 확장시키고 싶을 때, 사업 전략에 변화를 주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지금 하는 사업에 성공하고 싶을 때……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지식으로 갖추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 모든 것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이 앞다투어 행동경제학을 도입하고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활용한 이유만 파악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각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고 있고, 그 수요에 맞춰 전 세계 일류 대학교에서는 속속 행동경제학 전공 학부와 박사 과정을 신설하는 등 행동경제학 관련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이제는 비즈니스맨의 필수 교양이자 최강의 학문이 된 행동경제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경제학’과 ‘심리학’이 융합한 학문. 그것이 행동경제학이다.
경제학은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행동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돈이 움직이는 ‘경제’라는 틀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것은 왜 그런지를 밝히고 이론화한다.
‘그런데 그건 행동경제학의 정의가 아니었나?’
그렇다. 원래 행동경제학이 생기기 전부터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행동’을 과학하는 학문’은 있었다. 그것이 경제학이었다. 그런데도 왜 굳이 행동경제학이 생긴 걸까.
그것은 전통적인 경제학으로는 모든 ‘인간의 행동’을 해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경제학인데, 여기엔 ‘인간은 비합리적인 생물’이라는 대전제가 빠졌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빈번하게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살을 빼고 싶을 때 합리적인 생각은 건강식인 A런치를 주문하는 것인데, 살이 찐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극적이고 기름진 B런치를 주문해버린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게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마트의 계산대 부근에 진열된 상품을 ‘충동 구매’하는 쓸데없는 지출을 하고 만다.
경제학은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이러한 ‘비합리적’인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이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에는 부족했던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을 추가할 필요가 생겼다. 그것이 심리학이다. 두 가지 학문의 융합으로 행동경제학이 탄생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행동’ 전반을 해명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본문p39~p41 중).


행동경제학의 ‘주요 58가지 이론’을 처음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한 입문서

‘넛지 이론’ ‘시스템 1 vs 시스템 2’ ‘절제 편향’ ‘불확실성 이론’ ‘신체적 인지’ ‘계열 위치 효과’ ‘앵커링 효과’ ‘디폴트 효과’ ‘파워 오브 비코즈’ ‘어펙트’ ‘계획의 오류’ ‘심리적 회계’ ‘단순 존재 효과’ ‘확증 편향’ ‘해석 수준 이론’ ‘개념 메타포’ ‘미끼 효과’…….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혹은 어떤 형태로든 비즈니스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행동경제학의 이론들이다. 그러나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각 이론의 개념은 이해해도 정작 자신의 비즈니스에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행동경제학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문에 비해 비교적 새로운 학문이기에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론 간의 연결고리도 없다. 그러니 행동경제학을 배우려면 각각의 이론을 그저 단편적으로 전부 암기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입력된 각각의 이론은 머릿속에서 중구난방 혼란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로 인해 좀처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니 상황별로, 혹은 시간별로 그에 맞는 이론을 적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책에서는 행동경제학 이론의 ‘새로운 학습법’을 제안했다. ‘행동경제학의 본질’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과 함께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카테고리’를 마련하여 각각의 이론을 분류하는 것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처음으로 행동경제학을 배우는 독자’를 전제로 행동경제학의 ‘기초지식’부터 ‘주요 이론’까지 한 권으로 망라하고 있다. 이 한 권만 읽으면 비즈니스맨으로서 알아두고자 하는 행동경제학의 ‘교양’을 한 번에 익힐 수 있다.
한편, 이미 배운 적이 있는 사람도 행동경제학의 본질부터 다시 이해하고 지식을 체계화함으로써 이해도가 압도적으로 깊어질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이론을 제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갖춤으로써 자신의 사업적 역량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꼭 ‘행동경제학의 세계’로 들어오는 문을 열어보길 바란다.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베냐민 발린트 저 / 김정아 역 / 24,000원 / 문학과지성사
 
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기
카프카적인, 그야말로 카프카적인 원고 반환 소송의 전모
2024년 6월,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이하여 카프카의 작품들과 해설서들이 줄지어 출간 및 재출간되며 작은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무력함을 포착해내며 이름 자체가 형용사가 된 불멸의 작가 카프카. 잘 알려져 있듯이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신이 쓴 글들을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찍이 친구의 남다른 천재성을 알아보고 문학 매니저를 자처했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뜻과 정반대로 미완성 원고였던 『성』 『소송』 『아메리카』를 비롯해 일기와 편지, 그리고 전기까지 편집, 출간하며 카프카 정전화 작업에 여생을 바치게 된다. 브로트가 약속을 어기고 정신적 유산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선택한 덕분에 카프카는 사후 명성을 획득했고 우리는 그의 문학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불태워지지 않은 원고들, 카프카 사후에도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가게 된 종잇장들은 어떻게 됐을까?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된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바로 그 카프카 유고의 운명을 추적한 책이다. 2007년, 이스라엘에서는 카프카와 브로트의 유고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된다. 카프카가 사망한 지 80여 년, 브로트가 사망한 지 40여 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미국-이스라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베냐민 발린트는 2016년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재판 과정을 기술하고,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한 소송의 첨예한 이슈들을 성찰한다. 동시에 카프카의 생애 국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교차 배치함으로써 이 커다란 이야기의 퍼즐을 보다 입체적으로 완성해나간다.
일종의 법정 드라마,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와 브로트의 삶과 우정,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카프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선사하는 한편, 두 작가의 문필 유산을 손에 쥐게 된 개인 에바 호페가 이 소송으로 인해 어떤 곡절을 겪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는 홀로코스트의 여파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신앙과 역사, 개인과 국가 권력 등에 관한 고찰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폴란드, 브라질 등 1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호평을 받았고, 2019년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에 올랐으며, 2020년 사미 로어 유대 문학상을 받았다.
카프카의 적법 상속자는 누구인가를 두고 벌어진 세기의 재판
▶“내 마지막 부탁입니다. 내가 남기고 가는 것 중에 […] 공책과 원고와 편지, 그리고 스케치 등등은,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주기 바랍니다.”

브로트가 지키지 못한 약속에서 시작돼 카프카 사후 수십 년이 지나 제기된 소송!
▶“이런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은 이미 패소했다는 뜻이다”_카프카의 『소송』에서


호페는 어떻게 카프카 유고의 문지기가 되었나?
카프카의 마지막과 그 후,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

2007년 이스라엘 당국은 텔아비브에 사는 에바 호페라는 73세 여성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생전에 카프카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호페는 어떻게 해서 카프카 원고를 점유하게 되었을까? 또 프라하에 살았던 독일어권 유대인 작가 카프카의 유고에 대해 이스라엘이 권리 주장을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문화 전쟁에 독일이 참전한 계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소송의 쟁점은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맞이했나? 이 책은 한 개인과 두 국가 간에 벌어진 치열한 법정 다툼을 따라가며 각각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탐독하고 판사들의 판결문과 그 의미를 독해한다. 저자인 베냐민 발린트는 표면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자리한 복잡하고 심오한 층위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고심해보도록 유도한다.
카프카의 사후생死後生은 그 자체로 카프카적인 이야기로 점철된다. 1939년 3월, 나치가 유럽의 문을 폐쇄하기 직전, 브로트는 카프카 원고가 담긴 트렁크 가방을 품에 안고 아슬아슬하게 프라하를 탈출한다. 텔아비브에 정착한 그는 방대한 원고 편집 작업을 위해 마찬가지로 프라하 난민 출신인 에스테르 호페를 비서로 고용한다. 막스 브로트는 1968년 세상을 떠나는데, 자식이 없었던 그는 전 재산을 친밀한 사이였던 비서에게 남긴다. 브로트가 사망하자, 에스테르 호페는 카프카 원고를 일부 매각하며 삶을 영위한다. 가장 유명한 예로, 1988년 『소송』의 원본 원고를 경매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200만 달러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낙찰되었다. 지금껏 매각된 현대 문학 원고를 통틀어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고 한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가 100세가 넘은 나이에 사망하자, 두 딸(에바 호페와 그녀의 언니 루트)이 상속 절차를 밟으려 하고, 이때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측이 등장해 그 딸들에게는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여 소송은 텔아비브 가정법원(2007~2012년)에서 시작되어 지방법원(2012~2015년)을 거쳐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적, 윤리적, 정치적 딜레마로 가득한 법적 분쟁으로 치달았다. 카프카의 『소송』 현실판인 듯, 에바 호페는 이길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소송에 휘말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좌절과 소외감 속에서 에바는 끝까지 싸우기로 하고 마지막 항소를 제기하는데, 흥미롭게도 저자는 바로 그 장면을 이 책의 시작점에 놓는다. 베냐민 발린트는 날카롭고 탁월한 통찰력과 묘사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문학과 국가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독일 vs 이스라엘 vs 에바 호페의 쟁점:
카프카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구의 것인가


9년에 걸친 소송은 개인의 소유권과 두 나라의 국익이 맞대결하는 형태였으며 전문 법 영역에서 문학적 차원과 민족주의 레토릭까지 다양한 영역의 언어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우선 에바 호페의 입장. 에바에게 브로트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상속받은 원고는 브로트와 에스테르, 그리고 에스테르와 에바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밧줄이나 다름없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엄마와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던 에바에게 원고 소유권을 잃는다는 것은 그 모든 연결을,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원고들이 에바의 것인 이유는 단순명료하게 바로 그들로부터 ‘상속’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국가적으로 가치 있고 역사적인 문화 유산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소유물을 국유화할 수 있는가? 더욱이 1974년 에스테르 호페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이미 내려져 있었으므로 이를 뒤집으려는 이스라엘 측의 시도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의 입장은, 브로트가 에스테르 호페에게 본인의 유산을 상속한 것은 증여가 아니라 신탁이었다고 강조한다. 즉 본인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 선택할 권한은 주었지만 그 결정을 그녀의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카프카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카프카 문서가 독일 소관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카프카가 명시적으로 시온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의 자산이 될 수 없으며 유대 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국에 의해 소유되어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다.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는 브로트가 1960년대에 마르바흐를 방문해 본인의 유산을 그곳에 두고 싶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적도 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사유재산 압수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우정으로 시작된 일이 브로트의 재산이 되었고, 이어서 호페 가족의 가산이 되었고, 이제는 아예 국유재산이 될 참이라는 것이었다. 독일 측은 카프카 문학을 연구할 전문인력과 자원이 풍부하며 이미 세계적 규모의 저명 작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카프카 유산을 소장품 목록에 추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독일은 소송 내내 철저하게 중립적인,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옵저버처럼 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독일 측의 논쟁에서 두 국가가 과거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독자들은 중첩된 의미망들을 통과하여 카프카를 새로운 시각에서 독해해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책에 나오는 이스라엘 건국 초창기의 전망에 비추어 현시대 이스라엘의 국제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자장 안에 놓인 장대한 소송 과정과 그에 얽힌 개인과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탐독하고 문학 유산의 진정한 소유권에 관해 묻다


최종 판결이 나오고 원고 인도가 진행되던 2018년 에바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고, 수술에서 회복되던 중에 넘어져서 고관절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삶의 의지를 잃고 식음을 전폐했던 에바 호페는 2018년 8월 4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베냐민 발린트는 에바의 삶을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카프카 원고의 운명을 결정지은 이스라엘 법정의 논쟁적인 재판 과정과 그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삶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문학과 종교, 국가주의, 홀로코스트에까지 걸쳐 있는 중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스라엘 판사들을 카프카 독법을 지키는 문지기들의 최신 버전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의 판결을 또 하나의 흥미로운 독법 또는 오독법으로 읽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일정한 거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데 몰두했던 작가를 소유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는 것도 이 소송의 수많은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소송 이야기는 카프카의 많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끝내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어로 소송을 가리키는 ‘Prozess’가 아직 진행 중인 무언가를 뜻하는 것처럼, “판사들은 최종 판결을 내렸을지 몰라도, 카프카가 남긴 유산을 둘러싼 상징적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삶이 부유해지는 단순한 재정 원리


밥 로티치 저 / 조계진 역 / 16,000원 / 진인터랩
 
돈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삶이 부유해지는 변화를 위한 21일 재정 훈련.
돈에 대한 기존의 프레임을 바꾸고 재정 구조를 새롭게 설계해 준다.
마이너스 재정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꿈꾸었던 것보다 더 큰 소망을 성취한 경험적 재정 원리.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함, 삶에 그대로 적용 가능한 실천적 지혜가 가득 담겨있다.


5,000만 명 이상에게 영향을 끼쳐 온 간단하고 쉬운 재정 관리

서점들을 방문하면 재정에 관련된 책들은 가장 눈에 띄는 코너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종교 분야 코너에는 재정에 관한 기독교 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성경에는 돈에 관한 구절이 많지만, 성경적 기반 위에 돈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은 드물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성경적 원리가 아닌 다른 가치관이 바탕이 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던 중 만난 책이 ≪삶이 부유해지는 단순한 재정 원리-Simple Money, Rich Life〉 이다.
저자가 재정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나서 성경의 원리대로 돈을 저축하고 벌고, 기부하고 즐기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본서는 ‘돈’에 대한 교훈과 일반적 통찰을 준다.
저자는 돈에 관한 기본적인 활동, 즉 수입과 저축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을 제시해 주고 나눔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려준다. 또한, 돈 관리가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히려 즐길 수 있는 과정이라고 알려 준다.
저축하기, 돈 벌기, 기부하기, 즐기기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파트가 끝나면 요약과 실천 지침이 있는데, 총 21개의 실천 지침이 21일간의 여정을 이끌어 준다.

책 본문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재정 관리의 필요성을 인지한 사람들은 지인, 혹은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고 그 정보와 경험을 통해 돈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저축과 투자를 한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잘못된 접근법을 강요하는 정보를 구별하기 힘들다. 재정적으로 성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내더라도 너무 힘들거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너무 많다.

저자는 재정으로 인한 어려움의 낭떠러지에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눈에 보이는 상황, 자신의 재능, 정보와 노력으로 해결하려 했고 그동안 재정에 하나님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재정의 바닥에서 일어나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목표를 성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자신의 재정 관리 블로그, 팟캐스트에 올리면서 지금까지 전 세계의 약 5,000만 명 이상에게 영감을 주어 왔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재정 원리는 단순하다. 그러나 저자가 15년간 스스로 실천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정립한 원리이기 때문에 부유한 삶을 이끄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다.
많은 독자들이 저자와 함께하는 21일 간의 재정 훈련 실천을 통해 선순환의 변화가 시작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돈에 속박된 종의 삶이 아니라 돈을 지배하는 주인으로서의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한다.










  
창비세계문학 96·97 『의사 지바고』 (전2권)


보리스 빠스쩨르나끄 저 / 최종술 역 / 각 17,500원 / 창비
 
혁명과 전쟁의 격랑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의 존엄과 사랑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빠스쩨르나끄가 남긴 불멸의 걸작
1957년 출간되어 이듬해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만들어주고, 이후 영화화를 통해 전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세기를 넘어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호명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의사 지바고』가 창비세계문학 96, 97번으로 출간되었다. 일찍이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러시아혁명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러시아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지바고의 생애와 운명적 사랑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작품 『의사 지바고』는 인류가 품었던 가장 숭고한 꿈이 인간에 대한 폭압으로 변질되는 처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굽힘 없는 열망을 품었던 의사이자 시인 지바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룬다. 이 작품은 정치적 이유로 자국에서 출간을 거부당하고 이딸리아에서 출간되었으나 이후 18개국에서 번역 계약이 되며 작가에게 세계적 명성뿐 아니라 노벨문학상의 영예까지 선사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에서는 이 수상을 놓고 반(反)빠스쩨르나끄 운동이 일어날 만큼 거센 항의가 빗발쳤고, 작가는 결국 수상을 거부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하는 등 국가로부터 외면받은 빠스쩨르나끄는 2년 뒤 침묵 속에 지병으로 사망하는 쓸쓸한 결말을 맞이했다.
창비세계문학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의사 지바고』는 근현대 러시아 문학을 두루 소개해온 역자 최종술의 적확하고 탁월한 번역으로 ‘소설로 쓴 시’ ‘시와 산문의 종합’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의 진면목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의 문을 여는 문장 “걷고 또 걸으며 「영원한 기억」을 노래하고 있었다. 행렬이 멈추면 발이, 말이, 바람의 숨결이 추도의 노래를 이어받아 부르는 것 같았다”(1권 9면)에서 엿볼 수 있듯 원작의 고유한 문체와 시적 리듬을 고스란히 담아낸 판본이라 할 수 있다. 또 작품의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한 역자의 해설을 통해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역사적 책임과 시대의 소명을 자각한 주인공에게서 벗어나 타협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추구하는 주인공 유리 지바고의 독특함을 짚고, 이 점이 혁명과 소비에뜨 사회주의가 가진 의미를 새롭게 드러낸다는 통찰을 제시해 보이고자 했다.


동시대 서정시와 러시아 서사문학의 위대한 전통에서 이룩한 중요한 업적
- 노벨문학상 선정 사유
『뉴욕 타임스』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우리 시대 최고 걸작의 하나 - 『뉴요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를 경험할 기회 - 『뉴욕 저널 오브 북스』



개인의 사랑과 죽음을 넘어서는 구원의 서사

『의사 지바고』를 수식하는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격랑 속에서 피어난 지바고와 라라의 운명적 사랑’일 것이다. 실제로 작품의 두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는 그 어떤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그런 서로를 제 몸처럼 믿고 사랑한다. 이들에게는 공간적, 시간적 이별은 물론 생사 여부조차 장애가 되지 않는다. 현실 생활의 규범과 풍습을 넘어 인간의 자유를 갈구하는 영혼의 동반자인 것이다.
그러나 『의사 지바고』가 이토록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두 사람이 피워낸 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바고는 인간을 억압하는 전제정치와 자본주의의 폭거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난 혁명에 열광한다. 자신의 출신 계급이 그 타도의 대상임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그 미래를 사랑”하고 “남몰래 자랑스러워” 한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1권 299면) 그러나 그 혁명의 끝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참혹한 현실을 호도하는 공허한 구호와 여전한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체제의 억압뿐이다. 그러한 고난과 환멸을 견뎌내기 위해 지바고가 붙드는 것은 예술과 노동이다. 감자 한알, 땔감 한더미를 얻는 것이 더없는 걱정거리인 일상을 꾸려가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충실한 노동 속에서 그는 삶 자체를 발견하고, 그 발견은 곧 시작(詩作)이라는 구원으로 이어진다.
『의사 지바고』는 어린 지바고가 참석했던 어머니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해 친구들이 지바고의 유고 시집을 뒤적이며 어스름에 잠긴 모스끄바를 내려다보는 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자신의 근원이 소멸한 자리에서 시작해 자신의 생명이 다한 뒤 결실처럼 남은 문학에서 끝나는 이 서사는 지바고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유리 지바고의 시」는 지바고가 남긴 시 25편을 통해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비로소’ 해방되는 자유와 인간이 지닌 사랑과 창조의 힘에 대한 믿음을 품었던 지바고의 예술관을 생생히 드러내 보인다.

“마지막 말이자 온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중요한 말”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구름 속의 쌍둥이』 등 러시아 낭만주의를 계승한 시집들을 펴내며 1920년대에 이미 시인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작가적 과업을 장편서사에 두었다.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삶의 철학을 대중 독자와 공유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은 그를 『의사 지바고』의 집필로 이끌었다. 작가는 이 역작을 놓고 1905년과 1917년의 혁명, 그리고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체제라는 격변의 시대를 거쳐야 했던 동시대인에게 들려주고자 한 “마지막 말이자 온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중요한 말”(2권 484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격랑 가운데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 자신의 삶이 어긋나 파멸할 것임을 예견하면서도 자유로운 인간 삶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지바고의 일대기를 통해 작가가 건네고자 했던 바로 그 말을 역자는 이렇게 요약한다. “삶은 축복인 동시에 소명이다. 살아야 한다.”(2권 508면)









녹색평론 (계간): 여름호 [2024]

녹색평론 편집부 저 / 17,000원 / 녹색평론사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발간되는 잡지다.

지금, 이곳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이번 186호에서는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를 무사히 건너가기 위한 키워드의 하나로 공공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의료, 금융, 교통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왜 반드시 공공성의 강화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어떤 전략과 정책수단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특히 최근 논란과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보건의료부문의 개혁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의료산업이 비대하게 성장해온 현실과는 모순되게도, 필수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가 침식당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무엇이 핵심적인 문제이고 어떤 일이 가장 시급히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각도에서 짚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보건의료시스템 한 분야를 조금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전 분야, 산업문명의 모든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고, 전문가의 독점을 배제하는 한편으로 보통사람들의 자율적 능력과 삶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성의 강화, 기후위기 시대를 건너는 방법

이번 호에서는 공공성의 강화를 화두로, 의료, 금융, 교통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공공성을 회복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백재중(신천연합병원)은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와 방안을 제시한다. 팬데믹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공공병상은 전체의 10% 이하에 불과하며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민간부문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재난에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고령화 및 기후변화로 의료 수요는 갈수록 증가할 것이란 전망 속에서, 시급하고 절실한 의료 개혁의 길을 모색한다.

양준호(인천대 경제학과)는 민간 사업자가 아닌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공공은행이라는 구조를 통해서 지방 (및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른바 지역소멸을 고민하고 있는 지방정부들뿐만 아니라 불균형한 인구 및 경제의 분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앙정부 역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의제이다. 여러 선례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지역공공은행이라는 획기적인 전략을 시도해볼 이유는 충분하다.

한재각(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은 기후정의운동의 전략이자 요구로서, 공공재생에너지를 제안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 신속하게, 큰 피해를 내지 않고 전환하기 위해서는 모든 산업분야와 모든 지역에 불공평하게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는 정의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김상철(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대중교통과 공공교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으면서, 우리나라의 교통정책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공공성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한꺼번에 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다.

박용남(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지속가능한 도시계획으로 널리 알려진 브라질 쿠리치바시에서 빈곤과 식량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정책들을 소개한다.

의료산업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서

김연희(〈시사IN〉)는 필수의료 공백 사태의 원인을 의료계 내부의 문제와 정부의 정책 실패 등 여러 방향에서 짚어본다. 현재 가장 큰 현안인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혹은 그보다 앞서 시급히 풀어내야 할 산업적, 정책적, 문화적 과제를 짚어본다.

김태우(경희대 한의과대)는 보다 근본적으로 근대 의료체계에 대해서 묻고 있다. 환원주의에 토대를 둔 의술은 그에 걸맞은 의료시스템을 구축해왔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기후위기 시대에 건강과 질병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것을 촉구한다.

양창모(강원도 왕진의사)는 농촌의 보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마을진료소’와 ‘이웃복지사’이다. 현실에 천착한 제안인 만큼 곧바로 정책으로 도입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최원형(〈한겨레〉 책지성팀)은 보건의료정보 산업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의 몸과 정신 건강에 관한 정보를 꾸준히 소수 기업들의 손에 넘겨왔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에 독자들은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에 대해 몹시 취약하고, 그 덕분에 건강관리 산업의 노다지가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에 경종을 울린다.

미국의 약초의, 자연철학자인 스티븐 해로드 뷔흐너는 자신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 있는 인터뷰를 통해서 의술이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우리 인간은 자연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균형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있다. 특히 현대 의료시스템의 근간이라 할 항생제가 시효를 다해가고 있다는 두려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22대 총선을 돌아보았다. 우리나라 진보운동의 새 돌파구를 찾기 위한 진지한 탐색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은 4월 18일 타계한 홍세화 선생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 진보운동의 명암을 짚었다. 로라 로스(바르셀로나 카탈루냐오베르타대학)는 신자유주의의 폭거에 맞서 정부가 움직여주기를 더이상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에 나선 여러 도시의 경험을 분석, 종합하여 지역 단위에서 자치를 실현하는 것이 왜 관건인지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다.

오충현(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삼림보호지역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와 방안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천종현, 최하정, 한종태(제주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졸업생)는 진정한 언론 종사자, 즉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피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직접 몸으로 노동과 자연과 부대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소중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최문철(꿈이자라는뜰 조합장)은 장애를 안고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함께 농사를 짓고 삶을 나누는 하나의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의 ‘자본주의 다시 보기’ 연재는 자본주의 가치법칙을 비판적으로 고찰, 효과적인 사회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이번 호에 실린 세 번째 글에서는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인 자본이 과연 어떤 지향성을 갖는지, 그 결과 어떤 일들이 파생되는지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무위당 30주기에 부쳐

올해는 반독재 투쟁에서 한살림운동의 제창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 생명운동의 스승으로 알려진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30주기 되는 해이다. 이현주(목사)는 선생과의 아홉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선생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유소림(시인)은 장일순 선생의 강연?대담 모음집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에 드러난 선생의 가르침과 삶을 깊은 존경심으로 돌아본다.

시와 서평

이번 호에는 장석주, 양선희 시인의 신작 시를 각각 두 편씩 소개한다. 장일호(〈시사IN〉)는 김현아 한림대성심병원 교수의 저서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를 소개한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로봇?AI 의료의 이면을 밝히고,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현대 의료시스템의 어둠을 살피고자 했다.

한승동(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은 《전쟁 이후의 세계》를 소개한다. 러시아 출신 논객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러시아-미국이라는 선악 대립구도 속에서 사고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 일부 ‘좌파’들의 현실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이윤추구 토대 위에 선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좌파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 기후위기 시대의 진보적 사유와 가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은 《자연에 이름 붙이기》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매개로 기후변화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부족해 보이는 생물종 감소 문제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이상헌(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은 《축소되는 세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점과 경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경제성장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강언주(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는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운동 투쟁기 《전기, 밀양-서울》을 소개한다. 이 책은 밀양 주민들이 겪어온 국가폭력을 고발함과 동시에, 보통사람들의 연대가 희망임을 역설한다.

조정 시인의 시집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는 경기도 고양시 산황산 골프장 증설 계획에 맞서서 숲을 지켜낸 고양시민의 시민불복종운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희덕 시인은 조정 시인의 시어를 “죽음의 폐허 위에 조금씩 퍼져가는 숲의 생기와 접속어들의 춤”으로 평가하면서, 생명운동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만물의 민주주의”라고 불러도 좋지 않겠는가 하고 묻는다.











파도라는 거짓말


문원민 저 / 16,000원 / 풍월당


문원민의 첫번째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이 출간되었다. 그간 50권의 책을 출간한 풍월당이 처음으로 펴내는 시집이기도 하다. 문원민은 본래 파도를 연구하고 배를 만드는 기술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미국에서 10년간 이방인의 삶을 보내면서 고향인 부산 영도와 고향 바다에 대한 기억 안에 시의 영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도 위에서 배의 안전을 엄정하게 지켜내야 하는 기술자의 시선이 어떻게 시로 꽃필 수 있을까.

문원민의 첫번째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이 출간되었다. 그간 50권의 책을 출간한 풍월당이 처음으로 펴내는 시집이기도 하다. 문원민은 본래 파도를 연구하고 배를 만드는 기술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미국에서 10년간 이방인의 삶을 보내면서 고향인 부산 영도와 고향 바다에 대한 기억 안에 시의 영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도 위에서 배의 안전을 엄정하게 지켜내야 하는 기술자의 시선이 어떻게 시로 꽃필 수 있을까.

과연 문원민의 시선은 독특하다. 객관과 보편을 지켜내려는 열망이 한편에 자리하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계산해도 붙잡을 수 없는 변화무쌍한 ‘파도의 거짓말’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 들어 있다. 문원민의 시는 그러한 양끝의 긴장감 사이에서 피어난다. 시의 표지에 파도를 계산하는 수식을 디자인해 넣은 것도, 파도에 대한 모르스 부호가 시 한 편의 제목인 것도 객관의 세계와 비유의 세계를 만나게 하려는 그의 마음을 반영한다.

파도는 멈춰 설 수 없어서 파도가 되었다고 시인은 읊조린다. 파도는 매번 죽지만 매번 살아난다. 이 죽음을, 이 부활을, 붙잡을 수 있을까. 파도는 윤슬처럼 아름답지만 뼈 한 조각 남김없이 죽으며 또한 수풀을 헤치고 부단히 일어난다. 이 생명력을 말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까. 파도 앞에서 거짓말이 되는 시어들, 그것을 정직하게 그것을 거짓이라 부름으로서 시적 진실이 완성된다. “파도라는 거짓말에 속고 또 속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시인의 말” 중에서)는 그의 포부에 그의 진실이 묻어난다.

문원민은 삶의 파도 위에서 이 시들을 빚었다. 투병이라는 파도.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시간 안에 그는 시의 영지를 굳건히 세웠다. 파도가 그를 시인이 되게 했다. “그의 시는 죽을 수도 있는 거센 파도 위에서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섬세하고 절박합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또 안타깝습니다. 한 마디 한 구절이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려는 이별할 수 없는 이의 숨 한 숨 한 숨처럼 들립니다(박종호, 추천사 중에서).”

그러나 그러한 절실함 덕에 문원민의 시어는 진솔하고도 힘이 있다. 수풀을 딛고 일어서는 임랑처럼 죽음 너머의 생명력을 터뜨린다. “그리고 누군가 삶을 힘들어하면 그에게 가능하면 제주에 가서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어 보라 권할 것이며, 깨금발로 세 발 정도 뛰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을 것이다. 또 부산에 내려가 임랑을 한번 찾아보라 말해 줄 생각이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파도처럼 일어난 그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의 영지는 신비로워서 그 세상으로 들어온 세상 사람을 물들인다. 세상에 그가 내준 시의 영지가 여기저기에 있다(문학평론가 김동원 “그가 내준 시의 영지” 중에서),”


* * *


그가 사는 부산은 여러 번 갔었다. 대개 놀러간 길이었다. 해운대와 송도가 주로 걸음한 곳이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임랑을 찾아가 볼 생각이다. 한 시인이 내준 시의 영지를 직접 체험한다는 것은 남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삶을 힘들어하면 그에게 가능하면 제주에 가서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어 보라 권할 것이며, 깨금발로 세 발 정도 뛰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을 것이다. 또 부산에 내려가 임랑을 한번 찾아보라 말해 줄 생각이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파도처럼 일어난 그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의 영지는 신비로워서 그 세상으로 들어온 세상 사람을 물들인다. 세상에 그가 내준 시의 영지가 여기저기에 있다.

- 문학평론가 김동원의 시평

“그가 내준 시의 영지 -문원민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 중에서


* * *
그는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린 투병자입니다. 자신의 생을 헤아리는 모래시계가 눈앞에서 급속히 줄어가는 것을 매순간 보며 이 시들을 썼습니다. 그의 시는 죽을 수도 있는 거센 파도 위에서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섬세하고 절박합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또 안타깝습니다. 한 마디 한 구절이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려는 이별할 수 없는 이의 숨 한 숨 한 숨처럼 들립니다.

- 박종호 추천사

“내가 본 문원민이란 사람 ”그의 삶이 바다고 그의 노래는 파도다.“
문원민 시집 『파도라는 거짓말』” 중에서


* * *
그렇게 20여 년의 시간을 이론과 법칙이 무용한 세상에서 보내다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파도라는 자연현상은 비단 학문으로만 탐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파도는 생명이었고 그리움이었고 말이었으며 노래요 슬픔이요, 그 어떤 수식으로 가두어질 수 없는 실체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저는 파도를 유념하며 살았습니다. 파도는 삶의 지혜였고, 회한이었고 애인이었고 가족이었고 부모였습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또한 숨길 일도 아니다 싶어 밝혀 둡니다. 암투병 중에 있습니다. 글쓰기는 그 전과 후 달라지고 있습니다. 불가능하고 끔찍해 보이는 고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고백은 치유할 수 없는 것들을 가끔치료합니다. 불을 가지고 노는 고통을 통해 소멸시키고 여위게 하고, 한줄 한줄 지워 나가는, 허물어지지 않는것들을 세움으로 허물어 보려고 합니다.
[...]

파도에 관한 글쓰기를 시작했고, 한 줌도 안 되는 글들을 여기저기 흩어 놓았다가 책으로 묶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파도에 관한, 파도와 무관한 것들입니다. 결코 멈춰 설 수 없었던 파도, 그 파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묻힐 자리를 찾아서 끝까지 밀어붙이던 파도 위에 서서 파도라는 거짓말에 속고 또 속이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습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한판 붙을 결심


박하령 저 / 13,800원 / 미래인
“우리 모두에게는 한판 붙어야 할 이유가 있다!”
청소년과 함께 시대를 관통하는 박하령 작가의 새 소설집
담백한 서사와 명징한 메시지로 이야기를 곱씹게 만드는 박하령 작가의 새로운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는 청소년과 시선을 맞추며 그들의 마음을 담아 네 가지 색깔로 그렸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러 나서는(「한판 붙을 결심」), 현실의 차가운 편견과 마주한(「N분의 1을 위하여」), 잘못 꿰어진 관계를 알아채는(「금을 긋다」),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토끼지 않습니다」) 각기 다른 인물의 상황과 고민을 직선으로 풀어냈다.

표제작 「한판 붙을 결심」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문에 휩싸인 주인공 연화가 과거를 돌이켜 보는 동시에 흐릿한 기억에 가려졌던 진실을 재배치하는 고군분투를 그렸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이 잊고 있었던 진실 혹은 거짓을 살피게 만든다. 견고하다고 생각한 현재에 실팍한 금을 그어 주는 셈이다.
박하령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지를 다지는 청소년이 등장한다. 주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소설의 모토는 늘 I will’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소설집에도 그러한 의지가 어려 있다. 『한판 붙을 결심』 역시 의지와 투지, 결심을 담은 ‘능동태 성장담’으로, 섬세한 장면과 현실의 대비가 돋보인다.


“무엇이든 존중받으면 빛이 나기 마련이니까.”
십대의 현재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담아내다


박하령 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작가는 비룡소 블루픽션상과 살림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면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 『한판 붙을 결심』은 세 번째 단편집으로 네 개의 이야기 모두 탄탄한 구조와 속도감 있는 글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청소년은 물론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일상의 고민과 순간의 선택 등 절대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폭넓게 담았다. 그래서 주인공의 목소리를 독자인 나와 밀접하게 연결할 수 있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데 무슨 고민이 있겠어?”라는 말을 하지만 그 나이 때에도 저마다의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 각자의 마음을 꺼내 놓은 인물들이 있다.
소문의 진실을 파헤치는 연화(「한판 붙을 결심」), 자신의 몫을 끌어안는 주희(「N분의 1을 위하여」), 잘못 그어진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해인(「금을 긋다」), 보폭의 확장을 꾀하는 다현(「토끼지 않습니다」). 네 아이는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벌어진 상처를 꿰매고 있다.

소설은 일상의 균열과 그 속에서 빛나는 발견을 위해 펼쳐진다. 인물들이 준비동작을 하는 순간 독자는 함께 이야기의 출발선상에 선다. 휘슬이 울리고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자신의 균형에 맞는 보폭을 내디디면 서사라는 잘 짜인 경기가 된다. 여기서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마만큼의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설 속 인물인 연화, 주희, 해인, 다현에 이어 다음은 독자다. 인물이 건네는 배턴을 잘 받아야 한다. 그러면 이야기는 결말이 아닌 독자인 우리에게 이어져 호흡하게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싸워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진심을 다해 싸우는 ‘능동태 성장소설’의 완성


작가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불안과 속삭임을 들어준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이루라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이 흘러가게 지켜봐 주며 울타리 넘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오길 기다려 준다. 표제작 「한판 붙을 결심」은 이러한 점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주인공 연화의 가족은 아빠가 고교 동창에 사기를 당해 야반도주했다. 연화는 갑작스레 전학을 가게 됐고, 살아왔던 환경과 생활은 뒤바뀐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의 소문을 듣게 된다.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부풀려져 있었다. 연화는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떠드는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전학 가기 전 중학교 때의 친구인 나은이와 승아가 생각났다. 셋은 무엇이든 함께하는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과거의 장면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연화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가고, 소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간다. 결국 연화는 나은이와 한판 붙으러 가는데…….

작품은 주인공 연화를 기점으로 점점 뻗어간다. 인물들은 현재에서 작동하지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오가며 흥미롭게 구사된다. 그래서일까. 주요 독자층인 청소년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현재에 놓인 문제를 감지하며 소설에 동요하게 만든다.
『한판 붙을 결심』은 작가의 말처럼 네 인물이 모여 ‘짧고 경쾌한 가운데 마음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있을 법한 해프닝을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렇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장면들은 어떠한 것보다 선명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소설집을 통해 진심을 다해 한판 붙을 대상을 발견하길 바란다.











여기는 괜찮아요


전성태 저 / 15,000원 / 창비

 
 
“그냥 거기 한번 가보고 싶었을 뿐이야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서정의 향연으로 일구어낸 한국소설의 빛나는 이정표
섬세한 묘사 아래 꿈틀대는 역동적인 이야기의 힘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탄탄한 문학성을 널리 입증받아온 전성태가 9년 만에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를 펴내며 그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던 독자들을 찾아왔다. 한국어가 지닌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올곧게 계승하면서도 토속과 세속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풍성한 이야기를 통해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한층 무르익었다. 해학과 풍자적 요소 이면에서 민족의 아픔과 현대사의 비극을 느끼게 하는 특유의 서사적 기법이 여전히 시대와 공명하며 묵직한 울림을 자아내는 가운데, 간명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필치로 그려낸 시간의 궤적이 더욱 선연하게 다가오며 감동을 선사한다. 더불어 이번 소설집에는 세월호참사, 코로나19 등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 담겼는데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과 맞물려 핍진하고도 세밀한 서사로 재탄생했고 이는 독자의 기억과 어울려 깊은 공감을 만들어낸다. 전성태는 비극적 소재를 극대화된 신파로 풀어내기보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사건들이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 아니라 ‘한때 우리가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무언가’임을 일깨운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서늘한 세계 끝에 당도하는 따뜻한 시선, 척박한 현실을 비집고 올라오는 향토적인 생명력. 전성태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뚜렷하고도 생생한 실감을 이제 우리는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또다른 진화’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뜻밖의 여정마다 발견되는 소설의 재미
새로운 만남이 선사하는 묵직한 감동

『여기는 괜찮아요』의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한다. 「상봉」의 일흔 넘은 노인 장시곤은 천신만고 끝에 이산가족 상봉 장소인 금강산에 도착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헤어져서 얼굴조차 모르는 친동생을 만나기 위해서다. 상봉에는 그의 아들과 며느리도 동행해 장시곤을 보필한다. 우여곡절 이후 만남이 성사되었는데, 형제의 외모는 닮은 듯 안 닮은 듯 아리송하다. 이윽고 양가의 가족사가 이어지는데…… 장시곤은 상봉 장소에서 친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갑작스럽게 인물의 삶을 침범하는 사건들은 오히려 또다른 인연이 되어 황망한 마음에 안부를 건네기도 한다. 표제작 「여기는 괜찮아요」의 주인공 ‘나’는 대학교수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때, ‘나’는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섬에서 혼자 지내는 수강생 경진의 글쓰기 과제를 첨삭한다. 그러던 중 오래전 청산도에서 만났던 공무원 어르신 오동순씨는 기억에도 없는 책을 돌려달라며 연락해 온다. 두 사람은 ‘나’와 직접 만나본 바 없거나, 만났더라도 기억에서 잊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암울해 보이는 경진의 글로부터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오동순씨가 시간을 거슬러 터무니없는 부탁을 해온 사정을 헤아리고자 한다. ‘나’가 먼저 건네는 물음에, 두 사람은 비로소 “여기도 괜찮아요”, “아즉 여그는 청청한게”라며 화답한다(275면).
숱한 엇갈림과 상관없이 현재를 공유하는 누군가와 새로이 연결되는 감각은 소중한 사람의 난 자리를 푼푼하게 채워준다. 내력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마음만은 헤아릴 수 있다는 듯 새로운 만남이 곁에 다가앉는 모습은 어리둥절하게 유머러스하면서도 개운하게 따뜻하다.

흙과 식물처럼 어우러지는 서늘함과 유머
남아 있다는 공통감각으로부터 먼저 건네어보는 안부


『여기는 괜찮아요』의 이곳저곳에는 상실의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상실이 작품에 비애를 드리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첫 작품인 「깡통」은 한몽사전 편찬 작업을 하러 한국에 온 네르귀의 이야기다. 여기서 네르귀는 몽골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몽골에서는 태명을 지어주지 않는다거나, 첫눈이 오는 날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는 말에 한국 연구원들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신비로운 세계를 접한 양 관심을 가진다. 어릴 적 네르귀의 부모는 돈을 벌러 한국으로 왔고 네르귀는 몽골에 할아버지와 둘만 남았는데, 어느 날 여행자들이 네르귀에게 콜라 다섯 캔을 선물한다. 네르귀는 이 달고도 톡쏘는 맛에 매혹되지만,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깡통에 두려움을 느끼고 네르귀에게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울란바토르에 콜라 캔을 버리고 오라고 시킨다. 이 여정은 상실, 또다른 만남과 이어지며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저자는 계속해서 떠난 사람의 자장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술회한다. 「숲으로」에서 수아와 의붓어머니 금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죽음은 수아로 하여금 금이의 생애를 돌아보게 만들고, 금이가 남모르게 겪어온 차별과 수모가 환상으로 분하여 수아를 찾아온다. 그런가 하면 「가족 버스」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따라가며 ‘올바른’ 애도의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중년의 딸인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편지를 써서 낭독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담을 느낀다. 게다가 고2 딸 지민은 세월호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팽목항에 들르고 싶다며 고집한다. 반대하던 ‘나’는 “무슨 대단한 걸 하겠다는 거 아니었”다며,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87~88면) 지민의 말에 수긍하고, 자신도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를 완성하게 된다. 애도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애틋한 마음을 꺼내어놓는 일이라는 사실을 포근하게 도닥여주듯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조용한 생활」은 상실을 온전히 수용한 뒤에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감각을 극명히 드러내는 빼어난 소설이다. 준모는 고등학생 시절을 지낸 탐매마을에 모교의 선생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어느 날, 주인집 허 노인이 여순사건 희생자의 학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온다. 마을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되던 여순사건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희생자를 찾을 수 있게 된 시점, 준모는 허 노인의 부탁을 이행하며 유일한 친구 양태민과 보낸 어두웠던 학창시절을 되짚는다. 그러면서 탐매마을에 “아직 끝내지 못한 자신의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닫는다. “기억으로 구부러진 골목을 매일같이 걸”으며 두갈래의 과거를 직면하는 사이에 흐드러졌던 홍매화는 져 내리고, 비로소 준모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된다(192면).
소설은 분단, 여순사건, 세월호참사, 코로나19 등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불러낸다. 국가적 트라우마라고 할 만한 사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사자라기보다는 주변인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과 사회를 공유하기에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그냥 잊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아직 여기에 남았기에 먼저 간 사람들을 정리하고 기억할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잊지 않았다고 말”(「가족 버스」)할 수 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아직 괜찮”(「여기는 괜찮아요」)다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할 수 있다.
전성태는 소설집을 펴내며 어떤 사람이 “죽어 사라”진 뒤, “겨우 그를 보낸 이야기나 쓰고 만다”고 말한다(작가의 말). 그러나 남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보낸 이야기를 다른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를 알고 그 사건을 아는 사람, 그럼에도 아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그 사람에 대해서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애도의 직접적인 대상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이야기를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 계속해서 기억을 호명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던 우리에게도 사건은 여전히 현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성태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멀어질 것을 알고도 다가가는 마음으로 그의 소설을 만납니다. 비워두어 선연한 그리움, 드러내지 않아 더욱 짙은 비애의 그림자, 윤슬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한국어와 정감 어린 방언, 이야기 자체가 발산하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이 이제 당신에게 묻고 있어요. 당신이 계신 그곳은 어떤가요, 괜찮은가요?”(추천사, 최진영)








작은 종말

정보라 저 / 18,000원 / 퍼플레인

 
 
 
부조리한 현실을 묘파하는 정보라 소설의 신기원
전 세계를 매료시킨 ‘보라 월드’의 최신 단편소설 10선
“정보라 소설을 통과한 이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 ─ 전청림 문학평론가

“재밌으면서 새로운, 빠르면서 가차 없는, 그러다가 뭉클하니 솟구치는…….
현대 한국문학의 새로운 피켓이 된 그와 함께, “가자.”” ─ 송경동 시인
“이렇듯 작고 미묘하게 튀어나온 못 같은 사람들을 언제나 거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품어낼 수 있다니. 아름답다.” ─ 이서영 작가

《저주토끼》 이후 한국문학의 ‘새로운 피켓’이 되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작가 정보라.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유별난 상상력으로 독자를 매혹하는 그가 새 소설집 《작은 종말》을 선보인다. 2020년부터 2023년 겨울까지 발표한 최신 단편 열 편을 묶었다. 호러보다 더 으스스하고 기괴한 현실을 밀도 있게 묘사한 이야기들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2022)과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2023)에 연이어 최종 후보로 선정된 정보라의 ‘지금’을 오롯이 만날 기회를 선사한다.

타인과 이종(異種)의 고통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문학적 감수성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시대와 불화한다. ‘효율적인’ 육아라는 명목 아래 신체를 기계로 전환한 동생과 갈등하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작은 종말〉), 함께 데모하는 동지를 상실한 이후 그를 회고하는 무성애자(〈지향〉), 전국에 딱 세 개 남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서(〈도서관 물귀신〉), 매번 역사적 현장에서 허리가 폭발하는 악몽을 꾸는 피해 생존자(〈증언〉), 군사 정권에 엄마를 잃고 10주기 추모 행진을 준비하는 딸(〈행진〉)이 바로 그들이다.

불온한 이들의 목소리로 더욱 짙어진 ‘보라 월드’는 거부할 수 없는 초대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제안이다. “정말 세상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작가는 묻는다. “왜 우리가 도망쳐야 해?”(〈행진〉). 모두가 투사가 될 수 없지만, 소중한 사람과 매일의 일상을 지키려면 투쟁을 피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 정보라 소설은 방관을 멈추고 함께 나아가자고 말한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1·2권에 이어 또 한 걸음을 내디딘 이번 소설집에서 더욱 날카로워진 ‘보라 월드’를 만나길 기대한다.

“우리는 어둠 속의 삶을 뒤로하고
이 봄날의 처음으로 자유로운 아침을 향해 두려움 없이 걷기 시작한다.” - 본문 중에서



2020년 이후 최신작을 모은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Vol.3
‘불온한’ 이들의 목소리로 반짝이는 보랏빛 세계


《저주토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각인시킨 정보라 작가가 새 소설집 《작은 종말》로 독자를 만난다. 이번 소설집은 2020년부터 2023년 겨울까지 발표한 열 편의 소설을 묶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2023)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2023)에 이어 퍼플레인에서 펴낸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시리즈의 앞선 두 권이 오늘날 정보라 소설의 뿌리와 심연을 파고드는 심층 해부도였다면, 이번 소설집은 탄탄히 구축한 ‘보라 월드’를 한눈에 보는 명쾌한 조감도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록된 소설이 모두 2020년대 전반기에 쓰고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작가는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2022) 최종 후보에 선정되어 국내외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2023)에 한국인 최초로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으며, 라이프치히도서전상 번역서 부문(2024)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 세계 문학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대와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 작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이번 소설집은 그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이토록 끈적거리고, 유쾌하고, 시종일관 수다스러운 화려한 환상 속에서 정보라는 매우 신중하게 진실에 집중한다. 차가운 얼음처럼 또렷하고, 망설이는 법이 없이 강렬하다. …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단 한 번도 게을러 본 적이 없는 정보라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우리를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의 세계로 초대한다.
─ 349쪽, 전청림(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성소수자·이주민·비정규직·피해 생존자 ···
서늘한 공포가 일상을 잠식한 야만의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


저주받은 영혼, 결연한 투쟁, 잔혹한 복수의 이야기를 짓는 정보라는 사회에서 소외된 시선과 목소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지향〉의 주인공은 함께 데모하는 동지를 상실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무성애자이다. 표제작 〈작은 종말〉에서는 ‘효율적인’ 육아라는 명목 아래 신체를 기계로 전환한 동생을 만류하고, 끝내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비수술 트랜스젠더가 등장한다. 이외에도 전국에 딱 세 개 남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서(〈도서관 물귀신〉), 매번 역사적 현장에서 허리가 폭발하는 악몽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피해 생존자(〈증언〉), 군사 정권에 엄마를 잃고 10주기 추모 행진을 준비하는 딸(〈행진〉) 등 작가는 지면 곳곳에서 시대와 불화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애틋한 시선을 건넨다.

젠더, 성, 계급, 노동의 문제에서 시작해 인종, 동물, 환경 정의의 문제까지 융합한
다양한 서사를 술술 풀어내는 정보라의 소설은 차별 안에 여러 억압이 거미줄처럼 엮여 다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는다. … 이때 개인이 겪는 다층적인 차별의 논의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일, 그리고 더 나은 권리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란 더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에 정보라의 소설은 주의 깊게 예리해지며, 견고하게 구축된다.
─ 350쪽, 전청림(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소설집을 먼저 읽은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정보라 소설이 추동하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정보라 작가를 ‘동지’라 부르는 송경동 시인은 “한국문학은 정보라 작가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그를 통해 신세계를 엿본 이들에겐 이미 명백한 사실”(‘추천의 말’, 370쪽)이기 때문이다. 《어션 테일즈 No.4》(아작, 2022)에 ‘마술적 사실주의와 SF 트러블  -  정보라론’을 게재하며 작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힌 전청림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정보라의 소설을 통과한 이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작품 해설’, 353쪽) 현실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면서도 기기묘묘한 분위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정보라 소설은 이처럼 매력적이고 동시에 불가항력적이다.

어떻게 이토록 드높은 이성과 따뜻한 감성과
부지런한 실천과 다른 세계를 향한 뜨거운 의지가
한 사람의 작품과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놀랍다.
─ 370쪽, 송경동(시인, ‘추천의 말’)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예측불허의 서스펜스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상상력으로 벼린 하이퍼 리얼리즘

어쩌면 정보라와 그의 소설을 특정한 장르에 국한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용할지도 모른다. 대표작 《저주토끼》를 비롯해 퍼플레인에서 펴낸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와 연작소설 《한밤의 시간표》은 대체로 환상문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것이 정보라 소설 전부는 아니다. 호러와 환상의 세계에서 한 걸음 벗어나 SF와 스릴러를 접목한 《고통에 관하여》(다산책방, 2023),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환상문학에 녹여낸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래빗홀, 2024)에서 볼 수 있듯 정보라는 통상적인 분류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장르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이번 소설집은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만하다. 정보라 소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을 환상문학(〈무르무란〉 〈은둔자의 영혼〉), AI와 기계화가 일상의 깊은 곳까지 스며든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SF(〈작은 종말〉 〈낙인〉)는 ‘보라 월드’가 익숙한 독자에게 알고 있지만, 그래서 멈출 수 없는 ‘아는 맛’의 즐거움을 전한다. 반면 작가가 수록 작품 중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가슴 아픈 단편”(‘작가의 말’, 345쪽)으로 꼽은 〈지향〉과 “가장 즐겁게 썼던 이야기”(344쪽) 〈개벽〉은 환상과 호러, SF라는 익숙한 문법을 덜어낸 이야기로 기존 정보라 소설과 결이 다른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행진〉과 〈증언〉을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쓰면서 안면인식 기술과 휴대전화 사찰,
위치추적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개인 시민에 대한 감시와 정치적 탄압이
일상이 된 세계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
〈작은 종말〉은 (인상 깊게 읽은 책의 내용을 오마주해서 써 달라는 원고 청탁에 따라)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라는 소설을 모티브로 하고 대학에서
“SF를 통한 자아의 발견” 수업을 할 때 다루었던 여러 주제를 섞어서 썼다. …
〈지향〉은 나의 실제 데모 동지를 모델로 해서 썼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가슴 아픈 단편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실제보다 리얼한 소설, 소설보다 끔찍한 현실
부조리한 세상을 묘파하는 잔혹한 현실 우화


열 편의 소설 중 후련하게 웃을 만한 ‘해피 엔딩’은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 남겨지거나, 세계의 이단으로서 고립되거나, 계속 살아가야 할 막중한 숙제를 떠안는다.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끝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에는 실패한 이들의 도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표제작의 제목에서 종말 앞에 놓인 ‘작은’ 두 글자에 주목해 본다. 어쩌면 눈앞의 파국은 그들을 감싼 세계의 종말일 뿐, 삶 자체의 종말이 아니다. 그들이 끝끝내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낸다면, 이는 어쩌면 눈앞의 현실이 ‘작은’ 종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메시지는 아닐까.

정보라의 시선은 언제나 현실의 고통을 향한다. 그의 작품을 두고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표현하는 세간의 평이나 ‘극사실주의 작가’를 지향하는 작가의 태도는, 그가 잠시도 현실문제를 잊지 않고,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열망을 소설로 그리는 작가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보다 더 잔혹한 현실 세계를 직시하고,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를 상상하는 작가. 정보라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불편하지만 매혹적인 세계로의 초대. 이 소설을 통해 더 많은 독자가 그와 함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어둠 속의 삶을 뒤로하고 이 봄날의 처음으로
자유로운 아침을 향해 두려움 없이 걷기 시작한다. ─ 335쪽, 〈행진〉










수능 해킹

문호진, 단요 저 / 23,000원 / 창비


퍼즐 맞추기로 전락한 수능과
기형적으로 진화한 사교육의 기술자들
대한민국 ‘입시판’을 움직이는
수능 해킹의 공식을 낱낱이 밝힌다!
킬러 문항 사태, 의대 정원 이슈, N수생 논란… 수능만큼 우리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구고 크게 뒤흔드는 화두가 있을까. 일찍부터 평생의 소득, 인간관계를 비롯한 한 인간의 삶 전반을 결정해버리는 시험이기에 수능에 대한 사회의 광적인 집착은 앞으로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듯 보인다. 이 시험에 덧씌워진 악마화와 ‘과몰입’을 걷어내고 2024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입시 현장의 실질을 바로 밝히는 책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이 출간되었다. 수많은 학생, 교사, 전현직 사교육 종사자들의 방대한 인터뷰와 자료가 인상 깊은 이 책은 현직 의사이자 활동가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가 사교육 현장에서 보고 겪은 생생한 경험과 취재를 바탕으로 지금의 수능이 얼마나 기괴한 방식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변질된 시험인지 찬찬히 따져 묻는다. 지금의 수험생들이 기성세대의 짐작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밝히며 소위 ‘입시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끈질기게 ‘해킹’하는 이 책은 그저 충격적이다. 저자들은 수능의 파행이 한국 사회 곳곳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교육, 나아가 우리 사회와 그 미래가 무엇보다 수능의 변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수능은 반교육적이다!
퍼즐식 풀이와 사고의 외주화


수능을 “블랙코미디”라 말하는 두 저자에게 강하게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형화된 패턴, 암기형 지식, 오직 문제풀이만을 위한 특별한 기술 등 진정한 교육과는 멀어진 채 입시를 위한 줄 세우기용 시험이라는 수능의 폐해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평가원과 사교육 시장이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서 수능은 과거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뒤틀린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난이도 조절 실패’라는 전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평가원의 출제 경향은 고도로 어려워진 동시에 고착화를 피하지 못했고, 사교육은 그 틈을 파고들어 이른바 “퍼즐식 사고” “사고의 외주화” 등 다양한 기술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리 공부해도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을 수 없게 되었으며 과거의 수능이 수행하던 최소한의 학습 능력 검증도 무의미해진 지 오래되었다.
일례로 전공자마저 난색을 표할 만큼 어려워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되었던 2022년 수능 국어 ‘헤겔 미학’ 지문의 정답률은 의외로 수험생의 절반에 가까운 45%에 이르렀다고 한다. ‘절대정신’이나 ‘정반합의 철학적 의미’를 모르고, 심지어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훈련된 기술을 적절히 발휘하기만 하면 문제를 맞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기출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이를 눈앞에서 증명해 보이는 과정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저자들은 지난 10년간 이런 수능 해킹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로 인해 수험생들의 사교육 의존이 급격히 심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쓸모없는 기술을 익히지 않고는 시험을 잘 볼 수 없다는 현실도 문제적이지만 지금의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고 인기 대학에 간다 해도 교수에게 ‘해답지를 요구’하는 학생이 될 뿐이다. 저자들이 수능을 반교육적인 시험으로 전락했다고 단언하는 까닭이다.

열망과 분노에 싸인 교육 특권층
끝없는 N수와 사교육의 결과


『시험능력주의』의 저자 김동춘은 이 책의 추천사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 교육을 고발한 그 어떤 책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이라며 “지금 수험생과 학생 들이 일반 국민, 교육학자, 정책 입안자가 알고 있는 현장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언급했다. 사교육의 해킹 기술 없이는 수능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게 된 사이, 수능은 일종의 ‘컬트’로 자리 잡아 수험생들 사이에 하나의 커다란 문화가 되었다. 그 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수험생 커뮤니티와 강남의 특정 학원을 위시한 대형 입시학원들이다. 사교육 없이는 높은 성적을 획득할 수 없게 된 학생들은, 의대 선호와 N수를 부추기는 커뮤니티에 영향을 받아 너무도 쉽게 “한번 더”를 외치며 N수를 결정하고 결국 수능과 사교육 시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시험에 대한 그 ‘과몰입’의 정도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수능 해킹』의 분석으로, 입시를 인생의 한 단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수능 자체가 정체성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N수생의 수는 점점 늘어 2024년에는 수험생의 35.2%를 차지했다.
더욱 심각해진 교육 격차도 문제로 지적한다. 평가원에서 매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시도별 재학생 등급 비율 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수능 수학 1등급의 서울/비서울 비율은 3:1에 이르렀으며 과거 ‘사교육 무용론’이 우세했던 국어 1등급의 서울/비서울 비율도 2:1을 넘어섰다. 최근 의대 정시 합격자가 강남의 특정 학원에서 50% 가까이 배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능 초고득점자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수능 출제 경향이 본격적으로 어려워지고, 사교육 시장이 재편되며 고도화를 이룬 2010년대 중후반부터 눈에 띄게 격화된 이 격차는 수능 사교육이 특정한 지역적,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저자들은 지금의 수능과 사교육 업계가 만들어내는 인간 군상에 대한 우려를 쉽게 감출 수 없다고 말한다.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수능이라는 한 시험에 집착하며 해킹의 기술만을 연마해온 이들이 사회에 나와 어떤 건강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능 해킹』은 이처럼 최근 수능의 진화가 그것 자체로 폐단일 뿐만 아니라 사교육 및 공교육 체계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까지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 현상이라는 사실을 촘촘한 논증으로 밝혀낸다.

‘수능’에 대한 최초의 본격 탐구
의사‧소설가의 정확하고 명료한 진단


현직 의사이자 수능 사설모의고사를 공저하기도 한 저자 문호진은 입시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와 불평등이 사회의 다른 영역에 미치는 악영향을 눈여겨보게 되었으며 의대 입시가 부의 대물림과 계급 재생산 통로가 되어가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밝힌다. 기묘한 상상력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SF 소설가 단요 역시 국어 사설모의고사 비문학 영역을 다수 출제한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회 작동 및 권력과 자원 분배 문제에 대한 관심사를 살려 이번 르포 작업에 참여했다.
두 저자의 전문성은 수험생, N수생, 학원 강사 및 조교 등 전현직 사교육 종사자의 방대하고 생생한 인터뷰와 치밀한 분석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수능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시작으로 한국의 교육체계 전반을 이토록 꼼꼼히 살핀 책은 그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능의 타락상과 그에 발맞춘 사교육 기술, 이를 무력하게 방치한 공교육의 현실을 꼼꼼히 짚은 『수능 해킹』은 수능과 교육체계에 대한 문제제기에 이어 해결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 전개한다. 자원을 정의롭게 분배하고 환상을 걷은 뒤 투명성과 민주성을 담보해야 교육체계가 바로 움직일 수 있다고 역설하는 두 저자는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공적 제도와 체계를 정비해 수능을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게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N수생 비율이 나날이 치솟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수능 해킹』을 출발점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공부의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수옥


박소란 저 / 11,000원 / 창비



 
“어떤 물은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녹아 물이 되듯이”

이 시대가 사랑하는 감수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로의 언어
세상의 바닥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서정시의 힘
“박소란의 언어적 감수성은 단일하지 않다. 도시적인 연출력과 세련된 어법이 돋보인다.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으려고 고투한 흔적이 역력하다. 거기에 노래도 있고 이야기도 있다.” 한국 시단에 박소란이라는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대형 시인의 등장을 알린 2015년 신동엽문학상 심사평의 일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층 더 섬세해진 언어적 감수성으로 주변의 아픔을 응시하는 동시에 “조금더 살기 위”(추천사, 정선임)한 따듯한 힘을 주는 박소란의 네번째 시집 『수옥』이 출간되었다. “물 수(水) 구슬 옥(玉)”(「물음들」). 다소 낯선 제목이지만 슬픔과 눈물, 그 안에서 빛나는 찬란하고도 둥근 사랑의 마음이라는 이번 시집의 정서를 포괄한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사회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내온 전작과 비교하자면 『수옥』은 좀더 내밀한 고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인의 자기 체험을 넘어 보편적인 슬픔과 상실의 정서에 정확히 가닿는 덕분에 아련한 동시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는 독서 경험이 가능해진다. 또한 3부로 나눠 실은 시편들은 순서대로 읽었을 때 언젠가 경험해본 듯한 분절적인 기억을 자극하는 서사를 재구성해낸다. 시집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수옥』이 제공하는 커다란 매력이다. 시집의 말미에는 해설 대신 시인 본인의 산문 「병과 함께」를 실었다. 생활에서 길어 올린 담담한 어조 속에 드러나는 시적인 독백이 단숨에 몰입감을 선사하는데, 조용한 위로가 되어주는 한편 여타 시집에서 찾아보기 힘든 읽을거리가 된다.

독자를 마음을 빼앗는 공감의 언어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마음에 대하여

무언가를 관찰하는 화자들의 시선은 마음을 뺏는다.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서 혼자 몰래 빠져나가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의 뒷모습이 신경 쓰여 “내가 다 잘못했어요/말하고 싶어”(「수」)하는 모습이나, 편의점 옆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이 신경 쓰이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빈 박카스 병을 이리저리 굴”(「24시」)리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순식간에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감정이 이입된다. 물론 저마다의 방식으로. ‘왜 그때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을까.’ ‘왜 그때 무심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까.’ ‘왜 주변을 향해 화를 내지 않았을까.’ 과거의 어떤 장면을 향한 ‘왜’가 연달아 떠오른다. 그것은 『수옥』이 그만큼 공감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수옥』의 화자는 무언가를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는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또 반성한다. “‘삶은 여행’이라는 말,/‘여행’이 꼭 ‘미행’ 같아 지금껏 몰래 누군가의 뒤를 밟아온 것만 같아/그래서일까/이토록 죄지은 기분”(「서해」) 같은 구절을 읽다보면 ‘살아 있다’는 의미를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서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삶의 상실이 주는 슬픔이 지나간 이후, 삶이라는 것이 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선임 소설가가 “소란 속에서 침묵을 지키다 돌아올 때, 병원 복도에 홀로 앉아 호명되기를 기다릴 때, 봉분 앞에 바래버린 조화를 새것으로 바꿔놓을 때, 알 수 없는 허기에 식당을 찾아 어두운 골먹을 헤맬 때, 미래라는 것이 너무 어렵고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면 시인의 시집을 꺼낸다”(추천사)고 쓴 것도 이러한 정서와 맞닿는다.

시인은 “내 시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물 수(水)에 구슬 옥(玉)을 써야지 생각했다./아주 오래전부터”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 그만큼 이번 시집은 시인의 한 시기를 매듭짓는 동시에 박소란 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바닥을 어루만지며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위로를 건네던 시인은, 이제 자신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좀더 따뜻하게 보듬기 시작했다. 그 따뜻함이 물처럼 구슬처럼 흐르고 또 머무른다.
“바닥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고단합니다. 어쩌면 정말 위험하겠지요. 미끄러질 수도, 크게 다칠 수도 있겠지요. 철철 피를 쏟게도 되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이 어두운 물기가 삶의 신호 같다고 느낍니다. 살아 있음의 적나라한 신호.”(산문, 「병과 같이」 부분)









의사, 주석중


정영 엮음 / 16,700원 / 소북소북
 
사람을 사랑한, 삶을 사랑한 진짜 의사의 이야기
참 의사가 그리워지는 요즘, 한 명의 의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2023년 6월, 대한민국 흉부외과 최고 권위자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낸 의사가 불의의 사고로 떠나자, 많은 국민들이 대체 불가능한 인재를 잃은 것에 비통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주석중이었다.
이후 환자들과 동료들로부터 주석중의 의술과 면모가 흘러나왔다. 그의 손을 통해 무수한 사람이 새 생명을 얻은 것, 그리고 사람을 향한 그의 관심과 사랑, 친절함과 따듯함을 통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얻었는지 말이다.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감동을 주는 사람은 드문 시대. 타인을 향한 관심이 줄어든 시대. 우리는 개인을 중시하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누군가를 향한 관심과 따듯함에 큰 감동을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이것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주석중이 남긴 작은 메모 한 장에서, 그의 말 한마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는 왜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을까? 그는 왜 의사가 되었을까? 그는 왜 다른 누군가가 포기한 환자를 수술했을까? 그가 내린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가 의지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돌아볼 수 있다.

〈주석중〉
1964~2023
책과 동물을 사랑한 사람,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
라면국물과 생라면을 좋아한 사람, ‘주바오’, ‘주님’으로 불린 사람
환자를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어 했던 사람
늘 최선을 다해 수술대 앞에 섰던 사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마친 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전임의를 거쳐,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동맥질환, 마르판 증후군 및 유전성 결합조직질환, 마르판 클리닉, 대동맥질환 클리닉, 대동맥 근부 확장 질환, 대동맥판막협착증 및 역류증, 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 상담, 이엽성 대동맥판막질환 외 성인 심장 질환 등을 전문 분야로 하였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대동맥질환 분야에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


주석중은 생명을 살리는 자신의 직업과 삶을 사랑했습니다.
 

 











 
 

SF 보다 - Vol.3 빛

단요, 서이제, 이희영, 서윤빈, 장강명, 위래, 문지혁, 심완선 저 / 14,000원 / 문학과지성사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

미래의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우리를 향해 뻗어 오는 빛의 이야기들에서
S-F의 세계를 보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빛과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글자와 글자 사이로 발신하고 수신하는 크고 작은 빛들을 조심스레 채집하는 일. 서로 다른 질량과 중력을 지닌 너와 나 사이에 가느다란 빛의 통로를 만들어두는 일. 우리의 기억을 비추어 죽은 얼룩을 빛나는 눈동자로 바꿔줄 영원한 햇살을 발견하는 일.
-문지혁, 「하이퍼-링크: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위한 기도」에서

독자들에게 무한한 자극과 지적 상상력을 제공할 ‘S(story)’를 담은 다채로운 ‘F(frame)’가 되고자 202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첫선을 보인 〈SF 보다〉 시리즈가 세번째 테마 ‘빛’으로 찾아왔다. 한국 SF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문학과지성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신작 SF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을 제공함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생동감 넘치는 문학적 교류의 현장으로서 한국문학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혀나가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하나의 테마가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눈부신 상상력과 만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시리즈는 테마와 다각도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 여섯 편의 단편소설, 테마를 관통하여 장르 전반의 흐름을 담아낸 ‘크리티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1년에 두 권 출간된다. SF 스토리텔링의 선두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 문지혁, SF를 향한 애정으로 국내외 작품들을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고 쓰는 SF 평론가 심완선이 기획위원으로 함께하며 ‘하이퍼-링크’와 ‘크리티크’에 참여하고 있다.

2024년의 첫 권이자 〈SF 보다〉 시리즈 세번째 책 『SF 보다-Vol. 3 빛』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여섯 작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90년대부터 2022년까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에는 시차가 있지만, 이 여섯 작가의 가장 강력한 공통점은 지금, 여기에서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며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단요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서이제의 「굴절과 반사」, 이희영의 「시계탑」, 서윤빈의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 장강명의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 위래의 「춘우삭래春雨數來」. 여섯 편의 작품이 미래에서 온 빛을 독자들에게 펼쳐놓는다. 또한 책의 시작과 끝에 자리한 ‘하이퍼-링크’와 ‘크리티크’는 영화와 문학 등에서 그려진 다양한 빛의 이야기를 통해 『SF 보다-Vol. 3 빛』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다른 날들의 빛이 우리를 비출 때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된다”
─빛에 대해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


신은 빛을 창조했지만, 빛은 세계를 창조한다. 빛은 우리를 보게 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세계는 존재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우주는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 만큼만 확장된다.
우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 인간과 로봇과 안드로이드와 우주선과 외계 생명체의 서사는 모두 이 빛 위에 근거한다. 빛은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별들은 빛나며, 우주선은 ‘광속’으로 이동하고, 우주선의 내부는 빛을 내는 기계와 버튼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SF는 종종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이었다가 스페이스 판타지Space Fantasy로 옷을 갈아입는다. 빛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 공간 역시 확장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 역시 ‘빛난다’.
-문지혁, 「하이퍼-링크: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빛을 위한 기도」에서

“빛이 있으라.” 신은 빛을 창조했다. 그리하여 천지가 창조되었다. 빛이 시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기도 하다. “학문이 신비주의에서 벗어”나면서부터다. “빛을 분석하고 실험한 과학자들은 태양광이나 별빛을 신의 은총이 아니라 자연현상으로 뒤바꿨다”(심완선, 「크리티크: 그 길의 악몽, 그 얼굴의 빛」). 『SF 보다-Vol. 3 빛』에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에서 담고 있는 ‘빛’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래에서 온 빛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이 원시인의 감광성 신경절 세포는 가시광선이 아니라 장파장 적외선에 반응해-참, 물체의 온도가 높을수록 장파장 적외선의 방출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너도 잘 알 거야. 열화상 카메라의 원리와 똑같은 현상이 원시인의 눈에서 일어나는 셈이지. 태양빛을 보지 못하는 대신 온도를 시각 정보로 바꾸는 능력을 얻는 거라고.
-단요,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p. 21)

“부패한 지구 위에 다양한 기술이 형형색색의 곰팡이처럼 자라난 형태”의 31세기 현제. 단요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의 배경이다. 토요일 오후 3시,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한 ‘나’에게 친구의 전화가 걸려 온다. 소설은 종교역사학 연구자인 친구와 세 개 도시에 설치된 송전망을 관리하는 기술직 사무관인 ‘나’의 대화로 전개된다. 빛이란 뭘까,라는 친구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마지막 빙하가 녹으면서 발견된 원시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복원된 원시인의 감광성 신경절 세포가 돌연변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는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에 반응하는 일종의 열화상 카메라와 같은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소설은 ‘당연히 보아야 할 빛’을 보지 못하고, ‘대개는 보지 못하는 빛’을 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와 종교, 기록과 허구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펼쳐낸다.

너는 정말 살아 있을까.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네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너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너의 죽음을 확인하길 기다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이제, 「굴절과 반사」(p. 56)

서이제의 「굴절과 반사」의 배경은 커다란 유리 돔으로 이루어진 해저 도시로, 화자인 ‘나’는 이곳 교도소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업무는 세 달에 한 번씩 죄수를 심해의 독방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태우는 일이다. ‘나’는 5년 전 해저 터널 붕괴 사고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정신의학센터에 일주일에 한 번 가야 하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상태이다. 사랑하는 이가 그 사고 장소에 망가진 차량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고 돌아오던 어느 날, ‘나’는 한 아이로부터 ‘너’의 사진과 ‘너’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내용의 편지. 죽을 고비가 있다는, 살고 싶으면 빛을 받으라는, 점술가의 알 수 없는 예언을 듣고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지상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흔히들 프로그래밍된 가상이라 생각하지만, 그 세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가 평소 절대 볼 수 없을 뿐이죠.”
D는 존재라는 단어에 유독 강세를 넣어 말했다. 휴는 비록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명확한 목적만은 절대 잊지 않았다.
“어쨌든 그 세계를 경험하면 이곳이 깨끗하게 바뀝니까?”
-이희영, 「시계탑」(p. 81)

이희영의 「시계탑」의 휴는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기상과 취침 또한 프리한 그는 집중력 저하와 잦은 건망증,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를 느끼고 치료를 위해 지인이 소개해준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 세계’를 방문하게 된다. ‘그 세계’에서 가장 처음 본 것은 거대한 시계탑. 고장이 나서 시간을 제멋대로 흘러가게 하는 그것 때문에 ‘그 세계’는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빛은 사라지고, 제멋대로 터지는 빛은 오히려 세계를 더 불안하게 만들며, 필요한 물품을 싣고 온 드론은 부족한 창고 때문에 착륙도 하지 못하고 폭발한다. 무엇보다 수거되지 못한 채 쌓여가는 폐기물로 인해 그곳은 점점 어떤 존재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수백 개의 창이 되어 온몸에 날아와 꽂히는 미치도록 밝은 빛. 공황 상태로 눈을 뜬 휴는 자신이 방문한 그곳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뇌 속이었음을 알게 되고, 망가진 자신의 상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라블레 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를 가까이에서 알았던 이라면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열 편의 영화를 찍도 나면 자기는 생명이 다할 거라고 말하곤 했고, 그 열번째 영화가 바로 반년 전에 개봉했기 때문이다.
-서윤빈,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관한 소고」(p. 103)

서윤빈의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소고」는 인터넷에서 발견된 문서라는 각주를 달고 있다. 제목을 제외한 전문이 특수문자로 되어 있는데, DeepL로 번역하여 교정을 거치고, 주석을 달아 완성한 글이라는 설명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알파 켄타우리를 중심으로 한 항성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다. 라블레 윤은 상이나 비평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연히 평론가와 언론 역시 그를 무시했다. 그러한 무관심은 그의 죽음 이후로도 이어졌고, 결국 그의 친구들은 가장 돈이 안 드는 방식으로 그를 기리기 위해 라블레 윤에 관한 이 글을 남긴 것이다. 라블레 윤의 마지막 영화와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영화, 두 작품을 중심으로 씌어진 이 글에서 독자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주 공간에서 다양한 촬영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미래의 영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대, 2020년대 인터넷 자료들을 읽어보면 각종 판결마다 ‘AI 판사를 도입하라’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은 그 당시에도 낯설지 않았으며, 판결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장강명,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p. 137)

장강명의 「누구에게나 신속한 정의」는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장휘영 기자가 쓴 기사이다. 이 인터뷰 기획 기사의 주인공은 각종 분쟁을 법정 밖에서 해결해주는 인공지능 법률 서비스 기업 ‘신속한정의’의 이세아 대표. 지금과 그리 머지않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소설 안에서 제시되는 자료와 언급되는 사건 모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는 점이 이 작품에 생생한 현장감을 높여준다. 창업 초기 교통사고와 사이버모욕죄, 사이버명예훼손죄 사건을 대상으로 했던 신속한정의는 높은 정확도와 ‘고객 편에 서지 않는다’는 ‘공정한 판단’의 태도로 후발 경쟁 업체들과 차별점을 가지며 사법부보다 높은 신뢰를 얻기에 이른다.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다양한 가능성과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 인공지능의 활용에 관한 여러 이점과 함께 그럼에도 고민해야 할 지점까지 현재의 우리 삶과 밀접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명확하고 흡인력 강한 문체로 담겨 있다.

우리가 유성우의 영향권 안에 다시 말려드는 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겠죠. 그때가 오면 우리는 더 가깝지만 결국 파멸할 운명을 맞이할 항성 뒤로 숨을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유성우 사이를 뚫고 지나가 항성계 밖으로 도망쳐볼 것인지 선택해야만 합니다.
-위래, 「춘우삭래」(pp. 161~62)

위래의 「춘우삭래春雨數來」의 화자가 있는 곳에는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물은 4퍼센트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다. 나머지는 단단한 암석이다. 유성우인 것이다. 부서져가는 행성에서 떠나 정착할 곳을 찾던 이들은 SN2024B를 인간종을 구원할 빛이라 생각하고 ‘등대’라는 별칭까지 붙인다. 이것은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보내온 신호였고, 각 분야에서 외계의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들려온 등대의 첫마디는 “내 친애하는 형제여”. 그렇게 사람들은 등대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등대 앞에 다다랐을 때, 그 빛이 결국 함정이었을 발견한다. 제목처럼, 해롭기만 하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우리의 ‘등대’는 결국 ‘춘우삭래’였던 것이다. 이들의 실패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마지막을 읽은 뒤에도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SF 쓰기가 인간과 물질과 시공간을 둘러싼 미지의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일이라면, SF 읽기는 그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을 경험하는 일이다. Science, Space, Speculative, Society 등의 수많은 ‘S(story)’와 Fiction, Fantasy, Fabulation, Future 등의 다채로운 ‘F(frame)’가 열어 보이는 〈SF 보다〉의 독서 공간에서, 이번 여름에도 역시 독자들은 ‘낯선’ 경험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시작법

차호지 저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그렇게 쓰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어요”

공간의 가장 안쪽에서
집요한 시선으로만 포착되는
현실과 환상의 어름
약동하는 물음표로 가득한 너른 틈의 설계자
차호지 첫 시집 출간


2021년 제2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차호지의 첫 시집 『시작법』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05번으로 출간되었다. 총 4부로 나뉘어 묶인 51편의 시에는 “좁은 공간에서 혹은 한정된 시야로 혹은 제한된 관계 안에서 특정한 장면을 만들어내거나 사유를 확장해나가는”(심사평) 시인만의 개성적인 작법이 뚜렷하게 투영되어 있다.
차호지의 시에서 편편이 등장하는 공간은 사면의 벽과 천장과 바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상자’(「설계자」)나 ‘방’(「소음」)과 같은 육면체의 형태는 물론 ‘열차’(「열차」), ‘천변’(「저글링」), ‘공중’(「공중」)까지 아우른다. 둘레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이러한 공간들이 전면적으로 막혀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까닭은 시 속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놓일 장소를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꾸린 공간은 “창문이 완전히 없”는 경우가 “좀처럼 없”(「바퀴의 왕」)기에 바깥의 공기가 선선히 들어올 수 있고,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도 “바람은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 나”(「아쿠아플라넷에서」)가고는 하며, 환상은 그 바람을 타고 현실 속으로 자유롭게 틈입한다.
이때 벽을 상상하며 직접 세우는 일은 폐쇄를 더 견고하게 할 뿐인가? 아니면 세워진 벽을 언제든 부정하고 허물 수 있다는 점에서 잠정적인 탈출과 맞닿아 있는가? 시 속 설계자들이 그들이 직조한 공간을 좀체 벗어나지 않기에 이러한 의문은 특히 커진다. 공간의 바깥을 “밟는다고 해서 갑자기 어딘가로 떨어지지는 않을”(「산책」) 테지만, 이들은 폐쇄된 공간 안쪽에 들어앉아 충실하게 잔류한다.
확언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이러한 머묾이 정해진 질서를 충실하게 감각함으로써 그것을 따르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치열한 태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완전한 허공에 붕 떠서 살아갈 수는 없다. “점점 더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라도, “더는 올라갈 높은 건물이 없어 가장 높은 건물 위에서 제자리 뛰기 하”여도 그곳에조차 천장이 있다. 그러므로 머리에 닿는 것이 천국이 아닌 천장임을 알면서도, “엉엉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파도 “천장에 머리를 자꾸만 부딪”(「공중」)치는 일은 유의미한 시도로 읽힌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아쿠아플라넷에서」)는 법이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형상에는
눈길이 가게 마련이었다”
─시작, 법(始作, 法): 움직임에 몰두하며 시작하기


열차는 만석이고 창가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나란히 한 방향으로 앉아 있다. 사람들은 거의 창밖을 보고 있다. 바깥을 보는 것이 좋아서라기보다 움직이는 것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 열차가 순환한다면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움직이는 바깥 풍경을 보다가 아까와 비슷한 풍경을 발견하고 그제야 이곳이 아까 보았던 풍경과 같은지 지도로부터 확인하여 그것의 맞고 틀림을 가늠하는 놀이에 온 하루를 다 썼을지도 모른다. 열차가 정차하고 다시 출발할 때마다 천장에서 무수히 발소리가 들렸다. 플랫폼에서 보았던 얼굴들은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다시 기억나지 않았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열차에 앉아 있으면 나도 다시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열차」 부분

공간 안팎의 움직임을 분주하게 좇는 시선이 함께하기에, 단순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사방이 에워져 있음에도 차호지의 시는 결코 정적이지 않다. 마치 “움직이는 아기 새 모양 모빌이 그리는 원 모양에 마음을 빼앗겨서 줄곧 움직이는 아기 새 모양 모빌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모빌)는 것처럼, 저글링을 하는 누군가가 공을 놓쳤을 때 “아까 그 자세로 가만히 멈춰 있는 그” 대신 “세 개의 공이 어디로 향하는지 쳐다보게”(「저글링」) 되는 것처럼, 움직임에는 이목을 잡아끄는 힘이 있고 시인은 기꺼이 “움직이는 것에 시선을 빼앗”(「열차」)긴다. 움직임마다 바싹 따라붙는 특유의 눈길은 얼핏 고요한 듯 보이는 일상의 장면에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밀도 높은 관찰은 풍경의 디테일을 선명하게 만들어 찰나의 사소한 미동에도 생경한 느낌을 불어넣고, 이에 시인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고 있으면 왜 저건 움직이고 있을까”(「바퀴의 왕」) 자문한다. “이제 다 썼고 더는 쓸 게 없다고 생각하는 때에”도 사물들은 “꼭 다시 움찔거”(커튼)리기에 이 물음은 끝날 수 없고, 움직임이 계속되는 이상 “사물이 사물이었던 시대”(「돌」)는 저물게 되며, “말을 하면” “움직이는 사람이”(「제자리」) 되게 마련이므로 시인은 외부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관찰자의 자리에서 나아가 스스로 시적 움직임의 주체가 된다. 차호지의 시 쓰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해를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이 아주 많을 때 그 말은 떠오른다”
─시, 작법(詩, 作法): 틈새에서 질문하며 쓰기


나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면 여기 있는 문장을 읽을 때 눈동자가 움직이는 속도. 다음, 다음으로.

[……]

나는 천천히 말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은 움직이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을 쫓고 있다. 그건 이미 내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걷는 나의 뒤쪽에서 앞서 걷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등을 보면서

모르겠어?

[……]

나는 열린 문을 닫으면서 거울을 본다. 보고 싶지 않아도 거기에 거울이 있다. 나는 거울에 없었는데 잠시 후에 생겨났다.

등을 돌려서 등을 보지는 못하는데도

어째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시차」 부분

세계를 끈덕지게 관찰하는 일, 그리고 이것으로 시를 쓰는 일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발생한다. 응시의 앞에는 그보다 선행하는 움직임이, 창작의 앞에는 그보다 선행하는 골몰이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나중이 되어서야” “그런 말을 했었구나 하고 뒤늦게 그랬었구나 생각하”(「산책」)는 것처럼, 어떤 순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그 순간을 글자로 옮겨 적을 수 있다. 차호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차를 작법의 도구로 활용한다.
시차를 인지하고 씀으로써 더 한껏 벌어지는 시간과 시간 사이의 틈은 또 다른 틈에 대한 인식으로 흐른다. 꽉 닫혀 있는 듯한 공간에도 언제나 문이 있음을, 그리고 문은 무언가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틈임을 새삼스럽게 환기한다. 그렇게 시인은 시적 공간의 가장 안쪽에 있으면서도 바깥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로 힘껏 끌어오며, 그 갈피마다 끼어드는 의문을 문 너머의 독자와 공유한다. 당신의 좌표는 현실과 환상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당신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하며 쓰는 일은 결국 안과 밖이 맞닿아 생기는 어름을 어루만져보는 행위이고, 이는 곧 틈새의 폭을 가늠하며 수많은 가능성의 공간을 설계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홍성희가 짚고 있듯 “말의 힘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과 말 사이에 놓여 있”고, “이야기가 무언가를 움직이게 한다면 그 힘은 그것이 그려낸 닫힌 세계의 내용만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하나의 이야기,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동시에 만들어지는 ‘사이’들에 있을 것이다”.

[……] 자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묻는 소리가 또 들렸다. 나는 안쪽에 있었다. 그 사람은 바깥에 있었다. 너는 어디야? 나는 목소리를 내보았다. 답은 없었다. 나는 닫혀 있는 문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문은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가까이 가자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거기서 찬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다시 완전히 닫았다. 닫았다가 열었다가 해보았다.
-「어디야?」 부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김화진 저 / 6,500원 / 북다
 
북다의 첫 번째 단편소설 시리즈
로맨스 서사의 무한한 확장, ‘달달북다’

『나주에 대하여』 『동경』 김화진 작가
신작 로맨스 단편소설과 작업 일기


북다의 첫 번째 단편소설 시리즈
로맨스 서사의 무한한 확장, ‘달달북다’


북다의 첫 번째 단편소설 시리즈 ‘달달북다’가 출간되었다. ‘달달북다’ 시리즈는 지금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12인의 신작 로맨스 단편소설과 작업 일기를 키워드별(로맨스×칙릿, 로맨스×퀴어, 로맨스×하이틴, 로맨스×비일상)로 나누어 매달 1권씩, 총 12권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랑’의 모양은 늘 위태로울 만큼 다양하며, 그것과 관계 맺는 우리의 자리 역시 매 순간 다르게 아름답다. 여기에 동의하는 이에게 새로운 로맨스 서사의 등장은 여전한 기쁨일 것이다. ‘달달북다’는 로맨스의 무한한 변신과 확장을 위해 마련된 무대다.

『나주에 대하여』 『동경』 김화진 작가
신작 로맨스 단편소설과 작업 일기


‘달달북다’의 첫 번째 작품은 김화진 작가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이다.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화진 작가는, 등단 만 2년 만에 소설집을 출간하며 화제를 끌었다. 최근 첫 장편소설 『동경』(문학동네, 2024)을 통해 작가만의 밀도 있는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 정진하고 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그리는 재능을 가진 작가는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타인이 되어보는 마음을 담아 소설을 쓰고 있다. 또한 제47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생생한 인물, 동시대와 호흡하는 감각으로 자신만의 매력과 세계를 쌓아나가며 독자들의 공감과 팬덤을 만들고 있다.

매일의 권태와 싸우는 ‘회사원1’
일과 사랑, 두 세계에 닿기 위한 오롯한 산책


김화진 작가는 이번 작품,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통해 ‘하루하루 꿋꿋하게 살아가는 직장인의 일과 사랑’, 로맨스×칙릿을 키워드로 달달하고 쌉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모림’은 일에도 사랑에도 미지근해진 ‘회사원1’로 3개월간 한 권의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모림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민음사, 2000)다. 『팔뤼드』의 주인공이 쓰는 글의 주인공 이름은 ‘티튀루스’. 모림은 출근길에 우연히 들른 떡집에서 만난 한 남자를 티튀루스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내가 그를 티튀루스라고 부른 적이 있다는 걸 그는 모른다. 나 혼자서 불렀으니까.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아서, 이름을 부르면 너무 가까우니까, 이 정도 멀리서 생각하는 게 좋아서 나는 그를 티튀루스라고 칭했다. (9쪽)

떡집 남자와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계기는 저녁 공원 산책이다. ‘약밥이’라는 이름의 귀여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찬영’은 부모님의 떡집에서 일하지만 머리를 드라이할 줄 알며 힙합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이다. 공원에서의 만남과 떡집에서의 만남이 교차되며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고, 모림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 듯 말 듯 넘지 않는 찬영과의 관계에 대해 고심한다. “나는 진짜 네가…… 좀 구실을 하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친구 ‘성아’의 말에도 모림은 자꾸만 찬영 쪽으로 기운다.

“물음표 모양을 한 화살표”가 그 남자를 향할 때
한여름의 떡집 로맨스가 시작된다!


나는 큰 얼음에서 쪼개져 떠내려가는,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작아지는 얼음 조각에 탄 무리에서 가장 아둔한 펭귄 같다. (……) 다른 얼음 조각에 닿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얼음을 꼭 붙여, 녹았다가 얼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조랭이떡 같은 모양으로 붙어 넓어진 얼음 위에서 누군가와 함께 흘러가면 좋으련만. (54쪽)

직장인으로서 매일의 권태와 싸우는 모림은 “책임감을 가지”라는 팀장의 말에 회사에서 의욕을 갖는 일이 인생에 정말 중요한 일인지, 사실 진짜 중요한 일은 따로 있지 않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찾아온 운이 좋지 않을 정도로 나쁜 생리통. 모림은 이제 그만 찬영과의 관계 정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에 이른다. 과연 떡집 남자와의 로맨스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김화진 작가는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각자의 매력을 가진 생기 있는 캐릭터들을 그려냈다. 일과 사랑, 모든 것에 큰 열정은 없지만 자신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려는 주인공 모림부터 발랄하고 산뜻한 매력을 가진 스물여덟의 떡집 남자 찬영, 모림과 달리 일과 사랑 모두에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성아, 귀여운 연갈색 강아지 약밥이까지. 각각의 캐릭터들은 우리들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더 현실적인 연애가 된 요즘,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동네 떡집을 오가다 만나는 더 판타지적이면서도 더없이 솔직하고 맑은 사랑을 마주할 수 있다. 작가가 소설을 쓰며 고민한 것들, 고려한 것들, 소설에 담아낸 것들 그리고 담지 않은 것들은 작업 일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달달북다’는 12명의 젊은 작가가 로맨스×칙릿(김화진, 장진영, 한정현), 로맨스×퀴어(이희주, 김지연, 이선진), 로맨스×하이틴(백온유, 예소연, 함윤이), 로맨스×비일상(이유리, 권혜영, 이미상)의 테마를 경유해 각별한 로맨스 서사를 선사한다. 독자들은 오늘날 각기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다정한 학교

정혜영 저 / 16,000원 / 책소유

“꿈과 배움이 자라는 곳,
서로에게 더 상냥한 학교가 될 순 없을까?”

너무 일찍 져버린 후배 교사를 생각하며 써내려간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작가 정혜영의 교육 에세이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가 악성민원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의 49재를 앞둔 주말, 전국의 교사 30만 명이 여의도 국회 앞에 검은 옷을 입고 나와 ‘사건의 진상 규명’과 ‘공교육 정상화’를 목 놓아 외쳤다. 그동안 ‘나 혼자만 참으면 되겠지.’라며 각종 부당한 처사에도 참아온 교사들의 울분이 한꺼번에 터진 순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2023년 브런치북 대상 수상자이자 2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온 정혜영 작가는 『어쩌면 다정한 학교』를 출간했다. 훌륭한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더 나은 공교육을 위해 힘을 보태고자 그동안 학교에 관해 써온 글들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이때다 싶어 ‘교사 대 학부모’ 구도로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과 여론을 지적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편 가르기가 아닌, 서로를 향한 이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다정한 학교』는 비난을 위한 날선 목소리보다는 학교를 사랑하는 중견교사의 따뜻한 시선을 유지한다.
저자는 학교의 일상 속에서 아이, 교사, 학부모가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서로 영향 받는지를 진솔하게 담았다. 이는 상대 입장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로써 서로 간에 생긴 균열을 메우고, 더 단단한 신뢰의 싹이 움트리라 기대한다.
1장 ‘내 무대의 주인공들’에서는 학교의 주인이자 존재 이유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자라고 각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지 생생히 담았다. 때론 엉뚱하고 때론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교사와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지켜줘야 하는지 되새기게 한다.
2장 ‘학부모님, 당신이 필요합니다’는 교사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한 축인 ‘학부모’들과의 따뜻했던 혹은 안타까웠던 일화들을 실었다. 학부모가 ‘학교 안의 부모’인 교사와 함께 어떻게 협력하고 신뢰를 다져야 하는지,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속내를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3장 ‘상냥한 학교, 다정한 온도’에서는 건강한 학교, 배움이 넘쳐나는 교실에 대한 교사로서의 고민과 희망을 얘기한다. 누구도 다치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같은 목표를 가진 ‘내 집단’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후로 일 년,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서이초 사건 후 일 년,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당시 교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며 교권 4법이 통과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긴 했지만, 교육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초등학생이 교감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가 하면, 교사가 찍어 올린 반 사진에 자신의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교사의 가족까지 협박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한국교총의 설문조사에서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택하겠다.’라는 응답은 10명 중 2명이 안 되는 19.7%를 기록했다. 대체 무엇이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자처한 이들을 이토록 학교 바깥으로 내모는 걸까?
미국의 교육자 존 듀이는 “학교란 사회생활을 준비시키는 곳이며, 사회생활의 전형적인 조건들을 축소시켜 재현하는 곳”이라고 했다. 즉, 학교에서의 배움이란 ‘교과 학습’도 포함하지만 다양한 사회적 경험들이야말로 본질적인 것이란 의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려와 양보, 경쟁과 승패, 좌절과 도전 등을 겪고 자기 나름의 답을 찾으며 사회 구성원이 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서로 결이 다른 다양한 아이들이 자연스레 어울리고 부딪힌다.
이때 학교는 아이들이 보다 안전하게 사회적 경험들을 연습하도록 울타리가 되어주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안심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그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사다. 『어쩌면 다정한 학교』에서는 그렇기에 교사란 아이들이라는 많은 소우주를 품어야 하는 너른 은하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학부모는 성장하는 자녀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이 응원은 비단 내 자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 및 교사에게도 향해야 한다. 그 누구든 학교 울타리 안을 침범하여 입맛대로 헤쳐 놓으면 아이들은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된다. 또 자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사나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함부로 감정을 쏟아낸다면 과연 학교가 본래 의미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책은 무너진 공교육을 세우기 위해 ‘다정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행복하고 안전한 곳이어야 할 학교에서 학생은 물론 이들의 나침반이 되어주어야 할 교사 역시도 안심하며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다정한 학교는 너무 당연해서
너무 쉽게 이뤄질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따르면, 우리는 나와 같은 집단 구성원에게는 친화력을 느끼는 반면 다른 집단이라 느끼는 이들에게는 ‘비인간화’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즉, 주변인에게는 한없이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 외부인에 대해서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하며 잔혹한 행동까지 저지른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여러 집단 갈등이 빚어지며 서로를 혐오하는 기저에도 이렇듯 이질 집단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어쩌면 다정한 학교』에서는 최근 각종 학부모의 악성 민원들, 교사와 학부모 간 반목의 배경에도 서로를 이질 집단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고 보았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의 조력자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다른 집단일 수 없다. 서로가 건강한 교실을 위해 협력하는 ‘한 집단’으로 여긴다면 예민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더 여유 있는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대부분이 옆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공교육 정상화의 날을 앞두고 반 아이들이 건네 온 현장체험학습 신청서에 큰 감동을 받았다. ‘지지’, ‘존중’, ‘행복한 교실’ 등의 말로 채워진 신청서에는 비단 교사뿐 아니라, 무너진 공교육을 더 건실히 일으키고픈 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교사는 올바르게 가르치고, 아이는 존중으로 배우며, 학부모는 믿음을 갖고 지지해야 한다. 너무 당연해서 어쩌면 너무 쉽게 이뤄질 다정하고 건강한 학교. 저자의 문장들이 곧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창비세계문학 98,99,100 『삶과 운명』

바실리 그로스만 저 / 최선 역 / 각 17,500원 / 창비

 
20세기의 어둠을 심판하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의 걸작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평범한 이들의 고귀한 친절과 강인한 희망

2차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 - 『뉴욕 타임스』
철저한 사실주의와 선구적인 도덕적 강렬함,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 업적 중 하나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전쟁의 혼란 속에 국가와 가족의 운명을 그려낸 서사적 걸작 - BBC Radio4
2차대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예리한 시선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전쟁과 이데올로기,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역작 『삶과 운명』(전3권)이 창비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2012년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세대를 넘나드는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들 다수를 펴내며 지평을 넓혀온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는 『삶과 운명』의 출간으로 100번을 맞이했다. 2차대전에서 1천일 넘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장편 『삶과 운명』은 전쟁 당시의 소련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체제와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긴 작품으로 이 작품이 국내에서 번역되길 오랫동안 기다렸던 많은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작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전쟁의 참극에서 전체주의 체제 자체와 이데올로기를 맹종하는 독일과 소련 사회 내부의 모순과 비리를 냉정하게 포착하며 두 국가의 근본적 동질성을 발견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삶과 운명』은 1959년 완성되었으나, 작품이 가진 반스딸린주의적 면모로 인해 당대 여러 작품들처럼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작가가 스딸린 사후 해빙 무드에 걸었던 기대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출간 불허 판정을 받고 당국에 압수되었고, 친지가 작품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밀반출해 1980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이래 지속적인 삭제와 수정을 거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이 출간된 이후 러시아에서는 뻬레스뜨로이까 이후 1989년에 출간될 수 있었다. 인간의 선함에 대한 치열한 논쟁 속에서 작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친절을 발견하고 긍정하는 과정은 전쟁의 비극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오늘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의 모든 것,
삶을 파괴하는 억압과 체제에 대한 치열한 보고


『삶과 운명』이 “2차대전 이후 쓰인 가장 인상적인 소설”(『뉴욕 타임스』)이라 불리며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이 작품이 지닌 총체성 덕분이다. 소설은 1942년 가을부터 1943년 봄까지 약 반년 동안을 배경으로 모스끄바에서 까잔으로 피난 온 물리학자 시뜨룸과 그 가족, 스딸린그라드 공방전,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를 세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여기서 전쟁은 하나가 아니다. 포탄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전선의 전쟁이 있고, 극한의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는 후방의 전쟁, 절멸이 기정사실인 수용소의 전쟁, 그리고 숙청 속에 당파성을 증명해야 하는 충성 전쟁이 있다. 작가는 후방의 시민과 전선의 병사, 수용소의 수감자부터 장군들, 히틀러와 스딸린 같은 수뇌부까지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인물을 소환하고 이 겹겹의 전쟁 속에 일어날 만한 모든 문제를 다룬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과 현실을 칼로 도려낸 듯 예리한 사실주의는 이 총체성을 거대한 벽화로 완성한다.
2차대전을 다룬 다른 작품과 『삶과 운명』을 구별 짓는 점 역시 이 치열한 사실주의와 객관적 시선에서 나온다. 소설은 익히 알려진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소련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와 흑색선전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붉은군대 내에서 병사들은 유대인을 조롱하고,(1권 245면) 시뜨룸의 연구소 내 모스끄바 귀환자 명단에서는 유대인만 누락된다.(2권 64면) 스딸린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따따르인, 깔미끄인, 체첸인, 발까르인 등 타 민족에 대한 편견을 자신의 통치 전략에 이용한다. “인민의 스딸린그라드 승리 10주년 기념일에 스딸린은 히틀러의 손에서 낚아챈 말살의 칼을 그들의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3권 62면) 또한 병사를 숫자로 환원해 희생에 아랑곳없이 무모한 진격을 명령하는 장군이나 이에 지혜롭게 맞서 전차 공격을 성공시킨 지휘관 노비꼬프가 명령 불복종으로 재판에 소환되는 상황, 백전노장인 견결한 공산주의자 끄리모프가 스딸린 치하 군 숙청의 일환으로 조작된 혐의를 받고 투옥되거나, 시뜨룸의 엄청난 수학적 발견을 무시하고 자아비판을 요구하던 연구소 동료들이 스딸린의 전화 한통에 돌변해 시뜨룸을 영웅 취급하는 상황 등은 당시 권력층의 비리와 함께 스딸린 치하 전체주의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차가운 시대의 절망 속에서 인간 본성이 발견해낸 소중한 가치

『삶과 운명』에서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 묘사는 3권 전체에 걸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수용소 울타리에서 시작하는 1권이 44장에서 포로수용소 소련 포로들의 생활을 정밀하게 그린다면, 2권 29장은 나치 장교 리스의 시선으로 절멸수용소의 가스실 설계와 건설 과정을 보여준다. 이 독일인 장교는 더 효율적인 ‘특별 구조물’(가스실) 건설을 점검하기 위해 떠났던 출장에 대해 “즐거웠다. 여행이 기분을 많이 풀어주었다.”(2권 241면)고 말한다. 소설은 수감자들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관리자, 병사 들의 내면 또한 재현한다. 점검창으로 가스실을 감시하는 독일 병사 로제는 몸부림치는 유대인들을 보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명백한 이득과 은밀한 이득 모두를 잘” 알았고 “히틀러 정치의 유익한 효과를 느꼈다. 그 또한 작은 인간, 약한 인간이었고, 이제 그와 가족의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하고 좋아졌으므로.”(2권 333면)
이 천박한 무감함이 전대미문의 폭력을 낳았지만, 리스는 열혈 공산주의자 포로 모스똡스꼬이 앞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당과 국가에 충성하는 “우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소! (…)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두 일당주의 국가요.”(2권 132면) 나치 장교의 입으로 두 전체주의 국가의 동질성을 말하는 2권 15장 전체는 작가가 유대 지식인으로서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내며 얻어낸 진실의 표현이다.

“삶은 곧 자유야. 삶의 기본 원칙은 자유야.”

체제를 수호하려 싸우는 이들과 함께 소설은 전쟁과 파시즘이 가하는 폭력 앞에 몸을 사리고, 친구를 배신하고, 작은 이익에 목매는 보통 사람들을 그린다. 이와 동시에, 같은 폭력과 고통 앞에서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선함을 보여준다. 군의관 소피야 오시뽀브나 레빈똔은 의사로서 이용가치가 있으니 살려주겠다는 나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수송열차에서 인연을 맺은 고아 다비드와 함께 가스실로 향한다. 학살을 앞두고 게토에 갇혀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침을 뱉는 상황에서도 애써 감자 한알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1권 18장) 우끄라이나 노파는 우연히 자신의 집에 기어든 죽기 직전의 포로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살펴 살려낸다.(2권 51장) 다른 언어를 쓰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도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들의 가차 없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2권 370면)
압도적 악의와 공포 속에서도 본능처럼 흘러나오는 이 선의는 『삶과 운명』이 작품 전체에 걸쳐 탐색하는 주제의 하나다. 포로수용소의 기인(奇人) 수감자 이꼰니꼬프는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는 인물로, 2권 16장의 기록은 그의 사회적, 종교적 선이 아닌 인간의 선에 대한 생각을 집약한다. “이것, 이 바보 같은 선의야말로 인간 속에 있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 아직 인간 속의 인간적인 것이 말살되지 않았다면, 악은 이미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삶과 운명』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무명의 세입자 부부는 이 끝내 부서지지 않는 작은 선의들 속에서 살아남은 누군가이다. 그들은 봄의 숲속에서 “삶의 맹렬한 기쁨”을 느낀다.(3권 404면)
바실리 그로스만은 작품의 전편을 이루는 1952년작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Za pravoe delo)와 1963년작 『모든 것은 흐른다』(Vsyo techyot)와 함께 『삶과 운명』을 통해 2차대전과 전체주의 사회의 실상을 속속들이 조명했다. 작가는 『삶과 운명』에서 총 3부 201장의 분량으로 다양한 인간상과 주제를 포괄하는 대서사를 완성하였지만, 지난한 출간 과정으로 인해 살아 생전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는 작품이 지닌 선구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출간 이후 『삶과 운명』은 연극과 TV 드라마 시리즈 등으로 각색되며 작품성을 더욱 널리 알렸다.
뿌시낀 문학의 권위자 최선(고려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은 최신판인 2017년 러시아어본을 저본으로 원작의 사실적인 문체와 깊은 통찰을 치밀하고 섬세한 번역으로 살려냈다. 2차대전을 조명한 무수한 문학작품과 러시아문학의 전통 가운데서 『삶과 운명』이 가지는 독보적 의미와 작품이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환기하는 새로움을 풍성하게 짚은 「작품해설」은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더한다.

∥ 작품해설에서
2차대전을 사실주의적이고 예리하게 파헤친 이 소설이 스딸린 사후 1960년대 소련의 해빙 무드에도 불구하고 출판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이 소설이 소련 체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국이 금기시하는 제반 문제를 다루었고 전시 소련 장성들 및 정치가들의 비리는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전쟁의 실상을 그대로 그리며 소련이 내세우는 애국전쟁을 포함해 전쟁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 이 소설은 소련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색, 러시아 문학·미술·학문·무기·전투 상황, 나치 독일의 포로수용소 및 유대인 수용소, 유대인 절멸을 위한 가스실, 스딸린 시대의 숙청 및 소련의 노동교화수용소를 자세히 보여주며, 히틀러와 스딸린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에 굴종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부터 히틀러와 스딸린의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 이 소설에서 그로스만은 인간의 승리는 모든 거대한 것, 추상적인 것을 이기는 구체적인 것, 개인적인 것에 있으며, 집단주의 및 획일화, 편견, 오만, 악의, 폭력, 전쟁의 대척점에 개인주의 및 다양성, 공감, 배려, 선의, 비폭력, 평화가 자리하고, 절망, 체념, 증오, 죽음, 부자유의 반대편에 희망, 저항, 사랑, 삶, 자유가 자리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설득해냈다. 최선
 

노플라잇 세계여행

조진서 저 / 22,000원 / 리토스

 
- 여행의 속도를 바꿨더니 보이는 풍경도 달라졌다
- 인류문명의 폭과 깊이를 느끼며 달린 3만 킬로미터의 여정
- 역사덕후 저널리스트의 현실 밀착 여행기
“나는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있어. 비행기를 타지 않는 ‘노플라잇(no-flight)’ 세계여행이야.”
“왜? 지구온난화나 환경 문제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않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는 그냥 천천히 여행하면서 이 지구가 얼마나 큰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어. 또 육로로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종과 문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보고 싶었어.”
-프롤로그 중

저자는 인천에서 페리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거쳐 크루즈로 대서양을 건넌 후 미국 시애틀까지 111일간 여행한다.

기차와 배와 자동차로 이동하며 본 세상은 어떻게 달랐을까. 비행기를 타면 어디든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시대에 ‘노플라잇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까.

저자는 가까운 제주도나 일본이라도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다녀와 보길 권한다. 무지개 스펙트럼처럼 서서히 변하는 풍경과 사람들이 인생과 닮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비행기 여행처럼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단 한번에 사원에서 CEO로 승진하거나 단 한 순간에 무일푼에서 부자로 점프하기 어렵고, 한 번에 20세에서 40세로 나이들지도 않는다.

스스로 경로를 찾아가며 한 발씩 나아간 이 여행은 한번 시작하면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재미와 함께 우리 안의 여러 편견들을 뒤흔든다. 때로는 ‘번 아웃’을 의심하며, ‘나다운 삶’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지리적 탐구심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의 기록”

〈노플라잇 세계여행〉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을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도 보고 싶다”는 지리적 탐구심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의 기록이다.
여행의 동기는 2008년 저자가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가면서 일부 여정(중국-파키스탄)을 육로로 여행해 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무심코 해보았던 ‘육로로 국경 넘기’는 평생 반도에서 살아온 한국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22년에는 미국(LA-시카고)을 자동차로 여행했다.
두 번의 장거리 육로여행을 노플라잇 세계여행이라는 도전으로 이어준 건 대서양 횡단 크루즈였다. 직장생활에 지치고 건강에도 이상이 온다 싶었던 2023년 가을, 저자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을 다시 떠올리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크루즈 노선을 찾게 된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시도한 ‘노플라잇’ 여행에서 저자는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모험가의 열정과 저널리스트의 식견으로 조망한 여행의 일곱 장면을 소개한다.

1. 마르코 폴로의 여정을 따라 역사와 문명을 보다
중국 항저우에서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으며 서호를 둘러본다. 800년 전 폴로가 기록한 서호 풍경이 오늘의 서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폴로의 여정과 저자의 여정이 겹치는 우연도 놀랍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흥망성쇠를 떠올리고, 미국 횡단은 루이스와 클락 탐험대의 서부개척 루트를 따라간다. 마틴 루서 킹 기념관과 지미 카터 센터에서는 ‘흑인의 미국’과 ‘백인의 미국’을 본다.

2. 중앙아시아 국경넘기와 러시아 환전 대소동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를 거쳐 조지아까지. 모든 국경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저자는 고생 끝에 국경을 넘는 기차나 버스 노선을 찾아내고, 대중교통이 없는 곳은 공유 자동차 앱으로 자가용 택시를 구해 이동한다. 한 명 뿐인 관광객을 서로 태우려는 수십 명의 택시 기사들 사이에 내던져져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ATM기계에서 현금 인출이 되지 않고, 달러를 루블화로 환전해 주지도 않는다. 물 한 모금 사 마실 수 없는 위기에 처하면서 전쟁과 경제제재의 여파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눈물의 환전소동’을 겪고 기차에서 언어와 민족이 뒤섞인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자는 국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 하나의 이해관계가 당연한 한국이 무척 예외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3.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다 : 51시간 장거리 기차와 러시아산 항생제
중국과 중앙아시아 대륙은 주로 기차로 이동했다. 체력은 자신 있지만 장거리 이동에는 언제나 변수가 따른다. 중국에서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에 걸린 채 33시간짜리 장거리 기차를 타야했고,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러시아 볼고그라드 구간은 난방이 고장나 얼어죽을 것 같은 기차로 51시간이나 걸렸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증상은 러시아산 항생제를 ‘실수로’ 과다 복용하고 단번에 나았다.

4. 재미있는 나라 그리스, 살아보고 싶은 나라 이탈리아
몰려오는 난민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어수선한데 힙한 나라 그리스. 그래서 친구하고 싶은 나라, 땅이 아니라 바다(에게해)까지 영토라고 생각하는 진정한 해양민족의 나라. 그리스는 저자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나라 중 하나다. 로도스 섬에서 크루즈선에 타는 일이 〈노플라잇 세계여행〉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 외관상으로는 관광객들과 구분되지 않는 난민들이 배에 타는 걸 막으려는 해운당국과, 어떻게든 타려는 난민들 사이에서 하마터면 배를 놓칠 뻔 한 것.
저자는 한국을 제외하고 살아보고 싶은 나라로는 이탈리아를 꼽았다. “이탈리에선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중요하고 특별한 일이더라고요. 사람들도 귀엽고. 그런 곳이 좋아져요”

5. 대서양 횡단 크루즈 ‘니우스테이든담’ 호를 타다
3,000명의 승객과 1,000명의 선원을 태우는 초대형 크루즈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크루즈 탑승을 손꼽아 기다린다. 육로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모처럼 푹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크루즈 시설과 매일 제공되는 식사를 즐기면서 먹고 자고 놀기만 하면 되는 곳, 그래서 ‘크루즈 아기’가 될 수 있는 곳. ‘싱글 나잇’에는 할어버지들을 먼저 보낸 할머니 싱글들이 나오시는 그 곳. 하지만 할머니와 농구게임을 했다가 대패하는 굴욕을 겪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명 병사들을 수송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하루 세 끼 잘 먹이고 재웠다는 자부심 넘치는 선박회사의 강연에서는 ‘업의 본질’을 배운다.

6. 스페이스X 로켓, 그랜드 올 올프리 쇼, 델타 핵미사일 기지
중국과 실크로드를 거쳐 크레타섬의 미케네 문명을 봤으니 미국에서는 미래 문명의 열쇠가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로 간다. 스페이스X 로켓발사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기술 문제로 발사가 한번 취소된 후 언제 발사될지 기약이 없었지만 저자는 일론 머스크 전기를 읽으며 인내심있게 기다려 마침내 팔콘9 발사 장면을 지켜본다.

“징기스칸이 기마병을 이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시절에 그의 군대에는 300만 마리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즉 원나라는 300만 마력馬力의 힘을 운용하던 제국이었다. 미국 정부가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를 띄우기 위해 사용한 로켓은 3700만 마력이었다고 한다. 또 일론 머스크가 준비 중인 대형 우주선 스타십은 4000만 마력 이상이며 이는 현재 전 지구에 있는 말들의 70퍼센트에 해당하는 힘이라고 한다. 에너지의 사용량으로 권력의 힘을 측정한다면, 일론 머스크 한 명의 권력이 징기스칸의 10배 이상 커진 셈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은 우리를 뜻밖의 장소로도 데려간다. 그중 하나는 테네시주 네슈빌에 있는 컨트리 음악 공연장 그랜드 올 올프리 쇼. 명곡 ‘도박사(The Gambler)’를 만든 돈 슐리츠가 직접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저자는 “지금 내 인생이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남과 비교하며 살 필요는 없다. 인생의 결산은 죽을때나 하는 것”이라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게임을 할 거면 제대로 배워야 해, 꼬마야
카드를 잡고 있어야 할 때를 알고, 카드를 접어야 할 때를 알고,
일어나야 할 때를 알고, 튀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해
테이블에 앉아서는 절대 돈을 세면 안 돼
모든 딜이 끝난 후에 돈을 셀 시간이 충분히 있어“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찾은 여행지도 있었다. 냉전시대 미국의 핵미사일 발사 기지였던 델타 핵미사일 저장소(Delta Missile Site). 놀랍게도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 지하10미터 벙커로 내려가면 두께가 1미터는 될 것처럼 생긴 철문안에 관제실이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열지도 못하는 철문에는 도미노 피자 박스에 미사일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전 세계 어디든 30분 안에 배달. 아니면 다음 배달은 무료”라고 적혀있다.

7 ‘스몰타운 아메리카’와 한국의 흔적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실업으로 신음하던 가난한 마을 웨스트 포인트에 자동차 공장을 열어 현지 깊숙이 스며든 우리나라 기아차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일자리가 생긴 것을 기뻐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마을에 기아를 보내주셔서(Thank you Jesus for bringing Kia to our town)”라는 팻말을 세웠다고 한다.

미국의 시골마을들을 지나다 보면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의 흔적도 여럿 만나게 된다. 네브라스카 주의 작은 마을, ‘부러진 활(Broken Bow)’ 마을 광장에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청년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고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가서 말하라. 우리가 복무했고 죽었기에 너희들이 자유롭다고”
(GO AND TELL THE PEOPLE THAT WE SERVED AND DIED. SO YOU MIGHT BE FREE)

여행의 종착지인 시애틀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묵은 마을 오로피노 입구에 걸린 팻말은 미국의 작은 마을들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작은 미국 마을을 응원해줘서 고맙습니다”
(Thank you for supporting small town America)

‘스몰타운 아메리카’들을 지나는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전기차들이 도로에 하나 둘 씩 나타나는 걸 보면서 저자는 여행의 종착지인 시애틀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권선희 저 / 10,000원 / 창비


“고비마다 절창의 음절 타고 넘었다.
죽자고 살아낸 평생이 한마리 고래였다.”

목숨과 목숨을 이으며 힘차게 헤엄치는 시의 몸짓
살아 숨 쉬는 물의 언어로 그려낸 속 깊은 사연들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20여년간 줄곧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곡절하게 노래해온 권선희 시인의 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구룡포로 간다』(애지 2007), 『꽃마차는 울며 간다』(애지 2017)에 이은 세 번째 ‘구룡포’ 연작 시집이라 해도 좋을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말”(장은영, 해설)을 꼼꼼히 받아 적으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신산한 생활을 질박하고 구성진 경상도 사투리에 해학을 곁들여 들려준다. 아득한 “인생 저편의 말들”을 갯비린내 물씬한 날것의 언어로 되살려 “우리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이해와 우애와 연대와 사랑의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까지 일깨워주는 주술 같은 시들”(송경동, 추천사)이 뭉클한 공감을 자아낸다.

“둘러앉아 훌훌 불며 서로 눈빛을 떠먹습니다”
한편의 시가 된 삶, 사람, 마을

시집을 펼치면 바닷가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목욕탕 구석 장판 깔린 간이침대가 일터”인 “날 때부터 굽은 등 숙여” 밥벌이하는 ‘화자씨’(「첫눈」), 살인 누명을 쓰고 “소년원부터 12년을 살다” 나온 뒤 “개명하고 항구 옮기며” 사는 ‘관수씨’(「누명」), “세상에 오는 일도 숩지는 않고 죽자고 살아내는 일도 만만찮지만 돌아가는 거는 참말로 디요” 한탄하면서도 병든 영감의 마지막 삶을 “우짜든동 내 손으로 치와드려야 도리지 싶아가 침 맞으러” 왔다는 할머니(「말년」), 이제 좀 “살 만한 시절”이 오는가 싶었는데 “부모 대신 업어 키운 동생 칼”에 맥없이 세상을 떠난 ‘만석씨’(「웃는 사람」), “죄라고는 오징어 잡아 살겠다꼬 배 탄 것뿐인데” 납북됐다가 돌아온 뒤 간첩으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는 바람에 “씨뻘건 부아”가 일어 “이후로 내는 오징어 절대 안 먹니더”라는 어부(「오징어가 꼴도 보기 싫은 이유」)까지. 범속하고 다채로운 삶의 풍경이 눈앞에 또렷하게 펼쳐지며 구룡포의 매 순간이, 온갖 희로애락이 시의 형태로 보존된다.
이때 시인은 삶과 죽음,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두 세계를 매개하는 샤먼의 역할을 맡는다. 희미하고 낮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삶이 위태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시에 담아 “물고 뜯고 눈물 찍던 사연”(「서로」)의 “참 깊고 어두운 속내”(「간독」)를 풀어놓는 것이다. 개중에는 “가라앉는 삶을 떠받치며”(「물의 말」) 죽은 목숨 살려내는 말도 있고, 밥을 담보로 “죽어라 일만” 시키는 “거침없이 혹독한 말”(「평화라는 시장에서」)도 있다. “긴 사랑을 물고”서 “발긋하게 피는 말”(「해봉사 목백일홍」)에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은 “돌담 긋고 허물며 살아온 세월”(「문상」) 속에서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을 굿판을 벌이듯 하나하나 풀어놓다가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징」) 눈물을 적시기도 한다.

시를 쓰는 일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말”을 듣고 응답하는 일이라는 듯 시인은 바다를 배경으로 “물것으로 사는” 존재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위태롭게 살아온 날들”(「용왕밥」)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그리고 “목숨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것들이 목숨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채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살자고 하는 짓이」)이라고 선언한다. 생명 경시 풍조와 인간중심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의 세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존재의 죽음에 합당한 애도와 배웅의 태도를 보여야 함을, 그것이 마땅한 도리임을 말하는 것이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제나 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말을 경청하며 어디선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닐며 “살아래이/살 거래이”라고 삶을 북돋는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물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마을 골목골목에 걸려 있는 “고만고만한 살림”과 “고만고만한 사연들”(「문상」)을 소담한 시로 기록해나갈 것이다. ‘바닷가 부족이 달아준 입으로 노래’(시인의 말)하는 그의 시가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자맥질하는 이유다.










출판사의 첫 책
송현정 저 / 18,000원 / 핌

출판을 꿈꾼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많이들 궁금해했던” 바로 그 이야기!
동화에세이 『어쩌면 너의 이야기』 송현정 작가가 전하는
출판사 열 곳의 첫 책을 통한 출판 이야기
이 책은 책에 대한 그리고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사랑 이야기이다.

송현정 작가의 《출판사의 첫 책》은 ‘이들은 왜 출판사를 차렸나?’, ‘왜 이 책을 첫 책으로 기획했나?’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최근 5년 동안 출판사를 창업한 대표 10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 책은 총 2개의 part로 이루어져 있다.
〈PART 1. 열정과 신념으로 뛰어든 출판이라는 세계〉에서는 출판업에 새롭게 뛰어든 출판사 5곳을 소개하고, 이들의 열정과 신념, 좌충우돌 출판기를 듣는다.
°프랑스 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레모’의 윤석헌 대표가 소개하는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편집자 김윤우, 지다율, 디자이너 기경란이 함께하는 ‘출판 공동체 편않’의 『격자시공: 편않, 4년의 기록』,
°딸세포 편집자가 전하는 여성의 이야기 ’딸세포‘ 김은화 대표의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출판사 핌‘의 맹수현 대표가 전하는 『어쩌면 너의 이야기』,
°바다 환경문제 전문 출판사 ’한바랄‘의 물도깨비, 서서재 대표의 『우리가 바다에 버린 모든 것』 이 첫 책으로 소개된다.

〈PART 2. 독립을 선언한 베테랑 편집자들〉에서는 출판계에 오래 몸담은 후 독립을 선언한 스타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문학과 여성 서사에 진심인 ’돌고래‘의 김희진 대표가 들려주는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부터
°임프린트의 롤 모델로 최근 주식회사 ’이야기장수‘를 설립한 이연실 대표의 『전쟁일기』,
°경쟁력을 갖춘 그림책 편집자 신혜영 대표가 독립하여 세운 ’호랑이꿈‘의 『마씨 할머니의 달꿀 송편』,
°과학 서적에 깃든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에디토리얼‘ 최지영 대표의 『치료탑 행성』
°단단한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골든래빗‘의 최현우 대표의 『Tucker의 Go 언어 프로그래밍』을 통해 첫 책 소개와 함께 출판에 대한 실질적이고 실용적이고 팁들을 가감 없이 쏟아낸다.

각 챕터 마지막에는 [출판사 & 도서 정보], [보도자료를 통해 본 첫 책 소개], [인터뷰이 소개]가 실려 있어 첫 책과 출판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출판사의 첫 책》은 업계의 든든한 선배이자 롤 모델인 베테랑 출판인부터 신생 출판사 대표가 전하는 솔직한 출판 이야기를 두루 담았다.
이들의 이상과 꿈, 현실적 조언, 미래에 대한 비전들이 인터뷰 곳곳에 담겨 있어 일반 독자라면 출판 분야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재미를, 출판을 꿈꾸고 있거나 출판사를 차릴 운명과 마주한 누군가에게는 청사진을 제공할 수 있는, 출판업에 관한 재미와 팁이 가득한 실용적인 인문·사회과학서이다.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노무라 도시아키 저 / 송경원 역 / 16,800원 / 지금이책

“나는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치료와 형벌, 보호와 격리, 피해와 가해 그 경계에 얽힌 이야기
소년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산만하고 참을성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고 교실 뒤편에서 야구를 한다며 갖은 소란을 떨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일이 소년에게는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 소년이 커서 정신과 의사가 됐다. 그것도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그리고 의료소년원에서의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알게 됐다. 극도로 산만하고 충동적이었던 자신이 실은 ADHD, 즉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였다는 사실을.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치료와 형벌 사이에서 생각한 것들》을 펴낸 정신과 전문의 노무라 도시아키의 이야기다.
일본 니혼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노무라 도시아키는 다수의 교정시설에서 20년 이상을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 2020년에 니혼의과대학 의료심리학교실 교수직를 끝으로 정년 퇴임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는 수십 년을 교정시설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쉼 없이 달려온 한 정신과 의사의 회고록이자 교도소 정신과 의사로서 마주한 범죄와 질병, 교정과 치료, 격리와 보호, 가해와 피해 그 경계에 얽힌 이야기이다.

“교정시설 수감자 중에는 참으로 불운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의료소년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내 인생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가 달라졌다면, 나 역시 소년원에 들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267쪽)


빛이 닿지 않는 담장 너머의 세상,
교도소 정신과 의사가 그려낸 또 하나의 의료현장
교도소나 구치소, 소년원 등의 교정시설 수감자 중에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법을 어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감시설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불안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이미 ‘몸의 구속’과 함께 ‘마음의 감옥’에 갇힌 자들이다. 그러나 법의 현실은 이들의 치료를 가로막아왔다.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섭식장애가 절도로까지 이어진 소녀, 의지할 곳 없어 좀도둑질을 반복하며 교도소와 바깥세상을 오가는 노인, 심한 정신질환으로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해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구치소에 계속 구금된 남성 등등 정신과 의사로서 교정시설에서 온갖 인생을 만나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담장 너머 또 하나의 의료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우리가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그늘진 이면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준다.

“‘교도소’라는 단어를 책 제목에 쓴 이유는 교도소로 대표되는 교정시설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우리의 일상과 격리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된 점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교도소’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부분,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교도소라는 말은 일종의 은유인 셈이다.”(8~9쪽)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범죄자란 낙인이 아닌,
안정된 의식주 제공과 끈기 있고 꾸준한 지지
출소를 코앞에 두고 극도의 불안과 흥분으로 발작을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유흥업소를 출입하며 온갖 비행을 일삼아 소년원에까지 왔지만, 소녀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오빠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가족으로부터의 학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소녀는 출소 후 집이 아닌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마음이 충분하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소년원을 나간 소녀는 결국 보호시설에서 도망쳤다…….
저자가 부임한 의료소년원에는 이처럼 가족에게 성적 학대를 받고 불안증에 시달리는 소녀도 있고, 아버지의 잦은 폭력으로 인해 자신도 또래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다 소년원에 들어온 소년도 있었다. 각성제 남용 후유증으로 시설에 들어온 아이들도 많다. 불량 청소년들에 의해 억지로 환각물질을 들이마시고 억울하게 들어온 소년에서부터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고 일찍부터 각성제에 손을 댄 소녀까지 저자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이들을 숱하게 목격해왔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경우 ‘증상’보다 어쩌다 환각제에 손을 대게 되었는지 ‘사건’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솔직히 소년원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약을 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종종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지만, 부모와 가정의 문제만으로 청소년 비행과 범죄가 생기는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소년원 내 아이들의 많은 가족이 가난하고 갈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이들에게 필요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복지적 배려와 꾸준한 지지”임을 강조한다.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면 대체로 그 기능도 축소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육아나 간병 등의 돌봄 기능이 축소 및 상실되고 있는 한 사회 즉, 복지나 의료가 그것을 보완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는 갈 곳이 없어진다. 그런데 최근 10~20년 사이에 강조되어 온 것은 개인과 가족의 ‘자기책임’이며, 사회복지나 공공의료 또한 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듯하다. 가족 속에 있어도 자신이 있을 곳이 없고, 의료나 복지로부터도 ‘밀려난 사람들’이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을 자신의 있을 곳으로 여긴다면, 그 누가 이 사회를 살기 좋고 풍요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80쪽)


교도소 내 고령화도 심각
'교도소 밖'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교도소'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의 남성이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던 아내를 살해한 죄로 수감되었다. 수년간의 간병 생활이 불러온 비극이다. 이 남성 역시 경증이기는 해도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러니까 치매를 앓는 아내를 보살피던 남편 역시 치매에 걸렸고, 이에 앞날을 비관하여 소위 ‘동반 자살’을 꾀했으나 자신만 살아남아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이 노인은 자기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이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과연 이 형벌이 의미가 있을까.

“노인 수감자 중에는 절도나 무전취식 같은 경범죄뿐만 아니라 살인, 살인미수, 상해치사 등 중대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생을 범법행위와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나이 들어 처음으로 그런 중대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관심이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 가족을 상대로 한 범죄였고, 간병 끝에 벌어진 범죄였다.”(188쪽)

인구 감소로 인해 수감자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범죄율은 감소 추세다. 이에 관한 많은 분석이 있지만,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과거에는 폭주족이 되어 거리로 몰려나왔다면, 요즘은 대체로 집에만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는 견해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교도소가 교도소 밖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고령 인구의 범죄율은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빈곤’,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가령, 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가 되어 도둑질을 일삼다 붙잡혀 들어온 사람, 아픈 배우자나 자식을 수십 년간 돌보다가 더는 여력이 없어 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람, 치매를 앓고 인지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이들은 어떤 유무형의 도움과 지원이 없다면 평범한 일상이 어려운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교도소에 수감하기보다는 복지제도나 의료제도를 개선하는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우리 사회에 시급한 화두를 던진다.


"정신 치료의 근본은 아무리 비정상적일지라도,
아무리 불쾌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인내하는 데 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 이 당연한 명제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갑자기 찾아온 정신질환으로 이성적 판단을 상실한 상태에서 타인에게 해를 가했다면, 어떤 벌을 받는 것이 맞을까. 적절한 의료적 지원이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형벌의 목적인 교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본인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병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난 다음에야 진정한 반성과 처벌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는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뿐 아니라 의지나 계획에 의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해당될 터이다.
범법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라도 치료감호는 필요하다. 물론 범죄로 고통받고 있을 피해자와 그 가족 중에는 이들에 대한 치료감호가 적절치 않은 처사로 비칠 수도 있다. 이에 저자는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과 가해자에 대한 지원과 치료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모순되고 대립되는 일은 아니다”라고.
사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낮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주장에 어떤 의학적 근거도 없다. 하지만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범죄의 가해자로 수감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들에 대한 편견은 더욱 커지고,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와 가족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부양의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보호의무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범법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라도 정신질환 치료 및 관리 체계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위기의 시대, 지방 정부를 위한 ESG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기획 / 박동완, 민진규, 윤호창, 정승일 저 / 18,000원 / 지금이책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 재난이 펼쳐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탄소배출 세계 10위의 기후악당국이다. 세계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때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평온’하다. 물론 오늘날 지구촌이 위기로 내몰린 것은 유럽과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의 잘못이 크다. 1850년 이후 상위 10개국이 전체의 62.4%의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하위 100개국이 배출하는 오염은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도 존재한다. 하여 이 책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음 세대의 장래를 위해 기후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지방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이 책이 관심 갖는 부분은 ‘지방정부’이다. 즉, 위기의 시대에 지방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세계화와 지구촌 시대가 열렸지만 인류의 실제적 삶 터는 지역. 그러니 지방정부가 주민들과 함께 공감하고 움직일 때 가장 현실적이고 새로운 대안들을 창조해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위기의 시대 속에서 지방 정부의 역할을 E(환경), S(사회), G(협치)에 기초한 정책이라고 진단하고 국내외의 정책과 실제적인 실천 사례들을 소개한다.

1부에서는 왜 지방정부가 ESG에 기초한 행정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2부는 해외 지방정부의 ESG행정의 정책과 사례들에 대해, 3부는 지방정부의 ESG평가지표를 담았다. 4부는 국내의 지방정부들이 추진하고 있는 ESG활동 사례를, 5부는 지방정부의 ESG추진 전략에 대해 다룬다. 또한 이 책은 이 책은 단순히 이론서가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모색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실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