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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5-01-22
조회수
263
 
다이내믹 코리아

정주식 외 저 / 21,000원 / 사계절

《다이내믹 코리아》는 정치 시사 토론 채널 ‘토론의 즐거움’에서 펴내는 토론집이다. 첫 주제는 ‘숏폼’이다. 지금은 숏폼의 전성시대. 도파민만을 집중 공략하는 짧고 강렬한 ‘숏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미디어의 현실을 직시하며 토론자들은 이런 현상이 민주주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유튜브로 ‘독학’하며 편향된 사상으로 무장한 ‘외로운 늑대’들의 정치인 테러 그리고 거부권 중독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 계엄까지 한국 사회를 다이내믹하게 뒤흔든 이슈들을 한 권에 모았다.

▣ 한국 사회의 다이내믹한 뉴스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사회이다. 케이팝 스타 카리나는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팬들 앞에 자필 사과문을 내놨다. 카리나는 몇 살 때 연애가 가능할까? 한때 돌풍을 일으키며 소수자들을 대변하던 진보정당은 의회에서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왜 진보정당은 외면을 받게 되었을까? 축구협회, 배드민턴협회 등 스포츠 단체의 부조리가 대두되자 양궁협회의 공정한 시스템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양궁협회처럼 운영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까?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외쳤다. 우리는 이 뉴스를 바라보며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 유튜브로 학습한 ‘외로운 늑대’들의 습격
사회 이슈에 나만의 명쾌한 입장을 갖기는 쉽지 않다. 책을 보거나 뉴스를 보며 자기만의 시각을 다듬을 수 있긴 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청취하며 토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를 외면하고 유튜브로 학습을 한 ‘외로운 늑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정치 뉴스를 접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들은 ‘정치 과몰입’ 상태에 이르렀고 급기야 ‘신념’을 갖고 정치인들을 테러하기 시작했다. 이런 ‘외로운 늑대’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는 ‘팬덤’의 ‘신념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 극단적인 ‘정치 팬덤’ 현상과 능력주의로 일그러진 ‘공정 의식’……
특히 한국의 ‘정치 팬덤’은 한국 정치 문화를 극단화의 길로 끌고 가며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팬덤 문화는 급기야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상대로 개인의 고유한 감정마저 굴복시키기에 이르렀고,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부끄러움마저 던져 버리고 초법적인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광신도처럼 지지하며 법원에 난입했다. 우리 사회의 공정은 사회적 약자 배려나 평등 의식과는 거리가 먼 무한 경쟁 원리에 입각한 냉혈한 ‘능력주의’로 환원되었다. 이런 일그러진 인식들은 소수의 극단적 부류가 아니다. 점점 우리 사회의 ‘기본값’이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일그러진 ‘공정’과 ‘팬덤’ 문화는 극단의 양극화를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을 ‘가치상실감’에 빠지게 했다. 이런 상실감에서 벗어나려면 과연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 내란·탄핵·대선의 혼란 속에서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희망을 담은 《다이내믹 코리아》
공론장이 붕괴되고 사회적 신뢰가 사라진 각자도생의 시대. 희미하게나마 우리가 공유하고 있던 가치들이 사라졌다는 위기감. 이런 위기의식을 딛고 정주식, 강남규, 박권일, 신혜림, 은유, 이재훈, 장혜영이 모여 ‘토론의 즐거움’이라는 토론 모임을 결성했다. 《다이내믹 코리아》에는 근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한 13개 토론문이 담겨 있다. 거대한 정치담론에서부터 드라마와 케이팝, 예능 프로그램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을 망라한다. 2025년은 내란 탄핵 대선 등 다이내믹한 일들이 펼쳐지며 민주주의의 경종이 울리는 시점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길을 잃더라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안다면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과 희망을 담아 우리가 지금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지 그 좌표를 찾아 나서게 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

▣ 억지 주장과 뻔뻔한 진영 논리로 점철된 토론이 아닌,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는 토론
신문을 봐야 세상을 알 수 있다는 시대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가짜 뉴스,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평범한 개인이 팩트 체크를 하기는 쉽지 않다. 시사토론이나 뉴스에 초대된 패널들은 억지 주장과 진영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대중은 공론장의 숙의를 지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말싸움을 구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이내믹 코리아》의 13개 토론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독자들은 토론을 지켜 보고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며 자기만의 입장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쉽고, 명쾌하고, 균형 잡힌 다양한 의견
사회 이슈에 자기만의 입장을 갖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통찰이 필요하다. 사실 관계를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숙지하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 및 전문가들의 입장 차이도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편향된 정보만을 취득해 ‘외로운 늑대’가 되기도 한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토론집이다. 따라서 다양한 입장을 가진 토론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책과 이론, 논문이 소개되기도 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균형 잡힌 다양한 의견과 사실을 접할 수 있다. 읽기 버거운 학술 논문이나 인문서 형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 형식이고 중간 중간 해설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세상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7인의 토론자
《다이내믹 코리아》의 토론자는 총 7명이다. 날카로운 비평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칼럼리스트 정주식, 박권일, 강남규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한겨레21》 이재훈 편집장과 CBS ‘씨리얼’ 신혜림 피디, 진보정치인 장혜영 전 국회의원, 팬층이 두터운 은유 작가. 토론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다. 이들은 서로 존중하며 세상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

채호기 저 / 13,000원 / 창비



“너는 내 몸 안에서
나보다 오래 살겠지.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
기차가 지날 때마다 기억하겠지.”


신체를 이루고 바꾸고 벗어나는 언어
흩어지고 부서지며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로서의 시
감각적이고 독특한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몸’과 ‘언어’에 천착하며 ‘몸의 시인’으로 불리어온 채호기 시인의 신작 시집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가 창비시선 513번으로 출간되었다. 올해로 시력 38년에 이르는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신체의 일부이자 독립적인 물질로서의 언어를 깊이 탐구하는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의 데칼코마니를 펼쳐 보이며 그 대칭의 중심부를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삶과 죽음,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형이상학적 사유가 돌올한 시편들은 언어가 지니고 있던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고 그 외부와 내부를 뒤집어 보기도 하며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킨다.
시인이 “비인간 객체와의 공생의 집”이라 명명한 이 “시의 집”은 ‘맨 앞에 괸 시’ ‘연습곡’ ‘더 작은 시작’ ‘네번 접은 풍경’이라는 “네개의 현관”, 즉 네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현관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시인의 말).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과 화가 서정임의 그림(「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기타리스트 이성우가 되살려낸 작곡가 페르난도 소르의 연습곡(「Etude」 연작)과 화가 이상남의 그림(「풍경의 알고리듬」 「네번 접은 풍경」 「Arcus+Spheroid」)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언어 바깥에 자리한 예술을 시적 언어로 새로이 감상하게끔 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언어의 또다른 가능성을 만끽해볼 수 있다.

“인간이 비인간을 괴물로 보듯
비인간은 인간을 괴물로 본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이 “사물의 관점에서 기록한 사물의 경험”(김인환, 추천사)을 들려주는 데서 알 수 있듯 채호기의 시는 “리버시블 인간관”(김나영, 해설)이라 할 만한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 몸과 정신의 대부분이 ‘비인간’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시인은 ‘비인간’이라는 표현에서 엿보이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의심하고, 정신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라는 구분을 허물어뜨리면서 “머뭇대고 비비적대는 삶”(「반짝이는」)의 내면과 “복잡한 거짓말이 반짝이는/생의 미로”(「네번 접은 풍경」)를 탐색한다.
또한 시각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통해 세계의 현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해온 시인은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음”(「개안기」)을 역설하면서 ‘예감’이라는 육감을 동원하여 가시화할 수 없는 것까지 가시화하고자 한다.

“시는 언어의 도살장.
불끈 언어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조각난 파편으로 웅크린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죽음과 삶은 딱 잘라지지 않는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는 흐릿하다”(「반짝이는」),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보다 조금 더 살아 있고 죽은 것은 살아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죽어 있을 뿐 산 것과 죽은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니다”(「이미 죽은 것들이」)와 같은 날카로운 아포리즘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시집 곳곳에 심어놓기도 한다. 삶은 “그저 시간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늘 한 개체의 망실을 견디는” 것이기에, 시인은 “죽음 속에서도 삶이 거듭되는”(「네번 접은 풍경」) 풍경을 바라보며 죽음이 단지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시간에서 시간을 떼어내는 일”(「화관」), “정지의 중지”이자 “갈망의 중지”(「돌과 죽음과 먼지」)임을 확인한다.
나아가 ‘사건의 지평선’과 ‘호킹 복사’ 같은 물리학 개념을 차용하여 시쓰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드러내는 시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인은 시란 단순히 언어를 구조적, 형식적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에 호킹 복사에 견줄 만한”(해설) “수평의 거대한 사건”(「앞에 괸 시」)이 일어남에 따라 생겨난 무엇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토록 거대하고 능동적인 탄생은 시인에게 있어 “매번 죽지 않을 만큼 소량의 죽음을 복용하는 것”(「Arcus+Spheroid」)일 수밖에 없다.

“노래는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다.”

노래가 “죽음을 딛고” “새롭게 시작”하듯, 채호기는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 무엇을 찾아”(「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망가진 감각”과 “망가진 언어”(「새소리 흉내」)를 추스르고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길을 나선다. 그 “정처 없는 길”(「정처 없는 길」) 위에서 시인이 끊임없이 변주하는 ‘연습곡’은 또다른 ‘작은 시작’과 ‘더 작은 시작’으로서 새로운 시를 길어올릴 것이다. 시인의 시는 지금도 시작되고 있다.










문명전환의 한국사상

강경석, 김용휘, 백민정, 백영서, 이정배, 이행훈, 정혜정, 조성환, 허석, 황정아 저 / 24,000원 / 창비



 
한국사상이 계승해온 문명전환의 전통을 복원한다
위기의 시대, 발본적 전환의 과제를 환기하는
한반도 개벽사상의 질문과 해법
문명전환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한국사상의 전통을 조명하는 책 『문명전환의 한국사상: 개벽의 사상사 2』가 출간되었다. 『개벽의 사상사: 최제우에서 김수영까지, 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창비 2022) 이후 ‘개벽의 사상사’를 앞세운 두번째 기획이다. 전작이 그간 서구 담론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근대전환기 개벽사상의 계보와 역사를 개괄하고 근현대 주요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우리 사상사를 개벽의 관점에서 재구성했다면, 이번 책은 자본주의문명이 극에 달해 기후재난, 생태위기 등 문명적 위기가 심화된 오늘날에 불가피해진 근본적인 전환의 자원으로서 한국사상을 소환하고자 하는 취지를 강조했다. 한반도라는 고유한 장소에서 발원하여 독자적인 사유의 장을 펼쳐온 한국사상에 주목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각종 위기를 타개하고 대전환을 꾀할 변혁적 사상으로서의 역량을 다각도로 탐색했다.

자본주의문명 극복을 위한 한국사상의 발상, 개벽(開闢)
실천과 사유의 전통이 누적된 인류 공동의 지적 유산


지금 인류문명에 발본적 전환이 시급하다는 사실에 이견을 표할 이는 없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민주주의의 후퇴 등은 물질적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 시대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대로는 세계가 지속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은 커져가고 있다. 문명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큰 전환을 도모하는 지적 기획이 절실한 이때, 한국사상은 어떻게 의미 있는 사상적 자원으로 거듭나는가. 엮은이 황정아는 한국사상의 핵심에 다름 아닌 ‘개벽’이 있으며, 개벽의 질문과 발상이 문명전환이라는 세계사적 과제에 주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벽은 위력적인 서양 문명의 유입, 제국주의의 식민정책, 산업자본주의의 득세 등으로 인해 한반도에 쌓여가는 모순과 위기에 맞서 인류문명의 대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집필진은 한국의 지식인과 민중이 격변하는 시대상황에 대처해온 실천과 사유가 ‘개벽적으로’ 누적되어왔으며, 그 지적 유산이 전환에 대한 시대적 열망에 이론적, 실천적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따라서 개벽의 정신이 동학과 원불교 같은 역사적 개벽사상뿐 아니라 문학과 종교, 실천운동에 이르는 한국사상의 면면에 어떻게 구현되어왔는지 그 계보를 살피고, 개벽의 현재적 의의와 미래적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삼는다.

새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문명전환기 한국사상이 걸어온 변혁의 길


1장 「동학의 수도(修道)와 개벽운동」에서 정혜정은 기존의 동학 이해가 주로 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지적하며 동학을 불교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우주만물이 모두 한울임을 표방하는 동학의 우주론을 불교와 연결지어 상세히 고찰하는 한편, 동학의 수도법이란 인간 스스로 자기 안의 한울님을 자각하고 지킴으로써 그 바른 기운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개벽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로써 동학의 개벽사상이 지닌 독창성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이어서 허석은 2장 「소태산 박중빈의 정신개벽 사상과 변혁적 중도주의」에서 원불교 창립자 소태산 박중빈의 ‘정신개벽’ 사상을 논한다. 최제우의 후천개벽과 불교를 결합한 소태산의 사상은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노선과는 거리를 두었기에 때때로 온건주의로 이해된다. 이에 필자는 소태산의 정신개벽 사상이 ‘개벽’이라는 변혁적 사유와 불교의 중도(中道)적 진리관을 창조적으로 융합해 식민지배 현실을 변혁하려는 중도적 실천이었음을 역사적으로 규명하며 그 혁명성과 실천성을 온당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3~4장은 동학 바깥으로 눈을 돌려 개벽 의제와 상통하는 사상적 모색을 소개한다. 3장 「개벽의 인간학과 사회변혁론」에서 이행훈은 19세기 동서가 만나는 대전환기에 서양 근대과학의 성취를 전통적인 기(氣) 개념에 주체적으로 수용해 새로운 인류문명을 기획하고자 했던 최한기의 지적 시도를 살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서구과학이 축적해온 지식을 긍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였으며, 지식에 대한 탐구가 언제나 사람다운 삶의 이상, 대동의 평화와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개벽적 의의가 돋보인다. 이어 4장 「개벽의 정신으로 본 전병훈 『정신철학통편』」에서 백민정은 사상가 전병훈의 저작 『정신철학통편』을 바탕으로 그의 ‘정신학’을 개벽의 관점에서 검토한다. 전병훈은 지적 균형을 갖추고 유불도와 서양철학 등 여러 이질적 사유를 배합해 이상적 사유를 주조하고자 했다. 이질적인 관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더 큰 질서와 유대를 지향한 전병훈의 독특한 사유에서,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른 방식의 원리와 균형을 고민하는 개벽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개벽정신의 계승과 확장
우리는 개벽 공부를 어떻게 시작할까


문명전환을 중심에 둔 한국사상은 근대전환기를 지나 20세기에도 면면히 이어져왔으며 한국문학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5장 「염상섭의 문명비평과 전환의 비전」에서 강경석은 자본주의 물질문명과 외래사상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이해와 논리로 현실적 위기에 맞선 염상섭의 문화적·담론적 실천을 ‘문명비평’이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염상섭의 문명비평이 자본주의 근대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거나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의 관점을 견지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문명전환의 비전까지 제시했다고 분석한다. 황정아는 6장 「인류세 시대의 신동엽과 개벽사상」에서 신동엽의 문학적 사유가 개벽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의 개벽서사가 인류세 시대의 위기에 맞서 문명전환을 도모하는 데 유효한 사상인지 살핀다. 기존 방식대로 동학을 매개하는 데서 벗어나 신동엽과 개벽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신동엽 사유에서 개벽이 갖는 중심성을 확인하고, 현대 신유물론적 관점과 인류세 담론을 대변하는 브루노 라뚜르나 티머시 모턴의 논의 등과 신동엽의 개벽서사를 비교하여 그의 의제가 지닌 고유한 변혁성을 밝힌다.
7장 「개벽사상과 한국의 생명운동」에서 김용휘는 1970~80년대 생명운동을 펼친 장일순과 김지하의 사상을 개벽운동사의 관점에서 살핀다. 그들은 최제우가 말한 ‘시천주’의 모심〔侍〕과 해월의 생명사상을 이어받아 생태계 파괴, 인간 소외 등 산업문명의 파국을 극복하고 생태적 문명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개벽’을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의 전환으로 재해석한 그들의 생명운동은 맑스주의를 바탕으로 한 진보운동과도 서양의 녹색운동과도 구별되는 고유한 실천성을 보여주었다. 이어 이정배는 8장 「개벽신학의 세 토대로서 공(空), 공(公), 공(共)」에서 다석 유영모의 한국적 기독교 이해를 경유하여 기독교 사상과 개벽사상의 접점을 모색함으로써 기독교를 개벽종교로 재확립하고자 한다. 한국의 기독교가 개벽의 의제를 품고, 그간 간과했던 공(空)을 회복해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자본주의체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공(公)을 도모하고 공(共)의 기구로서 작금의 인류적 위기에 적실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9장 「물질개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서 조성환은 원불교가 서구에서 시작된 물질개벽에 대해 동아시아 사상 전통에서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소태산의 ‘물질’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새롭게 등장한 물질, 종래와는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도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소태산의 사유는 사물의 권위, 나아가 ‘천지’까지도 존중하고 그에 외경심을 가져야 함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신유물론과도 공명하며 인류세 시대에 풍부한 함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10장 백영서의 글 「동아시아의 수양론으로 개벽사상 다시 읽기」는 자기자신과 사회시스템을 동시에 변혁하기를 강조했던 역사적 개벽사상의 수양론을 유학적 수양론, 중국의 혁명수양론과 비교하여 살핀다. 마음챙김이나 힐링 프로그램과 달리 수양의 목표를 더 근본적인 세상의 변혁에 두었으며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재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개벽적 수양론의 독창성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전환을 위한 끈질긴 모색
그 동력을 개벽사상에서


복합적 위기 속에서 기존 체제의 지속 불가능이 드러나는 지금이야말로 대안문명 구상에 일조할 우리의 사상적 자원을 점검할 적기다. 개벽이라는 화두로 한국사상의 뿌리 깊은 변혁적 전통을 조명하며 우리 사상을 대전환의 지적 동력으로 재구성하는 『문명전환의 한국사상: 개벽의 사상사 2』는 그러한 필요에 성실히 응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개벽적 사유들은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이나 양극단의 입장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성찰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연결을 더욱 평등하고 조화롭게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하는 사회변혁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의 실천적 지침으로서 보여주는 가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문명전환을 꿈꾼 한국사상의 역사적 계보를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시대의 위기를 넘어설 지적 돌파구이자 살아 있는 지혜로서 한국사상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세이빙 어스

캐서린 헤이호 저 / 정현상 역 / 22,000원 / 말하는나무


AI가 꼽은 ‘2024 주목할 인물’
타임지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
UN 지구환경대상
포춘지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


과거의 접근법은 잊어라! 당장 실행 가능한 기후위기 해결책!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삶과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책!

일반인도 기후위기에 맞서 의미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우리(Us)와 지구(Earth)를 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가 ‘기후변화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의 한 사람’이라고 한 캐서린 헤이호 미국 텍사스테크대 석좌교수는 단연코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가능한 방법을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헤이호 교수는 세계 8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미국 환경 비영리기구 네이처 컨서번시의 수석 과학자이며, AI가 꼽은 ‘2024 주목할 인물’, 타임지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 UN 지구환경대상, 포춘지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에 오른 인기 있는 기후과학자다. 그녀는 기후과학자이지만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왜 중요한 문제인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수많은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이다.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해법이 되겠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후변화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은 자칫 희망을 잃게 하고 우울하게 할 수 있으며, 다정한 대화로 시작했다가 삿대질과 고함으로 번지거나 그 문제의 거대함 앞에 압도될 위험도 크다.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헤이호 교수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더 나아가 기후행동을 실천하며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넘치는 책이다. 기후 교육자, 기후행동가, 과학자 등이 기후 문제에 대해 일반 사람들과 다리를 놓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예시를 찾을 수 있다.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인기있는 테드 토크 강연이 모체가 된 이 책은 기후위기를 둘러싼 복잡하고 분열적인 현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긍정의 안목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크게 갖고 기후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며,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 영향력을 얻게 된다. 어려운 주제이지만, 독자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며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재치있고,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스스로 해결사가 된 것을 깨닫게 된다.
헤이호 교수는 이 책에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2만 6,500가지 독립적인 증거 가운데 핵심적 내용, 기후위기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 진보와 보수 가치관에 따른 태도, 정보 과잉이 가져오는 역기능 등 기후과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들을 위트 있는 글솜씨로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메시지는 단순 명쾌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할 때 진정한 변화와 희망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와 아슬아슬하고 신나는 미래 사이에 서 있지만, 우리는 함께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이 책은 FSC 인증을 받은 인쇄소에서 FSC 인증을 받은 본문 용지에 콩기름잉크로 인쇄했습니다.


이 세계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와 지구를 구하는 새로운 기후행동, 희망, 힐링
전미 베스트셀러

기후변화에 영향받은 삶의 현장과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힘
압도적이고 친근한 서술

“기후는 변화하고 있고, 인간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 영향이 매우 심각하고, 바로 지금 대응하면 희망이 있다.”
AI가 꼽은 ‘2024 주목할 인물’인 기후과학자 캐서린 헤이호 교수(미국 텍사스테크대)는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기후위기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단순한 팩트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기후위기가 당장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를 집어삼키려 해도 그때뿐이다. 고통스러운 경험조차도 금세 잊는다. 2024년 여름 그토록 불쾌하고 습한 최장 열대야가 기후변화(위기)의 증거라는 얘기를 수많은 뉴스를 통해 들었지만 어느새 그 힘든 시간은 우리의 기억에서 아스라이 멀어졌다. 과학자들은 다가오는 여름은 더 힘든 시간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가능성이 100퍼센트라고 전망한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여름에 눈이 내렸고, LA에서는 사상 최악의 산불로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전세계 어느 곳도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기후변화 대응에 이토록 미적지근할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도대체 기후위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고 되묻는다.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왜 이처럼 이중적 태도를 취할까. 그 모순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가 ‘기후변화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의 한 사람’이라고 한 헤이호 교수는 우리 마음의 이중성을 파헤치고, 추상적이고 복잡한 기후변화의 진실에 대해 마음을 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예일대 기후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미국인의 약 70% 이상이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식물과 동물(우리 자신의 삶만큼 우리에게 관련있는 게 아닌 것들)에게, 그리고 미래 세대(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살 사람들)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65%의 사람들은 지구온난화가 개도국 사람들(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61%는 심지어 미국에 사는 사람들(자신들이 아니라)에게도 해를 끼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예일대 연구원들이 “기후변화가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겨우 43%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렇게 우리 대부분은 기후변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멀리 있는 사람들, 심지어 우리의 손주와 이웃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우리 자신만은 제외한다. 그것은 바로 심리적 거리 때문이다. 특정한 형태의 위협을 무시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바로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라고 부른다. 심리적 거리 개념은 그런 정보가 왜 우리로 하여금 기후변화를 더 걱정하게 만들지 않는지, 혹은 기후행동을 기꺼이 지지하거나 참여하도록 만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심리적 거리 생기는 이유

기후변화가 심리적 거리를 만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기후변화는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이다. 공기 오염과 달리 기후변화는 우리가 볼 수도, 느낄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열을 가두는 가스 때문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지구온난화보다는 지구 이상화(global weirdingㆍ온난화의 영향으로 생기는 비정상적 극한 기상) 현상을 경험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극단적 한파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진동 영향일 수 있지만 그것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여기기 어렵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기후변화는 지구 평균기온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지구 평균기온은 최소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수천 개의 기상 관측소에서 나온 일일 기록들을 합산한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날씨와 비교하자면 매우 모호한 개념일 수 있다. 파리 기후협정에서 세계 각국은 2100년까지 산업혁명 이전보다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훨씬 낮게,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일평균 온도차가 10도를 넘는 나라에 사는 한국인에게 평균기온 1도의 의미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1도가 상승할 때마다 공기의 수분 보유 용량이 7%씩 증가하고, 이것이 극단적인 수해와 풍해, 장기적 가뭄과 산불, 극심한 한파를 가져온다. 헤이호 교수에 따르면 이것은 체온 1도 상승의 의미만큼이나 중한 것이다. 만약 체온이 정상체온(36.5도)에서 1.5도 상승해 38도가 된다면 병이 위중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기후변화는 하나의 과학 문제만은 아니다. 단지 환경 문제만도 아니다. 이것은 건강 문제이고, 음식 문제이며, 물 문제이고, 경제적 문제이다. 굶주림의 문제이고, 가난의 문제이며, 정의의 문제이다. 그래서 기후변화는 인간 삶의 총체적인 문제인 것이다.

과학 지식보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라져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양극화와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기후변화 영향은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아니며, 그것을 고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건설적 방법은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이를 부채질한다.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56개국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정치적 소속과 이념이 그들의 교육과 가치, 삶의 경험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의견을 나타내는 훨씬 더 강력한 지표라는 것이 드러났다.
56개국에 걸친 조사에서 연구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교육이나 지식 정도와 관련 있는 게 아니라 ‘가치, 이데올로기, 세계관, 정치적 성향’과 더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보다 기후변화를 인간의 책임보다는 자연적 변화로 더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헤이호 교수는 수많은 강연과 대화를 통해 자신뿐 아니라 누구나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것은 모순적이게도 우리가 가장 꺼려하는 것인데(두려워하는 것인데), 바로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이다. 왜 기후변화가 중요한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내서 우리의 영향력 내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부모, 자녀, 가족 구성원 또는 친구나 학생, 직원 또는 상사, 주주, 이해관계자, 구성원 또는 시민으로서 서로 연결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전염성이 있다.
캐서린이 런던정경대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한 남성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테드(TED) 강연을 듣고 그대로 따라했다고 했다. 캐서린은 그가 많아야 70~80명 정도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보여준 명단에는 만 명이 넘는 사람의 이름이 기록돼 있었다. 그 남성의 ‘기후톡’ 행동이 미친 영향은 실로 놀라웠다. 그가 사는 런던 자치구는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투표를 진행했고, 2년 뒤 화석연료 투자를 철회하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했다.

기후변화가 공통 관심사에 미친 영향부터 이야기하라

단순히 많은 데이터와 팩트, 과학적 지식만을 누군가에게 퍼붓는 것은 그들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고, 자기합리화를 하게 하고, 처음보다 사이를 더 벌어지게 한다. 기후변화나 도덕적 함의가 있는 다른 이슈에 대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자명한 이유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이 모두 도덕적이지 않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도덕률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들은 비도덕적인 게 아니라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이런 차이를 인식한다면 그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효과 있는 대화 소재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공통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뜨개질, 스포츠 같은 것도 좋은 소재다. 기후변화가 우리 개인에게 왜 중요한지, 기후변화가 인류 전체나 지구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관심 갖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와 우리 가족의 미래,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먹는 음식, 경제, 국가안보, 정의,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우리 문명의 미래에까지 그 목록은 끝이 없다. 누구든지 기후변화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헤이호 교수에 따르면 기후변화, 지구 가열화의 독립적 증거들은 2만6,500가지나 된다고 한다. 과일나무의 꽃이 일찍 피는 것, 나비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뿐 아니다. 평균기온 상승, 바닷물 온도 상승, 해수면 상승, 대륙빙하 감소, 극지 빙하 감소, 적설량 감소, 극한 기상 증가, 해양 산성화 증가 같은 것들을 말한다.
만약 그린란드의 빙하가 불안정해지고 완전히 녹는다면 해수면은 7m까지 상승하고,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많이 녹는다면 열을 흡수하는 메탄이 엄청나게 방출돼 파리 기후협정의 목표는 절대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행성을 가지고 정말로 전례 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이 터무니없는 실험을 끝내야 한다.
“기후 위기는 단지 북극곰이나 먼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관한 것입니다." - 캐서린 헤이호 박사, TED Talk

기후위기 대화 비밀 공식

헤이호 교수는 기후위기 대화에 성공하는 세 가지 비밀 공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유대감을 형성하라, 연결하라, 격려하라.’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박사 학위나 방탄조끼, 항우울제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 정서적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동의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진정으로 공유하는 가치에 대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가치와 변화하는 기후 사이에 연관성을 만들면 된다.
폭염 가뭄 태풍 한파 같은 기상 현상이 극단적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절망감에 갇힐 수 있다. 그러면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사랑으로 행동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은 진실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또한 죄책감과 수치심의 반대인 연민, 이해, 수용을 제공한다. 사랑은 또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은 가장 일시적이고 인기 있는 감정, 즉 희망의 문을 열어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어록에 따르면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다. 일이 지금처럼 지속되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지금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용기. 우리가 희망을 갖게 되면 기후위기를 겪고서도 바뀌지 않는 현재를 견딜 수 없어하는 분노, 그리고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캐서린 헤이호 교수가 알려주는 기후 행동계획 (스페이스닷컴)
1. 기후변화가 왜 중요한 문제인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2. 기후행동 그룹에 가입하자.
3. 당신이 돈 쓰는 곳이 어디인지 따져보자.
4. 어디에서 일하든 혹은 어느 학교에 다니든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에 불을 붙여라.
5.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라.
6. 개인적 생태발자국을 줄여라.










어떤 패배의 기록

김항 저 / 20,000원 / 창비
일본 전후민주주의의 곤경을 관찰하다
사상을 통해 보는 현대 일본 사회의 폐쇄회로
 
일본문화, 정치철학, 문화이론을 넘나드는 영역에서 돋보이는 시각과 무게감 있는 연구를 선보여온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항 교수의 신작 연구서 『어떤 패배의 기록: 전후 일본의 비평, 민주주의, 혁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5년에 나온 『제국일본의 사상』의 후속으로, 전후 일본 사상사를 ‘비평’ ‘민주주의’ ‘혁명’ 세가지로 분절하여 해석한 연구성과를 모은 것이다. 각각의 키워드를 통해 저자가 탐색하는 전후 일본의 모습은 ‘패배’라는 말로 요약된다. 전후민주주의 체제가 표면적으로 추구해온 보편주의는 2차대전 패전 이전의 식민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한계 내에 머물렀다는 것이 요지다. 전후 80년간 일본 문화의 현상과 기저를 탐색해온 비평가들도, 일본을 동아시아의 평화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평화주의자들도, 누구보다 급진적으로 일본을 바꿔놓으려 했던 혁명가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 ‘하나의 일본’을 만들고자 나서는 움직임은 강화되었지만 그럴수록 사회에 내재한 식민주의는 은폐되어가고,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목소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역부족인 상태에 머물렀다. 그것이 개헌을 저지하고 평화를 만들어내는 데 천황제가 동원되어야만 하는, 일본 정치에 있어서 일종의 패배를 불러왔다고 저자는 보는 것이다.

전후 일본에 내재한 식민주의를 감지하지 못하다
고바야시 히데오와 가라타니 고진의 비평
1부 ‘비평’에 묶인 두편의 글은 전후를 대표하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비평 작업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패전 이전에 주로 활동한 ‘근대 일본 문학비평계의 전설’ 고바야시 히데오는 일본의 정체성을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수행 속에서 찾았다. 그리고 전쟁 시기 임박한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생활자에게서 궁극의 일본인을 발견했다. 그러나 고바야시의 시선은 역설적으로 일본 본토가 아니라 변방으로 향했다. 식민지와 변방에서 임박한 죽음을 절대적 사실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궁극의 일본인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죽음의 정치적 의미는 끝내 추궁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강요된 죽음을 수긍하는 것만이 정치적 실존의 유일한 길로 만들었던 식민주의의 비밀에는 끝내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패전과 함께 모든 것은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전후 일본은 이렇게 시작했다.
2장은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일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1970년대 연재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실마리 삼아 전후 일본 비평의 임계점을 고찰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신좌파가 ‘연합적군 사건’(1972)으로 몰락한 후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고 평가받은 바로 그 시점에 마르크스론 연재를 시작했다. 그의 의도는 마르크스 읽기의 가치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동시에 기존 일본 마르크스주의의 마르크스 독해가 교조적이었음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것이 전후 일본 비평의 한 정점이자 일본 비평을 근본적으로 성찰한 성과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가라타니의 기획 역시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라는 한계 내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은 있을지언정 보편주의와 연루한 식민주의를 내재했던 전후민주주의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후 보편주의의 공백과 함정
민주주의와 평화 논의의 발목을 잡은 식민주의

2부 ‘민주주의’는 본격적으로 전후민주주의의 한계를 분석하는 세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3장은 전후민주주의의 출발점에서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고상한 이념을 내세운 난바라 시게루(南原繁) 논의의 한계를 살핀다. 모든 인류가 서로 창을 겨누는 일을 멈추고 도덕의 고양을 통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난바라의 꿈은 일본 전후민주주의의 출발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끔찍한 폭력에 눈감은 것이었다. 인류의 평화는 보편적 규범을 벗어나는 불순분자들을 ‘비인간’으로 규정하고 궁극의 적으로 삼아 벌어지는 섬멸전쟁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전후민주주의는 그렇게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굳건한 결합 위에서 평화를 지켜낸 셈이다. 이러한 인식을 놓친 채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한일 화해를 주장한 박유하의 사례는 전후 일본 보편주의와 리버럴의 신화가 가진 맹점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누구보다도 한국의 민주화와 동북아시아의 공생을 꿈꾸었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도 식민주의 비판을 말소한 평화국가론으로 전향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4장은 와다 하루키의 지적, 정치적 여정을 상술하며 전후 일본 평화주의 운동을 평가한다. 식민주의 비판에서 출발한 와다의 입장은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과정을 거치며 ‘일본의 자연스러운 평화 감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일본 국민들은 2차대전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전쟁과 군대를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쟁 시기 미국에 의해 고안된 심리전이었음을 지적하며 와다 입장의 토대를 비판한다. 와다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전후 일본이 온전한 국가가 될 수 없다’는 타당한 입장을 회복할 것을 주문한다.
2011년 3·11 대지진(도호쿠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후의 ‘원자력 개발과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제에 패전 이전의 초국가주의가 지속되고 반복된 측면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5장에서는 그 명제를 다룬 논의 중에서도 국제정치학자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사카모토는 전후 대표적인 일본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실적 이상주의를 기치 삼아 핵과 원자력을 시민의 일상감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하지만 그는 과학기술을 제어하는 담론이 비민주적 전문가주의에서 비롯됨을 과소평가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핵과 원자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그의 이상론은 근원적으로 불가능성을 내포했으며, 그로 인해 그의 현실적 이상주의는 ‘현실’을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혁명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범죄자로 전락한 혁명가들과 혁명정치의 해체

3부 ‘혁명’는 전후민주주의를 누구보다도 날카롭고 급진적으로 문제화했지만 오히려 체제에 의해 유품으로 전락한 일본 혁명정치에 대해 말한다. 6장은 전 공산당 간부 이토 리츠(伊藤律)의 귀환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의를 소개하며 혁명정치의 아포리아를 탐구한다. 스파이 혐의를 받고 일본공산당에서 제명되어 중국에 장기간 ‘비공식’ 구금되었던 인물인 이토 리츠의 사례는 전전과 전후의 일본공산당 내부 권력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후 일본공산당을 대표해온 노사카 산조가 사실 삼중의 스파이였음이 이 과정에서 드러나며, 이토 리츠에 대한 그전의 각종 음모론과 비판이 공산당 수뇌부에 의해 은폐되고 조작된 소문의 결과물이었음이 알려진다. 이렇듯 ‘전체주의 시대를 목숨 걸고 버텨낸’ 혁명의 진리와 정의는 이제 스파이가 암약하는 정보전 스펙터클로 소비되게 되었다.
7장은 잘 알려진 요도호 납치 사건을 통해 혁명정치가 ‘비밀과 음모라는 스펙터클’로 용해될 운명이었음을 말한다. 권력화되어가는 일본공산당을 비판하며 등장한 학생운동 중심의 일본 신좌파는 1970년대 요도호 납치 사건(1970)과 연합적군 사건 등 폭력사건을 거치며 사회운동의 기반을 상실해갔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체제는 혁명의 이념과 전망에 비밀스러운 정보전과 반사회적 음모론의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했다.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간다는 극도로 위험해 보이는 구상을 실제로 실행한 요도호 사건은 이런 맥락에서 혁명이란 곧 범죄와 폭력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 이제 혁명가들은 정치가 아닌 범죄의 영역으로 유폐되어 수배 전단지의 흉악범으로 전락했다.

3·11 이후 일본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전후 일본사상을 대표하는 거장들을 통해 보는
일본사회의 안과 밖, 그리고 경계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결론적으로 현재 일본 사회를 진단한다. 3·11을 ‘결정적 국면’이라고 언급하며 현대 일본이 맞닥뜨린 변화의 계기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전망을 남긴다. 저자는 국가 단위의 전체사회에 포함되면서도 구별되는 ‘개별사회’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 삼아 전후민주주의의 보편주의와 이상주의를 재검토한다. 오늘날 일본에서 야쿠자와 같은 개별사회가 사라지고 ‘하나의 일본’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이런 점에서 ‘개헌 세력’과 ‘평화주의 세력’은 다르지 않으며, 그렇게 된 까닭은 전후민주주의가 식민주의를 은폐한 보편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수십년 만에 일본에서 벌어진 대중운동이었던 2015년 신안보법제 투쟁이 정치적 대립이라는 필수조건을 탈구하고 기만적인 이상만을 추구한 ‘양 떼’의 전투였기에 결정적인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하는 저자는, 일본 사회가 다시금 식민주의를 고찰하고 ‘늑대 무리’의 정치를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












헬싱키, 생활의 연습

박사라 저 / 황세정 역 / 14,800원 / 세개의소원


삶에 필요한 것은 준비와 적응의 기술, 두 아이와 함께한 사회학자 엄마의 헬싱키 리포트
이 책은 두 아이를 데리고 핀란드로 이주한 사회학자 박사라의 북유럽 일상 리포트다. 저자는 낯선 헬싱키에서의 적응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지금까지 자라온 문화와 충돌하는 핀란드식 삶의 방식, 아이들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잔잔한 웃음과 공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단순한 경험을 넘어 행복도 조사, 복지 정책, 교육 제도 등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을 더해 북유럽 사회의 실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책 속에 담긴 유머와 통찰,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관점으로 압도적 찬사를 받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적당한 옷을 입고 있다면, 나쁜 날씨는 없는 거야.”
압도적 찬사와 리뷰의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핀란드로 덜컥 이주해버린 사회학자의 육아ㆍ일상 탐구 리포트


“중학생 시절부터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이가 태어난 후, 필사적으로 해외 취업에 매달렸다. 헬싱키에 있는 어느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다길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서류를 보냈더니, 덜컥 붙어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나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잔잔한 유머와 통찰이 담긴 핀란드 이주기
사회학자 박사라는 핀란드로의 이주와 정착 과정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아이와 함께 낯선 땅에 정착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깊은 공감을 전한다. 저자가 겪은 문화 충격과 함께 소개되는 핀란드식 삶의 방식은 신선한 관점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데이터가 뒷받침된 분석, 그리고 경험
책에 소개된 내용은 단순한 개인 경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행복도 조사 지표, 복지 정책, 교육 제도 등 객관적인 데이터를 뒷받침하며 핀란드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동경도 편견도 없이 북유럽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질적인 두 사회와 문화를 비교하며 성장해가는 통찰이 돋보인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증명된 화제성
일본에서는 출간되자마자 큰 화제를 일으키며,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특히 20~30대 여성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으며,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한 수많은 리뷰들이 회자되었다. 단순한 해외 이주가 아닌 삶의 태도를 제시하며,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모든 문장에 담긴 따뜻한 위로와 용기
책에 담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 가족, 커리어,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도 저자는 자신만의 답을 찾으며 성장하고, 독자는 그 과정에 함께 몰입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경험이 마치 내 이야기인 듯 공감하게 되는 것. 불안하고 막막한 삶의 모든 과정에 위로가 되는 문장을 찾을 수 있다.










진심의 바깥

이제야 저 / 김포그니 인터뷰 / 12,000원 / 에포케 스튜디오



문학의 한 귀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신을 위한 시집
이제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

◆ 신용목, 이은규 시인 추천
◆ 시로써 건네고 싶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 수록


한참을 헤맨 듯한 밤이 있었나요?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상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시간이요. 이번 시집은 그 순간을 담담히 끌어안으며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이제야 시인은 〈진심의 바깥〉에 머물며, 그동안 미처 놓쳐 버릴 수도 있었던 인연과의 이야기를 섬세히 엮어 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감정을 건네듯, 시인의 언어는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듭니다.

부드럽게 위로하는 시어들은 당신의 마음을 잠시 멈추어 서게 할 것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임을 일깨우면서요. 어쩌면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이건 값싼 희망이 아니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펼쳐보세요. 시가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작고도 깊은 세계를 마주하는 시간
당신은 사랑을 믿나요? 아니면 오해로 남아버린 진심을 간직하고 있나요?
이번 시집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 속에서 숨 쉬는 감정들을 섬세히 포착합니다. 도시의 공기처럼 무심하게 흩어지는 눈빛과 손길, 잊고 살던 감촉들. 그리고 우리가 한 번쯤 느꼈지만 끝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들까지.
시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진심의 바깥〉에 머물며 느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랑과 그리움, 상실과 희망이 얽힌 풍경들 사이로 걸으며, 작고 소중한 존재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응시합니다. 마치, 어린 시절 나지막히 들리던 동화의 한 구절처럼.
이 시집을 통해, 당신은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과 조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록 답을 알 수 없더라도, 그 시간은 충분히 아름답고도 찬란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좋은 날들〉이 당신 곁에 속삭이듯 머물기를 바랍니다.









몸은, 제멋대로 한다

이토 아사 저 / 김영현 역 / 17,000원 / 다다서재


“우리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려는 의식의 감옥에 갇혀 있다.”

인문학자×과학자, 인간 몸의 가능성을 탐구하다!
김대수 교수, 곽재식 작가 추천!

피아노 즉흥 연주의 비밀부터 장소에 따라 변하는 암기 능력까지
인간의 몸은 어떻게 ‘할 수 있게’ 되는가?


산토리학예상 수상자 『기억하는 몸』이토 아사의 최신간!


『몸은, 제멋대로 한다』는 산토리학예상 등을 수상한 일본에서 손꼽히는 인문학자 이토 아사가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우리 몸의 ‘할 수 있음’에 대하여 고찰하는 책이다. 본래 장애와 질병을 주로 연구하던 저자는 다섯 명의 이공계 연구자들을 인터뷰하며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 몸의 숨은 가능성을 탐구한다. 피아니스트의 연주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기술, 투수의 투구 동작을 분석하며 드러나는 몸의 비밀, AI 기술이 바꿔놓은 언어 학습의 새로운 방법론, 실시간 코칭 기술로 극대화하는 신체의 운동 습득 능력 등 다섯 과학자의 연구는 모두 ‘의식을 앞질러 제멋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몸’을 보여준다. 저자는 ‘할 수 있다=뛰어나다 / 할 수 없다=열등하다’라는 능력주의에 의문을 던지며 몸의 관점에서 ‘할 수 있다’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인간이 기술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다섯 명의 과학자와 만난 인문학자
첨단 기술을 통해 몸의 가능성을 탐구하다


오랫동안 장애와 이타 등을 주제로 연구해온 이토 아사. 질병과 장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 수 없는’ 몸의 가치와 고유성을 고민해온 저자는 주로 장애가 있는 몸이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이는지를 연구해왔다. 그런 그가 첨단 기술을 다루는 다섯 명의 과학자와 공동 연구를 시작한다. 주제는 바로 ‘몸은 어떻게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가?’.
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는 피아니스트의 숨은 연주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려 하는 소니 컴퓨터사이언스 연구소의 후루야 신이치, 전설적인 프로야구 투수의 투구 동작을 정밀 분석하여 ‘멋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몸’의 실체를 밝히는 NTT 커뮤니케이션 과학기초연구소의 가시노 마키오, 운동 중에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데이터화하고 ‘경기를 뛰면서 배우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도쿄공업대학교의 고이케 히데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암기 능력에 대한 실험이나 참가자들에게 가짜 꼬리를 움직이도록 시키는 단체 실험을 통해 학습의 숨은 속성을 밝혀내는 게이오기주쿠대학교의 우시바 준이치, 세계 최초로 멀티 터치를 발명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1인자로 인간의 ‘목소리’를 활용한 다채로운 학습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도쿄대학교의 레키모토 준이치다.
다섯 과학자의 연구는 주제도 소재도 모두 다르지만, ‘의식을 앞질러 제멋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몸’을 다룬다는 점은 같다. 이토 아사는 이들의 연구를 통해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변화가 ‘몸의 자유분방함이 드러난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러한 새로운 인식 덕분에 독자는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생각대로 제어하거나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 몸의 진정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몸에 배신당하고 있다
몸은 어떻게 ‘할 수 있게’ 되는가?


후루야 신이치가 피아니스트를 위해 만든 기구 ‘외골격’. 로봇 장갑처럼 생긴 이 기구는 프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움직임을 계측해서 기구를 착용한 초보자의 손가락에 계측한 데이터를 출력한다. 초보도 외골격을 착용하면 프로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처럼 손가락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외골격을 60명의 피아니스트와 음대생에게 사용해보게 했다. 평소 어려워하던 연주 기법을 외골격으로 체험해본 사람들은 외골격을 벗은 뒤에도 손가락이 전과 달리 쉽게 움직였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21년 간 에이스로 활약했던 구와타 마스미.
가시노 마키오는 연구소에서 구와타에게 “똑같은 자세로 30번 던져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30회의 투구는 손에서 공을 놓는 지점이 매번 달랐고 그 차이도 컸다. 일반적으로 투구라는 행위에 기대하는 것은 기계와 같은 정확한 제어 능력이다. 그러나 구와타는 똑같이 던지려 노력했음에도 첫 번째 투구와 서른 번째 투구의 공을 놓는 지점이 머리 하나 정도나 차이가 났다. 놀라운 것은 공을 던지는 위치가 매번 달랐는데도 제구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와타의 공은 매번 같은 자리로 정확히 들어갔다.
이 두 실험은 인간의 몸이 가진 의외성을 드러낸다. 몸이 뇌의 지배를 받는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우리 몸은 의식과 상관없이 움직이기도 한다. 몸은 때로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미지와 다르게 움직이며, 뇌가 이미지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몸이 앞서서 움직여 멋대로 문제를 해결해버리기도 한다.
만약 몸이 뇌가 제어하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가정해보자. 뇌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동작에 대해 어떤 이미지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미지가 없으니 몸에 명령을 내리지도 못한다. 명령을 받지 못한 몸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새로운 동작이나 새로운 운동을 시도할 수도 없다. 뇌가 제어하는 대로만 몸이 움직인다면, 아기는 걷지 못하고 수영 초보는 물에 뜨지 못하며 누구도 자전거를 배울 수 없다. 몸이 뇌를 추월해서 멋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운동을 할 수 있고, 몸이 무언가를 해낸 다음 뇌가 ‘아, 이런 거구나.’라고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그러니 몸의 성공은 곧 뇌의 패배이며, 사람들이 흔히 승리라 여기는 ‘할 수 있다’에는 사실 패배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몸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여정
첨단 기술은 어떻게 몸과 연결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기술을 이용해 몸이 갖고 있는 미지의 가능성을 더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고이케 히데키는 첨단 영상 기술을 이용한 실시간 코칭을 통해 운동을 진행하는 동시에 부족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모든 코칭은 경기가 끝난 뒤, 동작이 이루어진 뒤, 이미 운동을 마친 뒤에 이루어진다. 만약 운동을 하는 중에 실시간으로 코칭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이케 히데키는 AI를 활용한 영상 기술을 통해 운동의 한복판에서 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 학습의 양상 자체를 다시 정의하려 한다.
우시바 준이치는 우리 몸이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의 ‘꼬리 흔들기 실험’은 학습 과정에서 변화하는 뇌파 양상에 관한 대표적인 실험이다. 열 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각자의 터치스크린 앞에 앉히고 뇌파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며 ‘화면에 보이는 꼬리를 흔들어라.’라고 지시한다. 물론 인간에게는 꼬리가 없기에, 특정 주파수 뇌파의 진폭이 늘어나면 화면 속 꼬리가 움직이도록 미리 프로그램을 짜두었다. 참가자들은 없는 꼬리를 움직이기 위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감각을 작동시키려 하는데, 그 결과 우리는 학습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우시바 준이치는 인간이 학습할 때 보상과 처벌이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리고 환경에 따라 뇌의 학습 능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주목하여 뇌 손상을 입은 뇌졸중 환자가 새로운 신경 경로를 개척해 팔을 움직이도록 돕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몸이 뇌보다 앞서 제멋대로 움직일 때 기술이 몸과 연결되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찰하는 두 과학자의 연구는 운동과 학습의 관점에서 새로운 몸의 가능성을 증명해낸다. 또한 기술은 인간의 몸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조해야 하며, 기술은 두드러지지 않을수록 좋다는 두 연구자의 말은 기술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능력주의에 대한 의문을 던지다
‘할 수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스마트폰 화면을 여러 손가락으로 제어하는 스마트스킨 기술을 발명한 레키모토 준이치. 레키모토는 음성 인식 기능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시프트키로 활용하는 기술, 의태어를 활용해 운동 학습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 등 목소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이 가진 능력을 확장하고자 한다.
레키모토는 또한 학습에 관한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AI 음성 변환을 통해 만들어낸 ‘모르는 외국어로 말하는 내 모습’ 영상. AI를 이용하면 우리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외국어를 말할 수 있다. 그럼 나는 이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할 수 없는 사람일까? 레키모토의 AI를 이용한 합성 영상은 우리에게 능력이 확장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할 수 있다’란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할 수 있다=뛰어나다 / 할 수 없다=열등하다’는 이분법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는 생산성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며, 그저 차이에 불과한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에 능력주의적 가치 판단이 끼어들어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자신들의 기준을 강요하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곤 한다. ‘할 수 있다’는 오랫동안 ‘능력’, ‘뛰어남’, ‘생산력’, ‘성공’ 등의 키워드와 얽혀 오해되어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몸의 관점에서 보면 ‘할 수 있다’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첨단 기술과 연결된 몸이 의식에 앞서 어떤 일을 해낼 때, ‘할 수 있다’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 사이에 놓인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술과 현명한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을까?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세라 핀스커 저 / 정서현 역 / 20,000원 / 창비


● 2020 필립K.딕상 수상작 ●

세계 3대 SF문학상 석권!
드디어 한국에서 만나는 압도적 이름

경쾌한 상상력, 정교한 서사, 우아한 문장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이야기들
‘1년 동안 미국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SF 출판물’에 수여되는 필립K.딕상을 2020년에 수상한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정서현 옮김)가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번에 창비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저자 세라 핀스커는 세계 3대 SF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석권한 뒤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스타작가로 급부상했다. 이 가운데 휴고상은 두 차례, 네뷸러상은 무려 네 차례나 수상하며 마르지 않는 상상력과 작품성을 증명해왔다. “읽을수록 즐겁고 놀라울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동시에 애절하다”(『퍼블리셔스 위클리』), “사려 깊고 매우 감동적이다”(『로커스 매거진』), “아름답고 씁쓸한 이야기. 그야말로 완벽하다”(『SF 레뷰』) 같은 찬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저자의 첫 소설집임에도 한 차원 높은 상상력과 밀도 높은 서사로 SF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중편 분량의 작품부터 네다섯 페이지가량의 엽편에 해당하는 작품까지 총13편 이야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권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경쾌한 상상력이 자아내는 따뜻하고도 매혹적인 핀스커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휴머니즘으로 창조된 개성적인 인물
예측 불허의 전개 끝에 찾아오는 감동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가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투하는 개성적 인물들”(「옮긴이의 말」) 덕분이다. 우주여행, 멀티버스, 디스토피아 등 이제 대중문화 전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SF 요소가 곳곳에 주저음으로 깔려 있지만, 세라 핀스커 특유의 휴머니즘을 통해 입체화된 등장인물은 여태껏 본 적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이는 첫 작품 「이차선 너비의 고속도로 한 구간」부터 바로 느껴진다. 주인공 ‘앤디’는 여자친구 ‘로리’를 사랑하는 마음에 팔에 “로리와 앤디 끝까지 영원히”라는 문신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둘은 이별했고, 문신을 새긴 팔마저 사고로 잘려 나갔다.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앤디는 뇌-컴퓨터가 탑재된 로봇팔을 이식받고 깨어난다. 새로운 신체 부위에 적응하기란 여러모로 힘들지만 가장 힘든 것은 “팔이 고속도로가 되는 꿈”(15면)을 꾼 이후 자꾸 머릿속에 등장하는 콜로라도주 동부의 이차선 고속도로다. 앤디는 그 원인이 이식받은 팔 때문이라 생각하게 된다. 앤디가 모르는 어떤 과거가 기계를 통해 이식된 것일까?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단순한 전개를 허락하지 않는데, 이윽고 마주하는 기억의 진실에서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표제작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의 배경은 거대한 해양 재난이 일어난 이후 멸망한 세계다. 배 같은 해상 탈출수단이 사라진 상황, ‘베이’는 해변에서 떠내려오는 것 가운데 ‘데브’가 있지 않을지 걱정하며 바다를 바라본다. 많은 이들이 널브러진 물건과 함께 해변에서 발견되지만 온전한 신체로 당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록스타인 ‘개비’를 구하게 되고 베이와 개비는 생존 경험, 파괴된 사회에 대한 회상,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듭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음 날 개비는 베이의 기타를 훔쳐서 도망가는데, 기타에 숨겨진 비밀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정서적 유대가 생겨난다. 이제 두 사람은 희박한 생존 확률을 안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도시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 불안을 털어내려는 듯 개비는 연주를 하고, 베이는 거기에 가사를 붙인다. 띄엄띄엄 이어지는 노래 끝에 제목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밖에도 오래전 떠나왔지만, 고향인 지구의 음악을 이어가기 위해 우주선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엔지니어(「바람은 방랑하리」), 분해된 채 가방에 담긴 로봇 할머니를 끌어안고 박해를 피해 떠나는 유대인 손녀(「그녀의 낮은 울림」),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을 일년에 하루만 돌아오게 하는 기술이 가능한 세계의 모녀(「기억살이 날」)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애틋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애틋함이 어느 순간 독자 개개인의 기억과 맞물려 몰아치며 서사적 몰입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SF로 드러내는 폭력의 기억과 역사
그리고 능숙한 연주처럼 이어지는 현란한 서사


개인과 사회에 가해진 폭력의 역사를 직시한다는 점도 여타 SF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깊이다. 「뒤에 놓인 심연을 알면서도 기쁘게」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작품에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국가 폭력에 부역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조지’의 고뇌가 드러난다. 조지는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된 상태이지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한 손으로 무언가를 그린다. 그것은 창문도 문도 없고 중앙에 감시탑이 솟아 있는 감옥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이야기는 훌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1년, 군인이던 조지는 뉴멕시코에 파병을 갔다 왔는데 그 이후 다정했던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민하고 냉랭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어느 밤 조지는 울면서 무언가 끔찍한 건물을 지었음을 암시한다. 다시 현재, 조지를 괴롭힌 건물의 설계도가 발견된다. 아내인 ‘밀리’는 그 설계도에서 어떤 실수를 찾아내는데, 감시탑이 절대 볼 수 없는 맹점이 존재했던 것이다. 실제 건물도 그렇게 지어졌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개와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찾아오는 울림이 개인과 역사의 문제에 이른다.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도 있다. 서정적인 톤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우리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리고 (N-1)명이 있었다」같이 스릴러처럼 박진감 넘치는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N-1)명이 있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는 제목부터 영국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의 패러디다. ‘아무도 없다’와 ‘한명이 적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멀티버스의 원리를 발견한 주인공인 양자학자 ‘세라 핀스커’는 여러 우주의 세라를 한자리에 모으는 ‘세라콘’을 개최하는데, 이야기는 그 현장에서 한 세라가 살해당하면서 이어진다. 살해자와 탐정 모두 ‘세라’인 혼란스러운 상황, 피해자가 된 자신을 마주한 보험수사관 ‘세라’는 이윽고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로 결정한다. 흥미진진한 전개 중에도 작품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각각의 세라가 어떤 “분기점”(426면) 때문에 달라졌는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능숙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양극화나 기후위기의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음악적 요소를 폭넓게 차용했다는 점도 이 책의 특별한 점이다. 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을 네장이나 발매한 저자의 이력과도 관련이 깊은데, 앞서 언급한 표제작은 물론이고 「고독한 뱃사람은 없다」 「바람은 방랑하리」 등에서도 음악이 서사의 주된 재료로 사용된다. 특히 네뷸러상을 수상한 또다른 대표작 「열린 길의 성모」는 밴드문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데이지’라는 밴을 타고 순회를 하는 록밴드의 멤버 ‘나’는 소설 밖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인디밴드의 멤버 같다. 그러나 소설 속 세상은 ‘스테이지홀로’라는 기술이 개발되어 사람들은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무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밴을 타고 돌아다니며 실황 공연을 하는 이 밴드는 시대에 한참 뒤처진 것이다. 스테이지홀로는 계속 계약을 독촉하지만 멤버들은 거절하고, 그럴수록 가난해진다. 어느 날 운 좋게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그들은 누군가의 호의 덕분에 숙소까지 제공받지만, 다음 날 밴은 물론 거기에 실린 악기까지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진지하게 스테이지홀로와의 계약을 논의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느 순간 이 이야기가 가상의 시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이들의 고민에 푹 빠져든다. 신념과 타협 사이의 고민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음악을 단순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서정적이고 차분한 구간과 반항적이고 경쾌한 구긴이 교차하는 능숙한 연주처럼”(「옮긴이의 말」) 글 스타일에도 적용한다. 이러한 리듬감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또다른 이유가 된다.

출간 당시 미국의 유명 서평 매체 『커커스 리뷰』는 “이 소설집은 앞으로 거칠게 질주할 세라 핀스커의 문학적 여정의 상서로운 출발점”이라는 평을 남겼다. 실제로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는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으며 여전히 인기를 구가 중이다. 정교한 서사와 우아한 문장으로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 이야기들이 이제 한국의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삶의 어떤 기술

윤유나 저 / 12,000원 / 창비


“부쩍 말이 많아진 너의 이야기가
가득 차올라
빛과 함께”
자유와 상상의 날개로 힘차게 비상하는 시
‘없음’의 아름다움을 있게 하는 신선한 감각과 맹렬한 인식


공감을 자아내는 페미니즘적 시선과 일상적 시어의 비일상적 연쇄가 주는 신선한 목소리로 주목받아온 윤유나 시인이 두번째 시집 『삶의 어떤 기술』을 창비시선 514번으로 펴냈다. 시인은 한층 선명해진 주제의식과 활달한 상상력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감각과 이미지의 직관적 연상을 따라 자유롭게 흘러”(최다영, 해설)가는 매혹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시집 곳곳에서 “슬픔을 말하다 중단하고, 갑작스럽게 희망이 끼어”들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양안다, 추천사)가 우리 모두의 삶을 대변하듯 요동치는 한편, 솔직하고 유연한 시인의 사고방식이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다정다감하게 어루만진다.

“내가 너무 사랑했다, 가짜인 줄 알면서도”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언어의 세계
윤유나의 시에서는 꿈속을 거닐 듯 몽환적인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그 산발적인 이미지들 속에 애타게 그리운 마음이 일렁인다. 이는 단순히 보고 싶은 사물이나 기억을 소환하기 때문이 아니라, 드넓은 상상력을 통해 실체가 없는 대상을 실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시인만의 “없음의 있음”(해설) 양상을 통해 환기되는 정서다. 예컨대 시인은 “형체 없는 마음에 모양을 주”(「결혼 없이 하지」)는가 하면, “가져본 적 없”(「약자」)는 아기의 안부를 물으며 무형의 대상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이제껏 본 적 없는 인물이 탄생”(「즐겁다」)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처럼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시적 상황들은 읽는 이의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함과 동시에 그리움의 정서를 아스라이 퍼뜨린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애달픈 마음 또한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이제는 없어진 것들은 아주 잊어버리려 하지만 “너무 잊고 싶은 마음”(「말이 안 되는 마음」)이 오히려 기억을 또렷이 되살려내는 역설을 마주한다. 이 과정에는 “있음-없음-사라짐”(해설)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인식의 단계가 존재하는데, 예컨대 “완전히 없는 것/없지”(「우유를 마셨어」)라는 문장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없음’ 상태에서 여전히 ‘있음’으로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드러낸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목소리를 지녔”(「피를 뒤집어쓰다」)고 “사라진 상태로 나타날 수 있”(「말이 안 되는 마음」)다고 믿기에 시인은 ‘없음’의 상태를 어느 정도 실체를 지닌 것, 말하자면 “기억을 붙잡아두는 일종의 장소”(해설)로서 인식한다. 이렇듯 상실의 자리까지 돌보는 시인의 담담한 어조는 다양한 종류의 상실을 매 순간 겪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듯 다정하다.
한편 시인이 거니는 꿈속이 마냥 ‘꿈결’ 같지만은 않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한입에 집어삼키는 야만의 현실이 수시로 틈입한다. 이때 시인은 제 안의 잠재된 공격성을 솔직하게 내보인다. “너를 혐오할 것이고/긴 밤에 이르러 너를 저주할 것이고/너를 망하게 할 것”(「돼지 없는 동물원」)이라는 분노가 들끓다가도 “내가 전부 잘못했다고 이를 악물고”(「쑥 찜질」) 참아내는 것이다. 때때로 “너를 사랑해//죽여버릴 거야”(「걔가 말을 옮겼어」)와 같은 상반된 감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마음이 하는 거짓말”(「추측」)이라기보다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내가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결혼 없이 하지」)에 가깝다. 분노와 인내, 혐오와 사랑이 진동하듯 펼쳐지는데 이는 ‘직진하는’ 언어에서 한 걸음 도약해낸 시적 결실이자 누구에게나 공감으로 가닿을 마음속 폭풍이다. 누구나 “나한테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나”(「약자」)이기에.
시인은 이처럼 세계의 폭력 앞에서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솔직하다. “사람한테 달려들 때마다 내가 짐승 같고”(「결혼 없이 하지」), “어떤 날은 내가 너무 더럽게 느껴진다”(시인의 말)고 속마음을 토로한다. “나를 사랑하는 일과 사랑하지 않는 일이 동시에 벌어”(「결혼 없이 하지」)지는 일상 속에서 무력감과 슬픔을 느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과 관계할 수 있을까”(「즐겁다」) 묻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언어/언어 없는 언어”(「고유감각」)로써 산재하는 폭력과 지저분한 내면을 “정화하는 일”(시인의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숱하게 사라지는 세상마저 끝끝내 살아지는 시인의 따뜻하고도 강인한 마음이 “인간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삶의 어떤 기술」)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프지 않게 하는 것”(「추측」), 다시 말해 “그냥 마냥 좋아하는 마음”(「그냥 바다」)으로 씩씩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시인이 마침내 터득한 ‘삶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마블 인사이드

조애너 로빈슨, 데이브 곤잘레스, 개빈 에드워즈 저 / 서나연 역 / 25,000원 / 다니비앤비

 
“마블 스튜디오가 어떻게 할리우드를 정복했는지 훌륭하게 정리했다!”_퍼블리셔스 위클리
“빠져들 수밖에 없는 책이다. 마블 팬과 영화 마니아에게 강력 추천한다!”_라이브러리 저널

★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 아마존 에디터 선정 베스트 히스토리
★ 엠파이어 선정 영화 애호가를 위한 추천 도서 2024

21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 제국으로 성장한
마블 스튜디오의 역사와 성공 비결을 파헤친 본격 탐사 르포르타주!
〈MCU: 마블 인사이드〉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MCU 마니아 3명이 마블 스튜디오가 할리우드를 정복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비롯한 출연 배우, 감독은 물론 프로듀서, 작가, 헤어스타일리스트와 세트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100여 명의 마블 직원 및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과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일화를 추적하며, 글로벌 대중문화 제국으로 성장한 마블 스튜디오의 역사를 생생하게 정리했다.

마블은 어떻게 세계적인 영화 제작사가 되었을까?
마블은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장난감 제조사에 팔릴 만한 완구 캐릭터를 제공하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에 불과했다. 1993년 캐릭터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깨닫고 영화와 TV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아비 아라드와 데이비드 메이젤에 의해 본격적인 영화 제작사로 변신한 이후 1996년 ‘마블 스튜디오’가 설립되면서 마블은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한다. 저자들은 90년대 파산 직전의 위기에 빠졌던 마블의 M&A 과정부터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서는 결단을 내린 순간, 메릴린치로부터 캐릭터 판권을 담보로 대출금을 빌려 초창기 영화 제작에 나섰던 이야기, 〈아이언맨〉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하는 과정, 디즈니의 마블 인수 협상, 케빈 파이기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략에 이르기까지 마블 스튜디오의 지나온 중요한 순간들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마블 스튜디오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마블 신화를 일군 마블 스튜디오 역사의 모든 것
저자들은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부터 드러난 마블의 천재성은 IT 스타트업의 자력구제 문화와 할리우드의 오래된 스튜디오 시스템을 결합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마블은 출연 배우들과 장기 계약을 맺었고, 신뢰할 수 있는 스태프와 작가를 양성했으며, 감독 고용 전에 영화의 외양을 결정하는 전문적인 비주얼 아티스트 팀을 데려왔다. 그 결과 영화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프랜차이즈 시리즈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책은 MCU를 성공시킨 마블 스튜디오의 역사를 완벽하게 소개한 최초의 책인 동시에, 21세기 대중문화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비결을 마블 스튜디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진지하게 탐구한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김누아의 가설

길상효, 김정혜진, 문이소, 청예 저 / 송수연 역 / 13,500원 / 문학동네
표준과 정상성 그 ‘바깥으로’
모두가 ‘나 자신’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문학동네청소년 ex’ 소설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선보인 ‘문학동네청소년 ex’ 소설은 장르문학의 가치를 알리고, 소수자성에 대해 고민하며 아동청소년문학의 길을 걸어온 송수연 평론가와 함께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들을 엮는다.
‘문학동네청소년 ex’ 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표준과 정상성에 물음을 던진다. 그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비정상으로 지목하는 게 맞는지 의심하면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예시’를 보여 주며, 자신과 타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확인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변방의 문학이었던 SF, 호러, 로맨스 등의 장르문학과 손을 잡았다. “보지 못한, 그래서 알지 못하는 세계와 타자의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것(SF),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여긴 대상의 낯선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호러), 여성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로맨스), 그리하여 변방과 중앙의 격차와 경계를 무화하는 것이 장르문학이 해 온 일”(송수연)이다. 다양한 주체를 주인공의 자리로 불러오는 장르문학과 존재 자체로 보편과 마땅함에 문제 제기해 온 청소년이 만나 희망으로 길을 낸 미래를 펼쳐 보인다.
‘문학동네청소년 ex’ 소설은 앞으로도 “청소년의 불안정한 위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며 세상을 낯설고 새롭게 보여 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너희와 달라.”
또렷이 기억한다. 내 입으로 말하던 순간을.
내가 나를 정확히 호명하는 순간 열리던 세계를.


‘문학동네청소년 ex’ 소설, 그 두 번째 책은 SF 소설집 『김누아의 가설』이다. 1권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은 중심에서 배제된 청소년들이 겪는 억눌린 욕망을 유머러스하게, 서늘하게, 때로는 진솔하게 그려 냈다. 이번 2권 역시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간 이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수많은 다름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 있음을 드러낸다.
제10회 비룡소문학상을 수상하며 꾸준히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발표한 길상효,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로 하여금 제삼자의 시선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평을 받은 김정혜진, 「마지막 히치하이커」로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하며 따뜻하고 경쾌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 문이소, 『라스트 젤리 샷』으로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은 청예 작가가 참여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가 정한 기준과 ‘다른’,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인류의 계획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태어났으나 온전한 ‘내 것’이 없다고 말하는 화성인, 우연한 계기로 까마귀와 소통이 가능해진 인간, 매년 겨울 동면에 드는 탓에 학습과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동면종,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홀로 지내는 아이. 네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립적인 인물들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먼저 용기 내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너희와 달라”라고 말하는 순간,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나를 온전히 긍정하는 동시에 ‘기준’, 정상성의 의미를 흔들며, 타자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유일한 진실이 아님을, 단 하나의 표준이 아님을 아는 앎.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앎의 모습입니다. 네 편의 소설이 보여 주는 이토록 다른 삶과 그 다름이 만나 펼쳐지는 놀라운 가능성은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줍니다.
_송수연(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나도 내 인생이니까 실험해 보고 싶었거든.
적어도 학교에선 아니었어.”
_문이소, 「지구살이 한국편 투두리스트」


한희수는 16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 화성 민간 외교관’으로 뽑혔다. 화성 테라포밍을 성공시킨 개척자 세대들의 유전자 선별 출생으로 태어난 ‘진 화성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은 희수. 희수와 함께 지낼 화성인은 우아한 미소로 지구에 엄청난 팬덤을 구축한 ‘고요한 밤의 미소’ 이세 한 로이다. 화성인 이세와 일주일간 별 탈 없이 홈스테이를 하면 공로상이 곧 손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세는 희수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고이 간직한 투두리스트를 꺼내는데……. 그리고 거기에 적힌 건, ‘가출하기’?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지구살이 한국편 투두리스트」에는 유전자 선별을 통해 태어났지만 ‘내 것’이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화성인 이세와 학교를 떠나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지구인 희수가 등장한다. 사는 환경부터 삶의 방식까지 너무도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점차 이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청량하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너에게 반짝이는 걸 주고 싶었어.”
그 특별한 목소리는 해리 마음까지 밝혔다.
_김정혜진, 「해리의 링링은 반짝인다」


초연결 기술이 보편화된 사회. 관자놀이에 부착한 링링으로 학교 출석은 물론이고, 물건 구매와 의사소통까지 모든 일을 처리하는 시대다. 하지만 최신형 링링 나인(9)이 아닌 구형 링링 에잇(8)을 사용하는 해리는 연결 오류로 버스를 제때 타지 못해 지각을 하고, 급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힘든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링링까지 잃어버려 최악의 하루를 보낸다. 하는 수 없이 유치원 때 쓰던 고양이 귀 링링으로 계정에 접속하는 해리. 뜻밖에도 해리는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링링을 주운 미지의 아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해리의 링링은 반짝인다」는 최신형 링링을 갖지 못해 사회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간 해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일을 불행으로만 여겼던 해리는 “인간과 동물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시공간을 체험”하는 놀라운 일을 겪으며 행운 속으로 힘차게 들어선다.


어제까지 없었던 것들이 내 안에서 뾰족뾰족 솟고 있었다.
관찰이라는 건, 지켜본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_길상효, 「김누아의 가설」


전 세계의 0.003퍼센트로 추정되는 동면종에 속한 누아. 매년 겨울잠을 자는 누아가 평소보다 이른 3월 초에 잠에서 깨어 정상적으로 학교에 가게 된다. 어쩌다 맛보는 안온한 삶, 보통의 삶이었다. 그러나 조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점점 숨이 막혀 온다. 과제를 끝내지 못하고 동면해야 하는 누아는 끝내 조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돼 있었으니까. 설상가상으로 같은 조인 미노가 누아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하고, 조원들은 조별 과제를 통해 특별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누아는 어렵게 입을 뗀다. “너희 혹시 동면종이라고 들어 봤어?”
「김누아의 가설」에서 누아는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았던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누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동면종을 둘러싼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제를 소수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화단에 심어 둔 꽃이 피면 구경하러 와, 언니.”
나는 이 아이의 현재가 아닌 과거가 궁금했다.
_청예, 「유채 곁에 피는 원」


재수생 신분으로 시작하는 봄, 연희는 한국과학대에 입학하겠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행운빌라에 입주했다. 그러나 기운찬 다짐이 무색하게 첫날부터 방에서 귀신을 마주한다. 귀신을 성불시키면 대학 추천서를 써 주겠다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연희는 타임머신을 굴려 그 애가 살아 있던 2년 전으로 돌아간다. 어찌저찌 그 애의 집 안까지 들어온 연희. 그런데 화장실에 놓여 있는 한정판 굿즈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이 아이, 나랑 최애가 같잖아.’
「유채 곁에 피는 원」의 연희는 자신과 다른 연주의 삶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대신 그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아주 작은 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는 연희의 다정한 바람은 과거에서 현재로 오기까지의 작은 과정들을 변화시키며 잔잔한 감동을 건넨다.











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저 / 17,000원 / 창비

슬픔을 달래는 느긋한 농담과 유머의 힘
인간의 선의를 믿고 싶게 만드는 윤성희표 소설의 온기
완숙한 시선과 따듯한 유머가 섞인 필치로 삶의 희로애락을 그리는 윤성희의 일곱번째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이 출간되었다.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작가로 선정되는 등 두루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소설가 윤성희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웃음을 끌어내는 엉뚱한 발상과 재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응집된 복잡한 삶의 얼굴을 행간에 부려놓는 솜씨는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매김한 윤성희 소설의 인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기가 돌올하게 드러나는 여덟편의 단편소설을 묶어낸 이번 소설집에서는 ‘생일’이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죽음’과 ‘태어난 날’이라는 극명한 대치를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시간을 절묘하게 겹쳐놓는 수작들을 모았다.
 
아무리 작은 비중을 가진 등장인물이더라도 그를 둘러싼 작은 서사가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윤성희표 소설에는 기쁨과 슬픔, 슬픔을 어르는 농담,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사고 등 마치 실제 우리의 인생사처럼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 유연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선의를 믿고 싶게 만드는 작가의 다감하고도 부드러운 필치가 담겨 있다.

일상의 결을 환하게 조각하는 애틋한 손길
작은 거짓말이 만들어낸 하루의 행복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쓸 때 “인물들에게 작은 파티를 해주고 싶었”(작가의 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생일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해피 버스데이」의 ‘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날은 자신의 생일이 아니다. ‘나’는 생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하루 동안 생일인 척 살아보기로 한다. 생일을 기념해 저녁을 사주겠다는 직장 상사와 함께 간 술집에서 ‘나’는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자신이 난생처음 병원에 입원해보고 깁스도 처음 해보았음을 깨닫는다. 지금껏 얼마나 운이 좋은 삶을 살았는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즉흥적인 가짜 생일은 「여름엔 참외」에도 등장한다. 친구의 아들과 함께 본 애니메이션 영화 속 입양아가 자신의 진짜 생일을 몰라 해마다 생일날을 바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나’는 마음 내키는 아무 날을 생일로 정한다. 한편 생일날 잘못을 용서받은 ‘나’도 있다. 「타임캡슐」의 주인공 ‘나’는 생일날 어떤 짓을 해도 혼내지 않겠다는 아빠와 고모의 약속을 받고, 고모가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하지 못했을 어떤 일을 대신 저지르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봉합한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가출을 감행한 고등학생도 등장한다. 「마법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몇년째 까치발로 걷는 기이한 버릇이 생긴 ‘나’가 하루 종일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생활하는 ‘성규’의 가출에 동조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계획 없이 집을 나선 둘은 극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밤새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후드티 모자를 쓴 채로 생활하게 된 사연,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며 비로소 까치발로 걷는 습관을 고치게 된 기억을 서로에게 공유한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그런 날이 있지”라는 담담한 위로의 풍경

이렇듯 생일을 둘러싼 일상의 풍경을 작가 특유의 명랑하고도 애틋한 필치로 그려낸 다른 한편에는 ‘탄생’과 대치되는 ‘죽음’의 풍경이 자리한다.
「자장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나’는 장례식이 끝난 뒤 잠 못 이룰 엄마를 염려하며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 엄마가 자신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며 밤을 새우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엄마는 오히려 죽은 ‘나’의 생일상을 차리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던 때에도 엄마의 슬픔을 눈치챈 적이 없다. 죽은 ‘나’의 생일날 정성껏 차린 음식들을 싸들고 친구를 만나러 간 엄마가,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그리움에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엄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지금껏 둘이 함께 만들어온 다정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꿈속에서 엄마는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가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웃는 돌」에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던 어린 ‘나’에게 “괜찮아. 그런 날이 있지”(164면)라는 말로 다정한 이해와 위로를 건넸던 엄마가 등장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그 목소리가 우연히 한 유튜버의 영상에 녹음돼 있다는 걸 발견한 ‘나’는 “그런 날이 있지”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엄마를 애도한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며 어떻게 위로하는지,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슬픔을 견디고 살아가는지, 상실과 슬픔을 그리는 이 작품들은 아름답고도 담담하게 애도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세상이 1.5배 속도로 재생될 때
내 마음의 속도는 0.25배로 흘러가도록

표제작 「느리게 가는 마음」의 ‘나’는 ‘이모’와 함께 ‘느리게 가는 우체통’을 찾으러 떠난다. 사연인즉슨, 이모가 1년 전 그곳에서 남자친구에게 엽서를 썼는데 그후 이모와 헤어진 그가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엽서에 쓴 주소지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 그 엽서가 조만간 배달되기 전에 찾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레 이루어진 이 엉뚱한 여행에서 ‘나’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지금처럼 잘하자. 지금까지 잘해왔다”(92면)는 식의, 스스로를 향한 위로의 말이 담겨 있다는 것도.
“느리게 걷고, 느리게 보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하루”(작가의 말)를 그리려 했다는 작가는 「느리게 가는 마음」에서 이름도 간판도 없는 한 식당을 소개한다. 경로당에 모여 매일 고스톱을 치는 게 전부였던 할머니들이 모여 만든 이 식당은 “팔리든 말든. 일단 우리가 맛있는 거 먹으려고”(97면) 다 같이 차리게 된 곳이다. ‘나’는 평소 먹지도 않았던 나물 반찬이 너무 맛있어 밥을 양껏 먹는다. 또,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보통의 속도」 속 ‘나’는 아파트 외벽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매일매일 예쁜 구름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페인트칠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아파트 벽에 몰래 새기기도 한다.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행보를 촘촘하게 따라가듯, 독자 또한 숨을 천천히 고르며 느리게 읽어야 윤성희 소설만의 감동을 축복처럼 누릴 수 있다. 짧은 문장 안에도 수많은 생의 얼굴이, 희로애락의 복잡한 감정이 응집되어 있는 이 책은 상처와 상실을 싸안는 따뜻한 유머의 힘을 증명하며 독자에게 ‘느리게 가는 마음’의 미덕을 선사한다.
진짜 생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오늘 하루를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보면 어떨까? 그 하루를 기념하는 마음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해질 테니까. 누군가의 생일을 축복하고 환대하는 마음으로 인간의 선의를 증명하는 윤성희의 소설처럼 말이다.















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저 / 17,000원 / 문학과지성사


“아직 어렸던 우리를 향해 희망을 속삭이는 듯했던 그 햇빛”
얼어붙은 줄 알았던 시간 속으로 날아든 작은 기적
부드러운 흰빛으로 가득 찬 백수린의 새로운 계절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 백수린의 네번째 소설집
아무리 살아봐도, 거듭 생각해봐도 그 답을 알 수 없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해보았다는 듯. 그와 같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소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내겐 없다.
─최진영(소설가)

손안에서 조용히 흘러내리는 모래가 나를 위로한다. 우주가 내 마음을 다독인다.
─이정향(영화감독)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시선, 우아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고유의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백수린의 네번째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데뷔 초 김윤식 문학평론가로부터 “물건 되겠다”는 평을 들은 바 있는 백수린은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안정적인 호흡으로 “가장 내밀한 내면”을 담아 “가장 보편적인 사건을 만”(김성중 소설가, 제10회 젊은작가상 심사평)들어왔다. 이러한 독자적인 스타일은 문단과 독자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고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등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아주 환한 날들』 등 그의 소설 속에는 ‘빛’이 함께해왔다.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 당시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그 희미한 희망의 전조를 기억하고 다시 쓰”(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작가라는 평은 왜 그가 ‘빛의 소설가’라 불리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번 소설집 역시 작가 특유의 빛을 가득 품고 있지만, 작품마다 조금은 다른 색채를 펼쳐나간다. 한때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만 영영 떠나보낸 사람과의 시간, 그리하여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없는 나날 속에 놓인 화자들에게 한 줌의 빛이 닿는 순간을 포착한 일곱 편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p. 266)는 ‘작가의 말’처럼 상실과 죽음 앞에서 꽁꽁 얼어붙어 부서질 듯한 마음들에게 온기가 깃든 “봄밤의 모든 것”을 건넨다.


“그 무엇도 그들이 공유했던 서로의 온기와 감촉,
그 봄의 밀도와 향기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으리란 사실을”
오해와 이해 사이에 쏟아진 한 움큼의 선명한 온기


소설집을 열면 가장 처음 마주치는 작품이 「아주 환한 날들」이다. 어두운 날의 반어적 표현 같기도 하고 무방비한 빛을 머금은 희망을 예고하기도 하는 듯한 이 소설은 일흔이 넘은 여성 옥미에게 느지막이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을 펼쳐 보인다. 딸과는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인, 외롭게 홀로 지내는 그녀에게 사위가 문득 앵무새를 들고 찾아온다.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들였지만 막상 아이들이 무서워해서 키울 준비가 될 때까지만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낯선 앵무새와의 동거를 시작한 옥미가 새를 돌보면서 딸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느끼는, “새가 닿았던 자리만큼의 크기로 따스”(p. 36)한 감정을 섬세하게 구현해낸다.
“딸은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p. 109)라는 첫 문장이 암시하듯 「흰 눈과 개」는 사이가 좋지 않은 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거의 8년 만에 조우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딸이 자신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빠인 ‘그’는 여전히 못마땅하다. 딸 역시 자신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스위스로 부모를 초대했으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한다. 오해로 인해 서로의 자리를 비워둔 채 지나온 세월로 되돌아가듯 설원 위에서도 그들은 다툴 뿐이다. 그러다 그들의 감정이 눈 녹듯 풀리는데, 절정과 결말의 틈에 놓인 “온몸으로 뛰어오르는 생명력”(p. 141)을 목도하면서부터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눈 덮인 그곳엔 관계의 균열을 무화시키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있다.
「빛이 다가올 때」와 「봄밤의 우리」는 우정과 사랑이 깃든 소설들이다. 또한 그때는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기억의 편린에서 찾아내 비로소 반짝이는 그것을 움켜쥐는 길을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다고 예단했던 일들이 결국 나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이 여정은 “발을 담그기만 해도 휩쓸릴 급류인지, 서서히 젖어갈 빗줄기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채로”(p. 88) 기꺼이 백수린식 사랑 속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잃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안에 숨어 있음을, 그러므로 모든 오해를 거두고 언제든 다시 환한 빛과 온기를 만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담은 봄밤이 짙은 향기를 머금을 꽃잎이 되어 쏟아진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존재했던 삶의 부재가 그려놓은 마음속 드라마


백수린은 허무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 사소한 계기로 말미암아 생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삶의 행로를 방해하는 불순물로 치부됐던 불편한 기억, 복잡한 감정, 경직된 갈등의 실타래가 풀릴 때, 백수린은 그 실들로 다시 욕망하는 법, 다시 슬퍼하는 법, 요컨대 다시 사랑하는 법을 기워 인생 뒷면에 찬란한 삶을 수놓는다. [……] 이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어진 빛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빛이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빛을 만드는 백수린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다. 암흑 같은 마음을 살리는 소중한 백야다.
─박혜진, 해설 「잘 적응된 허무」에서(pp. 263~64)

『봄밤의 모든 것』의 화자들은 저마다 커다란 상실을 하나씩 품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존재인 딸과의 갈등, 죽음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과 이웃, 각자의 삶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 사랑했던 애인과의 이별. 소설집 후반부에는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세 편을 연작소설의 형태로 재구성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상실감’을 더욱 깊이 있게 그려냈다.
「호우豪雨」의 소희는 도서관에 가는 것과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전업주부다. 한때 작가를 꿈꿨을 만큼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상상 속 이야기로 빠져들기를 즐기는 그에게 죽음은 두렵지만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소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밖 허름한 주택가의 파란색 대문 집에 놓여 있던 모든 게 사라진 것을 본 후 노인의 죽음을 상상하며 밤새 뒤척이는 까닭은,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고 상실은 늘 곁에 머무는 그림자와 같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음에 놓인 「눈이 내리네」는 소희의 대학 친구 다혜의 이십대 시절을 회고하며 시작한다. 엄마의 먼 친척인 이모할머니의 하숙집에 머물며 열정 가득한 대학 생활을 시작한 다혜는 학교에서 연애는 물론 수업과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집에 돌아오면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아침잠 없는 칠십대 이모할머니와 생활했는데, 일찍 일찍 다니라는 이모할머니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다혜에게 사랑의 훼방꾼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 “젊음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자각하게 되는 날”(p. 201) 다혜는 할머니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날을 떠올린다. 열정 가득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生)의 중반기에 들어서며 더는 죽음을 쉽게 여길 수 없어진 마음들이 작가가 그려낸 부재와 상실의 설계도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앞선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인 여행지 리조트를 배경으로 각자의 과거와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가 촘촘하게 구성된 인상적인 작품이다. 주미, 소희, 다혜 그리고 화자인 ‘나’는 이제 사십대 후반이 되었다. 그들의 대학 동아리 시절 이야기는 그들을 잠시 청춘의 그날로 되돌려놓기도 하지만 청춘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실감하게도 한다. 가족 누군가가 세상에 없거나 아이가 곧 대학생이 되는 그들에게 주미는 11년 전 독일에서 겪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 끝에서 그들은 죽음으로 점점 다가가는 삶의 허무와 공백의 자리에 “상처 하나 없이, 기적처럼”(p. 245) 날아오를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는다.
더 올곧고 선명하며 “강직한 빛”(해설, p. 263)으로 찾아온 백수린의 소설들은 상실과 긴 허무의 밤을 걷는 모두에게 새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