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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뉴스

4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5-04-02
조회수
98



모든 게 처음인 브랜드의 무기들

윤진호 저 / 19,000원 / 갈매나무


브랜딩은 나중에 잘되면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사람과 돈이 모이는 내 브랜드 성공 방정식!
대한민국은 100명 가운데 99명이 작은 기업에 속하고, 1인 기업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작은 브랜드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브랜딩은 큰 회사에서 하는 일 아닌지, 마케팅과 브랜딩은 무엇이 다른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는 사람이 많다. 많은 사람이 브랜딩을 남일로 생각하고, 자신을 단순히 물건을 파는 셀러로,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로,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프리랜서로 정의한다. 그리고 한정된 판 안에서 다른 셀러, 자영업자, 프리랜서와 ‘더 싸게, 더 많이, 더 빠르게’ ‘더’의 무한경쟁을 펼친다. 저자가 무엇보다 먼저 ‘브랜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CJ ENM, 월트디즈니, GFFG(노티드)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저자 윤진호(마케터 초인)는, 안정적이던 회사를 나와 〈초인 마케팅랩〉이라는 이름으로 150개가 넘는 작은 브랜드와 동고동락하고 나서야 돈도 시간도 사람도 부족한 작은 브랜드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우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작은 브랜드에게 ‘기능이 아닌 스토리’로 ‘구매자가 아닌 찐팬’에게 ‘제품이 아닌 브랜드’를 팔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보고 듣고 배운 노하우를 책에 아낌없이 담았다.

☑ 봄마음의 시작 : 작가도 아닌데 내 브랜드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까?
☑ 밀라노기사식당의 빌드업 : 우리 가게의 ‘찐팬’을 어디서, 어떻게 모을까?
☑ 아르프의 차별화 : 수많은 브랜드와 달라 보일 방법이 있을까?
☑ 플로우스의 성장 : 꽉 막힌 매출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릴까?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브랜드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4단계(시작-빌드업-차별화-성장)로 나누어 순서대로 밟아나간다. 브랜드와 저자가 동행한 스토리와 함께 단계별로 작은 브랜드의 무기가 되어줄 전략을 키워드(스토리텔링, 페르소나, 시그니처와 원메시지, 맨파워와 멀티브랜드)로 정리했다. 1분 1초가 아쉬운 작은 브랜드라면 책에서 소개하는 전략이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브랜딩에는 무엇보다 “내 브랜드에 적용해보는 행동력”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만큼 저자가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
서 성공을 확신한 전략들만 쏙쏙 뽑아 정리했으니, 걱정은 덜어도 좋다. 혼자 운영하는 1인 가게도, 하루 매출로 먹고사는 자영업자도, 마케팅이나 배워본 직원이 없는 작은 회사도 각자에게 맞는 무기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저자가 현장에서 얻은 질문과 해답, 브랜더로서의 마음가짐, 다가올 브랜드 트렌드까지 담아냈으니 말뿐인 브랜딩을 멈추고 실제로 브랜딩에 뛰어들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마중도 배웅도 없이

박준 저 / 12,000원 / 창비


“시간은 우리를 어디에 흘리고 온 것일까”

모두의 기다림에 응답하는 박준이라는 따뜻함
이번에도 슬픔은 아름답고, 위로는 깊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로 한국시 독자의 외연을 폭넓게 확장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박준의 세번째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일상의 소박한 순간을 투명한 언어로 포착하는 특유의 서정성으로 신동엽문학상, 박재삼문학상, 편운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문학성 또한 공고하게 입증해왔다. 7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그리움과 상실마저 아릿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미덕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한층 깊어진 성찰과 더욱 섬세해진 시어로 전작들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살면서 놓쳐버린 것들, 어느새 잊힌 것들의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시대와 개인 모두와 조응하며 남다른 공감을 선사한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함께 앉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시집”(추천사, 이제니)이라는 말처럼, 박준의 위로가 고요히 존재하는 삶들에 불어넣는 숨결이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
애틋한 온기로 빚어낸 푸릇한 생명력


‘당신’을 향한 애정 어린 호명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독자들은 박준 시에 등장하는 ‘당신’에 특별한 친근감을 느껴왔는데, 이는 그 호명이 단순한 연애감정을 아득히 초월해 존재의 깊은 곳에 가닿기 때문이다. “하나의 답을 정한 것은 나였고/무수한 답을 아는 것은 당신이었다”(「귀로」)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시인의 ‘당신’은 “존재의 높은 이름”(해설, 송종원)이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높임으로써 “시인을 배움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 사람 안의 하늘을 경험하게 해준다.”(해설) 이러한 자세 때문인지 이번 시집은 삶의 주변부와 외진 장소에 화자를 두는 일이 잦아졌다. 그곳에서 발견한 소박하지만 숭고한 사람들의 언어와 삶이 풍부하게 담겼다. 일상적이지만 품격 있는 이들의 말과 행동이, 박준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진정성 있는 서정으로 거듭난다. “삶은 너머에 있지 않았고 노래가 되지 못한 것만이 내 몸에 남아 있습니다”(「공터」)라는 깨달음도 이 덕분에 반짝 빛난다.
박준의 시는 다소 과묵하다. 말을 많이 부려내어 정서를 장황하게 풀어내기보다는, 오히려 말을 삼키고 그 여백 속에 감정을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소리 없이/입 모양으로만/따라 부르”(「초승과 초생」)듯이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울림을 전한다. 이는 시인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음을 끓입니다 한 솥 올립니다”라는 간단한 행위가 “나는 아직 네게 갈 수 없다 합니다”로 마무리되는 것처럼(「마음을 미음처럼」), 말하지 않은 것들이 말해진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와 읽는 이로 하여금 상실의 무게와 그 안의 애잔한 온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송종원은 이를 “혼잣말로 화하게 하는” 시인의 힘이라 평하며, 박준이 “철저한 없음”을 견디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서 피어나는 정서의 깊이를 독자와 공유한다고 보았다. 이 간결함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시인이 삶의 결락을 직시하고도 여전히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은 성숙한 태도를 지녔다는 증거다. 그래서 독자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손금」)라며 시의 화자가 텅 빈 손을 들여다보면서도, 다시 “네가 두고 간 말을 아직 가지고 있어”(「다시 공터」) 하고 중얼거리는 순간 저마다의 빈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이번 시집은 상실을 감싸고 넘어서는 생명력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손금」) 앞에서도 “겨울을 지나는 수련처럼”(「수련」) 뿌리 깊은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이는 얕은 희망이나 허황된 회복의 기대와는 다르다. 상실로 텅 빈 자리에서도 “빛과 그늘과 바람과 비를 맞이하는 화분”(「오월에는 잎이 오를 거라 했습니다 (…)」처럼 고요히 존재하는 힘이다. 바로 이 힘이 상실의 경험을 깊숙이 응시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준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는 조용히 다가와 오래 머무는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추천사) 시집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여백마저 독자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감성을 제공한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낯선 길에서 누군가와 눈인사나 하고 싶어”(「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지는 마음이 뭉근하게 일어나게 한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박준의 시를 아껴 읽는 이유일 것이다. 평소 시를 즐기지 않는 이들의 마음에도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올곧게 새겨왔다. 그의 시를 기다려온 모두가 이 한권에 담긴 깊은 숨결과 묵묵한 사랑에 다시금 마음이 젖을 것이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조지 G. 슈피로 저 / 이혜경 역 / 24,000원 / 현암사

당신의 뇌를 깨워줄 당혹스럽지만 흥미진진한 60가지 역설의 세계
믿어 의심치 않은 것들의 진실을 파헤치다!
‘왜 내가 타려는 엘리베이터는 항상 늦게 오는 걸까?’ 내려가려면 꼭 내가 있는 층 아래로 내려가고 있고, 올라가려면 내가 있는 층 위로 올라가고 있다.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만 같다. 하지만 이 현상은 ‘엘리베이터의 역설’에 따르면 확률적으로 타당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최대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는 쾌락주의자는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쾌락주의의 역설’에 따르면 당연한 결과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이렇듯 평소 우리가 직관에 따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판단한 명제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순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크고 작은 역설들을 면밀히 탐구한다.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문제에서부터 수학, 사회과학, 철학, 언어, 정치,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60가지의 반직관적 수수께끼들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이 책의 저자 조지 G. 슈피로는 난해한 수학 문제의 개념들을 쉽게 풀어내는 데 탁월하며, 오랜 시간 수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수학자다. 그는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에서 또한 우리 삶과 가까우면서도 복잡하게 느껴지는 역설들을 특유의 유쾌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각각의 역설이 탄생하고 이름 붙여지기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이를 둘러싼 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내적 작동 원리를 파헤친 후(해제), 사회적인 차원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부언). 이로써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실들에 균열을 내고, 독자로 하여금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하게 만든다.


전능의 역설, 이발사의 역설, 소크라테스의 역설 등···.
우리 삶이 다시 보이게 하는 다양하고도 낯선 질문들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에서 다루는 역설 이야기들은 단순한 수수께끼나 지적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각각 5개의 분야로 12장에 걸쳐서 60가지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전능한 존재는 자신이 들어 올릴 수 없는 돌도 창조할 수 있는가(전능의 역설)?, “비가 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비가 온다고 믿지 않는다”는 비논리적인 문장인가(무어의 역설)?,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소크라테스의 역설)?, 합법적인 2가지 행동이 합쳐질 때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는가(협박의 역설)?, 0.9999···는 정말 1과 같을까(무한소의 역설)?,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세비야의 모든 남성을 면도해야 하는 세비야 이발사가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면도해야 하는가(이발사의 역설)?” 등 때로는 말장난 같고, 때로는 사고력 시험 문제 같기도 한 이야기들을 통해 복잡한 인간 행동과 세상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본다. 그를 따라 수많은 역설들을 살피다 보면 두뇌 자극은 덤이고, 모든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쉽게 속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상상하든 상상 이상의 충격과 재미를 가져다줄 역설의 세계가 펼쳐진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대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존재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는 SNS의 발달, 알고리즘 추천, 챗봇, 바이럴 마케팅 등으로 둘러싸인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 밀려오는 듯한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이 보고 듣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또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직관에 의존해 보이는 대로 믿고, 판단하기 바쁘다.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약화시켜 타인의 의도나 외부 환경에 휘둘리게 만든다. 무수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환경, 그 자체는 이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반드시 흑 아니면 백으로 나뉜다는 친숙하고도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답을 스스로 찾아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대인공지능 시대에 지지 않고 인간의 고유성과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의 모험 만화

김보나 저 / 12,000원 / 문학과지성사


“감당하기 힘든 마음처럼 몸이 불어나도
용감하게 걸었다는 기억을 갖고 싶어”
모험가처럼 용감하게 획을 긋고 색을 입혀
당신에게 열어 보이는 나의 만화, 나의 이야기

천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며 내밀한 마음을 가로지르는 시인
김보나 첫 시집 출간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보나의 첫 시집 『나의 모험 만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14번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마음의 여백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풍부한 상상력”(나희덕ㆍ박형준ㆍ문태준,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을 “말갛고 나직하고 유머러스한, 누구와도 안 닮은 언어”(이원, 『시 보다 2023』 추천의 말)로 펼쳐낸 시 52편을 총 5부로 나눠 묶었다.

키 작은 주인공이
딱 한 번 용기를 낸다

만화 그리는 게 좋았다

[……]

칸 속 사람들의 말풍선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내년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왜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는지

해가 진 뒤로
저마다의 모험은 어떻게 지속되는지



(계속)

-「나의 모험 만화」 부분


만화라는 콘셉트 아래 일종의 ‘텍스트-어드벤처’를 지향합니다.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는데, 독자는 화자에 이입하여 여자와 남자, 유년과 노년,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등 다양한 경계를 오갈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을 읽는 분들께서 모험 만화를 읽을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각,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느낌, 누군가에게 반하는 마음, 그를 잃는 느낌 등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되어 다양한 삶을 추체험하는 경험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쁨, 슬픔, 상실감 등 살아간다는 느낌을 새로이 느끼고 반추할 수 있도록 하는 시집이 되길 꿈꿉니다.
-웹진 〈공통점 아카이브〉 ‘월간 사람책’ #2

김보나의 시적 언어로 탄생한 모험 만화 주인공은 “칸 속 사람들의 말풍선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발걸음을 뗀다. 저마다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독서 기록장에는 쓰지 못한 문장 혹은/어린 토끼에게 건초를 부어 주며 쏟아낸 마음”(「나의 모험 만화」)을 들여다보고자 그가 익힌 술법은 ‘둔갑술’. 이 모험 만화 주인공은 김보나의 시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인물로 분화하여 “종종 딸기나 펭귄이나 친구 등으로 둔갑한다”(뒤표지 글). 자신을 감추거나 상대방을 속여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타인의 마음을 선선히 드나들기 위하여.
마냥 둥글고 넉넉지만은 않은 것이 사람의 내면이기에 여러 마음을 경유하는 이 모험은 필연적으로 험난하다. 타인의 모난 지점을 통과하다 찔린 마음은 곧잘 상처를 입어 미움의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불행이 생의 주제라고 요약하는 대신” 열심히 “걸어가는 주인공을 보여”(「물가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준다. 김보나의 시 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조차/스스로 머금는 숨의 폭보다/커질 순 없”(「현관을 열고」)음을 되새기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걷는 수밖에 없는/어둠을 통과하는 길”(「걸어도 걸어도」)을 계속해서 걸어나간다.
모험이란 무릅써야 하는 위험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모험이 끝나지 않는 이상 위기와 고난은 계속될 테지만, 김보나의 시는 “끝까지 결말을 지연하”고 “끝에서 다시 모든 걸 반복하며”(홍성희, 해설 「미친 봄날의 끝말잇기」) 결코 안정적인 세계에 들어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집의 모든 여정을 뒤따르고 싶어지는 까닭은,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었으면 좋겠다”(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는 마음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의 이야기에는 온통 “길한 것밖에 없”(「음양 자르기」)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보나의 모험 만화 속 주인공을 “응원하는 사람의 작은 기쁨”(「스위트 나이트」)이 여기에 있다.


“입안에 잠시 차오르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세계”
-모험 퀘스트: 세상을 입안에 넣고 굴려 맛보시오


우리 앞엔 저마다의 이랑이
숨 막힐 만큼 새빨간 딸기가
펼쳐져 있다

언젠가 찾아오는 겨울을
제철이라 믿으며
발버둥 치는 딸기,

겨우내 무르익은
못생긴 딸기, 물크러진 딸기, 작거나 멍든 딸기가
이곳에서는 전부 나의 것이다

제일 못난 딸기를 따서
가장 빨간 부분을 베어 문다

그리고 딸기의 일부가 내게 스며들게 놔둔다
-「딸기의 고장에서 태어난 사람」 부분

『나의 모험 만화』에는 아이스크림, 팝콘, 토마토, 맥주, 감자칩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등장한다. 러닝 액션 게임의 캐릭터가 중간중간 아이템을 획득해가며 앞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안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김보나의 모험 만화 주인공은 시집 갈피마다 숨어 있는 먹을거리를 챙겨 먹으며 여정을 이어나간다.
김보나의 시에서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행위는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방법이다. 시 속 인물들은 “말라붙은 찻잎에 끓어오르는 물을 부”어 마시며 “속에서 불씨가 타오르는”(「황차의 별」) 느낌을 감각하고, 망개떡 파는 소리를 들으며 “보얗고 차갑고 설겅거리는” 하얀 떡처럼 “손아귀에 끈기 있게 엉겨 붙던 마음”(「망상 하천」)을 떠올리고, 버터를 만들며 자신에게 내재된 “젖 먹던 힘”(「백봉령 버터 박물관」)을 깨닫는다. “타오르는 솥 안에서 익어가는” 만두송이들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가진 천 개의 얼굴”(「차이나타운」)을 헤아리기도, “외국 사람이 손질한 게를 받아”든 채 “처음”으로 “자기만을 위해 소복한 흰밥을”(「눈송이를 위한 자장가」) 지으며 누군가를 살피고 기다리는 일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인상과 풍경이 제 몸에 “스며들게 놔”(「딸기의 고장에서 태어난 사람」)둠으로써 그들은 조금 더 강하고 용감해진다.


“서로의 언어로
끝말잇기를 시작해요”
-모험 리워드: 경계(境界)와 경계(警戒)가 해제됩니다

한 사람이 곁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악인이 아니어도 산을 즐겨 오를 수 있듯
나는 사랑의 전문가가 아니면서
한 사람의 손을 잡기도 했다

땅거미가 찾아오고
박쥐 무리가 날아가는 저녁

시력을 포기했으니까 박쥐는 어둠을 헤쳐나갈 초음파를 얻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어둠 속을 같이 걷고 싶은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이 진화하자
-「윙스팬(Wingspan)」 부분

김보나의 시 속 인물들은 모험 중 맞닥뜨리는 수많은 장소 앞에서 홀홀 경계(境界)를 넘으며 나아가고, 그 너머에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알알이 쌓아”온 “한 사람만을 위한 고백을”(「여름 느낌 단편」) 건넨다. “곁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서, “같이 진화하”여 함께 “어둠 속을 같이 걷”[「윙스팬(Wingspan)」]자고 속삭인다. 이 고백이 사뭇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은 단순히 그에 어려 있는 진심 때문만은 아니다. “받은 모든 편지를/과일 상자에 보관하는/그런 사람”(「여름 느낌 단편」), “마음에 드는 낱말을” 차근히 “채집”(「여름방학」)하여 자신만의 사전을 꾸릴 줄 아는 사람, 늘 상대에게 “더 좋은 말을 주고 싶”[「히쓰지분가쿠(羊文学) 보컬과 결혼하려면」]어 하는 사람이 정성껏 골라낸 말들은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홍성희가 짚어내고 있듯이, 김보나의 시 속 인물들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 아래 함부로 “믿음의 언어와 공동의 언어를” 허물지 않는다. 언제든 “진심에 대한 단정하고 다정한 가정이 깨”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통하기를 희망하는 바람으로 ‘사각사각’ 자신의 “언어를 더”할 뿐이다. 그 간절함을 통해 ‘당신’과 ‘나’는 “하나의 문법을, 활자를,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하나의 규칙을 넘어” 연결된다.
“늘/먼저 고백하는 사람으로 자”(「「미친 봄날 생각」」)라온 이 모험 만화 주인공의 단단한 전언은 낯섦으로부터 오는 경계(儆戒)를 누그러뜨린다. “타인이 건네는 목소리를/두려워하지 않아도”(「무국적 발자국」) 된다는 안도감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끼며 “서로의 언어로” “로/로/로//노래”[「히쓰지분가쿠(羊文学) 보컬과 결혼하려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시인은 더 많은 말풍선을 함께 채워나가자며 펜을 쥐여 준다. 마치 “이 모험의 끝은 친구를 만드는 일이라는 듯”(「나의 모험 만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저 / 22,000원 / 창비


 
90년대,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던 바로 그 책
분열과 혐오의 한국 사회를 다시 한번 각성시킬 목소리
한국 사회에 ‘홍세화’라는 이름을 처음 각인시킨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30년 전인 1995년 초판 출간 당시, 군부독재의 여파로 아직 경직되어 있던 한국 사회에 타인에 대한 상식적인 존중과 용인을 뜻하는 ‘똘레랑스’(tolérance)를 알리며 단박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념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의 착륙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안 읽으면 부끄러운 책’으로 알려지며 오랜 시간 열광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 어두운 시대의 막을 내리듯 이 책은 도착했고 변화를 갈망하던 1990년대 청년들에게 각광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똘레랑스’가 절실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불용하고 차이를 차별과 억압의 이유로 삼으며 공존보다 분열을 더 쉽게 선택하는 이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 존중과 인정은 갈수록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타자를 향한 혐오를 원동력 삼아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살하려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묵인한 결과, 다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할 탄핵 정국의 광장에서조차 시민들은 극단적으로 대립했고 화합은 우리 앞의 가장 긴요한 과제로 남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2006년 개정판의 서문에서 말했듯 ‘달라졌으면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라서 똘레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앞으로도 아주 긴 세월 동한 계속 유효할 것이다.’(6면) 위기를 넘어 민주주의의 서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하는 이때야말로 홍세화의 똘레랑스를 다시 한번 곱씹고 소화해야 할 적기임이 틀림없다. 출간 30주년을 기념하고 홍세화의 타계 1주기를 기억하는 의미를 담은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홍세화의 오랜 벗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추도문과 저자가 2023년 『한겨레신문』에 마지막으로 기고한 칼럼을 추가해 더욱 뜻깊다.

빠리의 유일한 한국인 택시운전사
망명자이자 이방인의 시선으로 두 사회를 바라보다

1979년 유신 말기, 비밀리에 반독재 투쟁을 전개해온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조직원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남민전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간첩 조직이라는 누명을 쓰고 와해되었고, ‘남민전의 전사’들은 차례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동료들에게 가해지는 모욕과 폭력을 먼 타국에서 지켜만 보아야 했던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홍세화다. 그 또한 남민전의 일원이었으나 당시 그는 우연찮게 빠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남민전과 관련된 이라면 누구나 ‘빨갱이’ ‘간첩’으로 몰려 감옥으로 잡혀 들어가는 시대에 그는 귀국할 수 없었고, 하루아침에 망명자 신분이 되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그는 생존을 위해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고, 그가 빠리의 유일한 한국인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한국 사회에도 프랑스 사회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 겪고 고민한 바를 써 내려간 자전적 에세이가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이다.
“나는 삼중의 이방인이었다.”(81면) 홍세화는 말한다. 그는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고, 빠리에서는 언제나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소?”(44면)라는 질문을 받는 타자였으며, 빠리의 한국인 공동체조차도 그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배척했다. 어디에도 섞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자리에서만 보이는 진실이 있었기에 이 책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더욱 울림이 크다.
홍세화는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64면)이 일으키는 충격을 생생히 증언하는 자였다. 고문과 투옥을 피해 70년대의 한국을 떠나온 그에게 프랑스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고 행하는 모든 것들, 특히 저마다의 개성, 자유로운 의견 피력, 타인의 생각과 처지에 대한 존중은 뼈아프게 낯설고 부러운 것이었다. 그가 운전대를 잡고 빠리를 누비며 경험한 프랑스의 상식은 한국의 상식과 놀랍도록 달랐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우선시하며 그렇기에 누구나 기득권에 맞서 자기의 권리와 의견을 서슴없이 주장할 수 있게 보장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며 그는 “내가 알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었고 꿈틀거림이었다”(69면)라고 술회한다.
“중력이 없는 땅”(404면)인 듯 느껴졌던 프랑스 사회와 그 자신 사이의 간극은 그가 망명 신청을 위해 찾아간 프랑스 사무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사무국의 관리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해야 했지만, 짧은 영어 몇 마디로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의 실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특히 남민전의 일원이었다는 그의 말에 사무국의 관리가 “그래서 당신은 그 조직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을 했습니까?”(187면)라고 되묻자 그는 기어코 말문이 막혀버린다. “몇 차례에 걸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자는 삐라를 뿌렸다는 정도”만으로도 “한국의 유신체제하에서는 취조실에서 고문을 당해야 하며 적어도 수년간의 옥살이를 각오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지만 엄연한 사실”(187면), 이러한 사실을 가능케 한 분단의 현실을 프랑스인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허탈함과 분노를 못 이기고 “이상주의자도 휴머니스트도 빨갱이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193면)이라고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다른 생각’을 용인하지 않았던 우리의 암울했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이념적 낙인을 쓰라리게 상기시킨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
분열과 혐오의 한국 사회에서
홍세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국가의 이념에 순응해야 하는 사회와 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사회. 무엇이 두 사회를 이토록 다르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홍세화는 두 사회의 차이가 ‘똘레랑스’의 유무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똘레랑스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374면)을 뜻한다. 당신의 이념과 신념이 존중받길 바란다면 남의 이념과 신념도 존중하라. 이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요구이며 인간 이성의 당연한 주장”(375면)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서는 타인의 생각과 입장을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강제로 바꾸려들지 않는다. 서로의 다른 입장은 부단하고 치열한 대화를 통해서만 좁혀질 수 있을 뿐이다. 타자를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똘레랑스의 정신은 정치나 사상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국적, 인종, 문화, 생활방식, 정체성 등을 용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즉 똘레랑스는 일종의 삶의 태도이자 인간 사회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최소한의 배려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홍세화는 프랑스를 지탱한 것이 똘레랑스였던 반면 한반도를 지배한 것은 “증오의 이데올로기”(71면)였다고 말한다. 남북이 서로를 증오하고 배척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꾀했던 분단의 역사는 다름을 위협으로, 타자를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벌써 공산주의자를 철저히 증오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71면)우는 사회는 인간 사이의 신뢰와 연대, 상호 책임을 훼손하고 공동체를 찢어놓았다. 비판적 관점과 견해 들은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399면)라는 볼떼르의 말처럼 맞부딪쳐 활력을 자아내지 못하고 증오와 독선의 논리에 의해 산산이 부수어지기 일쑤였다. 이 책에서 홍세화는 자신이 한국전쟁 때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였음을 밝히며 이러한 증오의 이데올로기가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잔인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지 또한 증언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갈라치기’를 부추기는 정치 현실, 일상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이념적 갈등,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등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증오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똘레랑스는 일상의 지침이자 공동체의 윤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다시 똘레랑스의 가치를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것이 홍세화가 ‘보론’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똘레랑스를 설명하는 이유이고, 이 책을 지금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소외된 이들의 진정한 벗이자 영원한 아웃사이더
홍세화의 시작점이 된 단 한권의 책


홍세화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출간하고 10여 년 만에 영구 귀국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그는 다시 몸담게 된 한국 사회에 적응하길 거부했다. 깨어 있는 비판자로서, 자신이 전한 똘레랑스의 정신을 한평생 실천해나갔다. 언론인, 정치인,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기득권의 위선과 독선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다수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의견이더라도 더 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굽히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이었지만, 그는 자꾸만 더 낮고 외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밀려난 이들, 난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빈자의 벗이 되어 함께했다. 그는 진정한 자유, 평등, 연대라는 이상을 향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열어가야 하는지를 최전선에서 묵묵하게 보여준 시대의 어른이었다.
망명생활을 하기 전 그가 한국에서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일명 ‘KS’ 마크를 단 기득권이자 엘리뜨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놀라운 행보다. 그런 이력을 가진 그가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끝까지 ‘똘레랑스의 전도사’로, ‘아웃사이더’로, ‘소박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빠리에서의 20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간의 배경이 모두 부질없어지고 맨몸으로 다른 사회와 부딪혀야만 했던 때, 예상치 못하게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생존 잇기’의 쓴맛”(114면)을 감내해야 했던 날들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시절 프랑스어가 서툰 외국인 택시운전사를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해준 손님들, 일상의 연대가 무엇인지 알려준 택시운전사 동료들, 웃고 떠들고 어깨동무하며 데모를 하던 그때 그 거리의 자유로운 빠리지앵들… 그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놀라움과 감동, 씁쓸함을 안기며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람들, 장면들, 일화들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홍세화의 시작점이 된 단 한권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펼쳐 “빠리에 오세요”(13면)라며 운을 떼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똘레랑스가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로 다가오고, 분열과 단절의 시대를 건너는 중인 우리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

황선미 저 / 18,000원 / 문학과지성사



 
‘동화 쓰기’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한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 황선미가 들려주는
동화 쓰기의 모든 것

사회적인 목소리를 담보하는 시작

올해로 등단 30주년을 맞이하는 황선미 작가의 동화 창작론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로 자리매김한 작가 황선미가 자신처럼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과 만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창작의 과정을 들려준다. 매 순간 동화의 독자인 어린이들에 대한 관점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검열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부터 글쓰기의 희열까지 동화 쓰기의 모든 것을 담았다. 무엇이 동화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지 어떻게 써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는지 30년간 성실함으로 일궈 온 자신의 작품과 경험을 곁들여, 흰 여백 위에 온전한 세계를 만들어 독자와 만나기를 희망하는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인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동화 창작에 앞서 작가 황선미는 동화가 서사 문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화는 서사 요소를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라는 인식이 동화 쓰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고, 서사 요소를 기반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야 이야기 전개나 인물의 심리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주 독자라는 사실 때문에 동화는 인도주의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 또한 강조한다. 무엇을 쓸지에 앞서 내가 쓰는 글을 읽을 어린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강연과 현장에서 어린이 독자를 만나면서 느낀 동화 창작에 대한 생각과 다음 단계로의 스텝을 떼기 어려워하는 창작자들을 가르치면서 경험한, 동화를 쓰는 데 필요한 조건과 과정들을 세세하게 가름해 보여준다.

“동화는 작가가 사회의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어린이라는 존재와 더불어 접근하는 문학이고, 어른과 같은 공간에 놓인 어린이 편에서 사유하는 문학이며, 어린이는 어린이만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학이다. 이것이 창작에 앞서 먼저 짚어야 할 요점이다.” --- p. 13


어린이는 어른과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른인 작가가 어린이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을 창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보다 어린 독자의 대상화가 생각보다 어렵고 어린이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을 좀 더 세심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정의 어려움을 넘어 어린이 독자가 읽을, 읽게 될 문학을 창작하는 즐거움 또한 크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동화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이다. 동화는 동심, ‘어린아이의 마음’을 바탕에 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과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어린이에게는 자신의 시계에 맞춰 성장할 권리가 있고, 동화는 문학을 통해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세상을 배워 나간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해야만 어린이와 밀착한 글쓰기가 가능하다.

동화를 창작하려면 내면에 은닉된 나의 어린 시절에 기댈 필요가 있다. 내가 만약 이런 일을 그때 겪었다면 어땠을지 고민하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나’가 때로는 답을 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옛날 사람이고, 지금 창작에 필요한 화자는 현재 인물이라 곤란하다고 할 수도 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사람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 pp.17-18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 지도
-어린이, 어린이의 삶, 어린이의 시간, 어린이의 시점


대상이 누구든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 지도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동화를 쓰려면 어떤 이야기 지도가 필요할까? 그것은 창작자마다 다르겠지만 작품 속 화자의 목소리가 일관된 지향점을 향해 가게 하려면 분석하고 계산한 작업 계획서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화는 특히 어린이의 입장을 고려하는 일종의 매스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가 소비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본래의 가치대로 존재하도록 살펴보는 작업이 중요하다. 저자가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을 분석하고 자신의 작품을 쓰며 경험했던 실질적인 예시들은 자신만의 이야기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창작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동화를 창작하는 일은 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어른과 아이가 각각의 존재감으로 어울리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동안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는 이야기집이 동화이다. 이 과정의 이야기가 설사 암담하거나 무겁더라도 머릿속의 생각을 문자로 확인하는 쓰기 자체에서 창작자는 의미를 찾고 즐거워야 이야기를 끝낼 수 있고 이 문자의 조합은 독자에게 이미지로 연동되어야 생명력을 얻는다.--- p.174






처음 만나는 헌법

차병직 저 / 12,000원 / 창비
 
헌법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행동하는 변호사 차병직의 헌법학개론 첫 시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헌법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헌법재판을 다루고 헌법 조문을 해설한다. 온 국민이 헌법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시민들 중에는 매체에서 전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헌법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이 생겼을 법하다. 하지만 법 공부는 제대로 하려면 너무 어렵고 대충 하면 자칫 잘못될 수 있다. 특히 헌법은 역사와 철학을 가미한 공부가 필요해 더욱더 폭넓고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번에 출간된 ‘교양100그램’ 시리즈 6번째 도서 『처음 만나는 헌법』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지금 다시, 헌법』 『헌법의 탄생』 등의 교양서를 통해 헌법 지식을 보급하는 데 앞장서온 ‘행동하는 변호사’ 차병직이 이번에는 더욱 친절한 헌법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난다. 제목에서 쉽게 알 수 있듯 처음으로 헌법을 배워보고자 하는 성인과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로 쓰였다. 헌법의 개념과 역사, 우리 헌법의 내용과 여러 쟁점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헌법 공부를 왜 해야 하며 우리 사회의 미래가 헌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까지 친근하게 풀어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헌법과 우리 삶의 관계를 고민해보도록 이끈다. 저자의 설명을 한발 한발 편안하게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긍지와 책임을 생각하게 된다.

국민 기본권을 지키는 국가기관의 권한
그것이 헌법의 핵심이자 목적


헌법 공부의 첫걸음은 헌법을 정의하는 것이다. 두꺼운 헌법학 책에는 어렵고 복잡한 정의가 나오지만, 저자는 헌법을 ‘국가권력기구의 조직과 권한의 배분에 관한 법’이라고 간명하게 제시한다. ‘국가권력에 관한 최고법’이라고 더욱 줄여 말하기도 한다. 요지는 국가권력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법이 헌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하기도 하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이 말도 당연히 맞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한민국헌법에는 대한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조항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 읽을 때마다 시민의식이 고양되는 아주 감동적인 구절들이다. 그러나 헌법이 모든 기본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헌법 제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의 실질적인 목적은 기본권의 종류를 나열하는 ‘인권선언’이라기보다는, 그 기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국가와 국가기관을 구성하고, 그 국가기관의 권한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구의 권력은 그 기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권한’이라고 부릅니다.”(62면)

저자는 이 점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가 헌법을 만들어간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헌법의 변천 과정을 역사적으로 훑어본다. 일반 국민이 주권을 갖고 국가 운영에 참여하게 되는 근대국가의 성립과 발전의 역사가 곧 헌법이 걸어온 길임을 강조한다.

국가기관은 헌법을 따라야 하는 수범자, 국민은 헌법을 지켜야 하는 수호자
모두가 함께 지켜나갈 때 헌법은 완성된다


그런 헌법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막연히 우리가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정확히 어떤 뜻일까? 저자는 우리말 ‘지키다’에 ‘준수하다’라는 의미와 ‘보호하다’라는 의미가 함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니까 헌법을 위반하지 않고 따라야 하는 주체(수범자)는 바로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국가기관이 헌법을 잘 따르도록 감시하고 요구하면서 헌법을 보호하는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다. 그렇게 헌법은 국민 개개인의 삶과 연결된다.
따라서 수범자와 수호자가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헌법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헌법의 수범자가 되지 않는다면 헌법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헌법 위반을 판단하는 곳도 국가기관이고 벌하는 곳도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기관들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국가기관 역시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운용하는 조직이기에 항상 그 역할에 충실하지는 못한다. 국민의 수호자 역할이 없다면 국가기관은 권력을 남용하고 의무를 등한시하는 데 금세 익숙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헌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헌법 없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높은 가치의 단계로 국민과 국가를 고양시키는 것이 헌법의 역할입니다.”(76면)

우리 근현대사는 제대로 된 민주국가를 세우고 가꿔나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이라는 위험하고도 필요한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항상 문제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9번의 개정을 거친 헌법이 매번 고생을 했다. 다시금 개헌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헌법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광장의 열기를 더 나은 제도로 승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지금부터 헌법 공부의 첫발을 내디뎌보자.

‘교양100그램’ 시리즈 소개

교양100그램은 전문가의 지식을 가벼운 무게와 가격으로 간추린 인문교양 시리즈로, 바쁜 일상에서도 교양을 쌓고 싶은 현대인이 출퇴근길이나 여행 중에, 가사와 육아 중에 틈틈이 휴대하며 읽을 수 있는 100그램 대의 가벼운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이야기하듯 편안한 말투로 집필해 유튜브나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독자들도 부담 없이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본문에 더해 ‘묻고 답하기’와 ‘기억할 만한 문장’ 코너를 마련해 독자가 알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꼭 집어 되새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독서 초심자부터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 시리즈는 가볍고 효과적인 지식 영양제로서 언제 어디서나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












기업가정신

황인학, 최준선, 신현한, 강원, 나석권, 이주선, 조성봉 저 / 20,000원 / 현암사


지금 전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 entrepreneurship)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째서 이토록 주목을 받는가?
오늘날 ‘기업가정신’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이다. 기업가정신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해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의 주도하에 2022년 5월, ‘신기업가정신협의회’를 발족했다. 기획재정부도 2023년 10월, 청소년을 위한 기업가정신 교육에 중점을 두고 기업가정신 관련 교과서를 개발ㆍ보급 및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때마침 평생 기업 관련 연구와 실무에 매진해 왔던 저명 경제학자, 경영학자, 법학자 및 기업 CEO가 한데 어울려 기업가정신의 다양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은 책을 출간했다.

기업가정신은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의 우리말 번역이다. 먼저 기업가 및 기업가정신의 정의부터 문제 된다. 기업가의 모습이 20가지 이상으로 다양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이란 무엇이고, 그 기업은 어떻게 활동하고 생존해 나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기업가의 활동은 기업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업가정신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며, 이를 조직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성공적인 기업가정신 실천 사례를 분석하여 리더십의 역할과 체계적인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기업가정신은 창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특히 ‘린스타트업’ 중심으로 최근 창업 생태계에서 공용되는 창업의 언어와 방법을 소개한다. 기업 현장에서 ESG 경영 업무를 담당하는 CEO가 본인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기업가정신의 나아갈 방향(위대한 리셋:새로운 기업가정신의 출현)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업가정신의 역할을 시기별로 서술한 것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기업가정신이 개인의 인식ㆍ역량ㆍ태도의 차이 문제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이 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선행조건은 국가의 포용적 경제 제도 구축이다. 기업가정신은 자유로운 시장과 재산권이 안전하게 보장되는 제도하에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과거 “기업가정신은 누가 뭐래도 한국이 최고!”라고 한 바 있다. 우리는 지금 과연 그런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오후에게 묻다

김희진 저 / 18,000원 / 폭스코너


영문도 모른 채 남의 집 문에 수갑과 함께 묶여버린 청년,
십 년간의 은둔을 끝내고 집 밖으로 나서는 남자,
일요일마다 빈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찾는 빈곤한 배달원…
부조리와 불가항력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에 대하여!


표제작이자 단편집의 첫 번째 수록작인 「오후에게 묻다」는 영문도 모른 채 범인으로 오인돼 남의 집 자바라 문에 수갑이 채워진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갇혀버린 그는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온갖 궁리를 하고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하며 몸부림을 친다.
그동안 주로 장편소설을 집필해온 김희진 작가가 첫 소설집 『욕조』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 『오후에게 묻다』에 수록된 8편의 단편소설 속에는 납득할 수도, 화해할 수도 없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한 발을 내딛으려는 인물들의 안간힘과 몸짓들로 가득하다. 도처에 만연한 불평등, 저마다의 가난과 고독, 근원적인 고민과 아픔 속에서 허덕이는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럼에도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려 애쓴다. 그들 중 몇은 그 부조리한 세계에 잠식당하기도 하지만, 또 몇몇은 끝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한 걸음의 나아감에 성공하고야 만다. 그런 노력의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작가는 무력감과 절박함, 그리고 부조리를 체득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인물들의 용기를 따뜻하게 감싸고 응원한다.
수록된 8편의 단편은 각각, 어느 날 느닷없이 남의 집 자바라 문에 수갑이 채워져 옴짝달싹 못 하는 청년(「오후에게 묻다」), 인공지능으로 만남, 연애, 결혼, 이혼의 과정을 체험해보는 여자(「헤어지는 중」), 십 년간의 은둔을 끝내고 집 밖으로 나서는 은둔형 외톨이(「어떤 외출」),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남의 집 신발을 훔치는 남자(「거슬림」), 일요일마다 빈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가는 빈곤한 배달원(「같은 일요일」),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성소수자 남자 대학생(「그들의 고전주의」), 부모와 태중 여동생의 죽음을 겪게 된 여섯 살 남자아이(「늙은 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광기와 기행을 일삼는 이중인격의 남자(「방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뜻하지 않은 사건 사고와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 상황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매우 이채롭고 다양하다. 어떤 인물은 그 상황에 순응하는가 하면, 어떤 인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해법을 찾아 나간다. 어떤 인물은 폭력에 더 큰 폭력으로 맞서는 등 극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 8편의 독립된 단편소설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몸짓을 보여주며, 타인의 무관심과 외면과 방관이 불러일으키는 폭력성(「오후에게 묻다」), 매일 집 밖을 나가는 평범한 일상의 가치와, 가족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과정(「어떤 외출」), 누군가를 흠모하는 마음의 위험성과 욕망 안에 잠재된 분노와 광기 그리고 불안(「거슬림」), 빈곤한 삶으로 인해 좌절하면서도 끝내는 붙들 수밖에 없는 희망(「같은 일요일」), 여전히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통해 보는 사회계급의 씁쓸한 민낯(「그들만의 고전주의」) 등의 다양한 주제를 드러낸다.
『오후에게 묻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부조리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이면을 선명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그런 세계 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처절한 사투와 나름의 안간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아름답고 깊이 있는 단편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 없이 빛난 아침

최현우 저 / 13,000원 / 창비
“다녀오면 우리를 외면했던 자들에게 기쁨을 주러 가자
아주아주 멋진 기쁨을”

겹겹이 쌓인 시간의 틈새를 비추는 내일의 햇빛
슬픔 곁에 함께 머무는 사람이 남긴 아름다운 진심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최현우의 두번째 시집 『우리 없이 빛난 아침』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얻은 첫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문학동네 2020)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신작이다. 조곤조곤한 서정과 마음을 움직이는 비유가 여전한 가운데 세상을 보는 눈은 한층 깊어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불완전한 세상의 장벽에 부딪히고 깨지며 스러져간 삶의 단면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그리며,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억척스러움과 무감함”(성현아, 해설)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시인은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절규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마음의 균열을 어루만진다. 우리가 외면해온 시대의 비극과 위태로운 삶의 풍경을 묵직하게 되짚는 “참회의 고백”(「마지막 빙하」)과 같은 시편들은 상처와 침묵으로 얼룩진 순간들을 되새기고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위로의 본질을 성찰한다. 세상 곳곳에 자리한 통점을 날카롭게 감각하고 뜨거운 한 시절을 살아내며 한층 성숙해진 시적 자아는 이제 더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고통과 상처를 감지하는 예리한 촉수”(안미옥, 추천사)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들여다보며 “통증 없이도 이토록 멍들 수 있는”(「충돌 지점」) 불완전한 세계의 아픔을 직시한다. 그러나 고통받는 이들의 “통곡은 몸에서 멀고”(「나의 실패」), 타자의 고통을 지각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의 상처를 온전히 위로하고 치유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안다. “사랑할 수 있는 일들만 사랑하고/용서할 수 있는 일들만 용서”(「숲과 숨」)하는 것에 익숙해진 영혼은 “부드러운 증오”(「외면하는 기쁨」)만을 드러내며 비참한 삶의 비애를 견디어낼 뿐이다.
깊은 미로 속을 헤매는 듯, 전망도 구원도 없는 세상은 참으로 비정하다. “매연으로 부풀어”(「나의 실패」)오르는 거리에 “하루에도 몇번씩/떠밀려와 눕지도 못한 채로 썩는 자들”이 널려 있어도 “모두가 신이 난 것처럼”(「가느다란 순간」) 병든 세계는 건재하다. “현생과 전생까지 순식간에 끌려 들어와/박살이 나는 찰나”(「충돌 지점」)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세상은 순서도 도리도 없이”(「다식」) 무심히 흘러간다. 비극을 목격하고도 섣불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 앞에서 시인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고통을 기록하고, 이를 외면하며 살아온 날들을 치열하게 뉘우친다. 결국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슬픔이 남긴 것은 “울음이 묻을까 피해 다닌 날들”(「벚꽃잎 흩날리면」)에 대한 반성이다. 타인의 아픔에 가벼운 위로의 말을 건네며 적당히 공감하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서, “그냥, 네가 울면 나도 울게”(「너의 날개」) 된다는 시인의 고백은 우리가 주고받았던 애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계절의 속력을 스스럼없이 좋아하던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영원이 될 찬란한 마음들에게


시인은 ‘혼자’라는 말의 쓸쓸함과 두려움을 알기에 “멍든 것처럼/어깨를 두드리면 자꾸만 우는 사람들”(「12월 30일」)을 외면하지 않고, “서럽고 저린 것들”(「너의 날개」)을 “혼자로 두지 않으려”(「충돌 지점」) 한다. 그들에게 다가가 가만히 곁에 있어주고, 고단한 삶의 그늘 속에서 반짝이며 “자꾸만 대신하여 맨 위에 포개지는”(「영원한 햇빛」) 영원의 빛을 발견한다. 그리고 “미래의 아름다움”(「나의 실패」)을 믿으며 어쩌면 들리지 않고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노래를 계속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슬픔이 외골격인 사람”(「유년」)이 되지 않으려고, “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주인공」)의 삶을 “오래 사랑하려고”(「손과 구름」). 시인은 더 나은 위로를 완성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며 영원한 “햇빛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거기, “너를 위해 만든 세상”에 “사람이 살게 하려고/사람을 두었다”(「디어 마이 프렌드」)는 진실한 고백이 빛나는 아침을 준비해두고 우리를 기다린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저 / 15,000원 / 창비


“살아 있을 때 우리는 더 먹어야 한다!”

낭만 셰프 박찬일이 차려낸,
세대를 아우르는 솔직 유쾌 음식 에세이
『뜨거운 한입』 11년 만의 개정증보판
제철 재료와 노포의 가치를 조명하고, 음식에 얽힌 추억을 빼어난 문장력과 탁월한 입담으로 풀어내온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의 음식 에세이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가 출간되었다. 세상살이를 너끈히 견디게 해준 맛깔나는 요리와 추억을 담은 『뜨거운 한입』(창비 2014)의 11년 만의 개정증보판으로, 기존 원고를 세심히 다듬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더하여 한층 깊어진 울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총 4부로 재구성한 이 책은 매일을 책임지는 쌀과 달걀부터 다양한 제철 음식과 바다를 건너야만 맛볼 수 있는 해외 곳곳의 별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시공간을 유유히 넘나들며 다채로운 맛의 향연을 펼친다. 익숙한 재료, 누구나 아는 요리도 그의 글 속에서는 새삼스럽고도 신선하다. 특유의 재치와 통찰이 그려내는 음식 이야기가 다시금 독자들의 침샘은 물론 추억까지 자극할 것이다.

‘망할 토마토’로 만든 지중해 파스타처럼 감미로우면서도
골목 끝 백반집 장인의 파김치처럼 알싸한 매력!


1부 ‘그 맛, 상상해보시라’는 토마토와 가지가 ‘망할’ 토마토와 ‘기막힌’ 가지가 된 사연을 비롯해 우리 곁 식재료와 육지의 제철 재료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인간과 함께해온 식재료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저마다 풍성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음식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박찬일은 어느 한 재료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그 매력을 섬세히 들여다본다.
바삭바삭한 식감으로 닭 요리의 진가를 끌어내는 닭껍질의 매력이 그의 문장 안에서 생생히 되살아나는가 하면, 획일적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콩나물국밥도 흉내 내기 어려운 ‘맛의 정수’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여기에 ‘비기’라고 불러도 좋을 참신한 조리법들이 독자의 침샘을 거침없이 자극한다. 삼겹살로 친친 감아서 독특한 방식으로 조리해낸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닭고기의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힐지!
이어지는 2부 ‘혀끝에 닿은 바다’에서는 미지의 푸른 파도 아래에서 건져 올린 다채로운 해산물 요리를 다룬다. 지천이 조개였다는 인천의 개펄 ‘먼우금’을 추억하며 시작된 이야기는, 바다의 식재료가 펼쳐 보이는 풍부한 맛과 삶의 풍경을 따라 아이슬란드의 너른 대양에까지 이른다.
박찬일은 심야 영업이 금지됐던 군사정권 시절 몰래 찾았던 아귀탕집을 떠올리기도 하고, 마카오에서 접했던 포르투갈식 말린 대구 요리 ‘바칼랴우’의 풍만한 맛을 세세히 풀어내기도 한다. 식당 메뉴를 짤 때도 “제철 재료를 우선한다”고 강조해온 그답게, 철마다 맛이 절정에 이르는 해산물이 무엇인지도 꼼꼼히 짚어낸다. 바지락을 활용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는 4~6월에 가장 맛이 좋고, 찬바람 부는 겨울에는 아귀찜이, 삭풍이 잦아든 봄에는 절품(絶品)으로 여겨지는 숭어알이 제철이다.

미각의 깊은 골짜기를 깨우는 맛,
흘러간 세월을 그리게 하는 맛


박찬일은 미식계의 유행이나 화제의 식당을 좇지 않는다. 삶과 요리를 향한 그의 뜨거운 철학을 접해본 이들이라면 그가 존중하는 ‘미식 문화’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식당과 음식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다. 3부 ‘필살의 재료, 장인의 비기’에는 그가 찬탄해 마지않는 식당과 장인 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을지로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삼치구이 백반집, 절세의 ‘오마카세’가 부럽지 않은 여수 연등천의 포차, 그리고 정처 없이 한가로운 발걸음 끝에 우연히 당도한 도쿄의 어느 야키토리집에서 박찬일은 묵묵히 쌓아올린 세월로 승부하는 장인들과 마주한다. 재료의 매력을 한껏 끌어내는 마법을 부리는 그들은 작가의 입맛은 물론 독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군침을 자아낸다.

먹는 건 사람의 기억을 구성한다
나아가 그 사람의 인생도 만들어간다


새롭게 수록된 글에서는 더욱 깊고 단단해진 미식을 향한 사유가 엿보인다. “최고급 요리도 결국 언술의 영역에, 다시 말해 인문의 영역에 있다”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박찬일의 음식 이야기는 단순한 레시피나 미식의 기록을 훌쩍 넘어선다. 4부 ‘추억 한그릇, 그리움 한잔’에는 삶의 한 자락을 함께 통과해온 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깊게 배어 있다.
군대 간 친구를 면회하러 가서 처음 맛보았던 부대찌개, 뜨거운 열기의 서울운동장에서 오징어를 씹으며 몰래 들이켰던 소주, 그리고 아버지가 사 온 식은 전기구이 통닭의 기억까지, 음식을 매개로 길어 올린 삶의 편린들이 한그릇의 이야기로 담백하면서도 풍성하게 펼쳐진다.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그의 문장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보면 따스한 국물 한숟갈을 들이켰을 때처럼 마음이 사르르 풀어진다.

이 책은 결국 먹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사는 이야기다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식사는 삶과 기억의 토대를 이룬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아왔고, 그 안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를 되짚어보며 인생의 중요한 단서들을 포착해낸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고민할 틈조차 없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박찬일의 문장은 삶을 지탱하는 근간으로서 ‘뜨거운 한입’의 가치를 가만히 일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