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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등록일
2025-06-04
조회수
77


계간 『창비어린이』 2025년 여름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저 / 13,800원 / 창작과비평사



여름호 특집은 『창비어린이』 22주년 기념 세미나 ‘어린이와 헌법’에서 나눈 발제와 토론 현장을 옮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광장에 모인 어린이·청소년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아동청소년문학이 정치와 헌법을 담을 때 고민해야 할 지점을 짚는다. 최은경 초등 교사, 레빗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와 장혜영 전 국회의원은 어린이 시민이 바라는 민주 사회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어린이의 존엄과 인권, 행복을 지키는 ‘아동기본법’ 제정을 촉구한다. 김민령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와 김은하 독서 교육 연구가는 그간 아동청소년문학이 정치를 다뤄 온 방식을 살피며 자라나는 어린이 주권자에게 필요한 어린이책을 제안한다. 특별기고란에는 김제곤의 동시 평론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며 ‘동시의 보편성과 구체성의 관계’를 살핀 김유진의 글, 격변하는 AI 시대를 걱정하기보다 유연한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지유의 글을 실었다. 이외에도 상실의 아픔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성장하는 어린이·청소년의 모습을 담은 창작란, 제3회 창비그림책상 수상작과 ‘2025 창비 스토리 공모’ 수상작 발표 등 풍성한 읽을거리가 담겼다.

[특집] 어린이와 헌법―『창비어린이』 창간 22주년 기념 세미나
계간 『창비어린이』 22주년 기념 세미나는 ‘어린이와 헌법’이라는 주제로,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에 함께한 어린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며 아동청소년문학이 어린이의 정치 참여를 다루는 방식을 논한다. 초등 교사 최은경은 초등 6학년 어린이들과 헌법을 읽고 토론한 사례를 나누며 아이들이 직접 제안한 헌법 개정 방향을 들려준다. 교실에서 실행한 ‘우리 반 헌법 만들기’ 프로젝트는 젠더 갈등과 노 키즈 존, 투표권 등 사회문제에 대해 어린이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에 배제해 왔던 현장성 넘치는 정치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사례다.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 레빗은 집회 현장에서 경험한 ‘나이주의’를 비판하고, 법안 논의에 청소년의 입장을 적극 반영할 것을 촉구한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은 어린이의 희생으로 관련 법규가 만들어지는 현실을 비판하며 아동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민령은 ‘정치하는 어린이’를 꾸준히 그려 온 진형민의 동화를 살피며 우리 아동문학이 헌법의 정신, 광장의 목소리를 담을 때 고민해야 할 문제를 짚는다. 책과연구소 대표 김은하는 헌법을 다룬 영미권 어린이책을 소개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직접적이고 투명하게 전하는 실용적인 어린이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교육 의무 외에 어린이가 언급되는 조항이 없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는 예외 없이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니며 법 앞에 평등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이번 특집이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에 광장의 다채로운 함성을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별기고] 보편과 구체, 새로운 동시를 위하여
[평론] 행위하는 주체들에 대하여
[서평] 우경숙―동시의 에너지

본지 86호와 87호에는 김유진, 우경숙, 이안의 동시 평론을, 88호에는 앞의 평론에서 다뤄진 ‘시인과 서정적 자아의 불일치’ ‘기획성 동시’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킨 김제곤의 평론 「‘해묵은 동시’ 이후의 동시」를 실었다. 이번호에는 김제곤의 평론을 읽은 김유진이 ‘동시의 구체성과 보편성의 관계’를 재검토한 특별기고를 수록한다. 지난 가을호부터 이어진 동시 속 ‘화자’에 관한 열띤 토의는 다양한 화자를 발굴하고 동시의 세계를 확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재복의 평론은 2017년 10월 창간하여 현재 45호까지 발행한 웹진 『동시빵가게』에 게재된 시들을 소개하며 독자가 ‘행위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시와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감정의 공유 공간을 넓힐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에 더해 우경숙의 서평은 2019년 3월에 출발한 동시 전문 잡지 『동시발전소』의 창간 5주년 기념 선집 『소소 소자로 끝나는 말은』을 소개한다. 오늘의 동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잡지가 담론의 공유지로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길 기대한다.

[어린이와 세상] 어린이책과 북클럽 6: 발달 장애 아이들과 책 읽기
[어린이와 세상] 교실 속 책 이야기 6: 계절이 책이 되는 읽기 시간
[특별기고] AI 시대의 독서와 글쓰기
[발표] 제3회 창비그림책상 수상작 / 2025 창비 스토리 공모 수상작

전라남도 구례에 위치한 홍당무작은도서관에서 발달 장애 아이들과 책 읽는 현장을 소개한 ‘어린이책과 북클럽’, 충북 영동 지역의 특색을 살린 백일장과 학생들이 쓴 단편소설을 책으로 엮은 사례를 소개한 ‘교실 속 책 이야기’는 독서가 자신을 이해하고 해묵은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수단임을 알려 준다. 어린이·청소년 논픽션 작가 이지유는 지난 봄호 특집 ‘AI 시대와 종이책’에 관해 통찰할 지점을 짚으며 인공 지능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자기만의 경험과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격변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읽기와 쓰기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다채로운 창작과 서평, 제3회 ‘창비그림책상’과 ‘2025 창비 스토리 공모’ 심사 결과 및 수상 소감 등을 실었다.















안녕한 죽음

구사카페 요 저 / 조지현 역 / 박광우 감수 / 18,000원 / 생각의닻




잘 정돈된 죽음, 좋은 마침표를 찍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내려면
죽음과 멀리 떨어진 지금, 마지막을 예비해야 한다


인간의 미래는 예정되어 있다. 죽음은 실패도, 형벌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시체’가 된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고작 관 종류나 수의 따위뿐이라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 아닐까? 완화의료 전문가인 저자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다. 살리기 위한 의학의 결정이 때로는 죽음보다 더 잔인한 상황으로 환자를 밀어넣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의학적 처치는 방법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라서 때로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고치겠다거나 살리겠다는 의료진의 다짐은 익숙하지만 ‘삶의 질’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 ‘좋은 죽음’은 현실적인 각오와 준비로 완성된다. “연습할 수도, 반복할 수도 없는” 일이 죽음이라, “듣기 싫거나 불쾌한 정보” 역시 가감 없이 담았다. 덕분에 독자는 《안녕한 죽음》이라는 훌륭한 가이드북을 얻게 됐다.
- 장일호, 《슬픔의 방문》 작가

죽음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도 나 역시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조심스러워진다. 죽음은 한 사람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으로 엄숙하고 숭고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가치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그러나 의사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좋은 죽음’에 대해 거침없이 말한다. 재택의료를 다니며 수많은 죽음을 보아온 만큼 주저하지도, 에둘러 말하지도 않는다. 요제피눔박물관에 장기를 드러낸 채 전시된 밀랍인형처럼, 오늘날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론 그가 말하는 좋은 죽음이란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에 이르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나의 죽음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는 죽음을 계획할 수 있다. 이 책은 언젠가 다가올 생의 마지막을 담담히 상상하도록, 안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 남유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작가




‘좋은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대신 준비가 필요하다

나의 죽음, 마지막의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은? 먼 훗날의 일이니까, 또 무섭고 불길한 일이니까 미뤄두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눈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라 그럴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 《안녕한 죽음》의 저자 구사카베 요는 그 마지막을 ‘지금’ 생각해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죽음은 탄생과 함께 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탄생이 지켜보는 이에게 벅찬 기쁨을 주는 것처럼, 죽음 역시 지켜보는 이에게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선사한다. 누군가의 삶이 끝나는 순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은 실존적인 공포와 마주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목도하는 과정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 이제껏 이뤄놓은 나의 노력과 업적을 허망하게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다시는 누군가와도 감정을 나눌 수 없다는 외로움,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실존적 공포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순간이 죽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기대면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텔레비전만 틀면‘백세시대,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 같은 번지르르한 말이 넘쳐나지만, 말 뒤에 숨은 진실은 은폐되고 있다. 백세시대는 백 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병 때문에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백 세까지 죽지도 못하고 계속 고통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죽음과 마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오랫동안 가가호호 방문하여 재택의료와 임종케어를 시행하면서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돌보았던 저자의 이야기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의료의 힘을 빌려 죽음과 싸우는 것은 ‘좋은 마침표’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 의료는 무력하기만 하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어떤 죽음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말이다. 《안녕한 죽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저마다의 답을 찾으라 일깨우는 책이다.


죽음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그리고 안녕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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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죽음이 등장한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던 남자가 오랜만에 골프를 치러가서 좋은 스코어를 내고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긴 후,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숨을 거두는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이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드물다. 반대편에는 누구나 손사래를 치는 죽음도 있다.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 정맥주사, 위루줄, 소변줄 등 각종 연명장치와 튜브가 주렁주렁 달린 채 죽지도 못하고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오래도록 고통받다가 생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마무리하는 경우다. 정말 이런 죽음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듯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참한 죽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과거(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에는 대부분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죽음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객지에서 외로이 죽는 것을 불쌍하다고 여겨 ‘객사(客死)’라는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누웠던 침상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 시절 누군가의 죽음은 모두의 몫이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과 함께 오늘날의 죽음은 병원으로 숨어들었다. 대부분 병원에서 각종 의료 장비와 튜브를 달고 외로이 생을 마감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순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호흡이 어려워 숨을 헐떡이는 가족 곁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일들을 설명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환자가 식욕이 없어졌을 때 가족들이 어떻게든 정맥주사를 놓아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맥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장과 신장에 부담을 주고 폐에도 물이 고여(즉, 서서히 익사하는 것과 같음) 환자를 괴롭힐 뿐이다. 이런 내용을 미리 설명해두면 식욕이 없어져도 가족들이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산소마스크 역시 마찬가지인데, 죽기 전이라면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실질적인 의미는 거의 없고, 단순히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_ (68~9쪽)

의학기술의 발달로, 고칠 수 있는 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탄생처럼 죽음도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죽음과 싸우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순간에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다양한 양상들을 미리 알아두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손에 나의 존엄과 마지막을 내맡겨야 할 수도 있다.
죽음을 이야기할수록
삶은 더욱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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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구사카베 요는 다양한 임종 현장을 목격해온 의사이자,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의료계의 그늘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소설가다. 그는 의사로서, 소설가로서 이중의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며, 현실과 감정을 모두 꿰뚫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는 곧 삶을 더욱 찬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안녕한 죽음》에서 저자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삶 자체를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필수적인 단계임을 강조한다.
그는 책에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가족과의 구체적인 임종 계획 수립, 집에서의 임종 준비 등 실제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또 외무성 재외공관 의무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국가에서의 임종 사례와 문화를 폭넓게 소개하며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제공한다. 오스트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파푸아뉴기니에서의 경험을 통해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단순히 임종을 맞이하는 준비가 아니라 삶의 남은 시간을 더욱 충실하고 깊이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임을 분명히 한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연결된 하나의 흐름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과 함께 죽음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독자들이 막연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삶을 더욱 적극적이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격려한다. 두려움을 넘어 죽음을 직시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남은 삶을 진정으로 빛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실천 의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함께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각주를 추가했다.
번역자의 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지식과 감수자의 의학 전문지식에 현장의 사실과 의견을 반영했다.












녹색평론 (2025년 여름 통권 제 190호)

녹색평론 편집부 저 / 17,000원 / 녹색평론사



경제성장으로 돌파할 수 없는 복합적 위기
《녹색평론》 2025년 여름호는 봄호의 연장선에서, 이 나라에서 ‘합리적인 정치’가 실현되도 록 하려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지 탐색해보았다.

《녹색평론》은 지난 30여 년 동안 지구라는 유한체계 속에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 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해 성찰해왔다. 또한 우리의 생활을 언제나 근원적으로 떠받쳐온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호혜적인 네트워크, 공동체적인 문화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 잡지를 오래 지켜본 독자라면 근래에 《녹색평론》이 이른바 정치적인 이야 기,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 것은 좀더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져오기 위한 이 사회의 많은 노력 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 나라의 정치가 최소한 ‘합리적’으로는 운영되어야 하겠다 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태주의 같은) 어떤 가치나 이념을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나 생물다양성 실종같은 현상들이 말해주고 있는 가공할 생태적 위기, 그 한편에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들, 인종 ·종교 ·성별 ·지역 간의 첨예한 갈등, 갈수록 힘을 불리고 있는 극우세력 ―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는 넘쳐난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이것은 모두 인간 경제를 궁극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지구생태계의 풍요로움이 고갈되어가면 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다시 말해서, 산업문명이 지난 200년 동안 감추고 전가해왔던 청구 서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사회가 그동안 모든 사회적 재난에 대응해왔던 한 가지 방식, 즉 경제성장으로는 결코 돌파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민주주의라는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따라서 우리에겐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에 토대를 둔, 다른 방식의 해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정신적 능력을 발굴하고 결집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 국회의원 300명에게 이 중대한 과업을 맡겨 놓고서, 잘하지 못한다고 비난해선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기대는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세월 동 안 우리는 지배하고 지배받는 일을 소수 과두집단에 위임하고 방관하면서, ‘차악’에 만족하고 타협하거나 아니면 아예 정치를 냉소하는 것을 민주주의로 오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 의는 ‘최선’을 가져오기 위한 우리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성취되는 것 이다.
《녹색평론》190호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창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사회적인 갈등을 상당 하게 줄이는 데 성공한 대만의 사례, 철저한 분권의 원리―실질적인 지방자치를 통해서 이 시 대에 가장 필요한 녹색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독일, 오래된 민중사회의 자치 적 능력을 통해서 지방소멸이라는 난국을 헤쳐나가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우리의 현실과 비교 해서 살펴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진정한 민주주의 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