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신간 도서 소개(종합) - 매주 업데이트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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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냥한 지옥 이리나 그리고레 저 / 김영현 역 / 18,000원 / 다다서재 『상냥한 지옥』은 루마니아 출신 문화인류학자 이리나 그리고레가 사회주의 체제하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먼 타국인 일본으로 이주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체제와 문화와 세대와 언어의 전환을 모어가 아닌 일본어로 써낸 오토에스노그래피다. 저자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경험한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좇아 문화인류학자가 된 과정, 조사지였던 일본에 정착하여 이주민이자 두 딸의 엄마이자 연구자로 살아가는 현재까지 자신이 겪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이념과 체제의 변화가 일으키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살아온 조부모와 부모, 자신까지 3대의 가족사를 담담히 서술한다.
기억 속의 단편, 일상의 사소한 마주침, 자기만의 감각 경험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글은 자연스럽게 삶, 예술, 문화, 인간, 사회 등 보편적 주제와 연결되며 개인적인 경험을 인류학적인 고찰로 확장한다. ‘타인’을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민족지(民族誌)가 아니라,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기술하는 자기민족지는 오직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글이다. 시적인 문체로 시간과 장소, 꿈과 현실,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저자의 글은 독자와 육체적·정신적·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며 읽는 이를 글 속으로 빨아들인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책에 잡아먹히는 것과 같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현서 저 / 18,000원 / 예문아카이브 30년 간호 현장에서 배운 돌봄의 심리학! 돌봄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지속하는 기술이다 대한간호협회에서 2023년에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57.4퍼센트에 달한다. 전체 간호사의 평균 근속 연수는 7년 8개월로, 일반 직장인의 절반 수준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사이를 오가며 쉼 없이 이어지는 감정 노동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치료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간호사들은 정작 가장 마지막에서야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30년 동안 간호 현장을 지켜온 저자는 이 책에서 병원의 치열한 하루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현장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왜 우리는 특정한 상황에서 쉽게 무너지는지, 감정은 어떻게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지를 심리학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나아가 무조건 버티라고 말하는 대신, 오래 일하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례와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책임과 감정 노동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와닿는 기록이자 처방전이 될 것이다.
![]() 목소리가 들린다 최정원 저 / 16,000원 / 창비 『허밍』 최정원 신작 장편소설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로맨스 판타지
부서지고 망가진 세상에서도
끝내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허밍』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최정원의 신작 장편소설 『목소리가 들린다』(소설Y)가 출간되었다. 『허밍』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주인공 ‘이세’와 ‘지헌’이 등장해 애틋하고도 눅눅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수술을 앞두고 잠들었다가 60년 만에 깨어난 이세는 사람이 나무나 괴물로 변해 버리는 ‘나무병’이 퍼져 세상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속에서 이세를 구해 준 ‘지헌’은 나무병에 감염되었고,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과연 두 사람은 나무 괴물들을 헤치고 치료제를 찾을 수 있을까? 포스트 아포칼립스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가 실감 나게 전해지는 가운데, 두 주인공의 애절하고도 먹먹한 관계가 섬세하게 다가온다. 한편 망해 버린 세상에서도 끝내 ‘선함’을 선택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세상을 지탱하는 ‘믿음’의 힘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한다. 『허밍』에 이어 다시 한번 독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게 할 이야기를 만나 볼 시간이다.
![]() 찌니주의보 정지아 저 / 16,800원 / 창비 ![]() 대화가 잘 통하면 늙지 않는다 이정숙 저 / 19,800원 / 이야기나무 노년의 대화전문가가 몰타에서 발견한 안티에이징 대화법
관계는 왜 시간이 지나면 식는 것일까? 국내 최초의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이자 50여 권의 저서를 낸 베스트셀러 대화전문가 이정숙 작가는 대화가 잘 통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매혹의 유효기간도 길어진다고 믿는다. 노년의 시절에 접어든 작가는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로 어학연수를 떠나 대화를 잘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발견한다. 브라질, 콜롬비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은퇴 무렵의 여성들과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며 함께 공부하고 여행하면서 평생 연구해온 대화법에 몰타에서 만난 은퇴자들의 생생한 대화 장면을 더했다. 저자의 흥미진진한 몰타 살이 속에서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어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고 스스로도 생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안티에이징 대화법이 우리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왜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지 서로를 탓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대화법을 개선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표현하고 있는가.
나이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연결되는 대화법
50대 이상 여성 스무 명이 한집에 모인 몰타의 홈셰어. 국적도 나이도 은퇴 전 직업도 저마다 다른 이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저자는 ‘표현하지 않아서 설렘이 사라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 후 삶을 다시 설계하는 50~60대, 오래된 부부·친구 관계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중장년, 그리고 젊은 독자층까지 대화를 통해 삶에 생기를 더할 수 있다.
![]() 보호 관찰 정한아 저 / 13,000원 / 문학과지성사 “세상은 대체로 평온하다 어디가
아픈가? 물으면
발광할 것이다”
눈감기엔 선연하고 직면하기엔 역겨운 이 사회의 중체(重體)
청진기를 타고 증폭되는 사물사물한 속울음 소리
과거완료의 환부와 현재진행의 유혈을
집요히 들여다보는 시인 정한아의 세번째 시집
2006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한아의 세번째 시집 『보호 관찰』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39번으로 출간되었다. 직전 시집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 2018) 이후 8여 년간 차근하고 꾸준한 호흡으로 써 내려온 시 57편을 한데 묶었다.
“자연은 서슴없”고, 그보다 더 “서슴없는”[「겨울, 장릉(章陵) 근처」] 인간 사회의 “삶은 달걀”과도 같아서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되지만//사이다는 안 준다/무릎을 꿇기 전까지는”(「시장의 윤리」). 이러한 삶의 성질을 받아들이기 위해 인간은 “신을 발명하고/부록처럼 천국과 지옥을 발명하고/그러고도 찜찜해/보험처럼 부활도 발명했”지만, 세계는 “웃기시네, 이 모든 것을 비웃”(「조롱박 하느님」)듯 “끔찍함을/보고 배우고 실천하는 끔찍한 삶”(「스키드 마크」)만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한번 “생각하면 끝없이 생각이 나” 눈길이 “떨어지지 않”(「먼지」)지만 제대로 팔을 걷어붙이고 “구출하기엔 너무 징그러”(「그건 그거 이건 이거」)운 것. “문명 속에서의 삶이란 그런/것”(「스키드 마크」)이다. 개입도 감당도 불가한 지경에 다다른 볼썽사나운 이 사회에서 개인의 최선이란 부조리와 불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이를 “장기적으로 면밀히 관찰하”(「[기획] 인수공통전염병 냉가슴, 침묵을 둘러싼 논란」)고자 하는 반항 어린 결단이리라.
“솟아오르고 떨어지면서/가만히 끓고 있”(「야곱의 사다리―기형도 시인에게」)는 ‘보호 관찰자’로서 시인은 “변명”과도 같은 “이 글쓰기야말로 가장 끔찍”(「스키드 마크」)하다고 느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의 1할만 하는데 사람들이 자주 놀라서 가급적 말을 줄이려”(「시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하면서도 “자꾸 아픈 이를 흔들어보고 싶어 하고, 무례하게 벽에서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뛰어다니려 하고, 내 삶의 과속방지턱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바퀴처럼 덜컹거리려고 한다”(산문 「이 거대한 병동에서」). “이것이 임사 체험이며, 최악이라고 생각할 때조차/다 쓴 치약처럼 아직” 남아 있는 “쥐어짤 것이”(「죽은 것처럼 보이는 포인세티아에 관하여」) 바로 정한아의 시심(詩心)이다. 시집 속 문장들은 종종 “정말로 읽히지 않으려고 완강히 애를 쓰며 달아”날지도 모르지만, 이는 곧 그의 시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나도 모르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미래의 당신”도 “적당히 힘을 주어 펼치는 정도의 노력은”(「새」) 기울여주기를.
![]() 김상희 저 / 13,000원 / 창비 “두나, 지구는 무엇이야? 그렇게 물어보면
두나는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대답을 내놓을까?”
이름 없는 상처를 돌보는 이의 단정하고 건조한 슬픔
세계가 무너지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고유하고 신뢰할 만한 목소리를 통해 “읽는 이가 시에 바짝 다가서도록”(심사평) 한다는 호평을 받으며 2022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한 김상희 시인의 첫 시집 『두나 없는 두나』를 창비시선 542번으로 선보인다. 특유의 담백하고 절제된 언어로 자신만의 시세계를 착실히 다져온 지 4년, 처음으로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일상적인 풍경 속 “마치 공습 직전 같은 위태”(최다영, 해설)롭고 서늘한 기운을 감지해내며 세상의 가장자리에 쓸쓸히 선 존재들의 아픔을 돌보고 “건조한 슬픔”(박연준, 추천사)으로 ‘성장’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장면을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김상희는 상실과 죽음을 말하면서도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슬픔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감정을 과장하거나 감상에 치우치는 대신 소외된 삶의 풍경과 스러져가는 존재들의 모습을 고즈넉이 바라볼 뿐이다. 그는 “우리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루꼴라 재배 일기」) 슬픈 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그가 “뜨거움을 식히는 중이라 차가워진 사람”(추천사)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의 시가 지닌 “건조한 슬픔”이란 무너진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기 위한 최적의 자세일 것이다.
![]() 먹던 거 먹고 싶지 노정임 저 / 16,500원 / 아이들은자연이다 50대 막내딸이 90대 부모님과 밥상을 차리며
반복하는 일상의 의미를 찾아가는
3년 동안의 기록
· 단단하고 다정한
노년의 삶을 상상하는 음식 에세이
오래 사는 시대를 살게 되었지만, 잘 늙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50대 딸이 90대 부모와 밥상을 차리며 발견한 장래 희망의 기록입니다. 조각보 같은 시골집에서 엄마 부엌에 적응하며 서로의 경험을 이어 밥상 메뉴를 짜고, 부엌에서 대화를 나누며 일상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먹던 거 먹고 싶지”라는 부모님의 문장에서 방향을 찾은 ‘모두의 밥상’은, 서로의 언어를 알아차리는 배움의 자리로 확장됩니다. 저자가 밥상을 기록하는 과정은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고, 동시에 ‘미래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노년을 살아가고 싶은가?’, ‘누구와 어떤 밥상을 마주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누구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초고령화 시대에 한 가족이 변화하는 몸과 맘을 받아들이며 어떤 밥상을 차리고 어떻게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한 가지 사례로서 기록한 음식 에세이입니다. 각 장 끝에는 [요리 활동]을 담았습니다. 노년의 부모님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는 채식 중심의 음식을 소개합니다.
커다란 사건 없이 반복하는 일상, 반복되는 일상에서 만나는 핵심 감정에 집중하며 시골집에서의 조용한 하루가 흘러갑니다. 독자도 이 밥상에 초대된 한 사람처럼 일상의 에피소드를 나누고, ‘모두의 밥상’을 같이 차리게 될 것입니다.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정희진 저 / 20,000원 / 창비 “왜 항상 나만 소통하려고 애쓸까요?”
말할수록 억울하고 외로워지는 당신을 위한
“우리들의 선생님” 정희진의 소통 인문학
“대화로 풀어라” “소통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서 대화가 어긋날 때마다 스스로를 탓한다. 표현이 부족했나. 설명이 서툴렀나. 더 잘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고. 하지만 소통의 어려움은 개인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우리가 만날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구조적 필연이다. 이제는 소통의 실패에서 비롯된 자책을 그만두고 나를 돌보는 소통에 힘쓰자고 말하는 책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가 출간되었다. 이 시대의 고전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잘 알려진 “우리들의 선생님” 정희진의 3년 만의 신작으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새롭고 긴급한 질문을 던진다.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공부로 수많은 이들에게 “앎의 쾌락과 약간의 고통”을 선사해온 그답게 미지를 헤치고 나아가는 칼처럼 대담한 문장에 생생한 대화 사례와 유머를 더해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재미있는 대중적 글쓰기를 선보인다.
인문학적 탐색으로 소통 불가능성을 자세히 진단한 후 구체적인 대화 장면들 속에서 ‘나’를 지키는 대화법을 제시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관계와 장면을 고르고 그 안에서 최소한으로, 그러나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 약자일수록 자신의 존재를 해명하기 위해 길게 말하고 설득해야 할 때가 많은데, 침묵과 무응답, 대화 종료의 권리 등 나를 지키기 위한 대화 전략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자세하게 안내한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외로움에 빠진 사람들부터 일방적인 소통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까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지친 우리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여름을 건너 야프 로번 저 / 박영록 역 / 18,000원 / 문학과지성사 “넌 이미 형을 감싸주는 털가죽 같은 존재야” 한 소년이 한 사람의 세상이 되어야 했던, 잊을 수 없는 여름
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야프 로번의 대표작
“이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나를 구원해주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퓰리처상 수상자, 『올리브 키터리지』 작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그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은 얼마나 다른 일일까. 사랑과 돌봄의 마음은 어디까지 한 사람을 지탱하고, 또 어디서부터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되는가.
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오른, 네덜란드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새로운 목소리 야프 로번(Jaap Robben, 1984~ )의 장편소설 『여름을 건너』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18년 네덜란드에서 “Zomervacht”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작품은 열세 살 소년 브라이언과 중증 장애가 있는 형 뤼시엔이 함께 보내게 된 여름을 그린다. 야프 로번은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과 아이의 시선에 밀착한 서술로 돌봄과 방임, 사랑과 책임, 죄책감과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 사랑은 사랑의 일을 하면 되지
양광모 저 / 12,000원 / 푸른길 2,017편의 시를 지나 다시 걷는 구도의 길 양광모 시인이 스물두 번째 신작 시집 『사랑은 사랑의 일을 하면 되지』를 펴낸다. 지금까지 양광모 시인이 쓴 시는 모두 2,017편에 이른다. 이번 시집은 그 오랜 창작의 여정 위에서 다시 한 걸음 내딛는 기록이자, 시를 삶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한 시인의 깊어진 시적 세계를 보여 주는 신작이다.
양광모 시인은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이제 내게 시란 구도의 길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제법 먼 길을 걸어왔지만 이르고자 하는 곳은 여전히 까마득하며, 아마도 죽는 날까지 닿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땀과 기도로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시인에게 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끝내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계속 걸어가야 하는 삶의 길이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상처와 슬픔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다. 양광모 시인의 시에서 슬픔은 삶을 파괴하는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쪽으로 너무 멀리 왔다」에서 시인은 슬픔을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으로, 고통을 세상을 바꾸는 동력으로 바라본다. 이별 역시 사랑의 뒷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슬픔과 고통을 없애야 할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것을 통과하면서 인간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엿보인다.
이러한 시선은 「한 슬픔이 또 한 슬픔에게」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내밀고, 등을 내어주고, 마침내 서로를 품어 준다. 슬픔이 슬픔을 비추는 등대가 되고, 인간의 영혼을 씻어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고통받는 인간을 혼자 두지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품어 주는 것, 그것이 인간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임을 보여 준다.
그렇기에 이 시집의 치유는 단순한 위로나 낙관이 아니다. 시인은 “삶에서 겪기 마련인 슬픔과 고통, 절망과 두려움, 욕심과 미움과 후회”가 시를 읽음으로써 온전하게 치유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한다. 한 편의 시가 인간의 상처를 단숨에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상처를 바라보는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는 동쪽으로 너무 멀리 왔다
떠오르는 해를 보겠다고
붉은 해 하나 가슴에 품어보겠다고
그늘진 세상 구석구석 빛을 뿌리겠다고
그러나 왜 몰랐을까
슬픔도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고통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라는 것을
이별이야말로 사랑의 뒷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이라는 것을
⌜동쪽으로 너무 멀리 왔다⌟ 中
![]() 무서운 이야기 김행숙 저 / 13,000원 / 문학과지성사 "사람들이 공포로부터 뭔가를 배우게 된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더 더 무서워져도 좋지 않을까요?" 재앙의 전조처럼 작열하는 계절을 통과하며 곤박한 사랑을 상상하는 마지막 지구의 우리 생경한 듯 익숙한 표정의 공포가 속삭이는 이야기 시인 김행숙의 일곱번째 시집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행숙의 일곱번째 시집 『무서운 이야기』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40번으로 출간되었다. 직전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심부름꾼 k’의 바구니를 꺼내놓은 시인은 데뷔 27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 바구니 맨 밑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던 ‘무서운 이야기’를 우리 앞에 마침내 펼쳐낸다. “시를 쓸 수 없”도록 하는 “공포의 감정”과 외려 “그래서 스프링처럼 쓰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사랑의 감정”(뒤표지 글)으로 치열하게 써 모아온 50편의 시를 총 4부로 나누어 한데 묶었다. 하루하루 뚜렷하게 체감되는 이상기후, 대비도 예측도 불가한 전대미문의 감염증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정치적 파국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창밖의 이야기」)은 작금의 상황은 일상을 압도한다는 점에서 마치 재난 영화같이 느껴지지만, 이는 분명 “세상의 모든 불행을 쓸어 담는” “70인치 검은 액정” 바깥에 실재하는 현실이다. 2020년 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 당시 ‘내가 지금 보는 것들이 앞으로 시를 쓰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힌 시인에게, 세계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감각을 수차례 맞닥뜨리고 감내해야 했던 지난 몇 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강렬한 사명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하나의 세계처럼 무너지고 있”(「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이 지구상에 “다른 나라, 먼 나라는 없”다. “날씨와 햇빛과 전염병과 바닷물과 산불을 막을 수 있는 군대”가 국경에서 철수하였으므로 이제 “모든 것은 이어져 있”(「서울, 2049년 겨울」)다. ‘나누어지지 않음’, 이 불길한 연결감은 공동의 멸각을 예고하는 어떤 조짐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누어지지 않는 것 중에서 결코 종말의 이미지와 포개어지지 않는, 영원히 인류 곁에 남아줄 무언가는 없을까? 그것은 역시 이야기이리라.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나누고, 나누고, 일곱 번 나누어도 나누어지지 않”기에(indivisible) 영영 나눌 수 있고(sharable) 그래서 “끝이 없”다. 이 “무한한 이야기”는 “당신과 나를 섞은 후 나누고, 나누고, 여덟 번 나누어도, 여든여덟 번 나누어도 나누어지지 않는” 사랑과도 닮았으며, “무한한 것은 늘 우리와 함께”(「이야기의 유령」)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 중, “우리 심장을 열었다”(「우리가 재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도 다시 “심장을 나사처럼 조여줄 “무서운 이야기가”(「메리를 위하여」) 가장 오래도록 우리와 더불어 지낼 것이다. 두려움은 “안개처럼 스며들어 내벽에 끈적하게 달라붙”(뒤표지 글)는 그악한 성질을 가졌으므로. “어딘가 꺼림직하고 불길한 소리를 내”는 인간의 사랑스러운 반려, 공포는 김행숙의 문장 곳곳에 들어앉아 “프랑켄슈타인의 독생자”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친구들을 오싹하게 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잠도 잊”은 “밤의 전기수”(「메리를 위하여」)처럼 우리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다. 유령과 세이렌과 옛이야기 주인공들이 밤새 들려주는 환담에 귀를 기울이고 몰입하다 보면 문득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누구의 집인지 알고」) 될 것이다. “공포, 사랑, 용기. 이 세 개의 단어”는 이 절박한 침범과 엄습을 통해 서로 무성하게 뒤엉키며 “초록빛 넝쿨”(뒤표지 글)처럼 당신의 심장을 휘감는다.
![]() 시인과 재규어 김영임 저 / 26,000원 / 문학과지성사 “단순한 관람자, 개인으로부터
예술을 분석하려는 욕구를 지닌 취향의 인간으로 분리되는 경험,
그것이 ‘비평의 순간’의 첫 출발이었다”
쓰는 이의 노랫소리와 읽는 이의 숨소리가 공존하는 다성(多聲)의 비평
문학평론가 김영임의 첫 비평집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김영임의 첫 비평집 『시인과 재규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데뷔 당시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 대한 평론의 ‘위치감’을 의식하”는 신중함과 “다종다양한 대중문화적·예술적·문헌적 재료를”(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심사평)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란함으로 주목받은 그는 박사학위논문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 나타난 비인간 재현 양상 연구」로 제2회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신진연구자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꾸준한 조명을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로서 김영임이 갖춘 가장 빛나는 미덕과 강점은, 자신이 부리는 평어의 무게를 끊임없이 의심함으로써 이를 온전히 감당하고자 하는 비평적 책임감 그리고 엄숙한 자의식이나 손쉬운 예찬과 거리를 두고자 분투하는 성찰적 경계심이다. 이 책에 묶인 34편의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학이 제기하는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단일한 제언과 형식으로 집약하지 않으려는, 그럼으로써 각 문학작품이 갖는 고유한 부피와 깊이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그의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평이 “순전히 시와 독자 사이에 자리하길 바라는” 김영임의 평론가적 섬세함은 읽고 쓰는 이 그리고 작품 스스로가 내는 목소리까지, 그 모든 음성을 하나도 꺼뜨리지 않는다. 겹겹의 소리를 일관된 음정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풍성하게 중주(重奏)하는 다성의 비평이 지금 여기 한국문학장에 울려 퍼진다.
이 책은 내가 평론가임을 확신에 차서 선언하는 자리가 아니라, 부끄러움과 주저 속에서도 그 이름을 피하지만은 않겠다고 말하는 자리다. 나는 여전히 작품 앞에서 자주 늦고, 자주 모른다. 내 문장은 작품이 이미 도달해 있는 자리를 쫓아가기에 바쁘며, 그마저도 끝내 다다랐다고 쓰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하지만 그 모름 속에서 문장을 시작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읽고 쓰고 싶다. 하나의 질문으로 문학을 너무 쉽게 관통하지 않는 일, 작품보다 먼저 도착하지 않는 일, 작품이 내게 요구하는 속도와 거리를 매번 다시 배우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내가 비평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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